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삼   岑參(중국, 715~770)
 

잠삼은 강릉[江陵,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강릉현(江陵縣)] 사람으로, 선조의 고향이 남양[南陽,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남양시(南陽市)]이다. 본래 명망 있는 관료집안 출신이었으나 부친 대에 가세가 몰락하였다. 따라서 공업을 이루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그의 평생의 염원이었으며, 이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5년여 간 안서(安西)와 북정(北庭) 등의 서부 변경 지역으로 종군하기도 하였다. 변경에 있을 때 그곳의 황량한 풍경과 혹독한 기후환경,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병사들의 고통, 소수민족들의 풍습과 문물 등을 많은 시로 남겨 중국문학사상 ‘변새시(邊塞詩)’라는 새로운 시의 영역을 확립하였으며, 고적(高適)과 더불어 이른바 당대(唐代) ‘변새시파(邊塞詩派)’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장편 가행체(歌行體)에 특히 뛰어났으며 7언 절구에서도 많은 좋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시집으로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이 있으며, 현재 400여 수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


설              
 

잠삼(岑參, 715∼770)은 성당(盛唐)의 시인으로, 중국문학사상 변경의 풍광과 자연환경,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병사들의 고통, 소수민족들의 풍습과 문화 문물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변새시(邊塞詩)’의 영역을 확립하고, 고적(高適)과 더불어 당대(唐代) ‘변새시파(邊塞詩派)’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러나 정작 ≪신당서(新唐書)≫나 ≪구당서(舊唐書)≫에는 그의 전기가 실려 있지 않으며, 다른 전적에서도 그와 관련한 기록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그의 사적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그의 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대부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작품의 창작 시기 또한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의 시의 내용과 기타 전적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와 시기에 따른 시풍의 차이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잠삼(岑參)은 강릉[江陵,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강릉현(江陵縣)] 사람으로, 선조의 고향이 남양[南陽,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남양시(南陽市)]이라 남양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잠삼의 가문은 본디 명망 있는 관료집안으로, 당대(唐代)에 들어와 증조부(曾祖父)와 백조부(伯祖父), 백부(伯父)가 재상을 지냈으며 부친 또한 두 차례 자사(刺史)를 지냈다. 그러나 백부가 죄를 받아 죽임을 당하고 그의 유년시기에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가세가 급격히 몰락하였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따라서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켜 옛 영화를 되찾는 것이 그의 유년 시절의 가장 절실한 소망이었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관직 생활에 있어서의 최대 동인(動因)이자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다.

개원(開元) 17년(729) 15세 때에 숭산(嵩山) 남쪽으로 이사하여 5년을 지낸 은거했던 잠삼은 개원(開元) 22년(734) 20세 때에 숭산을 장안(長安)과 낙양(洛陽) 등지를 오가며 정치적 유력자들에게 자신의 글을 바치며 관직을 구하였다. 당시에는 아직 과거를 통한 인재기용방식이 정비되지 않았던 까닭에 많은 문인들이 이른바 ‘온권(溫卷)’이라 하여 자신의 시문을 윗사람에게 올려 이를 통해 자질을 인정받고 관직에 나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잠삼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오지 않았고 10년간을 아무런 성과 없이 보내게 되었다. 결국 천보(天寶) 3년(744) 30세가 되어서야 과거에 응시하였고, 진사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우내솔부병조참군(右內率府兵曹參軍)에 임명되며 꿈에 그리던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임명된 직책은 품계 상 종팔품(從八品) 하(下)에 해당하는 낮은 직위에 불과하였고, 그의 기대와 그동안의 오랜 기다림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결과였다.

