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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12/07 태평광기 太平廣記
  10. 2007/12/04 세설신어 世說新語

심약 沈約 (중국, 441~513) 
작자 심약(沈約, 441∼513)은 남조 양(梁)나라의 문학가이자 사학가로, 자(字)는 휴문(休文)이며 오흥(吳興) 무강(武康, 지금의 절강성 덕청현 무강진) 사람이다. 심약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했지만 학문에 뜻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여 군서(群書)를 널리 섭렵했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송(宋)·제(齊)·양 3조에 걸쳐서 대대로 벼슬했는데, 송나라 때는 상서탁지랑(尙書度支郞)을 지냈고, 제나라 때는 어사중승(御使中丞)·동양 태수(東陽太守)·보국장군(輔國將軍)·오병상서(五兵尙書) 등을 역임했다. 양나라 때는 무제(武帝) 소연(蕭衍)의 창업을 도와 그 공로로 상서복야(尙書僕射)가 되고 건창 현후(建昌縣侯)에 봉해졌다가 다시 상서령(尙書令) 겸 태자소부(太子少傅)로 전임되었다. 시호는 은(隱)이다. 그는 일찍이 문학으로 이름나서 제나라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의 문하에 들어가 사조(謝眺)·왕융(王融) 등과 함께 ‘경릉팔우(竟陵八友)’의 하나가 되었으며, 시가 창작에 있어서 ‘사성팔병설(四聲八病說)’을 제창하고 ‘영명체(永明體)’를 창시했다. 그의 저작으로는 ≪속설≫ 외에 ≪진서(晉書)≫·≪송서(宋書)≫·≪제기(齊記)≫·≪양무제기(梁武帝記)≫·≪이언(邇言)≫·≪송문장지(宋文章志)≫·≪사성보(四聲譜)≫ 등이 있으나, ≪송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망실되었다. 그리고 후대에 명(明)나라 사람이 모아 엮은 ≪심은후집(沈隱侯集)≫이 있다.

 

해설         
국내 최초 번역입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속설(俗說)≫을 사용했습니다.

≪속설≫에 대한 저록(著錄)은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자부(子部) 잡가류(雜家類)에 ‘≪속설≫ 3권은 심약이 지었다. 양나라 때는 5권이었다(≪俗說≫三卷, 沈約撰. 梁五卷)’라는 기록에서 처음 보이며, 그 이후의 사지(史志)와 서지(書志)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唐)나라 때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추정된다.≪속설≫의 유문(遺文)은 ≪예문유취(藝文類聚)≫·≪북당서초(北堂書鈔)≫·≪태평어람(太平御覽)≫·≪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남아 있다. 집본(輯本)으로는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본과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두 종류가 있다. 이 두 집본은 각각 52조씩 집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4조만 서로 다르다.

≪속설≫은 주로 동진(東晉)과 유송(劉宋) 시대 상류층 문인 명사들의 언행과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문을 통하여 살펴보면 내용이 상당히 광범위하며 당시에 유행하던 청담(淸談)과 인물 품평의 풍기를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다. 전체 52조 가운데서 몇 조의 고사를 살펴봄으로써 ≪속설≫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한다.

고호두[顧虎頭: 고개지(顧愷之)]가 남을 위해 부채에 인물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을 그릴 때는 모두 눈동자를 찍지 않은 채로 곧장 부채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눈동자를 찍으면 곧바로 살아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오!”

고개지(顧愷之)는 동진의 저명한 화가로 시부(詩賦)와 서예에도 뛰어나 재절(才絶)·화절(畫絶)·치절(痴絶)의 삼절대사(三絶大師)로 불린다. 고개지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의 초상을 그리면서 눈동자를 찍지 않은 것에는 매우 심오한 이치가 함축되어 있다. 그는 인물화를 그릴 때 특히 점정(點睛)을 중시했다. ≪세설신어≫ <교예(巧藝)>편의 기록을 보면 그가 점정을 중시한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고장강[顧長康: 고개지(顧愷之)]은 인물화를 그릴 때 간혹 몇 년 동안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곤 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고개지가 대답했다.

