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약 沈約 (중국, 441~513) 
작자 심약(沈約, 441∼513)은 남조 양(梁)나라의 문학가이자 사학가로, 자(字)는 휴문(休文)이며 오흥(吳興) 무강(武康, 지금의 절강성 덕청현 무강진) 사람이다. 심약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했지만 학문에 뜻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여 군서(群書)를 널리 섭렵했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송(宋)·제(齊)·양 3조에 걸쳐서 대대로 벼슬했는데, 송나라 때는 상서탁지랑(尙書度支郞)을 지냈고, 제나라 때는 어사중승(御使中丞)·동양 태수(東陽太守)·보국장군(輔國將軍)·오병상서(五兵尙書) 등을 역임했다. 양나라 때는 무제(武帝) 소연(蕭衍)의 창업을 도와 그 공로로 상서복야(尙書僕射)가 되고 건창 현후(建昌縣侯)에 봉해졌다가 다시 상서령(尙書令) 겸 태자소부(太子少傅)로 전임되었다. 시호는 은(隱)이다. 그는 일찍이 문학으로 이름나서 제나라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의 문하에 들어가 사조(謝眺)·왕융(王融) 등과 함께 ‘경릉팔우(竟陵八友)’의 하나가 되었으며, 시가 창작에 있어서 ‘사성팔병설(四聲八病說)’을 제창하고 ‘영명체(永明體)’를 창시했다. 그의 저작으로는 ≪속설≫ 외에 ≪진서(晉書)≫·≪송서(宋書)≫·≪제기(齊記)≫·≪양무제기(梁武帝記)≫·≪이언(邇言)≫·≪송문장지(宋文章志)≫·≪사성보(四聲譜)≫ 등이 있으나, ≪송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망실되었다. 그리고 후대에 명(明)나라 사람이 모아 엮은 ≪심은후집(沈隱侯集)≫이 있다.

 

해설         
국내 최초 번역입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속설(俗說)≫을 사용했습니다.

≪속설≫에 대한 저록(著錄)은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자부(子部) 잡가류(雜家類)에 ‘≪속설≫ 3권은 심약이 지었다. 양나라 때는 5권이었다(≪俗說≫三卷, 沈約撰. 梁五卷)’라는 기록에서 처음 보이며, 그 이후의 사지(史志)와 서지(書志)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唐)나라 때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추정된다.≪속설≫의 유문(遺文)은 ≪예문유취(藝文類聚)≫·≪북당서초(北堂書鈔)≫·≪태평어람(太平御覽)≫·≪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남아 있다. 집본(輯本)으로는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본과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두 종류가 있다. 이 두 집본은 각각 52조씩 집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4조만 서로 다르다.

≪속설≫은 주로 동진(東晉)과 유송(劉宋) 시대 상류층 문인 명사들의 언행과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문을 통하여 살펴보면 내용이 상당히 광범위하며 당시에 유행하던 청담(淸談)과 인물 품평의 풍기를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다. 전체 52조 가운데서 몇 조의 고사를 살펴봄으로써 ≪속설≫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한다.

고호두[顧虎頭: 고개지(顧愷之)]가 남을 위해 부채에 인물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을 그릴 때는 모두 눈동자를 찍지 않은 채로 곧장 부채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눈동자를 찍으면 곧바로 살아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오!”

고개지(顧愷之)는 동진의 저명한 화가로 시부(詩賦)와 서예에도 뛰어나 재절(才絶)·화절(畫絶)·치절(痴絶)의 삼절대사(三絶大師)로 불린다. 고개지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의 초상을 그리면서 눈동자를 찍지 않은 것에는 매우 심오한 이치가 함축되어 있다. 그는 인물화를 그릴 때 특히 점정(點睛)을 중시했다. ≪세설신어≫ <교예(巧藝)>편의 기록을 보면 그가 점정을 중시한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고장강[顧長康: 고개지(顧愷之)]은 인물화를 그릴 때 간혹 몇 년 동안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곤 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고개지가 대답했다.

“형체의 미추는 본래 그림의 진수와는 무관하지요. 정신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듯이 그려내는 비법이 바로 이[點睛]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즉 인물화에 있어서 ‘정신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듯이 그려내는[傳神寫照]’ 관건이 바로 점정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 점정은 단순히 인물화에 있어서 운필(運筆)의 정교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회화 예술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관건인 것이다. ≪속설≫의 본 고사는 바로 그러한 고개지의 회화론을 ‘점정변어(點睛便語, 눈동자를 찍으면 곧 살아서 말을 한다)’라는 넉 자로 다 표현하고 있다. 이는 지인소설이 지향하는 언어 묘사의 간결성과 함축성을 잘 구현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룡점정(畫龍點睛)’이라는 성어의 출전은 당나라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이지만, 그 근원을 찾아보면 이러한 고개지의 점정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순개자[荀介子: 순백자(荀伯子)]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순개자의 부인은 투기가 대단하여 항상 순개자의 서재 안에 있다가 손님이 오면 곧장 병풍을 가리고 그 뒤에 숨었다. 당시 중병참군(中兵參軍)으로 있던 환씨(桓氏)라는 어떤 손님이 순개자를 찾아와 일을 논의했는데, 일에 대한 논의를 이미 끝내고도 계속 남아서 여담을 나누었다. 환씨는 당시 젊었으며 자태와 용모가 매우 훌륭했다. 순개자의 부인이 병풍 안에 있다가 곧장 환씨에게 말했다.

