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라몬 히메네스 Juan Ramón Jiménez(1881~1958)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는 1881년 스페인 남부 항구도시 모게르(Moguer)에서 출생했다. 교육을 받을 나이가 되었을 때, 당시 대부분의 부르주아 집안의 자식들이 그랬듯이 히메네스도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중·고등학교를 다닌 도시는 석회로 유명한 스페인 남부 항구도시 카디스(Cádiz)였는데, 그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를 운명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유년시절 그는 친구들과 놀기를 싫어하고 그림과 글쓰기를 중독에 가까울 만큼 좋아하던 병약하고 수줍은 소년이었다. 열네 살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그의 시가 고향의 문학잡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평생 자신이 시만 쓰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는 부모의 강요로 세비야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고, 이 시절에는 시보다 회화 작업에 더 빠져 있었다. 시인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회화적 이미지는 이런 배경이 반영된 것이다.
1900년 마드리드로 이주했고, 얼마 후 시집 ≪슬픈 아리아≫를 발표했다. 그 이전에도 잡지에 산발적으로 시를 발표했지만 시인에게는 공식적인 첫 시집이었다. 이후 다시 건강 때문에 모게르로 귀향하게 되는데, 귀향한 지 얼마 후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다. 이즈음 신경쇠약과 호흡장애 등으로 요양소에 입원, 장기 치료를 받았지만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으며 프랑스에서는 상징주의 시를 접하게 된다.
1905년부터 1912년까지 고향 모게르에서 홀로 지내던 시기는 시인에게는 가장 외로웠던 시절로, 초기 감상적 톤의 시는 대부분 이때 쓴 것이며, 또 가장 많은 시를 쓴 시기이기도 하다. ≪봄의 발라드≫, ≪소리 나는 고독≫, ≪엘레지≫, ≪미로≫, ≪일요일≫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1912년에 건강을 회복한 시인은 마드리드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번에는 당시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 기숙사이며 전위주의 예술의 산실이었던 레시덴시아 데 에스투디안테스(Residencia de Estudiantes)에 거주하게 된다. 그는 여기서 몇 년 후배들이었던 가르시아 로르카(García Lorca),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 등과 교분을 맺으며 그들에게 큰 예술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들은 각각 문학, 회화, 영화의 영역에서 20세기에 큰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시인으로서는 ≪영적 소네트≫와 ≪여름≫ 같은 시집이 나온 때로, 같은 유형의 반복적인 시가 나오면서 새로운 미학을 모색하고 있던 시기였다.
1916년은 시인의 생애 중 가장 변화가 많았던 한 해였다. 생애 처음으로 미국 여행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세노비아 캄프루비 아이마르(Zenobia Camprubí Aymar)와 결혼하게 된다. 그녀는 아내 이상의 지적 동반자였고, 인도를 비롯한 동양세계에 관심이 높아, 인도 시인 타고르의 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히메네스 시에 동양적 범신론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범신론적인 우주관을 자유시 형식에 담아내는 새로운 변화는,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명시 <풀잎(The leaves of grass)>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
1917년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온 시인은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는 1936년까지 이곳에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한다. 초기 감상적인 시어들이 철학적이고 사념적인 색채를 띠어간다. ≪신혼 시인의 일기≫, ≪돌과 하늘≫, ≪완전한 계절≫ 같은 시인의 대표적 작품들이 쏟아졌던 시기였다. 시인의 고유한 목소리가 절정에 이르고 난해하면서도 대중적인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 탄생했다.
