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colleges.ac-rouen.fr
죠제프 베디에 Joseph Bédier(프랑스,1864∼1938)
프랑스 중세문학 연구가로 유명하며, ≪트리스탄≫ 이외에 ≪롤랑전≫ 및 패설들(Fabliaux)을 수집. 편집하여 현대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특히 1900년에 발표한 ≪트리스탄과 이즈(Le Roman de Tristan et Iseut)≫는, 마리 드 프랑스(12세기), 아일하르트(12세기), 토마스(12세기), 베룰(12세기), 고트프리트(13세기) 등의 편린만 남은 작품들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당시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트리스탄과 이즈의 전설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물론 바그너(R.Wagner)가 앞서(1854∼1859)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가극을 발표하였으나, 그의 작품은 중세 문인들의 정서나 켈트 전설과 너무나 동떨어져, 베디에의 작품에 비할 바 못된다.
머리말 중에서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 이야기는, 곡진하고 자상한 심정이 엮어낸 한 편의 긴 노래이다. 간절하되 고요하며, 뜨겁되 악착스럽지 않은 노래이다. 더구나 그러한 노래가, 기사도 소설이나 무훈전, 풍자소설, 풍자극, 성자전 등이 거센 주류를 이루던 12세기 중엽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으니, 그 노래의 출현은 프랑스 문학 내지 유럽 문학 속에 일어난 하나의 기적이다. 그 작품이 출현한 시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것과 유사하거나, 그것에 견줄 만한 사랑 이야기가 없으니, 또한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다프니스와 클로에≫(롱구스), ≪에티오피아 찬가≫(헬리오도로스), ≪로미오와 쥴리엣≫(셰익스피어), ≪끌레브 대공 부인≫(라화이예뜨 부인), 혹은 ≪적과 흑≫(스땅달), ≪보바리 부인≫(플로베르), ≪채털리 부인의 사랑≫(로렌스) 등을 뇌리에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 이야기와 나란히 놓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영악스러운 인문학적 시선이 너무 강하게 번득이거나, 주제가 편중 내지 경도되었거나, 혹은 이념적 아귀다툼에 너무 짙게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작품들 속에서는 다정함이나 섬세함 혹은 심정 상의 고매함 등을 느낄 수가 없다. 물론 트리스탄의 이야기에서는 숙명적이고 맹목적인 정염 그 자체를 노래하고 있는 반면, 위에 열거해본 작품들 중 일부는, 정염으로 인해 야기되는 제현상을 이념적 주장의 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주제를, 어떠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노래했다 하여도, 모든 작품에는 작가 고유의 기질 혹은 성정이 감돌기 마련이며, 그것만이 진정한 독특성의 징후이다. 영악스러운 기지가 셰익스피어의 지배적인 특성이라면, 음흉함과 게걸스러움은 각각 스땅달과 플로베르의 특성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여인이여, 우리의 운명 역시 그러하니, 나 없이 그대 없고, 그대 없이 나 또한 없도다!”, “이즈 나의 연인, 이즈 나의 사랑, 그대 속에 나의 죽음 있고, 그대 속에 나의 삶 있나니!” 이상 두 구절이 집약하고 있는 트리스탄과 이즈의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전설에는, 각박한 나무람이나 영악스러운 풍자가 없다. 오직 다정함과 섬세함, 자애로움, 슬픔, 그리움 등이 이야기의 전편에 끊임없이 감돌며, 슬픔과 아쉬움의 절정에서 표출되는 죽음 저 너머로 향한 몽상이 펼쳐질 뿐이다. 또한 그러한 심정상의 고매함이 두 주인공이나 특정 인물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피해자인 마크 왕, 트리스탄의 어머니 블랑슈플뢰르, 이즈의 시녀 브랑지앵, 트리스탄의 양부 로할트, 그의 사부 고르브날, 리당의 영주 디나, 트리스탄이 마지막으로 몸을 의탁했던 까르헤의 성주 호엘, 그의 아들이며 트리스탄의 벗이 된 카헤르딘, 이즈로부터 브랑지앵을 죽이라는 밀명을 받았던 이름 없는 농노 등, 그 모든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다정함과 섬세함과 한결같은 신의이다. 심지어, 코온월에 조공을 받으러 왔던 그 사나운 모르홀트가 트리스탄과의 결투 끝에 죽어, 아일랜드의 기사들이 그 시신을 사슴 가죽에 싸서 고국으로 모셔 가는데, 시신이 아일랜드에 도착하는 정경을 그리는 어조까지도 무척이나 다감하다. “옛날, 와이즈포트 항에 개선할 때마다, 모르홀트는 자기를 환대하는 부하들과, 누님이신 왕비, 그리고 동녘에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황금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질녀 이즈 등을 대하며 기뻐하였노라. 모두들 그를 따뜻하게 환영하였고, 혹시 상처를 입은 경우에는 왕비와 그의 질녀가 상처를 치료해주었도다. 그러나 아무리 신통한 약이라 한들 이제 무슨 소용이랴!”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이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부딪치면 파열할 수밖에 없는 법, 블랑슈플뢰르와 트리스탄 그리고 이즈의 운명이 그러하며, 그 운명이 또한 작품의 중추적 주제이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자 블랑슈플뢰르는 문득 마비된 사람처럼 변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명이나 탄식 한 마디 새어나오지 않는다. “수족은 기운을 잃어 텅 빈 것 같은데, 영혼은 그녀의 육신을 빠져나가고픈 열망에 사로잡히도다.” 또한 기다리던 이즈가 오지 않는다고 믿게 된 트리스탄은 이즈의 이름만을 세 번 외친 후 아무 말 없이 숨을 거둔다. 뒤늦게 도착한 이즈 역시, 그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기절하더니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