“환참군, 당신은 사람의 도리도 모르시오? 일에 대한 논의를 이미 끝냈는데 어찌하여 떠나지 않는 것이오?”
그러자 환씨는 허둥지둥 곧바로 달려 나갔다.

이 고사는 남편을 항상 감시하고 남편을 찾아온 손님까지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도록 쫓아버린 순개자 부인의 극단적인 투기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작자는 마지막 순개자의 부인이 환참군에게 한 말을 통하여 그녀의 비뚤어진 투기 심리를 다분히 해학적으로 잘 나타내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속설≫은 취재고사의 일부분이 전대 작품의 고사와 직간접적으로 중복이 되긴 하지만, 등장인물의 언행과 풍모를 간결한 필치로 그려내 문학성과 예술성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루었다.

이 책은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속설(俗說)≫을 저본으로 했다. 저본에 집록된 52조의 고사 전체를 우리말로 옮기고 간략한 주를 달았다. 고사의 제목은 저본에는 없지만 옮긴이가 임의로 달았다. 아울러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실려 있는 마국한(馬國翰)의 <속설서(俗說序)>를 첨부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주백인의 배를 가리키며 말하다 有人指周伯仁腹曰
완광록의 큰아들이 죽다 阮光祿大兒喪
사안이 어렸을 때 명성을 얻다 謝安小兒時便有名譽
만이 잠자리에서 늘 늦게 일어나다 萬眠常晏起
사만이 사태부와 함께 간문제를 찾아뵙다 謝萬與太傅共詣簡
유진장이 짚신을 짜서 모친을 봉양하다 劉眞長織芒履以養母
진나라 애제의 왕황후가 자마금 가락지를 끼다 晉哀帝王皇后有一紫磨金指環
진나라 간문제가 여러 담객들을 모으다 晉簡文集諸談士
석도안의 왼팔 위로 살점 하나가 돋아나다 釋道安生左臂上一肉
사인조가 스스로 잘못을 고쳐서 명사가 되다 謝仁祖自改遂爲名流
사인조의 첩 아비 謝仁祖妾阿妃
왕자경이 왕이보를 흉내 내다 王子敬學王夷甫
은중감이 원강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 殷仲堪看袁羌圍棋
고호두가 남을 위해 부채에 그림을 그리다 顧虎頭爲人畫扇
환대사마가 환함에게 성을 내다 桓大司馬瞋桓瑊
환온의 처 남군공주가 투기가 심하다 桓溫妻南郡主甚妬
환령보가 ≪장자≫를 직접 강론하다 桓靈寶自講≪莊子≫
환현이 시를 지으면서 피리를 불다 桓玄作詩鼓吹
환현의 첩이 해산할 때 바람을 두려워하다 桓玄妾當産畏風
환선성이 동생 환매득을 볼모로 잡히고 양을 얻으려 하다 桓宣城以弟買得質羊
환석호가 호랑이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다 桓石虎拔虎箭
환표노가 제갈랑과 경주하다 桓豹奴與諸葛郞競走
환표노가 피로하여 병들다 桓豹奴病勞
왕승경이 한 시대의 표상이 되다 王僧敬爲一時之標
왕승경 형제가 신상과 같다 王僧敬兄弟若神
환현이 서예를 좋아하다 桓玄愛書
사인조가 쟁을 타며 <추풍사>를 부르다 謝仁祖彈箏歌<秋風>
환현이 정기를 총애하다 桓玄寵丁期
진나라 명제가 송위를 완요집에게 내려주다 晉明帝以宋褘賜阮遙集
원산송이 송위의 무덤에 올라 <행로난> 노래를 짓다 袁山松上宋褘冢作<行路難>歌
왕동정이 태공을 찾아가 하룻밤 묵으면서 작별하다 王東亭就汰公宿別
왕효백이 거사하자 왕동정이 근심 걱정하다 王孝伯起事王東亭憂懼
도기가 왕효백의 참군으로 있을 때 시를 짓다 陶夔爲王孝伯參軍嘗作詩
왕경손이 만족의 시종이 되다 王慶孫爲蠻人行者
사첨의 털이 남다르다 謝瞻殊毛
치승이 청계를 유람하면서 시를 짓다 郗僧遊靑谿中作詩
사혼이 왕고려의 손을 잡고 말하다 謝混執王高麗手曰
은백이 하무기와 함께 저포 노름을 하다 殷伯與何無忌共樗蒲
양원보가 황제의 부름을 받다 羊元保被召見
사마낭군이 기녀 놀이를 좋아하다 司馬郎君好作妓
서간목이 젊었을 때 까마귀 꿈을 꾸다 徐干木年少時嘗夢烏
모태가 옥와 하나를 사다 毛泰買一玉窪
순개자의 부인이 투기가 대단하다 荀介子婦大妬
차무자의 부인이 투기가 대단하다 車武子婦大妬
부량이 장부와 작별하다 傅亮與張敷別
부량이 북정에 나섰을 때 멀리 숭고산을 바라보다 傅亮北征遙見嵩高山
하승천이 안연년에게 콩꼬투리를 묻다 何承天問藿囊於安延年
주상이 강이를 기용하여 첨사를 겸임시키려 하다 主上欲用江夷領詹事
사복야와 도태상이 오령군을 찾아가다 謝僕射·陶太常詣吳領軍
유류와 부적의 독서 劉柳與傅迪之讀書
유광록이 멋진 거위를 기르다 劉光祿養好鵝
심승조가 사람의 길흉을 기록하다 沈僧照記人吉凶
속설서 俗說序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顧虎頭爲人晝扇, 作嵇·阮, 都不點眼睛,
便送還扇主, 曰: “點眼睛便欲能語!”