“형체의 미추는 본래 그림의 진수와는 무관하지요. 정신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듯이 그려내는 비법이 바로 이[點睛]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즉 인물화에 있어서 ‘정신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듯이 그려내는[傳神寫照]’ 관건이 바로 점정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 점정은 단순히 인물화에 있어서 운필(運筆)의 정교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회화 예술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관건인 것이다. ≪속설≫의 본 고사는 바로 그러한 고개지의 회화론을 ‘점정변어(點睛便語, 눈동자를 찍으면 곧 살아서 말을 한다)’라는 넉 자로 다 표현하고 있다. 이는 지인소설이 지향하는 언어 묘사의 간결성과 함축성을 잘 구현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룡점정(畫龍點睛)’이라는 성어의 출전은 당나라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이지만, 그 근원을 찾아보면 이러한 고개지의 점정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순개자[荀介子: 순백자(荀伯子)]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순개자의 부인은 투기가 대단하여 항상 순개자의 서재 안에 있다가 손님이 오면 곧장 병풍을 가리고 그 뒤에 숨었다. 당시 중병참군(中兵參軍)으로 있던 환씨(桓氏)라는 어떤 손님이 순개자를 찾아와 일을 논의했는데, 일에 대한 논의를 이미 끝내고도 계속 남아서 여담을 나누었다. 환씨는 당시 젊었으며 자태와 용모가 매우 훌륭했다. 순개자의 부인이 병풍 안에 있다가 곧장 환씨에게 말했다.

“환참군, 당신은 사람의 도리도 모르시오? 일에 대한 논의를 이미 끝냈는데 어찌하여 떠나지 않는 것이오?”
그러자 환씨는 허둥지둥 곧바로 달려 나갔다.

이 고사는 남편을 항상 감시하고 남편을 찾아온 손님까지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도록 쫓아버린 순개자 부인의 극단적인 투기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작자는 마지막 순개자의 부인이 환참군에게 한 말을 통하여 그녀의 비뚤어진 투기 심리를 다분히 해학적으로 잘 나타내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속설≫은 취재고사의 일부분이 전대 작품의 고사와 직간접적으로 중복이 되긴 하지만, 등장인물의 언행과 풍모를 간결한 필치로 그려내 문학성과 예술성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루었다.

이 책은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속설(俗說)≫을 저본으로 했다. 저본에 집록된 52조의 고사 전체를 우리말로 옮기고 간략한 주를 달았다. 고사의 제목은 저본에는 없지만 옮긴이가 임의로 달았다. 아울러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실려 있는 마국한(馬國翰)의 <속설서(俗說序)>를 첨부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주백인의 배를 가리키며 말하다 有人指周伯仁腹曰
완광록의 큰아들이 죽다 阮光祿大兒喪
사안이 어렸을 때 명성을 얻다 謝安小兒時便有名譽
만이 잠자리에서 늘 늦게 일어나다 萬眠常晏起
사만이 사태부와 함께 간문제를 찾아뵙다 謝萬與太傅共詣簡
유진장이 짚신을 짜서 모친을 봉양하다 劉眞長織芒履以養母
진나라 애제의 왕황후가 자마금 가락지를 끼다 晉哀帝王皇后有一紫磨金指環
진나라 간문제가 여러 담객들을 모으다 晉簡文集諸談士
석도안의 왼팔 위로 살점 하나가 돋아나다 釋道安生左臂上一肉
사인조가 스스로 잘못을 고쳐서 명사가 되다 謝仁祖自改遂爲名流
사인조의 첩 아비 謝仁祖妾阿妃
왕자경이 왕이보를 흉내 내다 王子敬學王夷甫
은중감이 원강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 殷仲堪看袁羌圍棋
고호두가 남을 위해 부채에 그림을 그리다 顧虎頭爲人畫扇
환대사마가 환함에게 성을 내다 桓大司馬瞋桓瑊
환온의 처 남군공주가 투기가 심하다 桓溫妻南郡主甚妬
환령보가 ≪장자≫를 직접 강론하다 桓靈寶自講≪莊子≫
환현이 시를 지으면서 피리를 불다 桓玄作詩鼓吹
환현의 첩이 해산할 때 바람을 두려워하다 桓玄妾當産畏風
환선성이 동생 환매득을 볼모로 잡히고 양을 얻으려 하다 桓宣城以弟買得質羊
환석호가 호랑이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다 桓石虎拔虎箭
환표노가 제갈랑과 경주하다 桓豹奴與諸葛郞競走
환표노가 피로하여 병들다 桓豹奴病勞
왕승경이 한 시대의 표상이 되다 王僧敬爲一時之標
왕승경 형제가 신상과 같다 王僧敬兄弟若神
환현이 서예를 좋아하다 桓玄愛書
사인조가 쟁을 타며 <추풍사>를 부르다 謝仁祖彈箏歌<秋風>
환현이 정기를 총애하다 桓玄寵丁期
진나라 명제가 송위를 완요집에게 내려주다 晉明帝以宋褘賜阮遙集
원산송이 송위의 무덤에 올라 <행로난> 노래를 짓다 袁山松上宋褘冢作<行路難>歌
왕동정이 태공을 찾아가 하룻밤 묵으면서 작별하다 王東亭就汰公宿別
왕효백이 거사하자 왕동정이 근심 걱정하다 王孝伯起事王東亭憂懼
도기가 왕효백의 참군으로 있을 때 시를 짓다 陶夔爲王孝伯參軍嘗作詩
왕경손이 만족의 시종이 되다 王慶孫爲蠻人行者
사첨의 털이 남다르다 謝瞻殊毛
치승이 청계를 유람하면서 시를 짓다 郗僧遊靑谿中作詩
사혼이 왕고려의 손을 잡고 말하다 謝混執王高麗手曰
은백이 하무기와 함께 저포 노름을 하다 殷伯與何無忌共樗蒲
양원보가 황제의 부름을 받다 羊元保被召見
사마낭군이 기녀 놀이를 좋아하다 司馬郎君好作妓
서간목이 젊었을 때 까마귀 꿈을 꾸다 徐干木年少時嘗夢烏
모태가 옥와 하나를 사다 毛泰買一玉窪
순개자의 부인이 투기가 대단하다 荀介子婦大妬
차무자의 부인이 투기가 대단하다 車武子婦大妬
부량이 장부와 작별하다 傅亮與張敷別
부량이 북정에 나섰을 때 멀리 숭고산을 바라보다 傅亮北征遙見嵩高山
하승천이 안연년에게 콩꼬투리를 묻다 何承天問藿囊於安延年
주상이 강이를 기용하여 첨사를 겸임시키려 하다 主上欲用江夷領詹事
사복야와 도태상이 오령군을 찾아가다 謝僕射·陶太常詣吳領軍
유류와 부적의 독서 劉柳與傅迪之讀書
유광록이 멋진 거위를 기르다 劉光祿養好鵝
심승조가 사람의 길흉을 기록하다 沈僧照記人吉凶
속설서 俗說序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顧虎頭爲人晝扇, 作嵇·阮, 都不點眼睛,
便送還扇主, 曰: “點眼睛便欲能語!”

