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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유서 깊은 고도(古都) 아우크스부르크에서 1898년 2월 10일 태어났다. 그는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장차 위대한 작가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문학 소년으로 자라났다. 뮌헨 대학에서는 한때 아르투어 쿠처 교수의 문학 강의를 들으며 뮌헨의 연극계와 접촉했다. 그는 1924년에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1928년에는 <서푼짜리 오페라>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1933년 2월 28일, 그는 나치스의 추적을 피해서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미국을 전전하면서 15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1948년 당시 동베를린으로 귀환한 브레히트는 첫 번째 작품으로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1949)을 공연하여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그는 부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베를린 앙상블을 창단하여 연극 작업에 몰두하다가 1956년 8월 14일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해설집필기간 및 집필지 : 1941년 3월 10∼29일,
망명지 헬싱키/핀란드
초연 : 1958년 11월 10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뷔르템베르크 주립극장
초연 시 제목 :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할 수 있는 출세>
연출 : 페터 팔리치
음악 : 한스-디터 호살라
무대장치 및 의상 : 게르트 리히터
주연 : 볼프강 킬링
브레히트는 모스크바를 경유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미국행 배를 타기 직전, 유럽의 마지막 망명지인 헬싱키에서 단기간에 이 극작품을 썼다. 그는 이 희곡을 미국 관객을 위해서 썼으며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뉴욕에서 활동중인 연출가 에르빈 피스카토르 등에게 공연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작품의 극적인 배경은 시카고의 갱단이 벌이는 폭력적 이권 다툼이다. 브레히트는 1935년에 그의 <어머니> 공연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에 머물면서 미국의 조직폭력배들이 주도권 장악을 위해서 벌이는 유혈 사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신문기사 등의 자료를 모으는가 하면 매일같이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와 함께 갱단을 소재로 한 영화를 관람했다. 당시 갱단의 두목을 다룬 영화가 유행했고 사람들은 무자비한 폭력을 써서 축적한 부를 과시하는 주인공을 숭배했다. 브레히트가 모은 자료 중에는 시카고 암흑가의 두목인 알 카포네의 전기 작가인 프레드 파슬리가 쓴 기사인 <뉴욕의 갱 전쟁>도 있었다. 신대륙 미국은 소위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성공 신화를 많이 낳았고 이렇게 해서 거부가 된 재벌 중에는 범죄 전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는 조직폭력배 두목들이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공황기에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미국의 꿈’을 실현한 영웅으로 생각되어서 낭만적인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브레히트는 시카고의 암흑가를 제패하여 막강한 갱단의 두목이 된 알 카포네의 출세와 히틀러의 집권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1932∼1938년 사이에 독일에서 있었던 히틀러의 집권과 권력 장악 과정을 알 카포네와 같은 갱단 두목의 이야기로 포장한 것이다. 실제로 주인공 아르투로 우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희곡의 사건 진행은 히틀러의 집권을 둘러싼 1930년대의 독일 상황과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인 대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극의 한 장이 끝나면 이와 유사한 독일의 역사적 사실이 자막으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이 극작품은 역사극인가 또는 비유극인가 하는 장르의 문제가 생긴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의 역사적 근거가 너무 빈약하게 설정되었다는 비난에 대해서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는 흉악한 살인자에 대한 일반적이고 위험천만한 존경심을 파괴하기 위해서 쓴 비유극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브레히트는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결탁해 무자비하게 암흑가의 지배권을 장악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의 출세 행로를 빌려서 독재자 히틀러의 집권 과정을 그려낸 것이다.
프롤로그와 간단한 에필로그 그리고 본문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희곡은 세계 대공황기였던 1930년대 미국의 시카고와 시세로 시에서 전개된다. 꽃배추 조합원들은 불황으로 인한 자금난을 타개하려고 덕망 높은 시의원 독스버러 영감을 내세워 부두시설 공사 명목으로 시 당국에 융자 신청을 하려고 한다. 독스버러가 이를 거부하자 그들은 쉬트의 선박회사 주식을 헐값으로 증여한다. 융자와 관련된 비리를 눈치 챈 우이는 꽃배추 조합원들을 보호해 준다는 명목으로 보호 경비를 요구하고 독스버러 영감을 협박한다. 부정에 말려든 독스버러와 꽃배추 조합 회원들은 이제 협박의 대상이 되었으며 우이는 독스버러의 부정을 폭로하려던 증인을 제거해 준다. 미천한 가문 출신인 우이는 퇴역한 노배우의 지도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웅변술과 자세 그리고 걸음걸이 등을 배운다. 우이는 부하들을 시켜서 야채 창고에 방화를 하고 불안에 떠는 채소상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한다. 무고한 실업자 한 명이 매수된 의사와 판사에 의해서 방화범으로 몰려 15년 형을 받는다. 우이는 유언장을 위조해서 자신이 독스버러가 지명한 후계자임을 자처한다. 갱단 내부에서 부하들 간에 알력이 일자 그는 심복이었던 로마를 처단해 버린다. 우이는 시세로 시(市)의 비판적인 언론인 덜피트를 암살하고 장례식에 나타나서 미망인에게 환심을 사려고 한다. 마침내 우이는 시카고 시(市)를 장악하고 시세로의 채소상인 덜피트 부인도 우이의 편이 된다.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모두가 ‘자유의사’에 따라서 우이의 보호를 받아들이는 데 찬성한다. 마지막 15장이 끝나면 “그것이 기어 나온 자궁은 아직도 임신이 가능하다”라는 경고문이 에필로그로 나온다.