내연기관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그들의 정염이, 외부로부터의 제약을 그만큼 힘들게 감내해야 하는 것도 따라서 하나의 필연이다. 중세 문인들의 말처럼, 그들의 사랑은 ‘가시덤불 위를 감도는 향기’, ‘쓰디쓴 잔’, ‘죽음’, ‘돌아올 수 없는 길’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무질서 혹은 취기이며, 때로는 대혼돈이기도 하다. 인습도, 교조도, 심지어 죽음도 그 정염의 팽창을 막지 못한다.
트리스탄과 이즈의 전설은 그러한 정염과 인습 간의 투쟁에서, 정염이 승리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승리는 죽음을 수반하며,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또한 인습 혹은 세속과의 불가피한 갈등관계에 처하여 고통을 감내해야 하니, 두 연인의 몽상은 필연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지향한다. 투명한 공기로 쌓은 성벽이, 백화만발한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 속에서는 씩씩한 영웅이, 아름다운 연인의 품에 안겨 영원히 늙지 않고 살며, 어떠한 적도 그 성벽을 깨뜨리지 못하는 곳, 두 연인이 꿈꾸는 그 이상향은 곧 죽음의 나라, 혹은 아더 왕이 잠들어 있다는 아발론 섬 같은 피안이다. 트리스탄의 전설이 삶과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죽음의 노래이다. 또한 그 죽음은,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심정에서 연원한 숙명적 사랑의 불가피한 귀결점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이야기의 최초 발상지가 어디인지, 또 그것을 처음 노래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야기에 아더 왕이 등장하고, 또 그와 마크 왕이 우호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 점을 볼 때, 남부 스코틀랜드의 여러 켈트 부족을 규합하여, 앵글로색슨 족에게 저항하였다는 아더 왕의 치세기(대략 5∼6세기) 이야기로 추측될 뿐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설화 중 하나인 디아르무이트(Diarmuid 혹은 Dermot)와 그레인느(Grainne 혹은 Grania)의 사랑 이야기에, 마크 왕의 결혼 및 트리스탄과 이즈의 탈출,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는 마크 왕의 일화 등이, 마치 같은 판에 찍어낸 듯 유사한 형태로 나타남을 볼 때, 트리스탄의 전설이 켈트인들의 감성과 꿈의 소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아더 왕이나 아일랜드의 전설 모두 그 시기를 알 수 없으려니와, 켈트족 및 켈트 문명 자체가 기이하게도 때 이르게 전설 속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켈트족의 역사와 문화 및 종교가 문득 전설 속으로 사라진 연유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프랑스 대혁명 혹은 프랑스 제1제정 이전까지, 즉 절대적인 왕권과 결탁한 예수교가 막강한 세력을 누리고 있던 동안에는, 켈트족이나 그들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였던 것 같다. 중세 이후 19세기 초반까지, ‘켈트’ 라는 어휘를 사용한 문인들을 발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불가사의이다. 쫓고 쫓기는 정복 전쟁의 와중에 휩쓸려 스스로 잠적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교도들’에 대한 악착스러운 박해 때문이었을까? 여하튼 그렇게 잠적한 문화권의 전설이건만, 12세기에 이르러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이 문인들의 작품에 은유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쎄르까몽(Cercamon, 12세기 전반), 방따두르(Bernard de Ventadour, 12세기 중반), 꾸씨(Châtelain de Coucy, 12세기 후반)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들은 노래에서 트리스탄과 이즈의 한결같은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설이 최초로 소설의 형태를 얻은 것은 마리 드 프랑스(Marie de France, 12세기 후반)의 ≪인동덩굴≫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 작품은 110여 수에 불과한 단편이고, 거의 같은 시기(1165∼1180년 사이)에 아일하르트(Eilhart d'Oberg), 토마스(Thomas d'Angleterre 혹은 de Bretagne), 베룰(Béroul) 등이 ≪트리스트란트(Tristrant)≫ 및 ≪트리스탄과 이즈(Tristan et Yseut)≫라는 제하에 장편 운문소설(속칭 서사시)을 내놓게 된다. 