고호두가 남을 위해 부채에 인물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혜강과 완적을 그릴 때는 모두 눈동자를 찍지 않은 채로 곧장 부채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눈동자를 찍으면 곧바로 살아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오!”



옮긴이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 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입문≫,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봉신연의(封神演義)≫(전5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설신어(世說新語)≫(전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8권),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소림(笑林)≫, ≪어림(語林)≫, ≪곽자(郭子)≫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 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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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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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 (한국, ? ~ ?) 

 
해설         
이 책은 1905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도서관 소장 완판 <심쳥젼> 71장본을 원전으로 하여 현대문으로 고쳐 썼습니다.
 
장황한 사설이나 삽입 가요의 일부를 축약하거나 생략한 것 외에는 원문을 그대로 살려 적었습니다.

 
1.<심청전>은 어떤 작품인가?
<심청전>은 <춘향전>과 함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읽혀졌던 고소설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작품의 주인공 심청은 가난한 심 봉사의 딸로 태어나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눈먼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자란 뒤에 아버지를 지성으로 모셨다. 심청은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의의 제물로 자기 몸을 팔았다. 심청은 인당수에서 물에 빠졌는데, 심청의 효성에 감동한 용왕은 심청을 연꽃에 태워 다시 인당수로 보냈다. 그때 마침 이곳을 지나던 뱃사람들이 이 연꽃을 임금님께 바쳤다. 연꽃에서 나온 심청은 왕과 혼인하였다. 왕비가 된 심청은 고향을 떠나 떠도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 잔치를 열었는데, 맹인 잔치에 온 아버지는 딸을 만나자 반가움과 놀라움에 눈을 떴다.

 <심청전>에서 아버지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심청의 효성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하느님과 부처님·용왕을 감동하게 했다. 그래서 이적(異蹟)이 일어나 죽었던 심청이 다시 살아나고, 왕비가 되어 눈을 뜬 아버지와 행복을 누린다. 이 이야기에서 효는 사람이 지켜야 할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여겨지고, 이를 실천하면 사람과 신은 물론 동식물까지도 감동하게 된다. 그래서 이적을 일으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한국인의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형성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작품은 지금도 고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의 민족 예술이라고 하는 판소리로도 불려진다. 또 창극, 영화 등으로 재구성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작품은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어 다른 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다. 1972년에는 독일에서 <오페라 심청전>이 공연되어 절찬을 받기도 하였다.

 
2.<심청전>은 어떻게 전해오는가?
<심청전>은 필사본(筆寫本), 판각본(板刻本), 활자본(活字本)으로 전해오는데, 모두 80여 종이 된다. 판각본은 ‘한남본 계열’, ‘송동본 계열’, ‘완판본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한남본 계열’은 간소한 내용을 단순하고 차분하게 구성하였다. 문체는 간결하고 소박한 산문체로 되어 있다. 배경은 명나라 시대의 남군 땅으로 되어 있다. 등장인물 중 심 봉사의 이름은 ‘심현’, 그의 처는 ‘정씨’라고 하였다. 한남본 계열의 이본에는 장 승상 부인, 뺑덕 어미, 안씨 맹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송동본 계열’은 문장이 율문체로 되어 있다. 배경은 송나라 시대의 황주 도화동으로 되어 있다. 심 봉사의 이름은 ‘심학규’, 그의 처는 ‘곽씨’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곽씨 부인이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비는 이야기, 심 봉사가 순산과 아기의 장래를 축원하는 이야기, 뺑덕 어미 이야기, 안씨 맹인 이야기 등 한남본 계열에 없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뒤에 나온 완판본과 활자본에 그대로 들어 있다.