공업을 이루어 보다 높은 관직으로 도약하고자 했던 잠삼에게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 고선지(高仙芝)의 막료로 임명된 것은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기회였다. 천보(天寶) 8년(749), 안서절도사 고선지는 조정으로 들어와 잠삼을 자신의 막부의 서기(書記)로 충원할 것을 추천하였고, 그해 9월 잠삼은 우위위록사참군(右威衛錄事參軍)의 직책으로 안서(安西)로 부임하며 첫 번째 서역에서의 종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장안을 떠난 그는 이후 농산(隴山)을 건너 위주(渭州), 화산(火山), 은산적(銀山磧), 철문관(鐵門關) 등을 거쳐 그해 12월 경에 안서(安西)에 도착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많은 시에서 공업성취에 대한 의지를 다지며 변경 지역의 기이한 산세와 이국적인 풍광을 담아냈지만, 그의 시의 주된 내용이 되었던 것은 힘겨운 원정길의 고난과 꿈에서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향수의 고통이었다. 비록 공업성취라는 목표가 있었으나 아무런 준비 없이 다만 가문의 부활이라는 사명감과 당위에서 시작된 원정길은 그에 있어 혹독한 자연환경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의 길이었고, 그 먼 거리만큼이나 아득한 향수를 자아내게 할 뿐이었다.

천보(天寶) 10년(751) 3월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 고선지(高仙芝)가 무위태수(武威太守) 겸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로 임명됨에 따라 그의 막료들도 모두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의 치소가 있던 무위[武威, 지금의 감숙성 무위현(武威縣)]로 옮겨가게 되었다. 잠삼은 이때 먼저 무위로 옮겨가 고선지 일행이 기다렸다. 그러나 전임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가 임지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아 고선지는 무위로 부임하지 못하고 다시 안서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결국 잠삼만 무위에 남아 있게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고선지(高仙芝)의 군대는 아라비아제국의 정벌에 나섰으나 크게 패배하였고 무위에 있던 잠삼은 그해 초가을 장안(長安)으로 소환되어 돌아오게 되면서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한 2년여 간의 1차 종군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장안으로 돌아온 잠삼은 장안 근교의 종남산(終南山)에 초당을 짓고 3년간을 반은반관(半隱半官)의 생활을 하게 된다.

천보(天寶) 13년(754) 잠삼과 함께 안서절도사 고선지의 막부에 속해 있었던 봉상청(封常淸)이 북정절도사(北征節度使)로 임명되고, 그의 추천에 따라 안서북정절도판관(安西北庭節度判官)의 직책으로 북정(北庭)으로 나가며 잠삼의 2차 종군생활이 시작된다. 그에 있어 이때의 종군 목적 또한 비록 1차 때와 다름이 없었으나, 향수에 고통스러워하기만 했었던 1차 때와는 달리 2차 때에는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안정과 상대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이 같은 안정과 여유를 바탕으로 변방의 풍광과 자연환경, 소수민족의 문화와 문물, 그들의 풍습과 생활습관 등을 보다 깊이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다양하고 다채로운 수많은 변새시(邊塞詩)에 담아냄으로써 그의 시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지덕(至德) 2년(757) 봄 잠삼은 북정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안사(安史)의 난으로 인해 숙종(肅宗)의 행영(行營)이 있던 봉상(鳳翔)으로 돌아간다. 이듬해 건원(乾元) 원년(758년) 안사(安史)의 난이 평정된 후 장안에서 숙종과 함께 장안으로 돌아가 우보궐(右補闕)에 임명된다. 이후 여러 부서의 사인(舍人)을 두루 거치고, 광덕(廣德) 원년(763)부터 영태(永泰) 원년(765)까지 사부원외랑(祠部員外郞),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등의 낭관(郎官)을 역임하게 된다. 영태(永泰) 원년(765)에 가주자사(嘉州刺史)로 나가 4년간의 임기를 마쳤으나 더 이상의 직책을 얻지 못하고, 대력(大曆) 3년(768) 8월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도중에 반군에 길이 막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성도(成都) 등지를 떠돌다 대력(大曆) 5년(770) 정월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잠삼의 시는 송대(宋代)에 ≪잠삼집(岑參集)≫ 10권과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이 있었으나, 10권본은 전하지 않고 8권본 또한 현재 전(前) 4권만 영본(零本)으로 남아있다. 명대(明代)에는 정덕(正德) 15년(1520)에 제남(濟南)에서 간행한 ≪잠가주시(岑嘉州詩)≫ 7권이 있으며, 같은 해 성도(成都)에서 간행한 ≪잠가주시(岑嘉州詩)≫ 4권과 가주(嘉州)에서 간행한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이 있다. 이 중 제남본은 사부총간축편영인본(四部叢刊縮編影印本)으로, 현존하는 잠삼 시집 중 가장 온전하면서 결점이 적은 판본으로 꼽힌다. 이 외 명대 ≪문원영화(文苑英華)≫, ≪당백가시선(唐百家詩選)≫, ≪하악영령집(河岳英靈集)≫, ≪당문수(唐文粹)≫, ≪당시기사(唐詩紀事)≫, ≪당시기(唐詩紀)≫에 전부 또는 일부분이 실려 있다. 이 중 ≪당시기(唐詩紀)≫는 후에 ≪전당시(全唐詩)≫의 저본(底本)이 되었으며, ≪전당시(全唐詩)≫에는 잠삼의 시가 8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판본들에 따라 작품의 누락이나 오입, 오탈자 등이 있으며, 상호 글자가 다르거나 하나의 시가 둘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는 등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현대에 중국에서 간행된 잠삼의 시선집들은 대부분 사부총간본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을 저본으로 하고 다른 판본들을 참고하여 선집자의 견해에 따라 교감하여 간행된 것이다. 본서 또한 사부총간본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을 저본으로 하였으며, 다른 판본들을 참고하여 원문을 교감하여 수록하였다.

