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하르트만 Nicolai Hartmann (독일, 1882~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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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은 1882년 독일의 리가(Riga)에서 태어났다. 프로이센 포병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하르트만은 군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무릎 부상 때문에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철학 연구를 시작했다.

초기에 하르트만은 신칸트학파인 마르부르크학파에 속했으며, 이 시기에 ≪플라톤의 존재론(Platons Logik des Seins)≫(1909)이 나왔다. 그러나 이후 후설 현상학의 영향을 받아, 이를 바탕으로 그의 철학하는 태도는 존재론적, 실재론적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식 문제에 있어서도 인식은 대상의 생산 창조이며 사유와 존재는 동일하다는 마르부르크학파의 입장과 대립한다. 그에 의하면 인식이란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므로 근원적으로는 인식 이전의 독립적인 존재 그 자체를 먼저 문제 삼아야만 한다. 이리하여 그는 인식 비판으로부터 인식의 형이상학으로 발전시켜 비판적 존재론을 수립하게 된다.

하르트만 철학의 핵심은 ‘비판적 존재론’ 혹은 ‘사실주의적 존재론’으로 불리는 그의 존재론이다. 물론 그의 존재론을 사실주의적 존재론이라고 하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하르트만의 존재론은 사실성 못지않게 이념성도 존재론적 규정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는 일생 동안 존재론을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그는 실재론적, 객관주의적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의 형이상학을 객관적 형이상학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인식론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을 정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인식론을 논했으며, 하이데거와 더불어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라는 독일 현대철학의 흐름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철학자다.



해설                    

이 책은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의 ≪독일 관념론 철학≫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이다. ≪독일 관념론 철학≫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피히테, 셸링, 그리고 낭만주의를, 제2부는 헤겔을 다루고 있다. 하르트만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제1부가 완성되고 난 뒤(1923년) 한참 뒤에 제2부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1929년). 제2부의 출판이 이처럼 지연된 까닭은 헤겔의 철학 이론을 절충적으로 기술하거나 대충 연대순으로 정리하지 않고, 분명한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서술해 보려고 한 지은이의 욕심 때문이었다. 헤겔이 지식의 영역 전반에 걸친 내용을 자신의 철학적 세계관 속에서 포괄적으로 조직해 갔듯이, 하르트만도 그와 같은 헤겔의 방식을 따르고 싶었던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가벼이 보고 주요 명제나 논거만을 떼어내어 해석하고 설명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헤겔의 명제는 전체 체계 속에서 그것이 지니는 풍부한 내용을 송두리째 드러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언제나 무리가 따르겠지만, 이러한 내적 전환을 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헤겔 사상의 참된 의미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설사 어느 특정 부분을 떼어내 살펴보더라도 그 사상적 연관과 연속성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르트만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이 책이 ≪독일 관념론 철학≫의 제2부를 중심으로 발췌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옮긴이                          

박만준은 1951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69년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부산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치고, <욕망과 자유의 변증법>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전공은 서양철학과 사회철학이었고, 부전공으로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주로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회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박사학위 논문도 이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1984년 동의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가 되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역서로는 ≪대중문화와 문화연구≫(존 스토리), ≪대중문화의 이해≫(존 피스크), ≪문학과 문화이론≫(레이먼드 윌리엄스), ≪문화연구의 이론과 방법들≫(존 스토리), ≪마르틴 하이데거≫(존 맥거리),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E. 후설), ≪헤겔 변증법≫(N. 하르트만), ≪의식과 신체≫(디킨슨), ≪마르크스주의와 생태학≫(그룬트만), ≪하버마스의 사회사상≫(미첼 퓨지), ≪논리학 입문≫(어빙 코피), ≪최초의 인간과 그 이후의 문화≫(겔렌)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욕망과 자유≫, ≪늦잠 잔 토끼는 다시 뛰어야 한다≫, ≪철학≫(공저), ≪상생의 철학≫(공저), ≪성의 진화와 인간의 성문화≫(공저), ≪인성학≫(공저),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공저)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헤겔은 철학사를 부흥시킨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것도 단순히 절충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자체가 고유하게 지니는 대립과 전진적인 보완의 원리에 따라 내적으로 부흥시켰다.


