정철 鄭澈(대한민국, 1536~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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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서울 장의동(藏義洞,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출생으로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仁宗)의 귀인인 큰누이와, 계림군(桂林君) 유(瑠)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로 인하여 궁중에 출입하여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후의 明宗)과 친숙해졌다. 10세가 되던 1545년(명종 즉위 원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맏형은 장류(杖流) 중에 죽고, 부 유침은 유배를 가게 되자, 그도 관북(關北)·정평(定平)·연일 등 유배지를 따라다녔다. 1551년에야 해배(解配)되어 조부(祖父)의 산소가 있는 전남 담양 당지산 아래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여 년간 지냈다. 여기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송순(宋純, 1493〜1582)·기대승(奇大升, 1527〜1572) 등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임억령(林億齡, 1496〜1568)에게서 시를 배웠으며, 이이(李珥, 1536〜1584)·성혼(成渾, 1535〜1598)·송익필(宋翼弼, 1534〜1599) 같은 유학자들과 교유했다. 1561년(명종 10) 26세에 진사시 1등,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했다. 사헌부지평을 거쳐 좌랑·현감·전적·도사를 지내고, 31세에 정랑·직강·헌납을 거쳐 지평, 이어 함경도 암행어사가 되었다. 32세에 이이와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어 수찬·좌랑·종사관·교리·전라도 암행어사를 지내다가 40세인 1575년(선조 8) 낙향했다. 43세에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승진하여 출사했다. 이후 사간·집의·직제학을 거쳐 승지에 올랐으나, 진도군수 이수(李銖)의 뇌물사건으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시 낙향했다. 45세 되던 1580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때 <관동별곡>과 <훈민가>16수를 지어 가사와 시조문학의 대가로서의 재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그 뒤 전라도 관찰사·도승지·예조참판·함경도 관찰사 등을 지내고, 48세에 예조판서로 승진,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으나 역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 해에 사직, 고향 창평으로 돌아가 4년간 은거했다. 이때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등의 가사와 수많은 시조·한시 등을 창작했다.
54세에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 최영경(崔永慶, 1529〜1590) 등을 다스리고 철저히 동인을 배제하며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1591년 건저문제(建儲問題)로 진주로 유배, 이어 강계로 이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부름을 받아 의주까지 호종했으며, 왜군이 아직 평양 이남을 점령하고 있을 때 경기·충청·전라 삼도체찰사(體察使)를 지내고, 다음 해 명나라에 사은(謝恩) 행차를 다녀왔다. 이 사은사 행차가 빌미가 돼 다시 동인의 모함을 받고, 강화의 송정촌에 우거(寓居)하다, 이듬해 포폄 많았던 한 생을 마감했다.
사후 관작을 추탈(追奪)당했다가 1609년(광해군 원년) 신원되고, 1623년(인조 원년) 복원되었다. 창평의 송강서원, 연일의 오산서원 별사(別祠)에 제향 되고 있으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정치가로서는 서인의 영수로 ‘조정의 맹호(殿上之猛虎)’였으나, 시문학은 호흡에 맞고 귀에 익은 멋 겨운 장·단가(長·短歌)가 사뭇 취선(醉仙)의 풍기(風氣)요, 정한(情恨)의 자수인 연군(戀君)의 독백은 민족 정서를 접맥해 온 비장(悲壯)이다. 따라서 그의 성가는 국문시가의 독보임에 틀림없다.

