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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5 루제비치 시선 Wiersze wybrane : Tadeusza Różewicza

타데우시 루제비치 Tadeusza Różewicza(폴란드, 1921~)

1921년 라돔스크(Radomsk)에서 태어난 루제비치는 1929년 폴란드를 강타했던 경제 공황으로 인해 중등학교 수업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서에 몰두하고, 학생신문에 부지런히 시를 투고하는 전형적인 문학 소년이기도 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고 폴란드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루제비치는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비밀리에 진행된 야간 수업을 들으며 1942년에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이후 루제비치는 1943년부터 1944년까지 2년 동안 형인 야누시 루제비치(Janusz Różewicz)의 영향을 받아 폴란드의 지하 독립운동 단체인 ‘국내군(Armia Krajowa, AK)’에 가담하여 적극적인 반나치 레지스탕스 활동을 펼쳤다. 1944년에는 사티르(Satyr)라는 필명으로 전장에서의 생생한 체험을 노래한 처녀 시집 ≪숲 속의 메아리(Echa leśne)≫를 비공식적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 발발한 바르샤바 봉기에서 루제비치는 평생 동안 자신을 옭아매며 고통을 안겨주게 될 처참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형 야누시의 죽음이었다. 국내군에서 저항운동을 하며 몸소 겪었던 악몽 같은 전쟁의 기억, 그리고 바르샤바 봉기에서의 형의 전사(戰死)는 이후 루제비치가 필사적으로 시작(詩作)에 매달리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바르샤바 봉기의 무참한 실패 이후 국내군은 와해되고, 루제비치는 폴란드의 명문 야기엘론스키 대학(Uniwersytet Jagielloński) 미술사학과에 진학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폴란드에는 좌파와 우파가 연합한 일시적인 통일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나치의 폴란드 점령은 폴란드 민족에게서 기존의 도덕적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전후 폴란드의 대표적 문학평론가인 카지미에시 비카(Kazimierz Wyka, 1910∼1975)는 2차 대전 동안 폴란드 국민들이 겪어야만 했던 나치 식민지 경험은 너무 끔찍한 것이어서 전통적인 창작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아도르노나 비카의 주장처럼 작가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허구보다 더 잔혹한 현실 앞에서 문학은 존재 자체를 놓고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또한 아우슈비츠와 같은 야만적인 학살 행위를 예술의 영역에서 재현하는 작업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그렇다면 문학이 역사와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독립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논란이 제기되었다. 이 시기에 루제비치는 1947년 사실상의 데뷔 시집인 ≪불안(Niepokój)≫을 출판했고 이듬해인 1948년에는 두 번째 시집 ≪붉은 장갑(Czerwona rękawiczka)≫을 내놓았다. 이 시집들은 발표되기가 무섭게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49년 폴란드 통일노동자당(PZPR)이 공식적으로 집권하기 시작하면서 폴란드에서는 스탈린식 철권통치가 시작되었다. 문학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을 주장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Realizm Socjalistyczny)은 사회주의 체제하의 폴란드에서 유일한 공식적 방법론이 되었다. 이로 인해 폴란드 문학은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좁은 틀 안에서 질식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거부하는 작가들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절필을 선언해야만 했고,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국내에 남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당의 이념과 요구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루제비치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많은 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혹은 이데올로기적 선택으로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기간 동안 루제비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이념에 충실한 네 권의 시집을 출판했다. 1950년 ≪다섯 편의 서사시(Pięć poematów)≫, 1951년 ≪흐르는 시간(Czas, który idzie)≫, 1952년 ≪시와 단상들(Wiersze i obrazy)≫, 1954년 ≪평야(Równina)≫가 그것이다. 