1936년 스페인 시민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지식인들, 특히 좌파적 이념과 진보적 사고를 가진 수많은 지식인이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히메네스 역시 고국을 떠나 푸에르토리코와 아바나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카리브 지역을 떠나 미국의 플로리다에 거주하게 된다. 망명 생활을 접고 미국에서의 영구 거주를 결심한 시기였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생계를 이었다. 몇 년 후 동부의 워싱턴 DC로 거주지를 옮기고, 듀크 대학과 메릴랜드 대학의 칼리지 파크(College Park) 캠퍼스에서 강의에 전념했다. 그가 강의하던 칼리지 파크 캠퍼스 스페인어문학부 건물은 현재 히메네스 빌딩으로 명명되었고, 로비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일상적 언어를 가진 시와 지극히 관념적인 시를 동시에 썼던 시기로, ≪바다 저쪽에는≫, ≪내면적 동물≫, ≪욕망받는 신과 욕망하는 신≫ 그리고 마지막 시집 ≪떠나가는 강물≫이 출판되었다.
1952년 첫 망명지였던 푸에르토리코로 돌아간 시인은 간간이 대학에서 강연이나 강의를 했지만,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다. 1956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지만, 수상의 기쁨도 채 지나기 전에 아내 세노비아가 세상을 떠난다. 아내가 유명을 달리 한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고 마침내 1958년 5월 29일 고국으로 끝내 돌아가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해설
국내 최초 소개
∙이 책은 히메네스의 초기 작품부터 사후에 발표된 시집들까지 중 집필 순서대로 옮긴이가 선별하여 엮은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시를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하려는 것은 무척 무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그런 시도를 자주 해본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시는 다음의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유형의 시는 ‘세상을 반영’하려는 시다. 여기에서 세상은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 그 모든 것이 그에게 부여한 경험과 감정 그리고 인상들을 의미한다. 이때 시인은 명료한 관찰력으로 주변을 감지하고 그 결과물을 언어로 재현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세상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때마다 자기가 읽어낸 삶의 형상과 굴곡을 새로운 언어로 옮겨놓는다. 그런데 이 새로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곧 다른 시인이 나타나 그 새로움을 낡음으로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가 선배 시인들의 시를 시시한 것으로 만들었듯이.
두 번째 유형의 시는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시다. 특히 이 시들은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성장했다. 월스트리트의 직장인들이 하루의 일과를 요가로 푸는 것과 비슷하다. 뉴에이지가 형태만 심오한, 허구적 종교성으로 위장된 하나의 상품인 것처럼, 이런 시는 순수와 자연, 청량함과 심오함을 전경에 배치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중매체를 타는 대부분의 시는 이런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광고카피가 가지는 기능과 매우 흡사하다. 도시 공간은 수많은 자극들이 끊임없이 지나가는 곳이다. 자극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시 역시 자극적인 방식으로 읽게 되고, 시어도 자극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세 번째 유형의 시는 ‘시어로 세상을 창조’하려는 시다. 여기에서 시인은 첫 번째 유형의 시인과 상이한 지점에서 시를 바라본다. 그는 세상을 반영하고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작은 신’이 되어 자신이 주조한 언어를 가지고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생산하려 한다. 시인은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미지들의 공화국으로, 어떤 미지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려 한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시인은 시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런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시인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언어를 독특한 리듬 속에 담아내서 새로운 별로 우리를 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시는 삶의 근원성과 존재의 영원성을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다. 우리는 이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소통하고 경험하려 해야 한다. 그것이 이런 유형의 시를 제대로 읽어내는 방식이다. 시 전체가 주는 신비한 정서와 철학적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스페인어권 시인 중 첫 번째 유형에 속한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아마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네루다는 스무 살의 풋풋한 나이에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같은 절절한 연애시에 몰두했다가, 세상에 대해 철이 들면서는 <지상의 거주지>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썼다. 조국인 칠레가 이데올로기 논쟁을 겪을 때는 ‘비순수시’를 주장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민중의 노래>를 발표했다. 이렇듯 네루다는 개인적 체험과 세상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개입하며 시를 썼다.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와, 여기에 소개하려는 히메네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시인은 자신이 속한 상이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 때문에 다른 시어를 가지고 있지만, 시를 바라보는 시선과 개념은 동일하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기 위해 출항했던 스페인의 역사적인 항구도시 모게르(Moguer)에서 1881년 시인은 태어났다. 그는 당시 비교적 현대적 도시였던 푸에르토 데 산타마리아에서 예수회 신부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후 세비야 대학에 법률을 공부하러 갈 때까지 시인은 대부분의 성장기를 남부 지중해 연안의 풍경과 함께 보내게 된다. 따라서 그의 시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바다, 태양, 바닷새 따위의 이미지와 자연의 광활함, 순수함, 멜랑콜리 등은 유년시절에 맺어진 바다에 대한 인상과 관계가 있다 할 것이다.