해설           

≪송강가사(松江歌辭)≫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송강 정철(松江鄭澈, 1536~1593)의 가사(歌辭)와 시조(時調)를 수록한 2권 1책의 시가집(詩歌集)이다.
필사본으로 전하는 것도 있으나, 곳곳에 일문(逸文)이 있어 온전하지 못하고, 목판본으로는 ≪황주본(黃州本)≫·≪의성본(義星本)≫·≪관북본(關北本)≫·≪성주본(星州本)≫·≪관서본(關西本)≫ 등 5종이 있었다 하나, 그 중 ≪의성본≫과 ≪관북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전하는 ≪황주본≫·≪성주본≫·≪관서본≫을 간행 연대순으로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황주본은 1690년(숙종 16)부터 1696년 사이에 이계상(李季祥)이 황주에서 간행한 책이다. 총 26장 완책(完冊)으로 <관동별곡(關東別曲)>·<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성산별곡(星山別曲)>·<장진주사(將進酒辭)>순의 가사 5편에 이어, 그 이하 단가라는 제목을 두지 않은 채 51수의 단가와 이선(李選)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이선의 발문이 있어 일명 ≪이선본(李選本)≫이라고도 하고, 소장자인 방종현(方鍾鉉)의 호를 따 ≪일사본(一簑本)≫이라고도 한다.
현전하지 않는 ≪의성본≫과 ≪관북본≫은 그의 현손인 호(澔)가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성주본≫ 발문에 의하면 ≪의성본≫은 의성 현감으로 있던 호가 1696년 5월부터 1698년 1월 사이에 간행했음을 알 수 있고, ≪관서본≫발문에 의하면 ≪관북본≫은 호가 관북 관찰사로 있던 1704년 4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에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성주본≫은 정철의 5대 손인 관하(觀河)가 성주목사를 지내던 1747년(영조 23)에 성주에서 간행한 2권 1책으로, 총 44장 상·하로 나뉘어 있다. 상권 24장에는 <松숑江강歌가辭 上샹>이라 하고 <관동별곡(關東別曲)>·<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성산별곡(星山別曲)>·<장진주사(將進酒辭)> 등 가사 5편이 ≪황주본≫과 같은 순서로 기록되어 있고, 하권 20장에는 별면(別面) <松숑江강歌가辭 下하> ‘短단歌가’라는 제하(題下)에 79수의 단가와, 송강 정철의 현손인 천(洊)과, 그의 아들 관하의 발문이 실려 있다.
≪관서본≫은 ≪의성본≫과 ≪관북본≫을 간행한 호의 손자인 실(實)이 1768년(경종 44) 관서 지방에서 간행한 책이다. 총 23장에<관동별곡(關東別曲)>·<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성산별곡(星山別曲)>·<장진주사(將進酒辭)>및 단가 51수가 실려 있는데, 몇몇 표기상의 차이 외에는 ≪이선본≫과 대동소이하며, 이선의 발문과 정실의 후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의 자료에 대한 영인본(影印本)으로는 1954년 방종현이 해제를 붙여 통문관에서 간행한 바 있으며, 1958년 김사엽(金思燁)이 해제를 붙여 경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연구실에서 발행한 것이 있다. 특히 현전 3본을 아우른 영인본으로는 1973년 대제각(大提閣)에서 발행한 ≪한국고전총서(韓國古典叢書)≫<Ⅱ시가류(詩歌類)>에 ≪숑松강江가歌辭≫가 있으며, 교주본으로는 1948년 정음사에서 간행한 방종현 교주본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송강가사·상

관동별곡 해제
관동별곡
관동별곡 보충
사미인곡 해제
사미인곡
사미인곡 보충
속미인곡 해제
속미인곡
성산별곡 해제
성산별곡
장진주사 해제
장진주사
장진주사 보충

송강가사·하

단가 해제
1. 교술가: 훈민가 16수 외
2. 연군
3. 풍류
4. 풍자
5. 친화자연
6. 자성
7. 자긍
8. 별리(別離)·기타

옮긴이에 대해

옮긴이         

김갑기(金甲起)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1972),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1975) 및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1985).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2004. 2),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송강 정철의 시문학≫, ≪한국한시문학사론≫, ≪동서 고전 연시≫(공저), ≪漢詩로 읽는 우리문학사≫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 ≪삼한시귀감≫, ≪신자하시집Ⅰ~Ⅵ≫ (공역), ≪한국사찰제영시≫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초나라 굴원의 <이소(離騷)>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송강의 가사가 있다.’ 김만중이 꼽았던 우리나라의 진문장,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비롯한 가사와 목민관으로서의 애민을 여실히 보여주는 훈민가를 비롯한 시조가 두루 담겼다. <장진주사>에서 권하는 대로 화창한 봄날, 꽃가지 꺾어 산가지로 술잔을 세어가며 송강의 시를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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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떻게 ‘성매매’를 부추겨왔나
‘매매춘과 일본문학’

“지금 무슨 일 하고 있어?”
“헤헤, 행복 파는 사람.”

1977년 일본 ‘세븐틴’이라는 잡지에 게재된 만화 ‘나는 모에’ 중 한 장면이다.

주인공 모에는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청년과의 첫날밤 “모에와 있을 때만 행복하다”는 말을 듣는다. 모에는 “내 품에서 행복해져가는 사람을 보기 위해” 성매매를 한다. 밤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렇게 번 돈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다. 피를 쏟아낼 때까지.

작가는 다치하라 아유미. 여성 이름이지만 실은 남성이다.

일본의 여성만화 평론가인 후지모토 유카리는 이 소녀만화를 두고 “애처로우면서도 한없이 상냥한, 어머니와 같은 ‘꿈의 여자’를 추구하는 ‘남자의 꿈’ 냄새가 난다”고 평가했다.