‘완판본 계열’은 내용이나 문체 면에서 송동본과 대체적으로 같으나 몇 가지 차이점도 있다. 첫째, 완판본 계열에는 송동본에 없는 삽입 가요(揷入歌謠), 잔사설, 고사성어(故事成語), 한시(漢詩) 등이 많이 나온다. 둘째, 송동본에 없는 장 승상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셋째, 심청이 배를 타고 인당수에 가기까지의 항해 경로와 오래전에 죽은 유명한 사람의 영혼을 만나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넷째, 맹인 잔치에 가는 심 봉사가 목동과 방아 찧는 여인을 만나고, <목동가>와 <방아타령>을 부르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다섯째, 심 봉사가 눈을 뜰 때 모든 맹인이 함께 눈을 뜨는 이야기, 심청이 아버지를 만난 후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필사본 중에는 위에 적은 세 계열 중 어느 하나와 관련이 있는 이본도 있고, 두 계열의 내용이 함께 들어 있는 이본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한 계열과도 깊은 관련을 맺지 않은 이본도 있다.

활자본을 보면, 1912년에 <강상련(江上蓮)>이 나왔다. 이것은 이해조가 완판본의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덧붙이거나 빼면서 신소설처럼 바꿔서 출판한 것이다. 1913년에는 신문관에서 <심청전>이 나왔다. 이것은 한남본의 문장을 부분적으로 손질하고, 송동본의 뺑덕 어미 이야기를 첨가하여 간행한 것이다. 그 후에 여러 출판사에서 <심청전>이 나왔는데, 대체적으로 <강상련>을 약간씩 손질하여 간행하였다.

이처럼 <심청전>은 여러 이본이 전해온다. 그런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완판본의 내용이다. 그동안 중학교 교과서에 <심청전>의 일부분이 실렸는데, 그것은 이해조가 완판본을 고쳐 쓴 <강상련>이다.


3.<심청전>의 배경 설화 및 형성 과정
고소설 작품 중에는 당시에 민간에 전해오던 설화를 수용하여 구성한 작품이 많이 있다. <심청전> 역시 당시에 전해 오던 설화를 배경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심청전>의 여러 이본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용 단락과 그 단락을 구성하는 데에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설화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심청의 출생 : 태몽(胎夢) 설화
② 심청의 성장과 효행 : 효행 설화, 인신공희(人身供犧) 설화
③ 심청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 : 재생(再生) 설화
④ 심청의 아버지 만남과 아버지의 눈 뜨기 : 개안(開眼) 설화

‘태몽 설화’는 부모가 이상한 꿈을 꾸고 주인공을 낳는다는 내용의 설화다. 태몽 설화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과 관련되어 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효행 설화’는 여러 유형이 있다. 그런데 주인공이 지성으로 부모를 섬기자 이적(異蹟)이 일어나 효를 성취하고, 잘 살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인신공희 설화’는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의 설화이다. 이 설화는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전해온다. ‘재생 설화’는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생명을 연장한다는 내용의 설화다. 재생의 양식으로는 부활(復活)과 환생(還生)이 많이 나타난다. ‘개안 설화’는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눈을 뜬다는 내용의 설화다. 이 설화에서 장님은 아들·딸·며느리의 효성에 의해 눈을 뜬다. 이들 설화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로, 한국인의 다양한 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심청전>의 작자(누구인지는 모르지만)는 이 작품의 각 단락을 구성하면서, 그 단락의 기능을 수행해 줄 수 있는 위 설화를 수용하여 작품의 효과를 올리도록 구성하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의 문학적 전통 위에서 작품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은 위에 적은 설화를 배경으로 하여 한남본이 먼저 형성되고, 이것이 판소리와 관계를 맺으면서 송동본, 완판본으로 변화하였을 것이다. 활자본은 그 뒤를 이어 나온 것이다.

 

4.<심청전>의 구조
<심청전>의 내용 중 심청의 일생을 위에 적은 내용 단락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① 심청의 출생 단락에서 심청은 본래 천상계의 선녀였는데, 이 세상으로 귀양 왔다고 했다. 이것은 심청의 전신(前身)이 선녀로, 비현실계의 존재였음을 말해준다.
② 심청의 성장과 효행 단락에서 심청은 현실계인 이 세상에서 부친의 양육으로 자라난다. 철을 안 뒤부터는 동냥, 품팔이를 하여 아버지를 봉양하다가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았다. 심청이 산 곳은 이 세상, 즉 현실계다.
③ 심청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 단락에서 심청은 항해의 안전을 비는 제의에서 해신(海神)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어 인당수에 빠져 용궁으로 갔다. 심청이 간 용궁은 사람이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비현실계다.
④ 심청의 아버지 만남과 아버지의 눈 뜨기 단락에서 심청은 이 세상에서 왕비가 된다. 그리고 뒤에 아버지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이처럼 심청은 비현실계의 존재인 선녀가 현실계인 지상으로 와서 심 봉사의 딸로 태어나서 자란다. 그리고 다시 비현실계인 용궁에 갔다가 다시 현실계로 돌아와 행복을 누린다. 그래서 <심청전>의 배경 공간은 ‘비현실계→현실계→비현실계→현실계’로 바뀌어 순환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심청의 일생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현실계와 비현실계가 서로 바뀌어 순환하는 순환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을 심 봉사의 일생을 중심으로 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심 봉사는 어진 아내와 살면서 딸 심청을 낳아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았다.
㉯ 심 봉사는 아내를 잃고, 딸마저 잃은 뒤에 슬픔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 심 봉사는 왕비가 된 딸을 만나 눈을 뜬 뒤에 행복하게 살았다.

