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1890년 5월 19일 응에안성(省) 남단현(縣) 낌리엔리(里) 센 마을의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호찌민 주석이 태어난 집은 그야말로 조그만 초가집에 살림살이라고는 대나무 침대와 베틀이 고작이었고, 고구마를 심은 텃밭 옆에 코코넛나무 몇 그루 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 가난한 집에서 베트남 최고의 인물이 탄생되었다는 것은 베트남의 복이다.
호찌민 주석은 나이 열 살 때 어머니(호앙 티 로안)를 잃었다. 호찌민 주석의 부친(응우옌 신 삭)은 조선에서 동학혁명이 발생한 1894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프랑스 식민시대 예부(禮部)의 고위 관리가 되었다. 그는 곧 자신이 프랑스인의 야심을 채워주기 위한 도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러한 관리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시골 학교로 자원해 옮겨 근무했다. 나중에 프랑스 당국의 강요로 벽지의 현감으로 부임했다가 프랑스법을 어긴 동포를 관대히 처분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부친 응우옌 신 삭은 가족을 떠나 유리표박 생활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한 채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맏누이 응우옌 티 타인은 호찌민 주석보다 여섯 살이나 위고, 형 응우옌 신 키엠은 두 살 위였다. 누나는 아버지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프랑스에 반감을 나타내었는데, 프랑스군에 소속된 베트남 사람들이 주둔하는 지역을 골라 무기를 훔쳐다 독립군에게 전달하는 과감한 운동을 벌이다 감옥생활을 몇 차례 한 적이 있다. 형 키엠도 이에 못지않아 지나가는 프랑스 관리를 발로 차고 땅에 꿇어앉히는 등의 행위로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한다. 아버지는 관료제도에 환멸을 느껴 자식들에게 어떤 정규 교육도 시키려 들지 않아 막내인 꿍 (호찌민)은 한학을 공부하는 대신 무슨 책이든지 닥치는 대로 탐독하여 어려서부터 광범위한 식견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호찌민은 1911년 10월 10일 중국에서 신해(辛亥)혁명(중국 역사상 최초로 제정왕조를 뒤엎고 공화정치를 확립한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21세의 나이로 자신의 민족주의적 야망을 후원해 줄 수 있는 후원자를 찾으려고 사이공 항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상선 ‘아드미랄 라투슈 트레빌’호의 보조요리사로 취직, 해외로 나가게 된다. 이때부터 30년간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게 되는데, 호찌민 주석만큼 수많은 직업을 가져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조요리사를 시작으로 정원사, 청소부, 석탄을 때는 화부, 사진사 등 생계유지를 위해 안 해본 직업이 없을 정도였다. 화부로 있을 때는 불에 달군 벽돌을 집에 가지고 와서 침대 밑에 깔고 잘 정도로 추위와 싸우기도 하였다. 1942년 8월 29일부터 380일 동안 중국 광서성 18개 감옥을 전전하며 감옥생활을 할 때는 영양실조에 걸려 이가 다 빠지고, 지독한 옴에 걸려 온몸이 비단구렁이처럼 울긋불긋하게 되었으며, 이불이 없어 신문지를 엮어 덮고 자는 등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라고는 다 겪어보았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눈물에 젖는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호찌민 주석이야말로 눈물의 빵이 아니라 피의 빵을 먹어본 사람이고, 옥중생활로 자유의 소중함과 배고픈 국민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영도자였다.
이런 그를 평생 따라다닌 질문이 있다. 그것은 “호찌민은 공산주의자인가? 아니면 민족 주의자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호찌민은 “나는 직업 혁명가”라고 생전에 말하곤 했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호찌민은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자유 베트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산주의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민족주의자다. 또한 당시 정치적 상황이 전제 봉건 군주제였기에 이를 타파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던 혁명가다. 그는 젊었을 때 마르크스주의는 물론 불교, 유교, 기독교도 공부했다. 그는 ‘근면, 검소, 정의, 성실’의 네 가지 덕목을 신조로 삼았다.
호찌민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프랑스로부터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로 받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우방국인 프랑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약소국인 베트남의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호찌민으로 하여금 공산주의와 손을 잡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호찌민 주석은 애국, 애족, 애민의 화신으로 프랑스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과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꿈꾸고 이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베트남 공산당, 베트남 통일민족전선, 베트남 인민군 부대를 창설하였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건국하였다. 사상가인 동시에 베트남의 대문호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인이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의 독립선언을 하고 국가를 창건한 그는 공교롭게도 자신이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를 세운 기념일인 1969년 9월 2일 서거하였다. 그는 24년간 베트남을 통치하였다.