‘치유하는 것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자신’을 발견한 소녀들이 성매매라는 ‘달콤한 자기희생’에 빠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유카리 자신마저도 “젊은 시절 알게 모르게 ‘남자의 꿈’에 몸을 바치려 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책 ‘매매춘과 일본문학’은 근대 ‘게이샤’부터 현대 ‘원조교제’까지 “일본의 문학작품이 어떻게 성매매를 합리화해 왔는가”를 파헤친다. 교수와 시인, 여성학자, 문예평론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34명의 연구자가 이 작업에 동참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작가 다야마 가타이의 대표작인 ‘백야’(1935)가 게이샤와의 관계에 의지해 쓰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책에 따르면 1920~30년대 일본 자연주의 작가들은 대부분 성매매를 통해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렇게 쓴 소설들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도쿄 조가칸 단기대학 교수인 오가타 아키코는 “작가의 인간 인식은 사회 도덕과 통념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되지만, 문학자라는 신분에 젖어 ‘문학을 위해 여자를 사는’ 행위는 문학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엄격한 인간 인식을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성매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1991년 오키나와에서 숨진 배기봉씨의 삶을 담은 ‘빨간 기와집-조선에서 온 종군위안부’(가와다 후미코·1987)다.

여성사 연구가인 스즈키 유코는 “이 책을 기점으로 이전 남성작가들이 ‘피해자’를 동정하면서도 가부장적 정조의 관념을 버리지 못했다면, ‘빨간 기와집’은 여성작가의 눈으로 ‘생존자’의 마음의 고통까지 어루만진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책을 읽다가 만나게 되는 ‘자기 결정에 의해 스스로 선택한 매춘이라면 육체노동의 일종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화두는 논쟁적이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양의 일본 문학작품을 다루다보니 분량이 400쪽에 이르지만, 책 속의 책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오카노 유키에 외 33명 지음/ 서기재 옮김/ 지만지/ 2만3000원
 
978호 [책읽기] (2008-04-25)
권지희 / 여성신문 기자 (swkjh@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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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명(원어명) / 저자명 / 국가 / 편역자 / 분야 / 국내 초역(★) 또는 절판 복간(☆) 순

0089  서경잡기 西京雜記 / 유흠 / 중국 / 김장환 / 중국사
0090  어머니의 꿈 The Joy of Motherhood / 부치 에메체타 / 나이지리아 / 김의락 / 소설
0091  별똥별 Povětroň / 카렐 차페크 / 체코 / 김규진 / 소설
0092  소동파사선 蘇東坡祠選 / 소동파 / 중국 / 류종목 / 중국시
0093  살람보 Salammbo / 귀스타브 플로베르 / 프랑스 / 김계선 / 소설

0094  고백록 Confessiones / 아우구스티누스 / 고대그리스 / 문시영 / 인문
0095  언어학개론 / 허웅 / 한국 / 권재일 / 언어학
0096  피론주의 개요 Πυρρώνειοι ὑποτυπώσεις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 고대그리스 / 오유석 / 철학(★)
0097  당통의 죽음 Dantons Tod / 게오르크 뷔히너 / 독일 / 임호일 / 희곡
0098  보이체크_레옹스와 레나 Woyzeck_Leonce und Lena / 게오르크 뷔히너 / 독일 / 임호일 / 희곡

0099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 Der Aufstieg des Arturo Ui / 베르톨트 브레히트 / 독일 / 이원양 / 희곡
0100  실종자 Der Verschollene / 프란츠 카프카 / 독일 / 편영수 / 소설
0101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 African Religions and Philosophy / 존 음비티 / 케냐 / 철학(☆)
0102  정치경제학 비판요강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 마르크스 / 독일 / 김호균 / 철학
0103  일반교육학 Allgemeine Pädagogik / 요한 프리드리히 헤르바르트 / 독일 / 김영래 / 교육학

0104  사일러스 마너 Silas Marner / 조지 엘리엇 / 영국 / 한애경 / 소설
0105  사시전원잡흥 四時田園雜興 / 범성대 / 중국 / 서용준 / 중국시
0106  토별산수록 兎鼈山水錄 / 작자미상 / 한국 / 김동건 / 소설
0107  언어학 개설 Очерк науки о языке / 크루솁스키 / 러시아 / 김민수 / 언어학
0108  열선전 列仙傳 / 유향 / 중국 / 김장환 / 설화,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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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춘과 일본 문학
오카노 유키에·와타나베 스미코·하세가와 게이 편저 / 서기재 옮김 / 395쪽 /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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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직후인 1945년 8월 17일. 고노에 후미마로 국무장관은 경시총감을 불러 “일본의 딸들을 꼭 지켜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총감은 부하들을 불러 “남경사건을 도쿄에서 일으키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의 부하들은 1억 엔의 예산을 들여 긴자에 성매매 시설을 설치했다. 그리곤 ‘일본의 처녀들을 지키기 위한 처녀들’을 모아 사실상의 공창을 운영했다. 패전 뒤 미군 주둔군을 상대했던 성매매 여성 ‘팡팡’은 이렇게 권력자에 의해 조달됐다. 일본 성 개념의 속내와 권력과의 함수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은 근대 이후 일본의 성매매 담론을 다루고 있다. 주로 페미니스트 학자인 34명의 필자는 일본 역사에서 성을 사고 파는 문제가 어떠한 내용과 형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살핀다. 문학작품을 통해서다. 차별과 억압이라는 성매매의 본질을 파고든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성매매를 나누는 것은 ‘거대한 코끼리 만지기’나 다름없다. 접근하는 ‘부위’에 따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납치에 의한 범죄적 강요부터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원조교제까지 말이다.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오키나와에서 숨진 한국여성 배봉기씨의 삶에 초점을 맞춘 가와타 후미코의 『빨간 기와집』이란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는 배씨를 사례로 들며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집안 여성을 유인해 위안소로 팔아버리는 성적착취를 고발하고 있다.