위에 적은 ㉮ 단락의 행복은 불완전한 것이다. ㉯ 단락에서 심 봉사는 아내의 죽음, 딸과의 이별 등 거듭되는 사건으로 더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받게 된다. 심 봉사의 슬픔과 불행은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이것이 변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 단락에서 심 봉사의 불행은 끝이 나고, 행복한 생활이 계속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의 행복이 ㉯의 고난으로 바뀌고, 이것이 다시 ㉰의 행복으로 극복되어 행복한 상황이 지속될 때 끝을 맺는다. 그래서 행과 불행이 어느 한 상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두 가지 상황이 서로 바뀌면서 순환하는 순환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현실계와 비현실계의 순환’, ‘행과 불행의 순환’은 모두 불행한 현실을 없애버리고, 행복이 가득한 새로운 현실을 만들려고 하는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꾸며진 것이다. 한국인은 오늘의 고난과 불행이 내일에는 극복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 즐기면서 내일의 행복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확인하고 다짐하였던 것이다.


5.<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이 어디인가를 알려면, 심청이 나서 자란 곳과 죽었다가 살아난 곳이 어디인가를 살펴보면 된다. 심청이 나서 자란 곳과 죽었다가 살아난 곳은 이본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황주 도화동’과 ‘인당수’로 되어 있다.

심청이 나서 자란 ‘황주’는 중국의 황주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황해도 황주로 보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심청이 빠져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는 ‘인당수’는 어디일까? 황해도 서쪽 해안의 북위 38도 조금 위쪽에 서쪽으로 길게 뻗은 곶이 있는데, 이곳이 장산곶이다. 장산곶에서 남쪽으로 약 17km 떨어진 곳에 백령도가 있다. 장산곶과 백령도 중간쯤 되는 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이름난 곳인데, 여기가 인당수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기 이전에 이곳을 오가며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이나 뱃사람들은 예전부터 물살이 세기로 이름난 이곳을 인당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령도를 비롯한 대청도와 소청도 주민들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효녀 심청이 인당수에 빠졌다가 연꽃을 타고 물 위로 떠올랐는데, 그 연꽃이 남쪽으로 떠내려 오다가 백령도 남쪽에 있는 바위섬인 연봉바위에 와서 걸려 있었다. 이를 뱃사람들이 보고 임금님께 바쳤는데, 연꽃에서 나온 심청이 왕비가 되었다”는 내용의 <심청 전설>이 전해온다. 6·25 전쟁이 시작된 뒤에 남쪽으로 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이 전설은 지금은 북한 지역인 황해도 옹진, 장연 지역에서도 전해왔다고 한다.

<심청전>에서는 심청이 나서 자란 곳이 황해도 황주이고, 물에 빠진 곳이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 있는 인당수라고 한다. <심청 전설>에서는 심청을 태운 연꽃이 연봉바위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 둘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은 황해도 황주,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의 인당수, 그리고 백령도 남쪽의 연봉바위를 잇는 지역이 된다. 그런데 황해도 황주는 지금 북한 지역이어서 마음대로 갈 수 없고, 백령도는 우리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백령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으로 되어 있다. 옹진군에서는 백령도가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임을 기리고, 효행을 권장하는 뜻에서 진촌리 뒷산에 ‘심청각’을 세우고, <심청전>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을 보면, 바닷물이 유난히 넘실거리는 인당수가 보이고, 남쪽에는 연봉바위가 보인다. 그리고 서쪽에는 심청을 태운 연꽃이 떠내려 와서 바닷가에 연밥을 떨어뜨렸는데, 그 연밥이 싹이 터서 지금도 연꽃이 핀다는 연화리가 보인다. 심청각은 이곳 주민은 물론,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백령도가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임을 알려주는 한편, 심청의 지극한 효성을 본받을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차례         
해설

선녀가 심청으로 태어나다
곽씨 부인이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다
심 봉사가 젖동냥으로 심청을 기르다
심청이 동냥과 품팔이로 아버지를 봉양하다
장 승상 부인이 심청을 수양딸 삼으려 하다
심 봉사가 공양미 삼백 석 시주를 약속하다
심청이 몸을 팔아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다
심청이 인당수로 떠나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다
용왕이 심청을 용궁으로 모셔 들이다
심 봉사가 뺑덕 어미와 살며 재산을 다 없애다
연꽃을 타고 돌아온 심청이 황제와 혼인하다
심청이 맹인 잔치를 열다
심 봉사가 황성 맹인 잔치에 가다
심청이 아버지를 만나고, 심 봉사는 눈을 뜨다
심청 부녀가 부귀영화를 누리다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황후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서 부친을 안고,
“아버지, 내가 과연 인당수에 빠져 죽었던 심청이오!”
심 봉사 깜짝 놀라,
“이게 웬 말이냐?”
하더니, 어찌나 반갑던지 뜻밖에 두 눈이 갈라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두 눈이 활짝 밝았으니, 만좌(滿座) 맹인들이 심 봉사 눈 뜨는 소리에 일시에 눈들이 헤번덕 짝짝, 갈치 새끼 밥 먹이는 소리 같더니, 뭇 소경이 천지 명랑하게 되었다.


