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실러 Friedrich Schiller (독일, 1759.11.10 ~ 1805.5.9)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는 1759년 11월 10일, 슈투트가르트 근교에 있는 마르바흐에서 태어났다. 실러는 신학 공부를 하려 했으나 카를 오이겐(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카를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엄격한 사관학교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몰래 레싱(Lessing)과 클롭스토크(Klopstock)의 책을 읽으면서 당시의 ‘질풍노도’ 문학에 심취했다. 사관학교 법학부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으나 의학부가 설립되면서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며, 1780년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임명되었다.
1777년에 <도적 떼(Die Räuber)>를 집필하기 시작해 1781년에 자비로 출판했으나 이 때문에 오이겐 공작으로부터 집필 금지령과 구금령을 받게 되자 몰래 만하임으로 도망친다. 1782년에 실러는 만하임 극장에서 <도적 떼>를 초연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그는 튀링겐 주 바우어바흐(Bauerbach)에 있는 볼초겐(Wolzogen) 여사의 별장에서 머물면서 <루이제 뮐러린(Luise Müllerin)>을 완성하고, 1783년 만하임 극장의 전속 극작가로 임명되어 다시 만하임으로 돌아온다. 1784년에 평정관인 쾨르너(Körner)와의 우정이 시작되었으며, 쾨르너의 초대를 받아 오랫동안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에 머물렀다. 1787년에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바이마르에서 빌란트(Wieland)와 헤르더(Herder)를 만났으며, 당시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 중이어서 괴테와의 사적인 만남은 1788년에 이루어졌다. 1794년부터 바이마르를 떠나 예나(Jena) 대학 역사학 교수가 된 실러는 1799년 바이마르로 돌아올 때까지 괴테와 서신교환을 했으며 바이마르에 와서는 가끔 괴테를 대신해서 바이마르 궁중극장에서 감독을 맡기도 했다. 18세기 말 바이마르 궁중극장의 전성기는 괴테와 실러의 협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실러는 창작기의 절정인 46세의 나이에 집필 중이던 <데메트리우스>를 완성하지 못한 채 바이마르에서 사망한다.
실러는 괴테와 더불어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이며, 열정적인 무대 언어에 대한 그의 특별한 재능과 ‘연극 효과’ 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독일 희곡문학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특히 미학서 ≪도덕적인 기관으로 본 연극무대(Die Schaubühne als eine moralische Anstalt betrachtet)≫(1784)는 연극 무대에 종교와 법을 지지해야 한다는 높은 과제를 부여했다. 실러의 거의 모든 드라마의 주요 모티브와 핵심주제는 ‘자유’의 이념이다. 그러나 이 ‘자유’의 이념은 개체의 자유 의지가 아니라 인간 품위의 도덕적인 요구로 이해된다. 실러의 창작은 청년시절의 ‘질풍과 노도’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바이마르 시절의 성숙된 고전주의 운문형식드라마까지 이어진다.
천재적인 극작가인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도적 떼> 외에 <게누아에서 피에스코의 반란 (Verschwörung des Fiesco zu Genua)>(1782), <간계와 사랑(Kabale und Liebe)>(1784), <돈 카를로스(Don Carlos)>(1787), <발렌슈타인 삼부작(WallensteinᐨTrilogie)>(1799), <마리아 스튜어트(Maria Stuart)>(1800), <오를레앙의 처녀(Die Jungfrau von Orleans)>(1801), <메시나의 신부(Die Braut von Messina)>(1803), <빌헬름 텔(Wilhelm Tell)>(1804)이 있다. 미학서로는 앞서 언급한 ≪도덕적인 기관으로 본 연극무대≫ 외에 ≪인간의 미적 교육론(Ü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 in einer Reihe von Briefen)≫, ≪소박문학과 감상문학(Über naive und sentimentalische Dichtung)≫, ≪우미와 품위에 관하여(Über Anmut und Würde)≫가 있으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서문과 코멘트, 괴테와 교환한 서신 등이 남아 있다.
해설
1805년 실러의 죽음으로 인해 등장인물도 전부 표기되지 않은 채 2막 3장의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작품의 분량이 많지 않아 전문을 번역했습니다.
이 책의 번역 텍스트는 1980년 카를 한저(Karl Hanser) 출판사에서 출간한 ≪실러 전집≫ 제3권입니다.
러시아의 전제군주와는 반대로 폴란드 사람들은 공화국의 자유를 원하며, 모든 관직을 수여하는 왕도 의회의 허락 없이는 폴란드 귀족에게서도 관직을 빼앗을 수 없었다. 의원들은 의회에서 왕에게 진실을 알리는 역할도 했지만, 간혹 가난하고 미천한 처지의 귀족들은 무슨 사안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고용한 귀족의 편에 서기도 했다. 의회에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안건을 승인받으려면 미천한 처지의 귀족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귀족들은 자기들이 고용한 귀족들을 ‘친애하는 형제’라고까지 불렀다. 실러는 이러한 기초 자료 조사를 거쳐 <데메트리우스>를 비극으로 구상했다.
<데메트리우스>에 대한 실러의 사전 준비, 메모, 원래 계획했던 1막(잠보어 장면)이 남아있으며, 실러의 구상에 의하면 5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데메트리우스는 결국 처형을 당하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옮긴이
최석희는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Die unverkaufte Braut≫, ≪그림동화의 꿈과 현실≫, ≪독일어권 여성작가≫(공저), ≪독일문학 그리고 한국문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힌체와 쿤체≫, ≪겐테의 한국기행≫, ≪오를레앙의 처녀≫, ≪메시나의 신부≫, ≪늑대가 돌아온다≫, ≪내 동생≫, ≪윤무≫ 등 다수가 있다.
본문 중에서
SAPIEA
Mehrheit?
Was ist die Mehrheit? Mehrheit ist der Unsinn,
Verstand ist stets bei Wengen nur gewesen.
Bekümmert sich ums Ganze, wer nichts hat
Hat der Bettler eine Freiheit, eine Wahl?
Er muß dem Mächtigen, der ihn bezahlt,
Um Brot und Stiefel seine Stimme verkaufen.
Man soll die Stimmen wägen und nicht zählen,
Der Staat muß untergehen, früh oder spät,
Wo Mehrheit siegt, und Unverstand entscheidet.́
사피아
다수라고?
다수가 무엇인가? 다수란 말도 안 되는 것이오.
오성 은 늘 소수의 사람에게만 있었소.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 어떻게 전체를 걱정한단 말이오?
거지가 자유가 있습니까, 선택이 있는지요?
거지는 돈을 지불하는 힘있는 자에게 빵과 장화를 위하여 자신의 표를 팝니다.
표의 무게를 달아 보아야 합니다. 표를 헤아려서는 안되오.
국가는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반드시 다수가 승리하는 곳에서, 무분 별이 결정권을 갖는 곳에서는 멸망하오.
출판사 서평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실러의 미완성 유고작 <데메트리우스>가 출간됐다. 미완성된 작품임에도 실러가 야심을 품고 집필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생전에 그가 미처 원고에 옮기지 못한 대사들은 그의 작품구상 기록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내어 삽입했다.
별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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