극작품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틀러의 등장과 집권에 관련된 독일의 역사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1932년부터 1938년까지 있었던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2년 11월 선거에서 상당수의 의석을 잃은 나치스의 위기, 제국 대통령 폰 힌덴부르크와 관련된 비리 스캔들과 제국의회의 조사 위협 및 이로 인한 히틀러의 제국총리 임명 압력.
1933년 2월 27일의 제국의회 방화사건과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재판, 나치스 돌격대(SA)의 제거와 그 참모장 에른스트 룀의 암살(나치스가 룀 쿠데타라고 칭하는 사건으로 1934년 6월 30일 발생).
1934년 7월 25일의 오스트리아 총리 엥겔베르트 돌푸스의 암살과 1938년 3월 오스트리아의 강제 합방.
극의 장면이 끝날 때 나오는 자막은 극의 장면과 역사적 사실 간의 대비를 명확히 해주고 있다. 예를 들면 2장 끝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나온다. “1929∼1932년 세계 경제공황으로 특히 독일이 큰 타격을 입는다.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프러시아의 대지주들은 국가로부터 융자를 받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오랫동안 허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은 대비표를 통해서 극작품의 사건진행과 역사적 사실 간의 관련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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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스버러 |
힌덴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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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우이 |
히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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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
괴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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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
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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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볼라 |
괴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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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피트 |
돌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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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배추 조합 |
대지주와 사업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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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 상인들 |
소시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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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단원들 |
파시스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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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시설 보조금 스캔들 |
동부 엘베 지역보조금 스캔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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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방화사건 재판 |
제국의회 방화사건 재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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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
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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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로 |
오스트리아 |
또한 이런 대비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인물 및 그들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도 알아야 된다. 브레히트는 히틀러의 집권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들 중에서 특징적인 것을 ‘파시즘의 연극성’이란 관점에서 선별하여 극화했다. 우이는 퇴역한 노배우에게서 웅변술은 물론 여러 가지 효과적인 동작과 자세 수업을 받는다. 히틀러가 궁정배우에게서 수업을 받았던 것도 그의 전기에 나오는 사실이다. 브레히트는 히틀러가 어떻게 해서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이 희곡에서 조명하고 있다.
브레히트는 이 극작품을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의 사극”처럼 “장중한 양식으로 공연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의도에 걸맞게 희곡의 제목도 정해졌으며 텍스트 원문은 대체로 약강 5보격의 무운시로 되어 있다. 운문을 사용한 “장중한 양식”은 나치스가 국민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활용한 연극적 효과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연극적 효과의 정치적 오용 가능성은 우이가 배우에게서 연기 수업을 받는 6장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고 있으며 희곡 전편에 걸쳐서 장중한 고전극 장면의 직접적인 인용이나 암시가 많이 나온다.