무라카미 류가 1988년 성매매 여성을 주제로 쓴 소설 『토파즈』는 남자들의 욕망에 의해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해가는 여성들을 그렸다. 이렇듯 사랑과 자본주의가 힘겨루기를 하는 도시의 좁은 공간에서 망가져 가는 여성을 묘사한 것이 일본 현대 성매매 문학의 특징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현재 고민을 반영하듯 원조교제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도발적인 주장도 담았다. ‘남자는 하다 못해 비디오 가게라도 같이 가줄 그녀가 필요하고, 그녀는 프라다를 사줄 남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원조교제는 젠더간의 뜨거운 투쟁 공간’이라는 주장이 그 중 하나다. 논란을 부를 대목이 줄을 잇는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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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 劉向(중국, BC 77∼BC 6)


한(漢) 왕조의 종실로서 본명은 갱생(更生), 자는 자정(子政)이며, 간대부(諫大夫)·광록대부(光祿大夫) 등을 지냈으며, 명유(名儒)로 선발되어 석거각(石渠閣)에서 오경을 강론하기도 했다. 그는 경
학·문학·천문학 등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역대 전적을 교감·정리하는 데 힘을 기울여 중국 최초의 목록서인 ≪별록(別錄)≫을 완성했으며 그의 아들 유흠(劉歆)이 이것을 이어받아 ≪칠략(七略)≫을 완성했다. ≪별록≫과 ≪칠략≫은 모두 망실되었지만 ≪한서≫<예문지>의 바탕이 되었다. 저작에는 ≪열선전≫ 외에 ≪열녀전(列女傳)≫·≪신서(新序)≫·≪설원(說苑)≫·≪홍범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오경통의(五經通義)≫ 등이 있다.



해설             
 

∙원전 상·하 2권에 실린 총 70조의 선인 전기 가운데 <열선전서(序)>와 <총찬(總讚)>을 제외한 본문 70조를 모두 옮기고 원문을 함께 실었습니다.

≪열선전(列仙傳)≫은 선인(仙人)의 행적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장생불사를 중심 주제로 한,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신선 설화집이자 신선 전기집이다. 계통적으로 잘 정리된 이러한 선화집(仙話集)의 출현에는 전대로부터 이어져 온 사회·사상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신선’은 일찍이 전국시대에 나타났는데, ≪장자(莊子)≫에는 ‘신인(神人)’ 또는 ‘진인(眞人)’이라는 명칭으로 신선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들어 있다. 한편, 황제(黃帝)와 서왕모(西王母) 등 ≪산해경(山海經)≫의 신화적 인물들은 득도자로 서술되어 신화로부터 선화로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보여주며, 팽조(彭祖)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불로장생 고사가 당시에도 널리 퍼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밖에 제(齊)나라 위왕(威王)·선왕(宣王), 연(燕)나라 소왕(昭王)과 같은 제왕들은 사람을 바다로 보내 삼신산(三神山)을 찾게 하는 등 신선사상을 고무시킴으로써 방사들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이러한 신선에 대한 탐색은 진(秦)나라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다. 진시황(秦始皇)은 천하를 통일한 뒤 신선방술에 심취하여 ‘진인’이라 자칭하고 천하의 방사를 불러 모아 삼신산과 신선·불사약·불로초를 찾게 하고 박사들에게 <선진인시(仙眞人詩)>를 짓게 하는 등 구선(求仙)의 기풍을 크게 일으켰다. 따라서 선화의 창작도 이러한 기풍에 자극받아 날로 발전되었는데, 진나라 대부 완창(阮倉)은 수백 명에 달하는 선인의 사적을 기록한 ≪열선도(列仙圖)≫ 창작했으며 이것은 후대 ≪열선전≫의 창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漢)나라에 이르러서는 강력한 통일국가의 경제적인 번영을 기초로 황실에서 도가를 존숭하여 신선방사들이 우대받았는데, 특히 무제와 같은 황제는 신선방사 집단과 결합하여 구선 행위에 심취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구선’의 열풍에 휩싸이다시피 했다. 무제는 훗날 그 자신이 ≪한무동명기(漢武洞冥記)≫·≪한무고사(漢武故事)≫·≪한무내전(漢武內傳)≫ 등과 같은 소설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화의 창작은 날로 흥성하여 수많은 문인방사들이 당시 세상에 유전되어 있던 선화를 대량으로 수집·정리하게 되었다. 그 후 서한 말에서 동한 초에는 진일보하여 의식적인 선화 창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비교적 계통적이고 전형적인 선화 작품이 출현하게 되었다. ≪열선전≫은 바로 이러한 사회·사상적 배경 하에서 창작된 것이다.