옮긴이       
최운식은 서울교육대학교 및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경대학교와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한국민속학회 회장·국제어문학회 회장·청람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에는 ≪심청전 연구≫, ≪한국 고소설 연구≫, ≪한국 설화 연구≫, ≪한국 서사의 전통과 설화문학≫, ≪전래동화 교육의 이론과 실제≫, ≪한국인의 삶과 문화≫, ≪함께 떠나는 이야기 여행≫, ≪다시 떠나는 이야기 여행≫, ≪한국의 민담≫, ≪옛날 옛적에≫, ≪가을 햇빛 비치는 창가에서≫등 40여 권이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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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이니스 Harold A. Innis (캐나다, 1894-1952)
해럴드 이니스는 1894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토론토 대학 정치경제학부 교수가 되었다. 그의 초기 연구는 캐나다 문화와 경제가 모피, 어류, 목재, 밀, 광물, 연료 같은 원자재의 개발과 수출입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정치경제사를 전공한 그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론토 대학 동료 매클루언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그 후 이니스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사회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고, 그 연구 성과는 잇달아 나온 ≪제국과 커뮤니케이션(Empire and Communications)≫, ≪커뮤니케이션 편향(The Bias of Communication)≫ 두 권의 주저로 집약되었다.

이니스는 캐나다인으로서의 관점이 분명한 사회과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대학들이 캐나다와는 역사와 문화가 다른 영국이나 미국에서 교육받은 교수들에게 계속 의존하지 않도록 캐나다 학자들 중심의 학회와 재단을 설립했다. 특히 그는 대학이 정치적․경제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데 힘썼다. 그는 비판적 사고의 중심으로서 ‘독립적인’ 대학이 권력 지향적이고 광고 의존적인 미디어에 의해 훼손된 서구 문명의 존립에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그는 1952년 암으로 사망했다.

주요 논문 및 저서로는 ≪A History of the Canadian Pacific Railway≫(1923), ≪The Fur Trade in Canada: An Introduction to Canadian Economic History≫(1930), ≪The Cod Fisheries: The History of an International Economy≫(1940), ≪Political Economy in the Modern State(1946), Empire and Communications≫(1950), ≪The Bias of Communication(1951), Changing Concepts of Time≫(1952)이 있다.

 

해설         
이 책은 해럴드 이니스의 ≪Empire and Communications≫(Oxford, 1950)를 저본으로 번역하고, 2008년 1월에 완역으로 출간한 ≪제국과 커뮤니케이션≫(커뮤니케이션북스)을 토대로 2분의 1정도를 발췌한 것입니다.

캐나다 출신 경제사학자 해럴드 이니스는 맥매스터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토론토 대학 정치경제학부 교수가 되었다. 그의 초기 연구는 캐나다 문화와 경제가 모피, 어류, 목재, 밀, 광물, 연료 같은 원자재의 개발과 수출입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그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론토 대학 동료인 마셜 매클루언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1950년 출간된 ≪Empire and Communications≫는 이니스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첫 번째 성과이며, 이듬해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The Bias of Communication≫이 출간되었다.

≪제국과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제국 형성과 문화 발전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역할을 탐구한다. 그러나 단순히 미디어에 의해 역사가 결정된다는 단선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니스는 정보나 지식을 통제하는 방식과 그 지배적 방식의 변화에 대응하는 태도, 매체를 통해 재편된 지식 독점 양상의 결과가 제국의 흥망성쇠의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문명의 몰락과 존속은 특정 매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변화하는 매체 환경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상황을 그 문명이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매체는 ‘역동적인 과정’이며 이 움직임 가운데 어떤 것의 ‘궁극적인 원인’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성, 무거운 매체와 가벼운 매체의 대조는 ≪제국과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패턴이다. 이니스는 서양 문명사를 시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매체와 공간의 ‘이동성’을 강조하는 매체의 충돌과 경쟁 속에서 변화해 왔다고 보았다. 매체 형식과 사회 현실이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특정 매체가 지배하는 ‘편향’이 일어난다. 편향은 매체의 물리적 속성뿐 아니라 매체를 전유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망의 양상, 그리고 가치 체계를 함축하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이라는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해 가능했다. 인터넷은 이니스가 말한 시간 편향과 공간 편향을 극복하고 실시간성과 동시성, 편재성을 획득한 것이다. 해설을 쓰고 있는 이 시간, 광화문에서는 양손에 각각 촛불과 핸드폰을 든 시민들이 광장 아고라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마흔여섯 번째 촛불 집회를 하고 있다. 집회 참여자 모두는 촛불 시위 현장의 기자고 사진사이며 디자이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광장 아고라에 모여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전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평범한 사람의 것이라도 목소리는 비범한 사람의 글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니스는 구술 전통의 생명력의 회복을 바랐다. ≪제국과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케이션 편향≫ 출간 이후 반세기 동안 매체 환경은 급변했다. 20세기에 독점적 권력을 소유한 신문과 방송은 인터넷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합리적인 정치 형식으로 여겼던 대의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로 상쇄되고 있음을 목도한다. 개개인의 느슨한 연대를 통한 공동체의 탄생,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 이는 정치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 또한 허물어지고 있다.