열네 살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던 시인은 열아홉 살이 되던 1900년 마드리드로 이주, 3년 뒤 공식적인 첫 시집 ≪슬픈 아리아(Arias tristes)≫를 내게 된다. 그의 첫 작품에서 우리는 사춘기의 감상주의와 햇과일 같은 순수함을 간직한 병약했던 한 소년과, 그로 인해 시 쓰기가 구원의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선천적’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첫 시집에서 어린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내게 얘기하지.
인생을 즐기라고,
네 아침은 싱싱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꽃 같은 사랑의 정념으로
상처 받은 네 영혼의 어두움을 깨어버리라고.
그러나 나는 쓰디쓴 고뇌의 손으로
삶에 대한 믿음을 접고
철 이른 꽃송이를 뿌리째 뽑아버렸어.
저녁이 되면 울어버릴 걸 알면서,
아침에 일어나 미소를 지을 수는 없었어.
<사춘기>(부분)
이 ‘이유 없는’ 슬픔에 대해 시인은 훗날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달콤한 나이에 나는 아이들과 거의 어울리지 못했고 내 유일한 친구는 고독이었다. 장엄한 의식(儀式)과 낯선 사람들의 방문, 교회의 모든 것이 내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섭게 슬픔에 젖어 있었고, 뒤로는 늘 과장된 정서를 남기고 다녔다. 비 오는 광경을 쳐다보던 정원의 창문이 그랬고, 내 집 앞 거리로 떨어지는 해가 그랬다.”
마드리드로 돌아온 후 신경쇠약과 호흡장애로 장기간 요양소에서 보냈던 시절, 시인은 독서와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고, 이때 그는 시인으로서 최초의 절정을 경험하게 된다. 육체적 고통은 시인으로 하여금 주변 세계에 대한 영적인 교감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고, 주변 사물과의 구체적인 교감의 경험을 시로 쓰게 된다. 바다와 태양처럼 장엄하고 유일한 존재에서부터 장미와 나뭇가지, 벌레에 이르는 미세한 사물, 그리고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사물과의 교합과 일치가 이루어진다. 아직은 감상적 톤이 지배적이고 그 교감의 세계가 정신적 합일이라기보다는 세밀한 관찰자의 자세, 그러므로 여전히 일방적이고 객관적인 자세이긴 하지만(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인상주의자로 보인다), 시인의 모든 감정의 흔적 하나하나가 철저하게 주변의 사물로 인칭화되고 있는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낭만주의자로 보인다).
안개 속에서 물은 돌에게
자신의 오래된 노래의 고통을 보여준다.
덩굴 속에서 개똥벌레는
초록빛 비상과 은빛 비상을 꿈꾼다.
하늘을 향해 오르며 가지 사이로
별들의 향기를 머금은 재스민.
안개일까, 우물일까, 하늘일까?
그것은 낭만적인 달에 유혹된
어떤 나이팅게일… 푸른
목소리… 달에게 말을 건네는
새의 마술적 비상…
≪먼 정원들≫ 중 <안개 속에서> (전문)
이런 감각적이며 소녀 취향의 애절함은 히메네스의 초기 시를 지배하는 정서였다.