≪열선전≫의 작자에 대해서는 종래로 제설(諸說)이 분분한데, 크게 서한(西漢)의 유향(劉向) 창작설과 후대인의 위작설로 대별할 수 있다. 이러한 제설을 종합해 보면, ≪열선전≫의 원작자는 유향이지만 금본(今本)은 후대인이 전사(傳寫)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탈자가 발생했을 것이고 그들에 의해 찬입(竄入) 된 부분도 많을 것이므로 원서의 면모가 상당 부분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유향(BC 77∼BC 6)은 한나라 왕조의 종실로서 본명은 갱생(更生), 자는 자정(子政)이며, 간대부(諫大夫)·광록대부(光祿大夫) 등을 지냈으며, 명유(名儒)로 선발되어 석거각(石渠閣)에서 오경을 강론하기도 했다. 그는 경학·문학·천문학 등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역대 전적을 교감·정리하는 데 힘을 기울여 중국 최초의 목록서인 ≪록(別錄)≫을 완성했으며 그의 아들 유흠(劉歆)이 이것을 이어받아 ≪칠략(七略)≫을 완성했다. ≪별록≫과 ≪칠략≫은 모두 망실되었지만 ≪한서≫<예문지>의 바탕이 되었다. 저작에는 ≪열선전≫ 외에 ≪열녀전(列女傳)≫·≪신서(新序)≫·≪설원(說苑)≫·≪홍범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오경통의(五經通義)≫ 등이 있다.

금본 ≪열선전≫의 체재는 상·하 2권에 총 70명의 선인 전기가 실려 있으며, 각 전기마다 4언 8구로 된 <찬(贊)>이 붙어 있고 전편의 말미에는 <총찬(總讚)>이 있다.

그 내용상 특성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열선전≫의 선인 명칭은 대부분 본명이 아니고 그들의 출신 지역, 신체적인 특징, 특이한 행적, 직업상의 특징 등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70명 중에서 역사상의 실존인물은 노자(老子)·여상(呂尙)·개자추(介子推)·범려(范蠡)·동방삭(東方朔)·구익부인(鉤翼夫人)의 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64명은 모두 전설상의 인물이다. ≪열선전≫이 사전(史傳)의 ‘열전체’를 취하고는 있지만 그 등장인물은 대부분 역사적인 실재성에서 벗어나 민간에 유전되면서 형성된 비역사적인 허구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열선전≫에 등장하는 선인의 시대적인 범위는 신농(神農) 때부터 서한 성제(成帝) 때까지다. 권상에는 주로 선진(先秦)까지의 인물이 실려 있고 권하에는 주로 한대의 인물이 실려 있다. 일부는 시대적인 순차가 어긋나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신농·황제·요·하·은·서주·동주(춘추전국)·진·서한 순으로 시대적인 안배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인은 ‘승천’하거나 ‘결국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사실상 어느 시대로 한정한다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셋째, ≪열선전≫에 등장하는 선인의 출신지와 거처 및 활동 지역은 중국 전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으며, 도시·향촌·산간·강변·해변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 고래로 신선의 거처로 알려진 이른바 명산 오악(五岳)과 삼신산과 같은 전설상의 선산(仙山)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심산유곡(深山幽谷)은 수도하면서 선약과 단약을 얻거나 최후의 귀숙처(歸宿處)로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도시나 향촌에서도 병자 치료와 빈민 구제 등 선덕(善德)을 쌓아 성선(成仙)하는 경우도 보인다. 이것을 보면 성선하는 데에는 지역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열선전≫에 등장하는 선인의 신분은 왕공귀족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에 따른 직업적인 분포는 제왕·비빈·태자·부마 등의 왕족, 대부·관리·학자 등의 문인 사대부, 금(琴)·소(簫)·우(竽)·생(笙) 등의 연주에 뛰어난 음악가, 주살·부채·진주·신발 등을 제조·판매하는 수공업 상인, 양잠·양계·양어·양돈 등에 종사하는 목축인과 어부, 약초·단약을 채취·제조·판매하고 의술을 지닌 의약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밖에 주모·산파·점술사·신기료장수·마경인(磨鏡人)·걸인 등도 있는데, 일부는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겸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보면 성선하는 데에는 어떠한 신분적인 제약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중에서 절대 다수의 선인은 일반 서민계층이며 이들이 종사한 생업도 서민적인 것인데, 이는 ≪열선전≫의 설화가 이미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섯째, ≪열선전≫에 나타난 성선 방법은 외부적인 영향으로 이루어지는 전수(傳受)·승영물(乘靈物), 구체적인 육체 수련[養形] 방법인 복약법(服藥法)·벽곡법(辟穀法)·행기법(行氣法)·도인법(導引法)·방중술(房中術), 정신 수련[養神] 방법인 행선적덕(行善積德)·거삼시(去三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도가의 성선 방법이 대부분 들어 있어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그중에서 복약법이 전체 70조 중에서 39조를 차지하여 단연 주류를 이룬다.