매클루언이 ‘지구촌’이나 ‘미디어는 메시지다’와 같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것은 이니스의 영향이 컸다. 매클루언은 이니스의 커뮤니케이션 연구 개척에, 이니스는 그의 저작을 요약하고, 종합하고, 대중화한 매클루언의 능력에 서로 빚을 졌다. 그렇지만 매클루언이 조명되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데 비해 이니스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국내 연구는 부진한 형편이다. 이는 이니스의 국내 번역서가 없던 탓이 클 것이다. 오늘날 개인의 목소리, 분권화된 매체 환경에 조응하는 이니스의 빛나는 통찰이 ≪제국과 커뮤니케이션≫의 번역 출간과 함께 활발하게 조명되기를 기대한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국과 커뮤니케이션
머리말
이집트
바빌로니아
구술 전통과 그리스 문명
문자 전통과 로마 제국
양피지와 종이
종이와 인쇄기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Large-scale political organizations such as empires must be considered from the standpoint of two dimensions, those of space and time. Empires persist by overcoming the bias of media which overemphasizes either dimension. They have tended to flourish under conditions in which civilization is offset by the bias of another medium towards centralization.

제국 같은 거대 정치 조직은 시간과 공간 두 차원의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제국은 두 차원 중 어느 하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매체 편향을 극복함으로써 존속된다. 제국이 번영하는 경향을 보인 것은 문명이 한 가지 이상의 매체의 영향력을 반영하고, 지방분권 지향의 매체 편향이 중앙집권 지향의 매체 편향으로 상쇄되는 조건에서였다.


출판사 서평 
제국의 흥망성쇠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발달을 논리적으로 연결한 이니스의 이론이 흥미롭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대규모 상업 활동이 시작되면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많이 필요했다. 따라서 읽고 쓰는 수고를 덜기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들이 점차 간소화되고 체계화되었다. 이처럼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제국 형성과 문화 발전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역할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탐구하고 있다.



옮긴이       
김문정은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제국과 커뮤니케이션≫(커뮤니케이션북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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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7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 zmanz 2008/07/18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어주신 메일로 답변드렸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자 미상   

해설         

<금방울전>은 어떤 작품인가?

<금방울전>은 남주인공 ‘해룡’과 여주인공 ‘금령’이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의 고소설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읽혔는데, 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의 남녀 주인공 해룡과 금령은 원래 동해용왕의 아들과 남해용왕의 딸이었다. 용자와 용녀는 혼인을 하고 신행길에 나섰다. 그런데 용녀는 요괴의 공격을 받아서 죽임을 당했고, 용자는 장원 부인의 몸속으로 몸을 피했다. 그 후 용자는 장원의 아들 해룡으로 태어났으며, 용녀는 과부 막씨의 몸에서 금방울로 태어났다.

해룡은 세 살 때 피난을 가다가 부모를 잃고 장삼의 양육을 받았다. 장삼이 죽자 그의 처 변씨는 해룡을 몹시 학대하였고, 심지어 죽이려 했다. 그래서 해룡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맞았는데, 그때마다 금방울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금령은 과부의 몸에서 방울의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신선들로부터 받은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막씨를 보호하였고, 그녀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병을 얻어 죽은 해룡의 어머니 장 부인을 살렸으며, 장원 부부의 사랑을 받았다. 금령은 장원에게 족자를 가져다준 뒤에 행방을 감추었다.

해룡은 금령의 도움으로 지하국에 사는 요괴에게 납치된 ‘금선공주’를 구하였고, 금선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다. 그 후 해룡은 전장에 나가서, 금령의 도움을 받아 적을 물리쳐 큰 공을 세우고 개선했다.

금선공주의 사랑을 받던 금령은 해룡이 개선하여 돌아오기에 앞서, 해룡에게 전해달라며 족자를 맡겨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막씨와 장원 부부에게 되돌아온 금령은 허물을 벗고 예쁜 처녀로 변신했다.

해룡은 어사가 되어 지방을 순시하던 중에, 꿈속에서 만난 노인의 지시와 족자를 매개로 하여 어릴 때 헤어진 부모를 만났다. 그리고 금령이 방울에서 나와 미인으로 변신하였음을 알았다.

해룡의 보고를 받은 황제는 금령을 양녀로 삼아서 ‘금령공주’라 부르고, 해룡과 혼인하게 해주었다. 해룡은 금령공주와 혼인하였으며, 금선공주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다.

이 작품의 남녀 주인공 해룡과 금령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는 ‘남녀 결합’과 ‘부귀 획득’이다. 이는 이 작품의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인 동시에 그 시대 독자들의 행복에 대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금령은 해룡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황제의 부마가 되게 해준다. 금령의 적극적인 활동과 남녀 간의 애정 성취는 당시 여성 독자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해룡이 황제의 부마가 되어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고, 위왕이 되어 신분 상승에 따르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은, 권력에서 소외된 피지배계층 독자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주인공의 고난과 시련은 이런 독자들의 고통 받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금방울전>은 작가와 당대 독자들의 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필사본이 전할 뿐 아니라, 목판본과 활자본으로 수차 간행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금방울전>은 어떻게 전해왔는가?