Hegel ist der erste Philosoph, in dem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 derartig wieder aufleft ― nicht eklektisch, sondern innerlich nach dem Prinzip desselben Gegensatzes und derselben fortschreitenden Ergänzung, die dem geschichtlichen Gange selbst eigentümlich ist.




출판사 서평                   

독일 관념론은 피히테로부터 헤겔까지 외줄기 흐름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흐름은 헤겔에 이르러 거대한 바다를 이룬다. 따라서 헤겔을 들여다보면 독일 관념론이 어떻게 발원해서 어느 골짜기, 어느 강을 거쳐 헤겔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이루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하르트만의 방대한 저서에서 제2부 <헤겔>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을 발췌해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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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墨子 (B.C. 480~B.C. 389)    

묵자(墨子)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은 적(翟)이다. ≪묵자≫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묵자가 묵가(墨家)를 창시하여 활동한 시기는 B.C 450년경부터 B.C 390년경까지로 춘추 말에서 전국 초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묵자가 태어난 곳은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곳과도 가까운 노(魯)나라의 등(滕)이라는 곳으로 지금의 산동성 등주시(滕州市) 근교에 해당한다. 묵자의 출신계층에 대해서는 묵(墨)이라는 성과 관련하여 전과자라는 설과 그의 군사사상과 관련하여 무사라는 설 및 기술자 집단을 이끄는 공장(工匠)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모두 분명한 근거가 없는 주장들이다. 묵자는 무학, 문맹의 농부와는 달리 사각(史角)의 자손으로부터 학문을 배운 지식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일반서민보다는 높은 계층인 사(士)의 신분이었던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찍이 유학을 공부했으나 유가의 번잡한 예(禮)에 불만을 품고 새로운 학설을 창설했다. 묵자가 살아 있을 때는 제후들이 서로 다투어 천하가 요동치던 불안한 시대였다. 따라서 묵자는 분쟁을 제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자기의 주요 임무로 삼았다. 그는 바쁘게 유세하고 자기의 이상을 선전하느라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므로 “묵자의 자리는 따뜻할 날이 없다”는 말이 전해오는 것이다. 유가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묵자도 요·순·우·탕·문·무 등의 성왕을 숭상했으며 특히 하(夏)나라의 우(禹)왕을 존숭했다. 그는 우임금의 실천정신과 희생정신을 따르려 노력했다. 맹자가 묵자를 금수(禽獸)와 같은 존재라고 욕하면서도 “머리끝에서 발뒤꿈치까지 온몸이 다 닳도록 천하를 이롭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칭찬하는 걸 보더라도 묵자의 천하를 위한 희생정신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묵자는 사상가이면서도 논리학자이고 군사전문가였다. <묵경(墨經)>이 쓰인 것은 후기 묵가에 의해서이지만 이 안에 들어 있는 기본 사상은 묵자에게서 온 것이다. ‘성수(城守)’ 제편에서는 묵자의 탁월한 군사적 식견이 표현되어 있다. 묵자는 또 뛰어난 과학기술자로 군사 무기를 발명하기도 하고 기하학·광학·역학(力學) 등에 관한 창의적인 이론을 내놓았다. 묵자의 제자는 삼백 명이라고 ≪묵자≫에 나와 있으나 이것이 전부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제자 중에는 각국에 나가 관리가 되거나 유세를 하고 다닌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여씨춘추≫에 “공자와 묵자의 무리가 매우 많고 제자들이 매우 많아서 천하에 가득 차 있다”고 한것을 보면 그의 학술적인 영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해설                       

묵가의 중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상현에서부터 비명에 이르기까지의 ‘묵가 10론’과 비유를 중심으로 발췌 번역했다. 이것들은 각 주제에 따라 상·중·하 3편씩으로 편성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대체로 그중 한 편씩을 들어 발췌 번역했다. 그리고 묵자의 언행을 기록한 경주편에서부터 공수편까지의 5편을 발췌 번역했으며, 묵학의 개요라 할 수 있는 친사편부터 사과편까지의 7편은 완역했다. 묵가의 병법서라고 할 수 있는 비성문(備城門) 이하 11편은 지나치게 전문적이라 생략했다. 그리고 <묵경>이라고도 불리는 경(經) 이하 6편은 <지만지 고전천줄>에서 따로 책을 내기로 기획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다.