1916년은 히메네스에게는 인생에 있어 그리고 시인으로서도 결정적 시기였다. 배를 타고 처음으로 미국에 도착한 그는 인생의 반려자이자 지적 동반자인 세노비아(Zenovia)와 뉴욕에서 결혼을 하게 되고, 시 세계에도 큰 변화가 시작된다. 미국 내 일정 기간 체류와 세노비아와의 결혼은 그의 시가 라틴풍 정서에서 벗어나 영미와 북유럽 계열의 색채를 띠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는 셸리(Shelley), 에이미 로웰(Amy Lowell)과 같은 영국 시인들, 그리고 괴테(Goethe), 횔덜린(Hölderlin), 하이네(Heine) 등의 독일 시인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디킨슨(Dickinson),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같은 미국 시인들의 시를 읽고 매료된다. 이 시기는 또한 인도 시인 타고르의 범신론적 시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때이기도 하다. ≪신혼(新婚) 시인의 일기≫는 이런 변화가 반영된 제2기의 첫 작품으로, 초기 시의 특징이었던 감상성이 줄어들고 형이상학적 의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한편으로는 스페인 신비문학의 맥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까지
‘침묵’이란 단어는
자신의 무덤을
덮개로 닫지 않았지!
그리하여
오늘까지
네가 혹시 입을 열어
내게 대답하지 않을까
헛되이 기다렸지!
≪신혼 시인의 일기≫ 중 <침묵> (부분)
1936년 시민전쟁이 발발하자 시인은 조국을 떠나 두 번째로 신대륙으로 향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의 짧은 체류 뒤, 그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3년간 체류하게 된다. 스페인 시민전쟁이 끝나던 1939년부터는 플로리다, 마이애미, 메릴랜드, 워싱턴 DC 등에 거주하면서 대학에서의 강의로 생계를 이었다. 조국을 떠난 시인에게 조국에 대한 기억은 이제 회상의 형태로 재현되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수의 실낙원으로 변한다.
하얀 마을이 그곳에 있어.
불을 밝힌 채 나를 기다리며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마을이.
외침이 있던,
광장에 울려 퍼지던 수정 같은 외침,
정지된 날카로운 외침과
구름의 가장자리에 선 마지막 외침과
그리고 노란빛 외침을 들었어.
아이가 보았던 모든 것을
아이가 보기 원하는 모든 것을
아이가 보지 못했던 모든 것을 보았어.
아이는 모든 사람들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
아이는 늙은 시절의 나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이.
≪바다 저쪽에는≫ 중 <마지막 아이> (부분)
이렇듯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했지만, 히메네스의 시 세계를 요약할 수 있는 개념은 ‘순수시’다. 순수시의 근본적인 개념은 시를 통해 사물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지시물에 대한 기호체계인 언표로부터 역사성과 시간성을 제외하는 시학을 말한다. ‘언어 자체가 그 사물이 되게 하는 시’가 히메네스가 실천하려는 순수시다. 이를 통해 시어는 문명과 일상 속에서 오염되었던 의미를 지우고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주변적이고 장식적인 자질을 제거하고 지시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시어이며, 시의 기능은 언어를 초역사적이고 초시간적인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다음 시는 히메네스 자신에게 있어서 ‘순수’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그녀는 순결의
옷을 입고 나타났고,
나는 아이처럼 그녀를 사랑했어.
그녀가 알 수 없는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녀를 증오했어.
그녀가 호사스럽게
치장한 여왕이 되어 나타났을 때
내 분노는 너무 쓰고 허무했지.
그래도 나는 그녀에게 미소 지었고
그녀가 상실했던 순결의
도포를 다시 몸에 감았을 때
나는 다시 그녀를 믿기로 했어.
그녀는 마침내 도포를 벗고
벌거숭이로 나타났어.
오, 내 삶의 열정이여!
벌거숭이 시여, 영원하라!