호찌민 주석은 신념과 비전을 가진 사람으로 성경에 나오는 다윗 왕에, 관용과 화해의 시대를 가져온 사람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에 비유된다. 다윗 왕은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사울 왕이 보낸 3000명의 특공대를 피해 아둘람 굴에 400명의 동지와 함께 몸을 숨기고 있을 때도 누구를 탓하거나 불운을 탓하지 않았다. 호찌민 주석은 중국의 감옥에 380일간이나 갇혀 있으면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고 시를 읊으며 비전을 가지고 독립과 자유를 찾는 방법을 연구한 사람이다. 또 만델라 대통령은 44세에 종신형을 선고 받고 28년간이나 감옥 생활을 하다가 72세에 석방되어 대통령이 된 후 죄수를 모두 사면해 주어 관용과 화해로 흑백 공존의 시대를 열어갔듯이 호찌민 주석도 임종을 앞두고 앞으로 베트남이 통일되면 같은 민족으로 감싸 안을 것을 유언하여 남북 공존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게 하였던 것이다.
해설
시집 ≪옥중일기(獄中日記)≫는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적 영웅인 호찌민 주석의 작품으로 모두 134편의 한시로 구성되어 있다. 30년간 해외에서 항불(抗佛)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1년 2월 귀국하여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지휘하던 호찌민 주석은 중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교포들과 연합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세력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를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에 갔다가 1942년 8월 27일 중국 광서성 천보현 족영에서 중국 국민당 장개석(蔣介石) 군대의 검문에 걸려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간첩죄로 8월 29일 체포, 구금되어 1943년 9월 10일 풀려나기까지 12개월 15일, 총 380일간을 중국 광서성의 13개 현, 18개 교도소를 옮겨 다니면서 느낀 감상, 감방의 분위기, 감방에서 겪은 고초를 내용으로 당률(唐律)에 따라 지은 한시가 바로 ≪옥중일기≫다.
이 ≪옥중일기≫에 수록된 총 134편의 한시는 124편의 7언절구, 8편의 5언절구, 동일 제목 하에 5언절구, 7언절구가 혼합되어 있는 시 1편, 그리고 제목은 있으나 내용이 없는 1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1960년 이래 ≪옥중일기≫가 부분적으로 번역돼 베트남에 소개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134편이 완역되어 출판된 것은 호찌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90년이 처음이었다.
≪옥중일기≫는 베트남 사람이 한시로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서 베트남 문학사상 커다란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독립투쟁사에 무한한 가치를 간직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호찌민 주석은 평생에 모두 170편의 한시를 남겼으며, 이 ≪옥중일기≫ 작품 속의 시어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그의 강철 같은 의지와 애국정신은 모든 베트남 국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호찌민 주석 탄생 당시는 프랑스에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출생 시 이름은 응우옌 신 꿍(阮生恭)이었다. 베트남에서 응우옌(阮)이라는 성(姓)은 미국의 스미스(Smith)나 한국의 김씨와 같이 가장 흔한 성이다. 호찌민 주석은 1901년 나이 11살 때 응우옌 떳 타인(阮必成) 이란 이름으로 개명한 것을 시작으로 1969년 서거하기까지 169 개의 가명과 필명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밀정이나 프랑스 식민당국의 비밀경찰들에게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수시로 바꿨기 때문이다. 