시인으로 막 인정받기 시작했던 30대 초반의 루제비치로서는 의욕적으로 타오르는 창작에의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루제비치를 비롯한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마르크시즘에 대한 동경으로 사상적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후 폴란드를 지배했던 사회주의 정부의 유화정책에도 기인하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나버린 ‘바르샤바 봉기’를 주도했던 무능력한 우파 정권에 대한 짙은 반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1956년에 개최된 소련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 금지가 결의되었다. 이와 같은 국제 정세와 맞물려 폴란드에서는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의 당수 겸 수상이었던 비에루트(B. Bierut)가 사망하고 고무우카(W. Gomułka)가 집권하게 되었다. 고무우카 정부는 집권 초기 여론을 대폭적으로 수용하는 유화정책을 시행하였고, 폴란드에는 일시적인 자유 시대가 도래했다. 정치적 이완과 함께 사회 전반에 파급된 자유화의 분위기는 예술 분야로까지 확산되어 폴란드 문화·예술계는 바야흐로 ‘해빙기(解氷期)’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에 이르러 지금까지 검열 대상에 올라 출판되지 못했던 서구의 많은 책들이 한꺼번에 번역·출판되었고, 침체되었던 문단은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급격하게 퇴조하기 시작했으며, 어느 때보다 순수문학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논란도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바르샤바의 청년 문예지 <간단히(Poprostu)>를 비롯해 <변화(Przemiany)>, <우치 문학(Łódź Literacka)>과 같은 잡지들이 민주화 운동을 선도하고, 자유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대변하며 ‘10월의 봄’을 통해 해빙기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로써 문학은 전쟁으로 상실했던 사명감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 이후 위축됐던 폴란드 문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저항하려는 문인들의 의지가 결집되면서 다시금 사명감을 회복하고,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작가들 중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옹호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루제비치, 심보르스카, 콘비츠키 등 상당수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스탈린 체제를 지지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을 청산한다는 의미로 ‘청산문학(Literatura rozrachunkowa)’이라는 새로운 장르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1955년에 이미 ≪은빛 이삭(Śrebrny kłos)≫과 ≪미소(Uśmiechy)≫ 등의 시집과 단편집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Opadły liście z drzew)≫으로 선동적인 경향문학으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한 루제비치는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놓여나 고유의 시 세계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1956년에 출간한 시집 ≪자유로운 시(Poemat otwarty)≫와 1958년의 ≪형상(Formy)≫에서 루제비치는 데뷔 당시부터 끈질기게 추구해 왔던 전쟁의 상흔에 대한 치유와 회복의 문제,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 다시금 주력하게 되었다.