또한 12세기 말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트리스탄의 광대짓(Folie Tristan)≫이 전하는데 작자는 미상이다. 그리고 13세기 초에 쓰여진 고트프리트(Gottfried de Strasbourg)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et Isolde)≫ 등이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다. 그 이후 20세기 초까지, 발라드나 가극 혹은 소설의 형태로 개작된 많은 작품들은, 모두 위에 인용한 작품들에 입각해서 쓰여진 것들이다. 그러나 위의 작품들 중 온전한 형태로 전하는 것은 없다. 모두 편린만 남았고, 특히 13세기 말 이후 18세기 말까지 근 5세기 동안, 트리스탄의 전설이 프랑스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였는데, 그러한 현상은 그 시기의 정치적, 종교적, 기타 사회적 요인 및 그것에서 파생된 학문적 혹은 예술적 유행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트리스탄과 이즈라는 두 연인의 사랑을 노래한 중세 문인들의 그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성정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도외시되거나 망각된 원인을 이제 와서 따지고 밝힌들 무엇 하겠는가! 또한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다만 ≪부생육기≫만큼이나 착하고 정성스러우며 아름다운 옛 이야기를, 마침내 여러분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된 이제, 토마스가 자신의 작품에 붙였던 발문 한 구절로 소회의 피력을 대신할 뿐이다. “나 토마스는 이제 나의 이야기를 마치노라. 아울러 모든 연인들과, 사랑의 몽상에 젖어있는 이들, 연모하는 이들, 사랑하고픈 열망에 사로잡힌 이들, 음탕한 이들, 심지어 패륜아들에게도 나의 정중한 인사를 보내노라… 나는 많은 전설들과 시인들의 노래를 애써 모아 이 이야기를 지었노라. 그것은, 하나의 전형을 제공하고, 이야기를 더욱 아름답게 빛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니, 이 이야기가 모든 연인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또한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가끔 그들 스스로의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노라. 부디 모든 연인들께서는, 지극치 못한 절개, 연인의 과오, 온갖 번민과 고통 등, 그 모든 사랑의 덫에 걸려들었을 때에라도, 이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기를 바라노라.”
차례
해설
1. 트리스탄의 어린 시절
2. 아일랜드의 모르홀트
3. 금발의 미인을 찾아서
4. 사랑의 미약
5. 브랑지앵의 죄
6. 커다란 소나무
7. 난쟁이 후로쌩
8. 트리스탄의 탈출
9. 모르와 숲
10. 은자 오그랭
11. 위험한 도섭장
12. 신명 심판
13. 나이팅게일의 노래
14. 경이로운 방울
15. 흰 손의 이즈
16. 카헤르딘
17. 리당의 영주 디나
18. 미치광이 트리스탄
19. 죽음
주요 작품 연보
본문 중에서
"임이여, 우리들 또한 저러하니, 나 없이 그대 없고, 그대 없이 나 또한 없도다."
Ainsi va de nous,ami; ni vous sans moi, ni moi sans vous.
이형식은 197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빠리4대학과 빠리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르셀 프루스트−희열의 순간과 영원한 본질로의 회귀≫, ≪프루스트의 예술론≫, ≪작가와 신화≫, ≪감성과 문학≫, ≪정염의 맥박≫, ≪루시퍼의 항변≫,≪현대 문학 비평의 방법론≫(공저), ≪프루스트, 토마스 만, 조이스≫(공저), ≪프랑스 현대 소설 연구≫(공저), ≪그 먼 여름≫(장편소설)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외상 죽음≫(쎌린느), ≪밤 끝으로의 여행≫(쎌린느), ≪미덕의 불운≫(싸드), ≪사랑의 죄악≫(싸드), ≪철부지 시절≫(까바니), ≪미소 띤 부조리≫(사바띠에), ≪여우 이야기≫(이형식 편역), ≪트리스탄과 이즈≫(베디에), ≪중세 시인들의 객담≫(이형식 편역), ≪중세의 연가≫(이형식 편역), ≪농담≫(이형식 편역), ≪롤랑전≫, ≪웃는 남자≫(위고)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트리스탄 이야기는 바그너가 오페라로 만든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트리스탄과 이즈≫는 20세기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문학 연구가인 죠제프 베디에가 여러 군데에 있는 트리스탄 전설을 수집하여 재구성한 작품으로, 끝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트리스탄과 이즈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요정들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옮긴이의 훌륭한 번역은 이 책의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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