고호두가 남을 위해 부채에 인물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혜강과 완적을 그릴 때는 모두 눈동자를 찍지 않은 채로 곧장 부채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눈동자를 찍으면 곧바로 살아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오!”



옮긴이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 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입문≫,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봉신연의(封神演義)≫(전5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설신어(世說新語)≫(전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8권),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소림(笑林)≫, ≪어림(語林)≫, ≪곽자(郭子)≫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 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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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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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징지 郭澄之 (중국, ? ~ 420?) 
곽징지(郭澄之, ?∼?)는 동진의 문학가로 자(字)가 중정(仲靜)이며 태원(太原) 양곡(陽曲,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 북쪽)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재기(才氣)가 있었으며 영민함이 뛰어났다. 처음에 상서랑(尙書郞)에 임명되었다가 조정을 나와서 남강왕(南康王)의 상국(相國)이 되었다. 때마침 노순(盧循)의 반란을 만나 유랑 생활을 하다가 겨우 도성으로 돌아오자 유유(劉裕)가 그를 상국참군(相國參軍)으로 삼았다. 유유를 따라 북벌에 참여했으며, 유유의 상국종사중랑(相國從事中郞)에까지 이르렀다. 남풍후(南豊侯)에 봉해졌다가 죽었다.

 

해설         
국내 최초 번역입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곽자(郭子)≫를 사용했습니다.

≪곽자(郭子)≫는 배계(裴啓)의 ≪어림(語林)≫에 이어 동진(東晉) 말에 지어진 지인류(志人類) 필기문헌이다.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 자부(子部) 소설가류(小說家類)에 “≪곽자≫ 3권은 동진의 중랑 곽징지가 지었다(郭子三卷, 東晉中郞郭澄之撰)”고 저록되어 있으며, ≪구당서(舊唐書)≫<경적지>와 ≪신당서(新唐書)≫<예문지(藝文志)>의 자부 소설가류에는 곽징지가 지은 ≪곽자≫ 3권에 가천(賈泉)이 주를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의 사지(史志)와 서목류(書目類)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곽자≫는 당(唐)나라 때까지는 남아 있었으나 송(宋)나라 이후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보이며, 다만 그 유문(遺文)이 ≪예문유취(藝文類聚)≫·≪초학기(初學記)≫·≪태평어람(太平御覽)≫·≪태평광기(太平廣記)≫ 등의 유서(類書)에 실려 전하고 있다.