폴란드 문단에서 해빙기의 달콤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외적으로는 자유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수용하면서, 내적으로는 소련에 점차 밀착해 갔던 고무우카 체제는 결국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근본적인 개혁을 배제한 채 실시했던 일시적인 유화정책은 경기 침체의 장기화를 초래했고, 이는 또다시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해빙기를 선포한 지 불과 3년 만에 사회적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이전의 민주화 내지 자유화 조치들은 하나씩 무효화되기 시작했다. 60년대 폴란드 사회에는 다시금 억압과 침체의 분위기가 완연해졌다. 고무우카 정권의 갑작스런 경직은 문학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잠시나마 허용되었던 표현과 비판의 자유는 사라지고 해외 문학, 혹은 망명 작가들과의 교류도 철저히 제한되기에 이르렀다. 전과 같은 대학살이나 강제 추방 등의 강경 조치는 없었지만 사회 전반에 불신과 감시가 만연했던 시대, 표면적으로는 안정을 되찾은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해빙기의 자유와 활기가 서서히 얼어붙었던 시대, 개혁파와 온건파, 어느 쪽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던 초라한 시대, 모두가 숨을 죽이며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던 시대, 루제비치는 자신의 희곡에서 바로 이 시기를 가리켜 ‘우리들의 작은 안정(Nasza mała stabilizacja)’이라고 표현했고, 이 용어는 60년대 고무우카 정권 시대를 지칭하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바로 이 ‘작은 안정’의 시기에 이르러 그동안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했던 많은 작가들이 반체제 저항의 길로 그 행보를 굳히게 되었다. 이 시기 문단의 주된 관심사는 문학이 시대적 흐름에 동화되지 않는 독자성과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고, 이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작가의 권리를 수호하는 데 있었다. 폴란드 문학은 당국의 강화되어 가는 검열의 눈을 피하기 위해 소설, 시, 드라마에 교훈적이고 풍자적인 우화들을 풍부하게 인용함으로써 철학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정치적인 비판이나 사회·역사적으로 민감한 소재 등을 교묘하게 감추면서 세련된 상징 혹은 알레고리를 통한 내연적인 풍자와 간접적인 비판이 등장했다. 작가로서 원숙기에 접어든 루제비치는 이 시기에 자신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주옥같은 시집들을 발표했다. 1960년 ≪달빛과의 대화(Rozmowa z księciem)≫를, 1961년에는 ≪초록색 장미(Zielona róża)≫와 ≪익명의 목소리(Głos Anonima)≫를 출판했고, 1962년 ≪프로스퍼의 외투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Nic w płaszczu Prospera)≫, 1964년 ≪얼굴(Twarz)≫, 1968년 ≪제3의 얼굴(Twarz trzecia)≫, 1969년 ≪레기오(Regio)≫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전후 폴란드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폴란드 특유의 독특하고 실험적인 부조리극이 발전하게 된 것은 ‘작은 안정’의 시기에 폴란드 문단이 거두어낸 가장 큰 수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루제비치는 타고난 문학성에 실험적인 시도와 풍부한 아이디어를 가미해 폴란드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내놓으며, 스와보미르 므로제크(Sławomir Mrożek)와 더불어 폴란드 부조리극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1961년에 상연되어 지금까지도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매년 공연되고 있는 루제비치의 <서류 파일(Kartoteka)>은 20세기 폴란드 연극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매우 독특하고 파격적인 작품이다. 시에서 장르적 특성을 부정했던 루제비치는 연극에서도 장르 간의 벽을 허무는 실험적인 시도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연극이 가진 시․공간의 한계성을 극복하려 애썼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드라마로는 <라오쿤의 무리들(Grupa Laokoona)>(1962), <우스꽝스런 늙은이(Śmieszny Strauszek)>(1965), <그는 집에서 나왔다(Wyszedł z domu)>(1965) 등을 꼽을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우슈비츠와 전쟁의 문제는 이제 ‘증언의 시기’를 지나 ‘기억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루제비치를 비롯한 일부 작가들을 중심으로 삶에 대한 비관적 수용과 낙관적 기대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내려는 초인적이고 끈질긴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루제비치는 1960년에 발표한 단편집 ≪중단된 시험(Przerwany egzamin)≫과 1966년에 내놓은 산문집 ≪박물관 견학(Wycieczka do muzeum)≫으로 일상에 잠재해 있는 악몽 같은 전쟁의 기억을 끊임없이 일깨우면서, 개인과 사회에 팽배한 분노와 절망감을 휴머니즘적 사실주의를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경제 파탄과 계엄령 선포로 국내 정치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노동자와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반체제 저항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70년대와 80년대에 루제비치는 단 두 권의 시집만을 내놓았다. 1977년에 발표한 ≪작은 영혼(Duszyczka)≫과 1983년의 ≪시의 외면과 내면에서(Na powierzchni poematu i w środku)≫가 그것이다. 1971년에는 에세이와 단상들을 모아 ≪작가의 밤 준비하기(Przygotowanie do wieczoru autorskiego)≫라는 표제로 산문집을 출간했다. ≪백색 부부(Białe małżeństwo)≫(1975)와 ≪함정(Pułapka)≫(1982) 등 희곡도 꾸준히 발표했다.