≪묵자(墨子)≫는 묵자를 중심으로 한 묵가(墨家) 학파의 저작집으로 그 내용은 정치·경제·윤리·철학·군사에서부터 자연과학·논리학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학술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묵자≫는 선진(先秦)시대 다른 제자(諸子)들의 저술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에 의해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묵가의 학설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묵가를 창시한 비조(鼻祖)인 묵자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묵자(墨子)를 중심으로 한 묵가(墨家)는 한때 유가와 함께 이대(二大) 학파로 가장 활발한 학술활동을 전개한 학파였으나 진한(秦漢)대에 들어와 200여 년의 번영을 마감하고 돌연 중국사상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후 2000년이 지난 청대 말에 다시 등장하게 되지만 묵가의 쇠미는 사상사에서 아직도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묵가의 조직제도는 비교적 엄격하고 대단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조직에는 거자(鉅子)라는 리더를 두었는데 묵자(墨者)들은 그를 성인처럼 받들면서 그의 지휘에 따라 일체의 행동을 감행했다. 묵자의 제자들은 대부분 용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보통 무사들과 달리 억강부약(抑强扶弱)의 필요가 있을 때 고도의 전투력을 갖춘 의용군이 되어 약소국을 도와 싸웠던 것이다. 묵자의 인격에 끌리어 그의 제자가 되고 그들에 의해 조직된 묵문집단(墨門集團)은 종교성을 띤 국제적 평화유지단체로 생각된다. 강학(講學)을 중시하면서도 기율이 엄격하고 희생정신이 강한 특이한 집단이다.





본문 중에서             

天下之人皆相愛, 强不執弱, 衆不劫寡, 富不侮貧, 貴不敖賤, 詐不欺愚,
凡天下禍簒怨恨, 可使毋起者, 以相愛生也, 是以仁者譽之.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한다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며, 다수의 무리가 소수의 것을 강압적으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 또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귀한 사람들은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굴지 않고, 간사한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지 않게 될 것이다.
무릇 천하에서 재난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어진 사람들은 겸애를 찬미하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묵자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이미 240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인물이지만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며 그 위대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사실 묵자의 사상이라고 해서 전혀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다만 모든 사람을 똑같이 두루 사랑하는 ‘겸애’와 평화를 강조하는 ‘비공’의 사상처럼,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원리’를 잊지 않는 것에 그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묵자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현>에서부터 <비명>에 이르기까지의 ‘묵가 10론’과 <비유>를 중심으로 발췌, 번역한 것이다.


옮긴이                    

박문현(朴文鉉)은 경북 자인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하고 부산대, 영남대, 동국대에서 철학 및 동양철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동의대학교 철학과에 재직하면서 인문과학연구소장 및 중앙도서관장을 역임했다. 도쿄대 방문교수 및 옌볜 과기대 객원교수를 거치고 새한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묵자의 경세사상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묵자 사상 논문 20여 편을 국내외에 발표했다. ≪묵자≫, ≪기(氣)사상 비교연구≫를 번역했고, ≪철학≫, ≪세계고전 오디세이2≫, ≪동양 환경사상의 현대적 의의≫(일본), ≪묵자연구≫(중국) 등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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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 李建昌 (한국, 1852~1898)     

1852년(철종 3) 강화도 사기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고, 자는 봉조(鳳朝, 鳳藻), 호는 영재(寧齋)로, 그의 조부는 병인양요 때 자결한 이시원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문장가인 강위(姜瑋), 김택영(金澤榮), 황현(黃玹) 등과 교류하였으며 조선시대 마지막 문장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두루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875년에는 충청우도 암행어사가 되어 충청감사 조병식(趙秉式)의 비행을 낱낱이 들춰내다가 도리어 모함을 받아 벽동(碧潼)에서 유배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관리 생활을 하면서 강직한 성품으로 평가되었다. 강화학파의 일원으로 양명학자이기도 하다. 개화를 뿌리치고 철저한 척양척왜주의자(斥洋斥倭主義者)로 일관하였다. 저서로는 ≪명미당집(明美堂集)≫, ≪당의통략≫ 등이 있다.