호찌민 주석의 이름에 대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성은 ‘호’, 이름은 ‘찌민’으로 알고 있지만, 호찌민이란 이름은 호찌민 주석이 생전에 사용하던 수많은 이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호찌민이란 이름은 1942년 8월 27일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국경을 넘어갔다가 광서성에서 당시 장개석 장군의 군대에 체포되었을 때 소지하고 있던 신분증에 기재된 이름이었고, 이를 계기로 ‘호찌민’이란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부터 이 이름을 계속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옥중일기≫는 호찌민 주석이 비참하고도 혹독한 수감 생활을 하는 아주 특별한 환경 속에서 시의 형태로 일기를 쓴 것이다. ≪옥중일기≫는 진실을 시로 이야기하고, 시로 기록했으며, 한자로 쓰였지만 내용과 스타일에 있어서는 베트남의 민족성이 농후하게 반영된 문학작품인 동시에 전 베트남 사람들에게 도덕적이고도 수준 높은 교육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걸작이다. 시의 미적인 가치는 바로 호찌민 주석의 숭고한 인격과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본 번역서는 한국어 번역과 한시 원문은 물론, 베트남학연구원의 마이 꾸옥 리엔 교수로부터 베트남어 번역 작품의 사용 동의를 받아 3개 언어로 되어 있어 한국과 베트남은 물론 한자권 국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옥중일기≫ 독자들이 작품을 서로 비교해 가면서 감상할 수 있다. ≪옥중일기≫를 통해서 격동기에 베트남을 독립시키고 조국 통일의 기반을 다진 호찌민 주석의 고매한 인품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책머리에 題詞
1. 책을 펴며 開卷
2. 족영 거리에서 구류를 당하며 在足榮街被拘留
3. 정서현 교도소에 들어가며 入靖西縣獄
4. 힘든 세상살이 1 世路難 Ⅰ
5. 힘든 세상살이 2 世路難 Ⅱ
6. 힘든 세상살이 3 世路難 Ⅲ
7. 아침 1 早 Ⅰ
8. 아침 2 早 Ⅱ
9. 한낮 午
10. 심문 問話
11. 오후 午後
12. 저녁 晩
13. 교도소 밥 囚糧
14. 감방 동료가 피리를 불 때 難友吹笛
15. 족쇄 1 脚閘 Ⅰ
16. 족쇄 2 脚閘 Ⅱ
17. 장기를 배우며 1 學奕棋 Ⅰ
18. 장기를 배우며 2 學奕棋 Ⅱ
19. 장기를 배우며 3 學奕棋 Ⅲ
20. 달을 바라보며 望月
21. 물 배급 分水
22. 추석 1 中秋 Ⅰ
23. 추석 2 中秋 Ⅱ
24. 도박 賭
25. 도박범 賭犯
26. 감방 동료 막 모씨 難友莫某
27. 감방 동료 전직 주임 L씨 難友原主任 L
28. 쌍십일 천보로 이감 雙十日解往天保
29. 길을 가며 走路
30. 해질녘 暮
31. 용천에서 밤을 묵으며 夜宿龍泉
32. 전동에서 田東
33. 천보 교도소에 처음 와서 初到天保獄
34. 감방 동료 부인의 면회 難友之妻探監
35. 각 신문 윌키 환영대회 보도 各報歡迎威基大會
36. 스스로 권면하며 自勉
37. 들녘 野景
38. 죽 파는 가게 粥攤
39. 과덕 교도소 果德獄
40. 융안 교도소 유 소장 隆安劉所長
41. 아침 이감 早解 Ⅰ
42. 아침 이감 早解 Ⅱ
43. 동정에서 同正
44. 감방 동료의 종이 이불 難友的紙被
45. 추운 밤 夜冷
46. 포승줄 綁
47. 이빨이 한 개 빠지다 落了一隻牙
48. 융안과 동정 사이 隆安-同正
49. 길거리에서 街上
50. 호송 길에서 路上
51. 징집 기피자의 식솔 征兵家眷
52. 풍자 解嘲
53. 남녕에 가며 往南寧
54. 호송병이 돼지를 메고 동행 1 警兵擔猪同行 Ⅰ
55. 호송병이 돼지를 메고 동행 2 警兵擔猪同行 Ⅱ
56. 헛발 디뎌 웅덩이에 빠짐 跌落
57. 중도에 배를 타고 옹녕에 감 半路搭船赴邕
58. 남녕 교도소 南寧獄
59. 번민 納悶
60. 닭 우는 소리를 듣고 聽鷄鳴
61. 도박범 하나가 “굳다” 一個賭犯"硬"了
62. 또 하나 又一個
63. 금연 禁烟
64. 한밤중에 부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곡소리 夜半聞哭夫
65. 황혼 黃昏
66. 품값 工金
67. 잠 못 이루는 밤 睡不著
68. 친구를 그리며 憶友
69. 감방 동료들을 대신하여 보고서를 씀 替難友們寫報告
70. 옴 癩瘡
71. 쌀 찧는 소리를 들으며 聞摏米聲
72. 쌍십일일 1 雙十一 Ⅰ
73. 쌍십일일 2 雙十一 Ⅱ
74. 쌍십일일 3 雙十一 Ⅲ
75. 공습경보 警報
76. 파자 折字
77. 여관 “旅館”
78. 맑게 갠 아침 早晴
79. 베트남에 소동 발생 "越有騷動"
80. 영국 대표단 중국 방문 英訪華團
81. 무명으로 이감 解往武鳴