≪곽자≫의 집본(輯本)으로는 현재 ≪무일시재총초(無一是齋叢鈔)≫본,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본,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이 있다. 이 중에서 노신(魯迅)의 ≪고소설구침≫본이 가장 뛰어나며, 총 84조가 집록되어 있다.

≪곽자≫는 배계의 ≪어림≫과 마찬가지로 위진(魏晉) 시대 명사들의 청담(淸談)의 산물로, 주로 문인 명사들의 언어 응대·일화·인물 품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사회의 여러 측면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곽자≫의 전체 고사 중에서 몇 조를 들어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허윤(許允)의 부인(1)>(17쪽 참조)과 <허윤의 부인(2)>(19쪽 참조) 두 조의 고사는 전형적인 현처상(賢妻相)을 묘사하고 있다. 전자는 얼굴은 못생겼지만 조리 있는 언변으로 여자의 미모만 탐하는 남편 허윤을 따끔하게 질책하여 마음을 돌리게 한 완(阮)부인의 당당함을 잘 묘사했으며, 후자는 앞일을 예견하는 뛰어난 사리 판단 능력으로 남편을 곤궁에서 구해낸 완부인의 지모와 신중한 행동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두 고사는 비교적 긴 편폭으로 고사의 구성과 내용의 전개에 짜임새가 있으며, 특히 거의 대화를 통하여 인물의 형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고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담론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 통속적인 감염력 또한 자못 크다 하겠다.

 <한수(韓壽)가 향을 훔치다>(23쪽 참조) 조는 예교를 무시하고 밀애를 나눈 두 남녀의 연애 고사로,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고사 중의 하나이다. 부정한 남녀 관계를 일컫는 이른바 ‘투향절옥(偸香竊玉)’이라는 성어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고사는 한수, 진건(陳騫)의 딸[또는 가충(賈充)의 딸], 진건(또는 가충), 하녀의 인물 설정과 ‘흠모−비녀의 중개−밀통−향내−밀통의 발각−결혼’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전개 과정 등 소설의 구성 요소를 비교적 완정하게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 고사는 ≪세설신어(世說新語)≫를 거쳐 당나라 원진(元稹)의 전기(傳奇)소설 ≪앵앵전(鶯鶯傳)≫의 남본(藍本)이 되었으며, 이후 송나라 조령치(趙令畤)의 사(詞) ≪상조접련화(商調蝶戀花)≫, 금(金)나라 동해원(董解元)의 제궁조(諸宮調) ≪서상기제궁조(西廂記諸宮調)≫, 원(元)나라 왕실보(王實甫)의 잡극(雜劇) ≪최앵앵대월서상기(崔鶯鶯待月西廂記)≫로 면면히 개편 발전되어 그 영향력이 지대하다.

<육사형(陸士衡)과 육사룡(陸士龍)의 우열>(50쪽 참조) 조는 노지(盧志)의 불손한 언행에 대한 육기(陸機)와 육운(陸雲) 형제의 각기 다른 대응 태도를 통하여 사안(謝安)이 두 사람의 우열을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예로부터 남의 조상 이름을 직접 거명하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노지가 육씨 형제의 조부 이름을 함부로 부르자, 이에 대응하여 육기는 맞받아 노지의 조부 이름을 불렀으나, 육운은 형의 대답에 난처해하면서 노지가 잘 몰라서 그런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 다소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사안은 이 일을 가지고 육운이 육기보다 낫다고 평한 것이다.

<하충(何充)이 직언하다>(83쪽 참조) 조는 왕돈(王敦)이 자신의 권세로 비행을 저지르는 형 왕함(王含)을 비호하고자 했으나 하충의 직언으로 망신을 당한 내용이다. 당시 권문세족의 파렴치한 행각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 특히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과감히 직언을 서슴지 않은 하충의 의연한 기상을 ‘신의자약(神意自若, 느긋하게 태연자약하다)’이라는 넉 자로 잘 묘사했다. 나중에 왕돈은 그의 형과 함께 동진 원제(元帝) 영창(永昌) 원년(322)과 명제(明帝) 영흥(永興) 2년(324)에 두 차례의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주살당하고 말았다.