‘전수’는 스승이나 어떤 선인으로부터 선술(仙術)을 전수 받거나 그들을 따라가 성선하는 경우와 잡은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 있던 선서(仙書)로부터 선술을 전수받는 경우인데, 대부분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며 다시 육체 수련이나 정신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승영물’은 용·잉어·학·봉황 등 이른바 영수(靈獸)나 신어(神魚)를 타고 승선하는 경우인데, 이러한 동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거나 옛날 자신을 길러준 보답으로 모시러 오기도 한다.

‘복약법’은 불사약으로 알려진 식물질 또는 광물질의 선약을 복용하여 성선하는 경우로, 특정한 약이나 음식을 복용하여 양생하는 복식법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불사 선약은 이미 ≪산해경≫에 그 기록이 보이며 전국시대를 거쳐 한대에 이르러 그 종류가 더욱 많아졌는데, 이때까지의 선약은 대량의 식물질과 소량의 천연 광물질이 대부분이었다. 인공적인 단약은 한대 이후에 점점 주류를 이루게 되어 진대(晉代)에서 그 중요성이 극대화되었다. ≪열선전≫에서도 총 39조에 언급된 선약 가운데 단약은 겨우 2조에 불과하여 이러한 시대적인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벽곡법’은 일체의 곡기를 끊는 단식법으로 대부분 복약법과 병행되어 나타나는데, 선약을 복용하면 곡식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벽곡법은 이미 ≪장자≫에 언급되어 있어서 그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행기법’은 체내의 탁기를 내뱉고 체외의 청기를 들이마셔 체내에서 순환시키는 일종의 호흡법으로, 외부의 물질을 빌려 성선을 꾀하는 복약법을 ‘외단법’이라 하는 것에 대하여 ‘내단법’이라고도 한다. 당대 이후로 광물질 선약의 중독 폐해가 심해짐에 따라 복약법 대신에 이러한 행기법이 모든 수련방법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열선전≫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어 있지 않다.

‘도인법’은 육체의 관절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근육과 피의 순환을 순조롭게 하는 일종의 체조법으로, ‘내공’이라 불리는 호흡법에 대하여 ‘외공’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도인법은 벽곡법과 함께 복약법이나 행기법의 보조방법으로 많이 활용된다.

‘방중술’은 남녀가 성교할 때 정력을 소모하지 않고 반대로 상대방의 정기를 흡취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데, ≪열선전≫에는 “귀접이불시(貴接而不施)”(<노자전(老子傳)>)와 “양성교접지술(養性交接之術)”(<여환전(女丸傳)>)이라 표현되어 있다. 대부분 남성이 여성의 ‘음정(陰精)’을 흡수하여 자신의 ‘양정(陽精)’을 보양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여환전(女丸傳)>의 경우는 그 반대여서 이색적이다.

‘거삼시’는 성선을 방해하는 중요한 장애물인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제거하는 것으로 정신 수련의 일종이다. 즉 사람의 체내에서 내장을 해치고 그 사람의 잘못을 천상의 사명신(司命神)에게 보고하여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하는 상시[上尸: 팽거(彭倨)라고도 하며 뇌에 거주함. 보물(寶物)을 좋아함], 중시[中尸: 팽질(彭質)이라고도 하며 배에 거주함. 오미(五味)를 좋아함], 하시[下尸: 팽교(彭矯)라고도 하며 발에 거주함. 색욕(色慾)을 좋아함]의 삼시(삼팽)신을 제거하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도가에서는 삼시를 혼령이나 귀신과 같은 무형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나, ≪열선전≫에서는 괴밸병[瘕]의 병원(病源)으로 유형화되어 나타나고 있어서(<주황전(朱璜傳)>) 특이하다.

‘행선적덕’ 역시 정신 수련의 일종으로 선행과 덕행의 실천을 통하여 인격적으로도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병자를 대가 없이 치료해 주거나 잡힌 동물을 놓아주거나 잘 보살펴주는 일 등이 포함된다.