<금방울전>은 목판본 12종, 필사본 2종, 활자본 11종이 전한다. 대부분의 고소설 목판본은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안성 지방에서 간행된 안성판본, 전주 지방에서 간행된 완판본이 있다. 그런데 <금방울전> 목판본은 경판본만 전하며, 완판본이나 안성판은 전하지 않는다.

<금방울전> 경판본은 28장본, 20장본, 16장본의 세 가지가 있다. 경판 28장본은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것과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것이 있다. 이것들은 내용은 물론이고 장수(張數), 1면의 행수, 1행의 글자 수, 그리고 글자 위치까지 서로 일치한다. 따라서 두 이본은 동형이판본(同型異板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고어형(古語形), 음운표기, 복모음·조사 사용, 두음법칙 적용, 표현 등에서 서로 다른 곳이 서른다섯 군데에 이른다. 이런 부분들을 면밀히 비교해 본 결과, 대영박물관 소장본이 먼저 간행되고, 국립도서관본은 그 뒤에 간행된 것이 밝혀졌다.

뒤이어 28장본을 부분적으로 축약하고 문장을 가다듬은 경판 20장본이 간행되었고, 또다시 이를 축약한 16장본이 간행되었다. 20장본은 28장본보다 분량은 약간 줄었지만 줄거리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16장본은 분량도 많이 줄었으며, 부마가 된 해룡이 외적과 싸우다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금방울이 구해준다는 내용이 빠지는 등 줄거리에서도 변화가 있다.

필사본으로는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과 일본 동양문고 소장본이 있다. 그중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활자본인 세창서관본을 필사한 것이다.

활자본들은 모두 목판본을 모본(母本)으로 하여 간행한 것이다. 작품명이 <금방울전>인 활자본도 있지만, <능견난사(能見難思)>또는 <금령전>으로 고쳐서 간행한 것도 있다. 작품 제목을 <능견난사>라고 한 것은 금방울의 모습은 능히 볼 수 있지만, 금방울이 지닌 능력은 너무 기이하여 미리 짐작하기 어렵다는 뜻에서 이렇게 바꾼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금령전>은 <금방울전>의 ‘방울’을 한자 ‘령(鈴)’으로 고친 제목이다.

활자본 가운데 신구서림본(1916)과 조선서관본(1916), 경성서적조합본(1925)은 경판 28장본의 문장을 약간 손질하고, 작품 끝에 해룡과 두 공주의 백일승천(白日昇天) 대목을 첨가한 것으로, 9회로 장회(章回)를 구분했다. 회동서관본(1925)과 세창서관본(1952)은 이러한 세 가지 활자본과 내용은 똑같으나 장회를 구분하지 않은 점만 다르다.

세창서관본 <능견난사>는 경판 28장본의 내용을 보다 다채롭고 흥미롭게 변개하고, 제목을 바꾼 것이다. 경성서적조합본 <능견난사>는 같은 출판사의 <금방울전>과 제목만 다를 뿐 그 내용은 똑같다. 대조사본 <금방울전>(1959)은 경판 16장본을, 형설출판사본 <금령전>(1977)은 경판 20장본을 모본(母本)으로 한 것이다. 희망출판사본 <금령전>(1970)은 신구서림본, 조선서관본, 경성서적조합본, 회동서관관, 세창서관본 등의 선행 활자본 <금방울전>을 모본으로 하여 간행한 것이다.

이처럼 <금방울전>은 목판본, 필사본, 활자본으로 전하는데, 경판 28장본의 내용이 모든 이본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금방울전>의 구조

<금방울전>은 배경 공간, 또는 고난과 행운이 교차하는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그 유형은 세 가지다.

첫째, 현실계와 비현실계의 순환이 나타난다. 해룡과 금령은 본래 동해용왕의 용자와 남해용왕의 용녀였는데, 인간계에서 ‘해룡’과 ‘금령’으로 환생한다. 용자와 용녀가 살던 곳은 수중계라는 비현실계다. 비현실계의 존재인 용자와 용녀가 현실계인 지상계에서 해룡과 금령으로 태어난 것이다.

지상계에서 살던 해룡과 금령은 이곳과 다른 지하계로 가서 요괴를 물리치고 금선공주를 구출해 데려왔다. 즉 해룡과 금령은 지하계에 가서 가난하고 비천하여 불행했던 상황을 극복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 결과 해룡은 금선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어릴 때 헤어졌던 부모를 다시 만나고, 금령과 혼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 방울의 모습으로 살던 금령은 탈각(脫殼)하여 미인이 되고, 황제의 양녀가 되었다. 그리고 해룡과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해룡과 금령은 존재의 근원이라는 지하계에 가서 빈천(貧賤)과 불행을 소거(消去)하고, 부귀와 행운을 획득·충족하고 돌아왔다. 따라서 완벽에 가까운 행복을 누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