해설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을 저본으로 삼았고 선행 번역본들을 참고했습니다.
전체 내용 중 40% 정도를 발췌했습니다.

≪당의통략≫은 조선시대 선조 대부터 영조 대까지 약 180년간의 조선시대 정치사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의 서문을 시작으로, 우리 역사상 붕당이 처음 생겨난 1575년(선조 8) 동인과 서인의 붕당이 생겨난 시기부터 본론의 서술이 시작되고 있다. 이후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누어지는 과정,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집권한 뒤 일련의 정치 과정 및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지는 과정, 숙종 대 이후 영조 대까지 몇 차례 거듭된 정치적 변동인 환국, 그리고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탕평책 추진 등을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였다.

≪당의통략≫은 조선시대 많은 당론서 가운데 소론 중심으로 저술된 당론서이다. 이건방은 그가 쓴 발문에서, ‘그러나 비록 남의 시비라는 것은 알기 어렵고 오직 사사로운 뜻과 편벽된 의견이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 그치지 않았으니 나는 이 글을 보는 자가 선생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한갓 서로 비방한 것으로 알고 선생을 탓할까 두려울 뿐이다. 그것은 선생도 역시 당중(黨中)의 사람인 까닭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은 특히 숙종 대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된 이후의 서술에서 나타난다. 노론과 소론의 분화에 대한 설명 과정에서 서술한 이사명이나 김익훈의 보사공신(保社功臣) 추록 사실을 언급하면서 증거가 없었다는 표현이라든지, 윤증과 송시열의 시비를 ‘이회(尼懷)의 흔단(釁端)’이라고 하여 소론 측 윤증을 먼저 언급한 것 등이 그 예라 하겠다. 이렇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편찬된 노론 중심 당론서인 ≪동국붕당원류(東國朋黨源流)≫에서는 ‘드러내어 비방하지 않았지만 말을 돌려서 은연중 공격했다’고 하며 객관성에 의심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건창의 ≪당의통략≫은 다른 당론서에 비해 대체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바로 이 점이 고전으로서 ≪당의통략≫을 추천하는 이유다. 인조 때 서인 김상헌과 남인 이계의 일을 언급하면서 김상헌으로 말미암아 이계가 극형을 받았으나 이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남인 측의 입장을 서술한 것이나, 자신의 선조인 이진유와 관련된 서술에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저자 스스로 ‘본인의 생각 일부를 보태어’ 편찬하였다고 진술하고는 있으나, 이 같은 객관적 서술은 ≪당의통략≫을 다른 당론서에 비해 높이 평가할 수 있게 하는 요소다.




본문 중에서          

夫心者藏於方寸 言者發於俄頃 故心有過 人或不盡見 口有失 亦不過於一時 惟文不然一登紙墨 傳之久遠 旣不可揜匿磨滅

대체로 마음은 한 치 가슴 속에 감추어져 있고 말은 깜짝할 사이에 나오는 것으로, 마음은 허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혹 다 보지 못하고 말은 실수가 있더라도 또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글이란 그렇지 못하여 한 번 먹물로 종이에 쓰면 오래도록 멀리 전해져서 이미 가리거나 마멸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1575년 동인과 서인으로 처음 나누어진 선조 대부터 탕평책을 추진한 영조 대까지, 조선시대 당쟁의 역사를 정리했다. 당이 분열됨에 따른 환국과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을 시간 순으로 서술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소론 중심이면서도 남인 측 입장을 언급하고, 선조인 이진유를 서술함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등 다른 당론서에 비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옮긴이               