여섯째, ≪열선전≫에 등장하는 선인의 선술 또는 도술은 선인으로서 발휘하는 초월적인 능력을 말하는데, ‘불로장생’이나 ‘노이갱장(老而更壯)’과 같은 능력은 거의 모든 선인에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봉황·백학·적룡·적리(赤鯉) 따위의 영물과 풍우 등을 마음대로 불러들이거나 그것들을 탈 수 있는 ‘감소술(感召術)’, 미래의 일이나 홍수·기근·지진 등을 구체적으로 예언할 수 있는 ‘예언술’, 마음대로 하늘을 비상하거나 풍우와 연기 등을 타고 비행할 수 있는 ‘비행술’, 장이(長耳)·방목(方目)·장모(長毛)·무치(無齒)·무영(無影) 등의 ‘이형술(異形術)’,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사이갱생술(死而更生術)’, 신묘한 약이나 의술로 병든 사람이나 동물을 치료할 수 있는 ‘치병술’, 아무것도 이용하지 않고 불이나 수은 따위의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물술’, 형체를 다른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변형술’, 한여름이나 겨울에도 더위나 추위를 느끼지 않는 ‘내한열술(耐寒熱術)’, 물속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입수술’ 등이 들어 있다. 이 중에서 자연재난을 예언하여 많은 사람을 구제하거나 역병과 괴질에 걸린 병자를 치료하여 병마에서 벗어나게 해준 선인들은 나중에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 사당에 신으로 모셔져 경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역자 소개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입문≫,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봉신연의(封神演義)≫(전5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설신어(世說新語)≫(전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8권),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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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B. 크루솁스키 Николай В. Крушевский(러시아, 1851~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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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rus.tgim1.edusite.ru

크루솁스키는 1851년 12월 6일 볼린 주 루츠크 시(현재 폴란드의 남동부)의 퇴역 장교이자 지주인 바츨라프 크루솁스키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루츠크 시에서 3년간 초등교육을 받고 류블린 주의 헬름 시 김나지움에 입학하여 1871년에 졸업했다. 그리고 그해 바르샤바 대학교 역사철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트로이츠키 교수에게 철학을 배웠고, 포테브냐의 제자인 콜로소프 교수에게 언어학을 배워 그의 지도로 “러시아 민중 시가의 한 형태로서의 주문”(1875)이라는 제목의 졸업 논문을 썼다.

대학 졸업 무렵 콜로소프 교수는 크루솁스키에게 언어학 공부에 전념할 것을 권유했으며, 하리코프의 포테브냐 또는 카잔의 보두앵 드 쿠르트네를 찾아가 공부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크루솁스키는 이미 오렌부르그 주 트로이츠크 김나지움의 고전어 강사로 임명되어 있었기 때문에 즉시 언어학 공부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임지로 가는 길에 카잔 대학교에서 교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를 만나 향후의 학업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카잔을 방문했다. 그러나 장학금은 받을 수 없었고, 대신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로부터 향후 언어 연구에 대한 귀중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크루솁스키는 트로이츠크 김나지움에서 3년(1875∼1878년)간 고전어를 가르쳤다. 그는 이 기간 중에 향후의 언어학 공부를 위해 충실한 준비를 했다. 저명한 언어학자들의 저작물을 연구하는 한편 산스크리트어, 고대페르시아어, 고대 박트리아어, 고대 그리스어, 리투아니아어 등을 공부했다. 마침내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의 추천으로 카잔 대학교 어문학부 정원 외 교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1878년에 카잔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카잔대학에서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의 일반언어학, 비교문법, 산스크리트어 강의를 성실하게 수강했다. 그리고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는 크루솁스키를 위해서 자신의 집에서 슬라브 방언학, 산스크리트어와 리투아니아어, 언어학 중요 문헌 강독 등 실습 중심의 수업을 해주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잔 대학의 학생들과 젊은 학자들이 이 수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보두앵 드 쿠르트네 학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크루솁스키는 이 수업에서 자신의 언어학 지식과 능력을 십분 발휘했으며,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가 장기 해외 출장을 가는 경우에는 카잔 학파를 이끌기도 했다.

1879년 5월 크루솁스키는 “강세와 연관된 몇 가지 음성적 현상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비교언어학과 비상근 조교수 직위를 취득했으며, 곧바로 석사학위 취득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1881년 5월에 고대슬라브어 모음에 관한 주제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여 비교언어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었으며, 1883년 5월에는 “언어학 개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는 크루솁스키를 정식 교수로 임용해줄 것을 대학 당국에 청원한 뒤 카잔 대학을 영원히 떠났다.

크루솁스키는 1885년에 정교수 직위를 취득했으며, 비교언어학, 산스크리트어, 음성 생리학, 러시아어 문법, 로망스어 비교문법, 프랑스어사, 일반언어학,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과목의 강의를 했다. 그러나 너무 열성적으로 교육과 연구활동에 전념한 결과 건강이 악화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으며, 1887년 11월 1일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해설               