전체적으로 ≪곽자≫는 인물의 정신세계와 성격을 형상화하는 데 뛰어나고 언어가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문장이 청신하여, 이미 위진남북조 지인소설의 성숙한 경지에 올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곽자≫는 이후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의 창작에 직접적인 취재 고사를 제공해 주어 그 중 약 70여 조가 ≪세설신어≫에 채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일부 고사는 그대로 전재(轉載)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고사는 유의경이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적당히 윤색한 것이다.

이 책은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곽자(郭子)≫를 저본으로 했다. 저본에 집록된 84조의 고사 전체를 우리말로 옮기고 간략한 주를 달았다. 고사의 제목은 저본에는 없지만 옮긴이가 임의로 달았다. 아울러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실려 있는 마국한(馬國翰)의 <곽자서(郭子序)>를 첨부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모증과 하후태초가 자리를 함께 하다 毛曾與夏侯太初共坐
당시 사람들이 하후태초를 품평하다 時目夏侯太初
허윤의 부인(1) 許允婦
허윤의 부인(2) 許允婦
손수의 처 괴씨가 투기하다 孫秀妻蒯氏妬忌
한수가 향을 훔치다 韓壽偸香
왕여남이 스스로 혼처를 구하다 王汝南自求婚處
왕동해가 처음 강남으로 건너가다 王東海初過江
왕안기가 동해태수가 되다 王安期爲東海太守
반악과 하후담이 미려한 용모를 지니다 潘岳·夏侯湛有美容貌
양준의 두 아들의 우열 楊準二子之優劣
왕혼의 부인 종씨가 웃으며 말하다 王渾婦鍾氏笑曰
왕혼의 부인 종씨가 사윗감을 고르다 王渾妻鍾氏擇婿
위개가 구경독에 죽다 衛玠看殺
왕무자가 손자형을 품평하다 王武子目孫子荊
왕이보가 돈을 ‘이 물건’이라 하다 王夷甫謂錢‘阿堵物’
왕이보의 부인이 재물을 긁어모으다 王夷甫婦聚斂
두예가 연탑에 손님을 앉히다 杜預以連榻坐客
육사형이 처음 낙양에 들어가다 陸士衡初入洛
육사형이 왕무자를 찾아가다 陸士衡詣王武子
육사형과 육사룡의 우열 陸士衡·陸士龍之優劣
만분이 바람을 싫어하다 滿奮畏風
유도진이 노파에게 보답하다 劉道眞報老嫗
부풍왕 사마준이 유도진을 대속시켜주다 扶風王駿贖劉道眞
주후가 동생 주숙치를 전송하다 周侯送周叔治
주백인이 환무륜을 평하다 周伯仁道桓茂倫
왕돈이 모반하자 왕도가 죄를 청하다 王敦起事王導請罪
치태위가 담론을 몹시 좋아하다 郗太尉絶好談論
왕승상이 인색하다 王丞相性儉節
왕승상이 스스로 세 현사를 존중하다 王丞相自推三賢
왕승상이 양주의 관청을 수리하다 王丞相治揚州廨舍
왕승상이 세 현사를 평하다 王丞相評三賢
환정위가 왕승상을 훔쳐보며 감탄하다 桓廷尉窺王丞相歎
왕공이 애첩 뇌씨를 두다 王公有幸妾雷氏
유공의 명성과 지위가 점점 높아지다 庾公名位漸重
왕승상은 영이 있기 전에는 일을 보지 않다 王丞相未令不看事
사공이 동산에서 기녀들과 지내다 謝公在東山畜妓
사태부가 왕자경을 평하다 謝太傅評王子敬
치가빈과 유도계의 비교 嘉賓何如道季
사안석과 왕문도의 비교 安石何如文度
하차도가 왕승상을 찾아가다 何次道詣王丞相
하충이 직언하다 何充直言
하유도가 술을 마시다 何幼道飮酒
유윤이 환온을 평하다 劉尹道桓溫
제갈망명의 얼굴에 서창이 생기다 諸葛亡名面病鼠瘻
왕우군이 유진장을 평하다 王右軍道劉眞長
허시랑과 고사공이 밤에 왕승상의 집에 가서 놀다 許侍郎·顧司空夜在丞相許戱
왕준이 주부에게 말하다 王遵語主簿
회계왕은 아침노을이 떠오르는 것처럼 훤하다 會稽王軒軒如朝霞之擧
간문제가 유중초의 시를 암송하다 簡文誦庾仲初詩
간문제가 사안남을 평하다 簡文評謝安南
무군장군이 하평숙과 혜숙야를 평하다 撫軍評何平叔·嵇叔夜
간문제가 불경에 대해 말하다 簡文云佛經
사람들이 회계왕을 멍청하다고 하다 人言會稽王癡
사인조가 색다른 춤을 잘 추다 謝仁祖能作異舞
왕중조가 술기운이 오르자 일어나 춤을 추다 王仲祖酒酣起舞
유진장은 내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안다 眞長知我勝我自知
왕장사가 강씨 일족을 평하다 王長史評諸江
사진서가 상중에 주연을 즐기다 謝鎭西喪中酣宴
왕장사가 주미를 돌리다가 탄식하다 王長史轉麈尾歎
범현평이 담론하다 지려고 하다 范玄平談欲屈
장빙은 말이 간결하면서도 뜻이 심원하다 張憑言約旨遠
허현도가 서주에서 강론하다 許玄度在西州講
양국 양씨의 아들이 매우 총명하다 梁國楊氏子甚聰慧
손안국과 은중군이 함께 담론하다 孫安國與殷中軍共語
은호가 양주자사가 되었을 때 殷浩作揚州
은중군이 폐출당한 뒤에 간문제를 원망하다 殷中軍廢後恨簡文
유공이 도공을 찾아가다 庾公詣陶公
환정위가 서녕을 칭찬하다 桓廷尉稱徐寧
세간에서 유문강과 유치공을 칭찬하다 世稱庾文康·庾穉恭
유도계가 세 사람을 평하다 庾道季評三人
필무세가 품은 생각을 말하다 畢茂世述懷
환공이 저포 노름을 하다가 원언도에게 도움을 청하다 桓公樗蒲請救於袁彦道
환대사마가 사공을 바라보며 감탄하다 桓大司馬矚謝公歎
온공이 위신을 매우 중시하다 溫公甚重衛晨
손흥공이 조보좌를 평하다 孫興公道曹輔佐
조사소가 왕우군을 평하다 祖士少道王右軍
왕승상이 왕람전을 평하다 王丞相評王藍田
왕온이 일찍이 남은 쟁반의 식은 구운 고기를 먹다 王蘊嘗得殘盤冷炙
은중감이 ≪도덕경≫ 읽기를 좋아하다 殷仲堪好讀≪道德經≫
왕불대가 술에 감탄하다 王佛大歎酒
사만이 왕념을 찾아가다 謝萬詣王恬
사철이 선비 군자들의 존중을 받다 謝哲爲士君子所重
부평초가 물에 의지하다 萍之依水