이근호는 국민대에서 <조선후기 영조 대 탕평파의 국정운영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국민대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된 관심사는 조선후기 정치사 내지는 정치사상사로, 특히 국정을 주도한 관료층의 동향이나 경세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조선시대 문헌인 ≪승정원일기≫나 ≪비변사등록≫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적 성격 해명에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대중에게 접근하는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 조선왕조사≫,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사전≫ 등과,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위한 시론적인 작업으로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라는 주제 하에 안동문화권, 경주문화권, 지리산문화권 등을 공동작업의 결과물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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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영국, 1806~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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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정규학교에서가 아니라 경제학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에게 세 살 때부터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해, 열네 살까지 그리스어, 문학, 논리학, 역사, 수학, 경제학의 중요한 고전들을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독특한 천재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 방식은 아침 식사 전에 항상 함께 산책을 하면서 밀이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암기하도록 하고, 그 주제의 핵심을 주입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밀이 스스로 생각해 어느 정도 이해한 다음에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 후 1년간 프랑스에서 생시몽의 사회주의와 콩트의 실증주의를 접하는 등 견문을 쌓았다. 17세에 아버지의 조수로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했고, 20세 무렵 인간이 행복하려면 엄격한 이성주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히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섬세한 감성이 필요하다고 느껴 음악, 시, 미술 등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또한 아버지의 친구인 벤담의 공리주의(功利主義)에 공감해 ≪판례의 합리적 근거≫의 저술에 참여하고 토론회를 결성해 왕성하게 보급했으며, 동인도회사가 해산될 때까지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틈틈이 저술들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하고 경험적 사례들에서 일반적 법칙을 발견해 내는 귀납논리를 정립한 ≪논리학 체계≫(1843), 생산법칙과 분배법칙을 분리해 경제학을 사회과학으로 체계화하고 개인의 욕구와 다수의 행복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해 노동계급의 지위와 복리를 향상시킨 ≪정치경제학 원리≫(1848), 개인의 자유와 사회 권력의 올바른 관계 속에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통해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를 확립한 ≪자유론≫(1859), 공리주의에 질적 요소를 보완해 원숙한 윤리학으로 제시한 ≪공리주의≫(1863), 민주정부의 이상을 밝히고 대중정치의 문제점을 분석한 ≪대의제정부 고찰≫(1863), 남녀평등 보통선거와 비례대표제 등을 실시할 것을 주장한 ≪여성의 종속≫(1869)이 있다. ≪자서전≫(1873), ≪종교에 관한 에세이≫(1874), ≪사회주의론≫(1879)은 사후에 출간되었다.




해설                        

이 책은 밀이 1859년 발표한 ≪자유론(On Liberty)≫에서 제1장 ‘서론’과 제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옮긴 것입니다. 전체 다섯 장 가운데 두 장만 옮긴 것은 <지만지 고전천줄>의 편집체제를 고려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사회의 진정한 자유에 관한 그의 핵심사상이 이 두 장 속에 간명하게 압축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On Liberty≫(The Univ. of Chicago, Encyclopaedia Britannica Inc. 1971)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했습니다.

밀은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며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항복”는 원리에 입각한 쾌락에 질적 요소를 추가하고 인간의 행동에서 개인적 이기심 이외에 사회적 관습·명예욕·희생정신 등 도덕적 의무감을 부각시켜 보완했다. 그는 언론 탄압과 선거권 제한에 맞서 봉기한 프랑스 7월 혁명과 정신의 역사적 발전을 중시한 독일 이상주의(理想主義)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이성에 치우친 18세기 계몽주의(啓蒙主義)를 추구했던 벤담의 주장을 감정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콩트(A. Comte)의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사회학은 물론 철학과 심리학을 포함한 학문 일반에 적용해 낡은 도덕철학을 새로운 도덕과학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밀의 사상은 사회 전반을 효율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한 ≪논리학 체계≫(1843)와 경제학을 사회과학으로 체계화하면서 개인의 욕구와 다수의 행복을 조정한 ≪정치경제학 원리≫(1848)에서 표현되었고, 여성의 참정권을 통해 남녀평등을 구현하고 선거법을 개정해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하려는 적극적 활동으로 더욱 구체적인 모습을 띠어갔다. 밀의 사상적 발전과 활동의 결과가 집약된 ≪자유론≫(1859)은 오늘날에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본문 중에서                   

The only part of the conduct of any one, for which he is amenable to society, is that which concerns others. In the part which merely concerns himself, his independence is, of right, absolute. Over himself, over his own body and mind, the individual is sovereign.

어떤 사람의 행위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져야 할 유일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부분이다. 단지 자기 자신과 관련된 부분에서 그의 독립성은 당연히 절대적이다.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즉 그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 주인(sovereign)이다.