잠삼의 시는 현재 총 400여 수가 전해지는데, 이 책에서는 이 중 50수의 작품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전체 작품 수에 비교하면 1/10이 조금 넘는 적은 분량에 불과하지만 앞서 언급한 잠삼시의 특징들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로 선별하여 시기별 안배를 하였으며, 시체(詩體) 또한 고체시와 근체시를 망라하여 5언시와 7언시를 고루 선별하였고, 특히 잠삼이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장편 가행체(歌行體)에 보다 역점을 두어 선별하였으니, 아쉬운 대로 잠삼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엿보고 감상하기에 크게 부족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책에서는 1, 2부로 나누어 제1부에서는 초기부터 1차 종군시기까지의 총25수를, 제2부에서는 1차 종군시기 이후부터 만기의 시까지 총25수를 수록하였는데, 독자들이 각각의 시기를 구분하여 읽어보고 비교해 봄으로써 1, 2차 종군시기로 구별되는 잠삼 변새시의 차이를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시기 순에 따라 배열하였으며, 정확한 시기가 나타나 있지 않는 경우라도 다른 주석서들을 참고하여 예상 시기 순으로 배열하였다. 이 책이 비록 전문학술서를 지향하지는 않으나 이를 통해 한시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력이 높아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상세한 주석을 부기하였으며, 필자의 해석이나 설명과는 다른 견해들도 가능한 한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았다. 해설에서는 매 작품마다 작품의 창작 시기와 당시 시인의 나이 및 창작의 장소와 배경 등을 간단히 소개함으로써 개인과 시대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작품을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아울러 먼저 작품 전체의 주제를 밝히고 이어 구별 세부작품분석을 통해 각 구의 정확한 의미와 시상의 전개방식 및 표현방식 상의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본문 중에서     
 
中軍置酒飮歸客,
胡琴琵琶與羌笛.
紛紛暮雪下轅門,
風掣紅旗凍不翻.
輪臺東門送君去,
去時雪滿天山路.
山迴路轉不見君,
雪上空留馬行處.