로만 야콥슨도 지적했던 바, 크루솁스키는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언어학계에서 충분히 평가되지 못하고 잊혀졌던 인물로,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유럽 언어학자들이 그의 연구 성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언어학자들은 소쉬르 이전 세대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다가 보두앵 학파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소쉬르 언어 이론의 많은 부분이 저 유명한 ≪일반 언어학 강의≫가 세상에 나오기 30년 전에 이미 보두앵 학파가 발표한 언어 이론들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유럽의 학자들은 보두앵 드 쿠르트네를 중심으로 한 카잔 학파가 현대적인 구조주의 형성에 전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크루솁스키는 36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한 것은 1879년∼1884년의 짧은 기간 동안이다. 이 시기는 독일의 소장문법학파가 형성되던 시기였기에, 크루솁스키는 그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파울의 1880년판 ≪언어사의 원리≫를 박사학위 논문에 여러 차례 인용하였다. 그러나 크루솁스키가 소장문법학파의 이론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1881년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그들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그들의 학문을 아리아유럽어족 언어들의 종적 상호관계를 밝히고, 아리아유럽어 조어뿐 아니라 다른 어족 언어들의 조어들도 밝혀내려는 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학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입증할 필요도 없다.” 또한 박사학위 논문 서두에서도 라이프니츠를 인용하여 그들의 시도를 비판했다.

크루솁스키는 언어학의 최종 목적이 언어 현상의 법칙들을 밝혀내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 법칙들은 자연법칙처럼 그 어떤 예외나 이탈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어 법칙에 대한 그의 생각은 외견상 오스토프나 부르크만의 견해와 유사하지만, 언어 법칙을 언어의 일반 속성을 규정하는 정태적인 법칙과 언어 변화를 규정하는 동태적인 법칙으로 분리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크루솁스키가 제시한 정태적 법칙 가운데 주요한 것이 음성 법칙이다. 그는 모든 음성은 동일한 음향적, 생리적 조건에서 동일 시간대에 동일 방언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동일하다고 했다. 이 점은 그의 스승인 보두앵 드 쿠르트네를 포함한 당대의 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언어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한 사람의 언어를 유일한 실재로 여긴 것과는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크루솁스키는 정태적 법칙에 ‘언어 체계의 조화’, ‘인접 음성들의 상호 영향’ 등도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생리적인 법칙 이외에 인접성과 유사성에 따른 연상 법칙이라는 심리적인 법칙도 제시했다.그는 모든 단어는 인접성에 따른 연상 고리로 다른 단어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유사성은 음성이나 구조와 같은 외적인 측면뿐 아니라 내적인, 즉 기호론적인 유사성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단어들이 우리 머릿속의 체계 또는 둥지에 포함되게 되는데, 바로 이 다양한 유형의 체계 또는 둥지가 바로 일반적 의미에서의 패러다임, 즉 동근어들의 다양성, 동일 접사로 파생된 다양한 어근의 단어들이라고 하였다. 한편 일련의 단어들이 항상 연결되어 사용되는 통합체를 구성하는데, 이를 인접성에 따른 연상 법칙으로 설명하였다. 이 같은 언어 단위들 간의 유사성에 따른 연상과 인접성에 따른 연상은 소쉬르의 계열적 관계, 통합적 관계에 각각 상응하는 것이다.

크루솁스키는 동태적 법칙은 정태적 법칙에 기반할 때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동태적 법칙은 음성이나 음성 결합체들의 변화 내의 단일성으로 나타나며, 이것 또한 생리적 법칙이자 심리적 법칙이다. 그는 일차적인 동태적 법칙 그룹을 음성과 조음의 경계 변화를 근거로 찾아냈으며, 화자의 생리적 활동의 총합체로서의 조음을 일차적 조음이라고 했다. 한 음성의 다양한 조음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이지만, 근육 감각이나 음향적 감각을 통한 이전 조음에 대한 기억이 그들의 단일성을 확보해 주며, 그리 크지 않은 조음상의 차이는 하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조음은 힘을 아끼거나 조음을 단순화하려는 인체의 무의식적인 노력 등의 원인으로 점차 변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크루솁스키가 ‘음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음성적 변화의 누적과 음운적 변화로의 전이 개념에 대해 밝힌 것이다.

그 외에 크루솁스키는 말의 세계를 개념의 세계와 일치시키는 방향으로의 언어 변화, 기호의 자의성, 기호의 양과 내용 간의 반비례 법칙 등 중요한 개념들을 밝혀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서론
I. 발화에 대한 단순 분석. 발화의 다양한 요소들과 환경
II. 음성들과 음성 법칙들
III. 음성과 음성 결합체의 역사
IV. 언어 법칙에 관한 지배적인 시각들에 대하여
V.단어
VI.단어의 형태적 요소들의 분리와 그것들의 특징
VII.구조 해체적 특성의 요인들
VIII.단어의 형태적 요소들의 역사
IX. 단어 내 형태적 요소들과 언어 내 단어들의 합성
X.단어들의 역사

옮긴이에 대해



역자 소개         

김민수는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노어학을 공부했으며, 러시아 치타 국립대학교에서 철학과 인간학을 수학했다(철학박사, 언어학박사).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으며,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강사로 일하는 한편, 주로 러시아의 과학기술 분야, 에너지 분야의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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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엘리엇 George Eliot(영국, 1819∼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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