곽자서 郭子序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王佛大曰: “三日不飮酒, 覺形神不復相和親也. 酒自引人入勝地耳.”

왕불대(王佛大)가 말했다.
“사흘 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육체와 정신이 더 이상 서로 가까워지지 않음을 느낀다. 술은 본디 사람을 이끌어 훌륭한 경지에 이르게 할 뿐이다.”


옮긴이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입문≫,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봉신연의(封神演義)≫(전5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설신어(世說新語)≫(전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8권),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소림(笑林)≫, ≪어림(語林)≫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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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계 裴啓(중국, ?∼?)

자가 영기(榮期)이며 하동
[河東,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서쪽] 사람이다. 부친 배치(裴稚)는 풍성령(豊城令)을 지냈다. 배계는 동진(東晉)의 문학가로서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뛰어난 품격과 재기를 지녔으며 고금의 인물을 논하길 좋아하여 그러한 내용이 담긴 ≪어림≫을 지었다. 그 밖에 자세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해설           

≪어림(語林)≫은 동진(東晉)의 배계(裴啓)가 지은 지인류(志人類) 필기문헌으로, 인물 품평에 관한 고사가 그 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 자부(子部) 소설가류(小說家類)의 ‘≪연단자(燕丹子)≫ 1권’ 조의 부주(附注)에 “≪어림≫ 10권은 동진의 처사 배계가 지었으나 망실되었다(≪語林≫十卷, 東晉處士裴啓撰, 亡)”라고 저록되어 있으며, 그 이후의 사지(史志)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어림≫은 수나라 때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어림≫의 집본(輯本)으로는 ≪설부(說郛)≫본, ≪오조소설대관(五朝小說大觀)≫본, ≪고금설부총서(古今說部叢書)≫본,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본, ≪옥함산방집일서보편(玉函山房輯佚書補編)≫본,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총 180조 집록)이 있는데, 이 중에서 ≪고소설구침≫본이 비교적 참고 가치가 높다. 근래에 나온 주능가(周楞伽) 집주(輯注) ≪배계어림≫(北京: 文化藝術出版社, 1988)은 등장인물을 전한인(前漢人)·후한인(後漢人)·삼국인(三國人)·서진인(西晉人)·동진인(東晉人)으로 분류하여 총 185조를 집록해 놓았는데, ≪고소설구침≫본을 보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자 배계(裴啓, ?∼?)는 ≪진서(晉書)≫에도 그의 전(傳)이 실려 있지 않고 기타 자료도 거의 없어서 자세한 생애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세설신어≫<문학(文學)> 제90조의 유효표(劉孝標) 주에 인용되어 있는 ≪배씨가전(裴氏家傳)≫의 다음 기록이 전부다.