군영에 술자리 벌여 돌아가는 객을 대접하니
호금과 비파 소리가 강적 소리와 함께 하네.
저녁 눈은 어지러이 군영 문에 내리는데
붉은 깃발은 바람이 몰아쳐도 얼어 펄럭이지 못하네.

윤대의 동문에서 그대 떠나보내니
그대 떠나갈 때 눈은 천산 길에 가득하리.
산길 돌고 돌아 그대 보이지 않는데
눈 위에는 부질없이 말 지나간 자취만 남았어라.

일러두기       
 
이 책은 현존하는 잠삼 시집 중 가장 온전하면서 결점이 적은 판본으로 꼽히는 사부총간본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을 저본으로 하였습니다. 아울러 다른 판본들을 참고하여 원문을 교감하여 수록하였습니다.
현재 전하는 잠삼의 시 400여 수 가운데 옮긴이가 특징과 시체(詩體), 시기를 적절히 고려하여 50수를 가려 뽑아 실었습니다.
각 시의 구성은 한글 번역시, 원시, 해설로 되어 있습니다. 해설과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덧붙인 것입니다.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시기 순에 따라 배열하였으며, 정확한 시기가 나타나 있지 않는 경우에도 다른 주석서들을 참고하여 예상 시기 순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봄날 언덕에 누워 왕씨(王氏)에게 부쳐 丘中春臥寄王子
동쪽 개울에서 유숙(留宿)하며 왕옥산(王屋山)의 은자 이씨(李氏)를 생각하며 宿東溪懷王屋李隱者
밤에 반두(盤豆)를 지나 황하 너머 영락(永樂)땅을 바라보며, 제량체(齊梁體)를 본 떠 아내에게 부쳐
夜過盤豆隔河望永樂寄閨中效齊梁體

옛 업성(鄴城)에 올라 登古鄴城
늦가을에 산을 걸으며 暮秋山行
강녕(江寧)으로 부임하는 왕창령(王昌齡)을 전송하며 送王大昌齡赴江寧
산방(山房)의 봄 山房春事(二首)
풍수(灃水) 어귀에서 장씨(蔣氏)를 보내며 灃頭送蔣侯
처음 관직을 받고 고관곡(高冠谷)의 초당에 쓰다 初授官題高冠草堂
호가(胡笳)의 노래로 하농(河隴)으로 가는 안진경(顔眞卿)을 전송하며 胡笳歌送顔眞卿使赴河隴
처음 농산(隴山)을 넘는 도중 우문판관(宇文判官)에 드리다 初過隴山途中呈宇文判官
서쪽으로 위주(渭州)을 지나다 위수(渭水)를 보고 관중(關中) 땅을 생각하며 西過渭州見渭水思秦川
서울로 가는 사신을 만나 逢入京使
화산(火山)을 지나며 經火山
은산적(銀山磧)의 서관(西館)에서 銀山磧西館
철문관(鐵門關) 누대에 쓰다 題鐵門關樓
사막에서 磧中作
사막을 지나와서 過磧
안서(安西)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이판관(李判官)을 전송하며 磧西頭送李判官入京
목숙봉(苜蓿烽)에 써서 아내에게 부쳐 題苜蓿烽寄家人
화문루(花門樓)의 술집 노인에게 장난삼아 묻다 戱問花門酒家翁
무위(武威)에서 늦봄에, 서사(西使) 우문판관(宇文判官)이 돌아가 이미 진창(晉昌)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武威春暮聞宇文判官西使還已到晉昌
하서(河西)에서 봄날 저녁 진중(秦中)을 생각하며 河西春暮憶秦中
무위(武威)에서 안서(安西)로 출병하는 유판관(劉判官)을 전송하며 武威送劉判官赴磧西行軍
안서(安西)에 관군(官軍)으로 부임하는 이부사(李副使)를 보내며 送李副使赴磧西官軍