옮긴이                        

이종훈(李宗勳)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의 강사를 거쳐 현재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다. 지은 책으로 ≪현대의 위기와 생활세계≫(동녘, 1994), ≪아빠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현암사, 1994, 2006) 1∼3권, ≪현대사회와 윤리≫(철학과현실, 1999) 등이, 옮긴 책으로 ≪시간의식≫(한길사, 1996),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한길사, 1997), ≪경험과 판단≫(민음사, 1997), ≪데카르트적 성찰≫(한길사, 2002),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박영사, 1995), ≪언어와 현상학≫(철학과현실, 1995) 등이 있다. 후설 현상학과 어린이 철학 교육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이 있다





출판사 서평                  

밀은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자신을 방어할 때뿐이라는 주장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즉, 사회가 ‘다수의 횡포’를 경계하지 않으면 인간의 삶과 영혼은 무엇이 참인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없는 정신적 노예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책은 자칫 개인의 자유가 무시될 수 있는 현실에서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올바른 방법과 참된 태도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고, 그 첫걸음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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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영국, 1806~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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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은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벤담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대학 교육과 종교를 불신했지만, 아들인 밀의 교육에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택에 밀은 일찍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게 되고, 열일곱 살이 되던 1823년에는 아버지가 몸담고 있던 동인도회사의 서기로 취직도 하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프랑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벤담주의에 대한 반감과 아버지의 냉정한 주지주의적 태도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이 정신적 위기는 스물네 살이 되던 1830년까지 지속되는데, 이런 정신적 위기 극복과 관련해서 밀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 부인과의 만남이다. 밀은 해리엇의 남편인 테일러의 양해를 얻어 해리엇과 20년 동안 순수한 교제를 지속하다가, 1849년 테일러가 사망한 후에 2년간의 품위 있는 간격을 가진 다음 해리엇과 결혼한다. 해리엇과 ≪자유론(On Liberty)≫(1859)을 공동으로 저술하는 등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혼한 지 7년 반 만에 해리엇이 결핵으로 죽음으로써 밀은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웨스트민스터 지역구 의원(Member of Parliament for Westminster)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입후보를 부탁하러 온 정당 관계자들에게 밀은 특히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한다는 공약을 제시해 뜻밖의 높은 지지를 얻어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다. 임기 동안 밀은 노동자 출신 의원들을 지지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노력하는 등 매우 진취적인 의정 활동을 펴지만, 3년 후 총선에서의 재선에는 실패하고 만다. 그 후 해리엇의 딸인 헬렌의 보살핌을 받던 밀은 1873년 아비뇽에서 “나는 내 일을 다 끝마쳤다”는 말을 남기고, 부인 해리엇의 묘 옆에 묻혔다. 주요 저작에는 ≪논리학 체계(A System of Logic)≫(1843),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1848), ≪자유론(On Liberty)≫(1859), ≪자서전(Autobiography)≫(1873) 등이 있다.



해설          
≪Utilitarianism, Liberty and Representative Government≫(New York: E.P. Dutton & Co. Inc., 1951) 중에서 공리주의 부분만 번역한 것이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란 ‘공리(功利, utility)’에 기초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려는 윤리설이다. 공리주의의 창시자는 잘 알려진 것처럼 벤담(J. Bentham, 1748∼1832)이다. 벤담에 의하면 공리란 “어떤 행위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거나 감소시키는 경향에 따라 그 행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원리”다. 다시 말하면 관계 당사자에게 편의, 이익, 쾌락, 복지, 행복을 발생시키거나 손실, 고통, 재난, 불행을 제거하는 사물의 본성이 곧 공리인 것이다.

