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鄭澈(대한민국, 1536~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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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서울 장의동(藏義洞,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출생으로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仁宗)의 귀인인 큰누이와, 계림군(桂林君) 유(瑠)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로 인하여 궁중에 출입하여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후의 明宗)과 친숙해졌다. 10세가 되던 1545년(명종 즉위 원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맏형은 장류(杖流) 중에 죽고, 부 유침은 유배를 가게 되자, 그도 관북(關北)·정평(定平)·연일 등 유배지를 따라다녔다. 1551년에야 해배(解配)되어 조부(祖父)의 산소가 있는 전남 담양 당지산 아래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여 년간 지냈다. 여기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송순(宋純, 1493〜1582)·기대승(奇大升, 1527〜1572) 등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임억령(林億齡, 1496〜1568)에게서 시를 배웠으며, 이이(李珥, 1536〜1584)·성혼(成渾, 1535〜1598)·송익필(宋翼弼, 1534〜1599) 같은 유학자들과 교유했다. 1561년(명종 10) 26세에 진사시 1등,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했다. 사헌부지평을 거쳐 좌랑·현감·전적·도사를 지내고, 31세에 정랑·직강·헌납을 거쳐 지평, 이어 함경도 암행어사가 되었다. 32세에 이이와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어 수찬·좌랑·종사관·교리·전라도 암행어사를 지내다가 40세인 1575년(선조 8) 낙향했다. 43세에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승진하여 출사했다. 이후 사간·집의·직제학을 거쳐 승지에 올랐으나, 진도군수 이수(李銖)의 뇌물사건으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시 낙향했다. 45세 되던 1580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때 <관동별곡>과 <훈민가>16수를 지어 가사와 시조문학의 대가로서의 재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그 뒤 전라도 관찰사·도승지·예조참판·함경도 관찰사 등을 지내고, 48세에 예조판서로 승진,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으나 역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 해에 사직, 고향 창평으로 돌아가 4년간 은거했다. 이때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등의 가사와 수많은 시조·한시 등을 창작했다.
54세에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 최영경(崔永慶, 1529〜1590) 등을 다스리고 철저히 동인을 배제하며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1591년 건저문제(建儲問題)로 진주로 유배, 이어 강계로 이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부름을 받아 의주까지 호종했으며, 왜군이 아직 평양 이남을 점령하고 있을 때 경기·충청·전라 삼도체찰사(體察使)를 지내고, 다음 해 명나라에 사은(謝恩) 행차를 다녀왔다. 이 사은사 행차가 빌미가 돼 다시 동인의 모함을 받고, 강화의 송정촌에 우거(寓居)하다, 이듬해 포폄 많았던 한 생을 마감했다.
사후 관작을 추탈(追奪)당했다가 1609년(광해군 원년) 신원되고, 1623년(인조 원년) 복원되었다. 창평의 송강서원, 연일의 오산서원 별사(別祠)에 제향 되고 있으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정치가로서는 서인의 영수로 ‘조정의 맹호(殿上之猛虎)’였으나, 시문학은 호흡에 맞고 귀에 익은 멋 겨운 장·단가(長·短歌)가 사뭇 취선(醉仙)의 풍기(風氣)요, 정한(情恨)의 자수인 연군(戀君)의 독백은 민족 정서를 접맥해 온 비장(悲壯)이다. 따라서 그의 성가는 국문시가의 독보임에 틀림없다.