82. 포향의 개고기 苞鄕狗肉
83. 길 닦는 사람 築路夫
84. 간수가 내 지팡이를 훔쳐감 獄丁窃我之士的
85. 이정표 公里碑
86. 빈양 교도소의 갓난이 賓陽獄中孩
87. 네루에게 부치는 글 1 寄尼魯 Ⅰ
88. 네루에게 부치는 글 2 寄尼魯 Ⅱ
89. 등불 값 燈光費
90. 옥중생활 獄中生活
91. 곽씨 郭先生
92. 막 반장 莫班長
93. 천강 교도소 遷江獄
94. 화차를 타고 내빈에 감 搭火車往來賓
95. 도주를 기도한 그 사람 他想逃
96. 내빈 來賓
97. 유주에 와서 到柳州
98. 오래도록 이감을 불허하니 久不遞解
99. 한밤중 夜半
100. 유주 교도소 柳州獄
101. 장관부에 와서 到長官部
102. 4개월이 되고 四個月了
103. 중병 病重
104. 계림에 와서 到桂林
105. 입방비入籠錢
106. 무제 1 無題 Ⅰ
107. 무제 2 無題 Ⅱ
108. 제4 작전구 정치부에 와서 到第四戰區政治部
109. 정치부의 폐실에 갇혀 政治部禁閉室
110. 우대를 받고 蒙優待
111. 아침 풍경 朝景
112. 청명절 淸明
113. 저녁 풍경 晩景
114. 오 과장과 직원 황씨 伍科長黃科員
115. 속박 限制
116. 양도는 중병에 들고 楊濤病重
117. 잠 못 이루는 밤 不眠夜
118. 장마 久雨
119. 촌음이 아까워 惜光陰
120. 장개석 장군의 훈사를 읽고 讀蔣公訓詞
121. 양화성 장군 부사령관에 승진 梁華盛將軍陞任副司令
122. 후해에게 주는 글 贈小候(海)
123. 가을 느낌 1 秋感 Ⅰ
124. 가을 느낌 2 秋感 Ⅱ
125. 배가 고플 때 因肚餓
126. 직원 진씨 방문 陳科員來探
127. 책을 선물한 후 주임의 은혜에 부쳐 候主任恩贈一部書
128. 상부 명령으로 옥외 활동을 허락받음 蒙上令准出籠活動
129. 가을밤 秋夜
130. 갠 날 晴天
131. <천가시>를 읽고 看<千家詩>有感
132. 눈앞의 광경 卽景
133. 글을 마치며 結論
작품 중에서
131. 看 "千家詩" 有感(간"천가시"유감)
古詩偏愛天然美(고시편애천연미)
山水烟花雪月風(산수연화설월풍)
現代詩中應有鐵(현대시중응유철)
詩家也要會衝鋒(시가야요회충봉)
옛 시는 자연미만 즐겨 노래하니,
산과 강, 안개와 꽃, 눈과 달, 바람이라.
현대시엔 마땅히 쇠가 들어 있어야 하고,
시인 역시 돌격을 알아야 한다네.
월역
CAÛM TÖÔÛNG ÑOÏC "THIEÂN GIA THI"
Thô xöa thöôøng chuoäng thieân nhieân ñeïp .
Maây, gioù, hoa, traêng, tuyeát, nuùi, soâng.
Nay ôû trong thô neân coù theùp,
Nhaø thô cuõng phaûi bieát xung phong.
Nam Traân
옮긴이
안경환(安景煥)은 195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으며, 베트남의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어문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조선대학교 외국어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생활 베트남어회화≫, 역서로는 호찌민의 ≪獄中日記≫, 응우옌 주의 ≪쭈옌 끼에우≫, 권정생의 ≪몽실 언니≫등이 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친선문화진흥공로 훈장, 평화우호 훈장을, 호찌민시로부터 휘장, 응에안성으로부터 호찌민 휘장을 받았고, 베트남 문학회로부터 외국인 최초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편집자 리뷰
식민지배를 받던 격동기에 베트남을 독립시키고 통일의 아버지라 존경받았던 호찌민 주석이 중국 광서성의 18개 감옥을 전전하는 380일 동안 겪었던 혹독한 수감생활, 느꼈던 감상 등을 시로 기록한 것이 <옥중일기>다. 긴 항전 가운데 탄생한 시들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약소국들의 독립을 향한 의지와도 맞닿아 있다.
'쉽게 찾아보기 > 쉽게 읽을 수 있는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모리 오가이 단편집 森 鷗外 短篇集 (2) | 2008/05/05 |
|---|---|
|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 (0) | 2008/05/05 |
| 옥중일기 獄中日記 (0) | 2008/05/02 |
| 효경 孝經 (0) | 2008/05/02 |
| 일반교육학 Allgemeine Pädagogik aus dem Zweck der Erziehung abgeleitet (0) | 2008/04/03 |
| 고백록 Confessiones (0) | 2008/04/01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