벤담의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의 윤리학을 가장 훌륭하게 발전시킨 사람이 밀(J. S. Mill, 1806∼1873)이다. 밀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개념을 단순한 감각적 쾌락에만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쾌락으로까지 범위를 확대시켰다. 이런 정신적 쾌락이 있음으로 해서 윤리학에서는 이타주의가 나타난다. 그리고 윤리적 이타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밀은 ‘관념 연합의 원리(association)’를 도입했다. 이 원리를 따를 때 인간의 본성 속에는 자기중심적인 쾌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감(sympathy)’, ‘자애(benevolence)’ 등과 같은 사회화의 원리도 존재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사회화의 원리가 ‘선행을 베풀어라’라는 도덕적 의무감을 우리 내면의 심정에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It is better to be a human being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옮긴 이             

이을상(1956년생)은 부산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정훈장교로 3년 근무했다(육군 중위 예편). 1993년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동아대·부경대·동의대·동서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는 동의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특히 막스 셸러의 번역을 위해 애써왔고, 생명윤리학 분야와 진화윤리학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철학≫(공저, 한울, 1994), ≪가치와 인격≫(박사학위논문, 서광사, 1996), ≪사람됨과 삶의 보람≫(공저, 글방, 2000), ≪인간과 현대적 삶≫(공저, 철학과 현실사, 2003), ≪죽음과 윤리≫(백산서당, 2006), ≪인격≫(공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현대의 철학적 인간학≫(O. F. 볼노 외, 문원, 1994),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M. Scheler, 서광사, 1998), ≪행위철학≫(F. Kaulbach, 서광사, 1999), ≪인간학적 탐구≫(A. Gehlen, 이문출판사, 1999), ≪공리주의≫(J. S. Mill, 이문출판사, 2002), ≪동정의 본질과 형식≫(M. Scheler,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3), ≪지식의 형태와 사회≫(M. Scheler, 한길사, 2007) 등이 있고, 이 밖에도 다수의 논문들과 기고문들이 있다.



출판사 서평       

공리주의란 어떤 행위에 따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행복이 증진되거나 감소하는 경향에 따라, 그 행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원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오늘날 새삼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안락사와 뇌사 등의 문제처럼 윤리적인 해결이 필요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공리의 원리가 합리적인 판단의 근거로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리주의의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우리의 문제의식을 보다 명확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그 해답의 열쇠까지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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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딜타이 Wilhelm Dilthey(독일, 1833~1911)

빌헬름 딜타이는 1833년 11월 19일 목사의 아들로 비스바덴 주의 소도시 비브리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신학을 택했으나 칸트, 레싱, 게르비누스의 철학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교회사, 원시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스승인 트렌델렌부르크에게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뵈크에게서는 문헌학을 수강했다. 신학 분야 국가 시험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지속적 학문과 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김나지움 교사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1859년 슐라이어마허 재단의 현상 논문에 선정되면서 교사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해석학과 철학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 후 해석학, 철학, 윤리학에 관한 지속적 연구 결과 1864년 <슐라이어마허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865년 <도덕의식의 분석 시도>라는 연구로 교수 자격을 얻었다.

대학 교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866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서였다. 이후 킬 대학교과 브레슬라우 대학교를 거쳐 1882년 헤르만 로체(Lotze)의 후임으로 베를린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수행했다. 1883년 ≪정신과학 입문≫을 출간하면서 정신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순간을 맞게 된 딜타이는 브레슬라우 시절부터 교제해 오던 요르크 백작(Grafen Yorck)과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문으로서 정신과학을 기획함으로써, 딜타이는 역사이성 비판의 학문으로서 철학을 혁신하고자 했다. 나아가 역사적 세계에 대한 학문들의 이론, 사회적 체계와 그것의 연구에 대한 이론을 총체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칸트, 헤겔, 슐라이어마허를 넘어 딜타이는 진정한 계몽이 역사적 이성으로 완성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딜타이가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바로 삶은 그 자체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이해의 대상으로 주어져 있고, 지각 가능하며, 이해될 수 있고,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관한 학문으로서 정신과학은 따라서 삶의 자기 이해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해와 이해를 토대로 성립된 학문의 원천은 바로 내적 경험이다. 그 경험이란 내 자신의 고유한 삶의 연관에서 나오며, 언어와 전승을 매개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그런 경험을 의미한다. 이런 전제 하에서 딜타이는 인간의 삶이 전통 철학에서 말하는 이성(Vernunft)에 의해서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감성, 기분, 정서와 같은 요소들이 오히려 ‘원하고, 느끼는’ 인간존재의 본질 규명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딜타이의 창작 활동이 이성적 학문인 철학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 시학, 음악에까지 두루 미치고 있는 점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적 신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