배영(裴榮)은 자가 영기(榮期)이며 하동(河東, 지금의 산서성 영제현 서쪽) 사람이다. 부친 배치(裴稚)는 풍성령(豊城令)이었다. 영기는 젊어서부터 뛰어난 품격과 재기가 있었으며 고금의 인물을 논하길 좋아하여 ≪어림≫ 수 권을 찬하여 ≪배자(裴子)≫라고 이름 했다.

이에 대하여 유효표는 배송지(裴松之)는 배계가 ≪어림≫을 지은 것으로 여겼다고 단도란(檀道鸞)이 말했는데, 그것은 배영의 별명을 배계라고 한 것 같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세설신어≫<경저(輕詆)> 제24조 주에 인용된 단도란 ≪속진양추(續晉陽秋)≫의 기록과 ≪수서≫<경적지>의 저록에는 모두 배계가 ≪어림≫을 찬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배씨가전≫과 유효표의 안어(按語)에서 배영을 본명으로 한 것은 그의 자인 영기와 혼동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배계가 동진의 문학가로서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았으며 고금의 인물을 품평하길 좋아하여 그러한 내용이 담긴 ≪어림≫이라는 지인소설을 지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어림≫의 창작 시기와 시간 범위, 내용 특성에 대해서는 ≪세설신어≫<경저> 제24조 주에 인용된 단도란 ≪속진양추≫의 진나라 융화(隆和) 연간(362∼363)에 하동 사람 배계가 한위(漢魏) 이래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언어응대(言語應對) 중에서 뛰어난 것을 찬하여 ≪어림≫이라 이름 붙였다”는 기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문을 통하여 살펴보면, ≪어림≫은 한위에서 동진까지의 왕후장상(王后將相)·고관귀인(高官貴人)·문인명사(文人名士) 등 여러 계층 인물들의 인품과 재능을 그들의 언어응대를 통하여 묘사하고 품평한 것으로, 당시에 유행했던 청담(淸談) 기풍의 시대사상적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그 언어 묘사가 비교적 정채롭다. 또한 포괄하고 있는 내용이 조정대사·정치·문학·학술사상·인정세태 등 비교적 광범위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전체 185조의 고사 중에서 절반이 넘는 103조가 동진의 인물에 관한 것으로 작자가 처한 동시대의 인물을 과감하게 논평한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어림≫은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창작된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환영을 크게 받았는데, ≪세설신어≫의 기록을 보면 그러한 사정을 잘 알 수 있다.

배랑[裴郞: 배계(裴啓)]이 ≪어림≫을 지었는데 처음 세상에 나오자 원근의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져서, 당시 청년들 중에 이를 전사(傳寫)하여 각각 한 권씩 지니고 있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 책 중에 왕동정[王東亭: 왕순(王珣)]이 지은 <왕공의 주막 아래를 지나며 지은 부(經王公酒壚下賦)>가 실려 있는데 그 재기와 정취가 물씬 풍긴다.

위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 ≪어림≫이 얼마나 유행했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중에 사안(謝安, 320∼385)이 배계와 지도림(支道林, 314∼366)을 품평한 대목이 있었는데, 당사자인 사안이 그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바람에 ≪어림≫은 하루아침에 그 명성을 잃고 마침내 폐해지고 말았다. 이것은 배계가 정말 거짓으로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사안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자신이 한 말을 나중에 고의로 부정한 것인지 그 자세한 내막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사안은 당시의 재상이자 명사계(名士界)의 영수 지위에 있었으므로 그의 말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어림≫은 더 이상 세상에 온전하게 유전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 남조 송나라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와 양(梁)나라 유효표의 ≪세설신어주≫와 은운(殷芸)의 ≪소설(小說)≫ 등에 그 고사의 상당한 분량이 실려 있으며, 수·당의 유서(類書)에도 그 유문이 많이 남아 있어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어림≫은 특히 인물 묘사에 뛰어나 짤막한 편폭에 간결하고 정련된 필치로 수많은 인물의 각기 다른 형상을 핍진하게 그려냈으며, 지인소설의 가장 큰 내용 특성 중의 하나인 인물 품평의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래서 위진남북조의 가장 완벽한 지인소설이자 중국 지인소설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세설신어≫에 ≪어림≫의 고사 82조가 채록되어 있다.