해설           

≪송강가사(松江歌辭)≫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송강 정철(松江鄭澈, 1536~1593)의 가사(歌辭)와 시조(時調)를 수록한 2권 1책의 시가집(詩歌集)이다.
필사본으로 전하는 것도 있으나, 곳곳에 일문(逸文)이 있어 온전하지 못하고, 목판본으로는 ≪황주본(黃州本)≫·≪의성본(義星本)≫·≪관북본(關北本)≫·≪성주본(星州本)≫·≪관서본(關西本)≫ 등 5종이 있었다 하나, 그 중 ≪의성본≫과 ≪관북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전하는 ≪황주본≫·≪성주본≫·≪관서본≫을 간행 연대순으로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황주본은 1690년(숙종 16)부터 1696년 사이에 이계상(李季祥)이 황주에서 간행한 책이다. 총 26장 완책(完冊)으로 <관동별곡(關東別曲)>·<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성산별곡(星山別曲)>·<장진주사(將進酒辭)>순의 가사 5편에 이어, 그 이하 단가라는 제목을 두지 않은 채 51수의 단가와 이선(李選)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이선의 발문이 있어 일명 ≪이선본(李選本)≫이라고도 하고, 소장자인 방종현(方鍾鉉)의 호를 따 ≪일사본(一簑本)≫이라고도 한다.
현전하지 않는 ≪의성본≫과 ≪관북본≫은 그의 현손인 호(澔)가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성주본≫ 발문에 의하면 ≪의성본≫은 의성 현감으로 있던 호가 1696년 5월부터 1698년 1월 사이에 간행했음을 알 수 있고, ≪관서본≫발문에 의하면 ≪관북본≫은 호가 관북 관찰사로 있던 1704년 4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에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성주본≫은 정철의 5대 손인 관하(觀河)가 성주목사를 지내던 1747년(영조 23)에 성주에서 간행한 2권 1책으로, 총 44장 상·하로 나뉘어 있다. 상권 24장에는 <松숑江강歌가辭 上샹>이라 하고 <관동별곡(關東別曲)>·<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성산별곡(星山別曲)>·<장진주사(將進酒辭)> 등 가사 5편이 ≪황주본≫과 같은 순서로 기록되어 있고, 하권 20장에는 별면(別面) <松숑江강歌가辭 下하> ‘短단歌가’라는 제하(題下)에 79수의 단가와, 송강 정철의 현손인 천(洊)과, 그의 아들 관하의 발문이 실려 있다.
≪관서본≫은 ≪의성본≫과 ≪관북본≫을 간행한 호의 손자인 실(實)이 1768년(경종 44) 관서 지방에서 간행한 책이다. 총 23장에<관동별곡(關東別曲)>·<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성산별곡(星山別曲)>·<장진주사(將進酒辭)>및 단가 51수가 실려 있는데, 몇몇 표기상의 차이 외에는 ≪이선본≫과 대동소이하며, 이선의 발문과 정실의 후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의 자료에 대한 영인본(影印本)으로는 1954년 방종현이 해제를 붙여 통문관에서 간행한 바 있으며, 1958년 김사엽(金思燁)이 해제를 붙여 경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연구실에서 발행한 것이 있다. 특히 현전 3본을 아우른 영인본으로는 1973년 대제각(大提閣)에서 발행한 ≪한국고전총서(韓國古典叢書)≫<Ⅱ시가류(詩歌類)>에 ≪숑松강江가歌辭≫가 있으며, 교주본으로는 1948년 정음사에서 간행한 방종현 교주본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송강가사·상

관동별곡 해제
관동별곡
관동별곡 보충
사미인곡 해제
사미인곡
사미인곡 보충
속미인곡 해제
속미인곡
성산별곡 해제
성산별곡
장진주사 해제
장진주사
장진주사 보충

송강가사·하

단가 해제
1. 교술가: 훈민가 16수 외
2. 연군
3. 풍류
4. 풍자
5. 친화자연
6. 자성
7. 자긍
8. 별리(別離)·기타

옮긴이에 대해

옮긴이         

김갑기(金甲起)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1972),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1975) 및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1985).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2004. 2),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송강 정철의 시문학≫, ≪한국한시문학사론≫, ≪동서 고전 연시≫(공저), ≪漢詩로 읽는 우리문학사≫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 ≪삼한시귀감≫, ≪신자하시집Ⅰ~Ⅵ≫ (공역), ≪한국사찰제영시≫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초나라 굴원의 <이소(離騷)>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송강의 가사가 있다.’ 김만중이 꼽았던 우리나라의 진문장,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비롯한 가사와 목민관으로서의 애민을 여실히 보여주는 훈민가를 비롯한 시조가 두루 담겼다. <장진주사>에서 권하는 대로 화창한 봄날, 꽃가지 꺾어 산가지로 술잔을 세어가며 송강의 시를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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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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