이 극작품은 브레히트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생전에 공연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출간되지도 않았다. 극작품의 집필 시점에는 히틀러와 나치스의 만행이 아직 별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는 그들의 엄청난 범죄 행위가 만천하에 알려졌다. 따라서 히틀러의 집권을 풍자적으로 다룬 이 극작품은 정치적으로 너무나 민감한 것이었다. 인류 역사상 초유의 야만적 범죄를 비유극이라는 형식으로 단순화하고 축소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작품을 둘러싼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극작품의 출간은 브레히트 사후인 1957년에, 그리고 초연은 그 다음 해인 1958년에야 이루어졌다. 1959년에는 베를린 앙상블에서 이 작품이 페터 팔리치와 만프레트 베크베르트의 공동연출로 다시 공연되었다. 에케하르트 샬이 주연한 이 공연은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아르투로 우이>가 극작품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최근에는 하이너 뮐러가 연출한 공연(1995)에서 주연을 맡은 마르틴 부트케의 뛰어난 연기로 이 작품은 또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브레히트는 1953년 이후부터 타자본 원고의 제목에서 ‘저지할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삭제하고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로만 썼다. 집필 당시 브레히트가 희망했던 것과는 달리 히틀러의 출세와 집권은 아무도 ‘저지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현대의 독재자들과 그들의 범죄 행위를 문학작품으로 적절하게 형상화하는 것은 거의 해결 불가능한 과제이기도 하다. 어떤 형식을 선택하든 간에 그것은 좌절하지 않을 수 없는 시도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브레히트의 <아르투로 우이>는 그 쟁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사를 해주는 극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독일 및 세계 역사의 격동기인 20세기 전반기를 산 작가로서 그의 삶과 문학에는 이런 모든 시대적 변화와 역사적 사건이 잘 반영되어 있어서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바로 20세기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 브레히트의 일생은 아우크스부르크의 청소년기, 뮌헨의 대학생 시절, 1920년대의 격동하는 베를린 시절, 1933년부터 나치스의 추적을 피해서 “구두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꿔가며” 도망 다닌 15년간의 망명시절 그리고 동베를린으로 귀환하여 연극 활동에 전념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그는 1920년대 후반기부터 카를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기에 심취했다. 그렇다고 그가 공산당에 입당한 적은 없는데도 그는 늘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추적을 당했으며 동서독이 분단되었던 냉전기에는 서독에서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58년의 일생을 살면서 15년간이나 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많은 연극 실무 작업을 했는데도 48편의 장막희곡, 세 편의 장편소설, 200편이 넘는 중·단편 소설, 2300편이 넘는 서정시를 남겼다. 그 외에도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방대한 분량의 논설문이 있다. 그는 가히 마지막 전방위적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연극 미학의 핵심적 개념은 생소화 효과이며, 여기에 기초를 둔 그의 새로운 연극을 서사극이라고 한다. 그는 감정이입과 동일시에 기초를 둔 종래의 연극에 반기를 들고 거리 두기와 생소화 효과를 내세워 현대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독일은 물론 동서양의 현대 연극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연극론은 오늘날 알게 모르게 일반화되었고 일부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지만, 그가 남긴 극작품은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서 여전히 많이 공연되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서푼짜리 오페라>, <갈릴레이의 생애>,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사천의 선인>, <푼틸라 씨와 그의 하인 마티>,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희곡들이다. 이제 브레히트의 작품은 의심할 여지 없이 현대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극작품들은 문학성 또한 높게 평가되어 주르캄프 출판사의 단행본으로 항상 베스트셀러다. 현대인으로서는 꼭 한번 읽어야 할 현대의 고전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이 번역은 독일 주르캄프 출판사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해설부 신전집≫(1988∼1998: 30권 32책 + 색인집)의 제7권(1991: 7∼112쪽)에 실린 원문을 번역한 것이다. 번역 원본의 희곡 텍스트는 200자 원고지로 약 568장인데 고전천출의 번역 지침에 따라서 약 33%를 삭제하고 382쪽만 살린 것이다. 이것은 대사의 중복되는 부분이나 과도한 설명 부분을 약간 생략한 것으로서 희곡적 사건 진행이나 원본의 문학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는 정도이다. 이 극작품은 20세기 초의 독일 역사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교적 상세한 각주를 달았다. 번역본에서는 현대 한국어의 일상적인 표현을 토대로 삼았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시간은 절약하면서 원본의 문학성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역자 소개
이원양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했다. 독일 괴테 인스티투트 디플롬을 받았고 쾰른 및 함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뮌헨 대학교 연극학연구소에서 연극학을 연구했다.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 한국독일어교육학회 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그리고 한양대학교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며, 독일연방공화국 정부로부터 1등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며 한국브레히트연극연구소(Bertolt-Brecht-Zentrum Korea) 소장이다.
지은 책으로는 ≪브레히트 연구≫(1984), ≪독일어 기초과정≫(1995), ≪우리 시대의 독일연극≫(1997), ≪독일 연극사≫(2002), ≪만나본 사람들, 나눈 이야기≫(2006)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의 봉함인≫(2005), ≪베르톨트 브레히트≫(2007) 등이 있다. 번역 희곡으로는 실러의 <간계와 사랑>, <빌헬름 텔>(1998),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2006), <서푼짜리 오페라>(2006), 크뢰츠의 <거세된 남자>(1987), <수족관>(1988), 슈트라우스의 <재회의 3부작>(1997), 브라운의 <베를린 개똥이>(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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