제2부

고적(高適), 설거(薛據)와 자은사(慈恩寺) 탑에 올라 與高適薛據登慈恩寺浮圖
종남산(終南山)의 동계(東溪)에서 終南東溪中作
봄꿈 春夢
가을밤 피리 소리를 듣고 秋夜聞笛
안서(安西)로 부임하는 사람을 전송하며 送人赴安西
북정(北庭)으로 부임하며 농산(隴山)을 건너다 집 생각하며 赴北庭度隴思家
임조(臨洮)를 출발하여 북정(北庭)으로 부임할 때 남기어 이별하며−‘비(飛)’자를 얻어
發臨洮將赴北庭別得飛字

양주(涼州)의 객사에 여러 판관(判官)과 밤에 모여 涼州館中與諸判官夜集
윤대(輪臺)의 노래로 서쪽으로 정벌하러 가는 봉대부(封大夫)를 전송하며 輪臺歌奉送封大夫出師西征
주마천의 노래로 서쪽으로 정벌하러 출병하는 봉대부(封大夫)를 전송하며 走馬川行奉送封大夫出師西征
윤대(輪臺)에서 즉시 쓰다 輪臺卽事
하얀 눈의 노래로 서울로 돌아가는 무판관(武判官)을 전송하며 白雪歌送武判官歸京
옥문관(玉門關)에서 장안의 이주부(李主簿)에게 부쳐 玉關寄長安李主簿
천산(天山) 눈의 노래로 서울로 돌아가는 소치(蕭治)를 전송하며 天山雪歌送蕭治歸京
열해(熱海)의 노래로 서울로 돌아가는 최시어(崔侍御)를 전송하며 熱海行送崔侍御還京
서울로 돌아가는 최씨(崔氏)를 전송하며 送崔子還京
화산(火山) 구름의 노래로 이별하며 火山雲歌送別
이민족의 노래 胡歌
조장군(趙將軍)의 노래 趙將軍歌
취하여 진서(鎭西)로 부임하는 배씨(裴氏)를 전송하며 醉里送裴子赴鎭西
주천태수(酒泉太守)의 연회에서 취한 후에 쓰다 酒泉太守席上醉后作
행영(行營)에서 중양절에 장안의 옛 집을 생각하며 行軍九日思長安故園
가지(賈至) 사인(舍人)의 <아침에 대명궁에서 조회하며> 시에 받들어 화답하여
奉和賈至舍人早朝大明宮之作

좌성(左省)의 두보(杜甫)에게 부쳐 寄左省杜拾遺
객사에서 가을을 슬퍼하다 양성(兩省)의 옛 친구들을 생각하고 막부(幕府)의 제공(諸公)들에게 드려
客舍悲秋有懷兩省舊游呈幕中諸公

옮긴이에 대해

역자 소개       

주기평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으며, <육유시가연구(陸游詩歌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이화여대·가톨릭대·안양대·서원대·방송통신대 등에서 중국어와 한문 및 중국역대시가와 중국역대산문 등을 강의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있으며 ≪심양일기≫·≪소현동궁일기≫·≪소현분조일기≫ 등 조선시대 왕세자일기를 공동번역하고 있다.

저역서로 ≪육유시선(陸游詩選)≫(지만지고전천줄, 2008. 2)이 있으며, 주요논문으로 <육유사(陸游詞)의 주제 및 창작관에 대한 고찰>·<서술구조를 통한 이릉시(李陵詩)와 소무시(蘇武詩)의 창작시기 고찰>·<중국 도망시(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남송 강호시파(江湖詩派)의 ‘시파(詩派)’적 성격 고찰>·<한국에서의 한시교육(漢詩敎育)의 현황과 개선방안>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고적과 더불어 '변새시파(邊塞詩派)’를 대표하는 시인이면서도 삶과 행적이 묘연한 시인 잠삼. 일생을 몰락한 가문의 부흥을 위해 떠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그가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했다기 보다는 역사의 관심이 비껴갔던 듯하다. 하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변경의 풍습과 문물을 비롯한 새로운 중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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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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