이 책은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배자어림(裴子語林)≫을 저본으로 하고, 주능가(周楞伽) 집주(輯注) ≪배계어림(裴啓語林)≫(北京: 文化藝術出版社, 1988)을 참고했다. 저본에는 총 180조의 고사가 집록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몇 글자로 이루어진 단편적인 기록은 제외하고 총 171조를 옮겼다. 고사의 제목은 저본에는 없지만 옮긴이가 임의로 달았으며, 고사의 순서도 시대순으로 재배치했다.



본문 중에서    


육사형[陸士衡: 육기(陸機)]이 여러 사람이 모여 담론하는 자리에 있을 때, 반안인[潘安仁: 반악(潘岳)]이 오자 육기(陸機)가 곧장 일어나 나가 버렸다. 이를 보고 반악(潘岳)이 말했다.
“맑은 바람이 불어오니 먼지가 날려가는구먼.”
그러자 육기가 곧바로 대답했다.
“뭇 새가 모이니 봉황이 날아오르는 것이지.”


士衡在坐, 安仁來, 陸便起去. 潘曰: “淸風至, 塵飛揚.” 陸應聲答曰: “衆鳥集, 鳳皇翔.”




역자 소개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 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 지인소설 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입문≫,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봉신연의(封神演義)≫(전5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설신어(世說新語)≫(전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절(太平廣記詳節)≫(전8권),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소림(笑林)≫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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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순 邯鄲淳(중국, ?~?)


생애가 확실치 않으나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문학가로 일명 축(竺)이라고도 하며, 자는 자숙(子叔) 또는 자례(子禮)이고, 영천[潁川,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우현(禹縣)]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 한(漢)나라 환제(桓帝) 원가(元嘉) 원년(151)에 상우 현령(上虞縣令) 도상(度尙)이 효녀 조아(曹娥)의 비(碑)를 세우려 했는데 당시 한단순은 도상의 제자였다. 연회석상에서 도상이 한단순에게 비문을 지으라고 하자 곧장 붓을 들어 내리썼는데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래서 마침내 그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헌제(獻帝) 초평(初平) 연간(190∼193)에 한단순이 형주(荊州)에서 기거할 때 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조조(曹操)가 그를 불러 잘 대우해 주었다. 후에 문제(文帝) 조비(曹丕)가 즉위한 뒤 황초(黃初) 연간(220∼226) 초에 박사급사중(博士給事中)에 임명되었다. 한단순이 <투호부(投壺賦)> 천여 언을 지어 봉헌하자 문제가 훌륭하다 칭찬하고 비단 천 필을 하사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90여 세였다. 그의 저작으로는 ≪소림≫ 3권 외에 문집(文集) 2권과 ≪예경(藝經)≫ 1권이 있으며, <투호부>·<효녀조아비(孝女曹娥碑)> 등의 문장이 있다.



해설           

국내 최초 소개
∙이 작품은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발췌하지 않고 모두 번역했습니다. 저본에는 총 29조의 고사가 집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조를 둘로 나누고(제12, 13조) 맨 마지막에 새로 한 조를 추가하여 총 31조로 정했습니다. 아울러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단순전(邯鄲淳傳)>과 <역대저록(歷代著錄)>을 부록으로 실었습니다.

 

소화(笑話)는 문학 양식의 일종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해학이 넘치는 고사를 간결한 문장 형식과 소박한 언어로 묘사하여 현실 사회의 각종 모순을 신랄하게 풍자함으로써,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깊은 생각에 젖게 한다. 그래서 소화에는 오락성과 교훈성이 병존한다. 특히 비루하고 천박하고 탐욕스럽고 우매하고 인색한 부정적인 인간 군상의 언행을 제재로 하여 현실성이 강하고 애증의 태도가 분명하다. 소화는 이른바 생활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소림(笑林)≫은 바로 이러한 소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소화서(笑話書)의 전형으로서, 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최초의 지인소설집(志人小說集)이자 중국 최초의 소화전집(笑話專集)이다.

≪소림≫의 문학예술성은 크게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