첫 연은 초기 시를 언급하고 있는 바, 아직 어떤 미적 양식에도 물들지 않은 단순한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둘째 연과 셋째 연에서는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모데르니스모(Modernismo)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고 있는데, 히메네스는 한때 지독한 모데르니스모 신봉자였지만 곧 이어 그에 대한 반감을 보여주고 있다. 모데르니스모는 히메네스가 젊은 시절 한때 광적으로 수용했던 시 현상으로, 과장된 감수성과 대리석 같은 견고한 형식성을 표방했다. 넷째 연은 모데르니스모에 대한 환멸을 느낀 시인이 다시 초기의 단순함으로 돌아갔음을 암시하고, 마지막 연에서 마침내 순수시의 세계를 만난 시인을 볼 수 있다.
히메네스가 표방했던 순수시의 한 형태를 다음에서 읽어볼 수 있다.
줄기는 아직 새벽 여명의
이슬을 머금고 뿌리에서 나온다.
향기를 내뿜는 촉촉한
대지의 수분과
이마와 두 눈으로
떨어지는 샛별들의 빗줄기!
≪돌과 하늘≫ 중 <시 2번> (부분)
순수시의 개념 안에서, 시의 기능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염원을 반영하고 불멸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다. 동시대의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가 역설했던 시에 대한 정의, 즉 “시는 시간 속의 말(La poesía es la palabra en el tiempo)”이라는 개념과는 너무나 상이하다. 마차도에게 있어서 시는 결코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거나 신성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거나 역사와 떨어져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는 대리석 조각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적 반영일 뿐이다. 반면 순수시 속에서 시는 시공의 한계 안에서 현상과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소우주를 지배하는 작은 신이며, 시는 그런 창조적 능력을 가진 유일한 예술이다.
건조한 태양을 보며, 나는
내 깊은 곳에서 푸른 샘을 창조한다.
빛 없는 눈(雪)을 맞으며, 나는
가슴속에 용광로를 창조한다.
연기 같은 사랑을 보며, 나는
영혼 속에 사랑의 불멸을 창조한다.
≪완전한 계절≫ 중 <제2의 조물주> (전문)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부여한 첫 번째 작업은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명명(命名) 작업이었다. 그러므로 사물에 정확한−그로 인해 아름다운−이름을 부여하는 작업은 인간에게 최초의 노동이자 예술이었다. 시는 어쩌면 애초부터 그런 창조적이고 순수한 행위를 위해 태어났을 것이다. 보르헤스도 그의 단편 <타인(El otro)>에서 “시는 실현되었거나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문학적 장르”라고 했듯이, 시가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시대의 시는 행복하다. 전후(戰後), 사회시, 참여시의 등장으로 시의 모든 환상은 부서졌고 우리는 시가 꿈꾸기를 기대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히메네스 시에 등장하는 자연의 제 요소들과 그것들의 관계, 시인과 맺는 관계는 늘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며 때로는 철저한 욕망의 환상으로 나타난다.
초기 시에서는, 시적 분위기가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눈물을 짜낼 만큼 다분히 소녀 취향의 감상주의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문체가 나름의 형태를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면 사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들이 등장하면서 사물과 존재, 타자와의 합일 등의 메시지로 발전한다.
또한 그의 순수시에는 현실과 관계없는 먼 시간과 공간을 무대로 하는 일종의 엑소티즘(exotismo)적인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아래의 시처럼 인간 사이의 휴머니즘적 결합을 다루고 있는 것도 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가 아닐 수 있는가!
감정의 피를 섞어 서로가 서로의
내부를 보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웃고 어떻게 울고 있는가를!
가느다란 실들,
가닥가닥 풀어헤쳐진 우리를
서로 묶어주기 위해, 우리가 결코
혼자일 수 없도록,
웃음, 키스 그리고 눈물로…
히메네스의 순수시는 마지막으로 가장 거룩하고 신비한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정적인(emocional) 자세에서 보다 지적인(intelectual) 자세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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