1990년 레흐 바웬사(Lech Wałęsa)가 이끄는 민주우파 정당인 ‘독립자유노조(Niezależny Samorządny Związek Zawodowy)’가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에 대대적인 압승을 거둠으로써 폴란드에서는 전후 45년간 지속되었던 사회주의 체제가 종결되었다. 자유화·민주화의 물결이 새롭게 밀려오기 시작한 1990년대에 루제비치는 두 권의 시집, ≪부조(浮躁, Płaskorzeźba)≫(1991)와 ≪언제나 짧은 구절(Zawsze fragment)≫(1996)을 발표했다. 시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짧고 간략한 루제비치의 후기 시(後期詩)에서는 단순함 혹은 간결함에 대한 시인의 강한 집착을 엿볼 수 있다.

2000년, 루제비치는 80세의 고령(高齡)에도 불구하고 회고록 형식의 시선집(詩選集) ≪어머니는 떠난다(Matka odchodzi)≫를 발표했다. 이 책은 루제비치 문학의 정수(精髓)라는 평단의 극찬과 함께 폴란드의 가장 권위 있는 출판문학상인 ‘니케(NIKE)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작가에게 안겨주었다.

루제비치는 자신의 온 생애를 다 바쳐 폐허의 잿더미 위에서 문학의 부활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했던 작가였다. 시인이 겪어내야만 했던 전쟁의 고통스런 체험은 시와 드라마, 그리고 체험 수기나 에세이, 회고록 등 다양한 문학 장르를 빌려 끈질기게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었다. 루제비치와 같은 작가들이 폴란드에 있었기에 전쟁과 수용소의 상처는 생존자들 개인의 현재화된 기억 속에서 불완전하게나마 꾸준히 재현되면서, 다양한 시행착오 속에서도 조금씩 미학적 형태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해설           

국내 최초 소개



∙이 책은 타데우시 루제비치의 시 가운데 60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詩)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아도르노(T. W. Adorno)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시가 그 존재가치를 상실해 버린 아우슈비츠의 본고장 폴란드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타데우시 루제비치(Tadeusz Różewicz, 1921∼)는 등단했다.

수용소 문제를 다룬 서구의 많은 작품들 속에서 폴란드인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목격자’의 모습으로, 혹은 ‘역사의 방관자’로 등장하고 있다. 명백한 희생자인 유태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폴란드는 나치 독일에게 대대적인 살육장을 제공했던 오욕의 땅임에 틀림없다. ‘왜 내버려 두었는가’라는 역사의 준엄한 질책은 오늘날까지도 폴란드인들을 괴롭히는 버거운 짐이다. 그러나 600만 명 이상의 폴란드인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고, 폴란드에서 희생당한 유태인들 대부분이 귀화하여 폴란드인으로서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폴란드인들 역시 역사의 희생자임이 분명하다.

나의 시는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어쩔 수 없이 학살에 휩쓸렸던 사람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이 사람들과 나, 우리는 벽에 손톱으로 새겨진 글씨를 보면서 언어를 배웠다.

−타데우시 루제비치

아우슈비츠를 피부로 체험한 사람들에게 언어란 ‘벽을 손톱으로 긁는’ 처절한 비명일 수밖에 없다. 생사를 넘나드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학살의 현장에서 죽음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며 삶과의 필사적인 의사소통을 시도했던 그들에게 일상적인 대화나 문장은 그 표면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루제비치의 언어는 살아남기 위한 구조요청이고, 망각을 경계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아무도 시를 쓸 수 없다고 부르짖을 때 루제비치는 일상의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악몽 같은 현실과의 화해를 조심스레 모색하며 침묵의 끝에서 한 단어, 한 단어를 끈질기게 ‘건져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심스레 천천히 단어를 건져 올려야만 한다

시상에서 탈피하여 시상을 드러내고

희미한 빛깔에서 형태를 붙잡고

막연한 느낌에서 심상을 추출해야 한다

핵심으로 바짝 다가서야 한다

거기 고통의 언어로

죽음으로

−<시의 내면과 외면에서>(1968)

루제비치는 시를 쓰는 작업을 ‘죽음으로 다가서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체험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작가는 시작(詩作)을 통해 망각 저편의 고통스런 상처를 곱씹으며 그때마다 죽음을 상기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글쓰기는 죽음을 확인하는 처절한 작업이면서 동시에 숨쉬기처럼 필수적이고 절실한 행위이기도 했다.

시를 쓰는 일이 부도덕한 행위로 인식되었던 전후(戰後) 폴란드 문단에서 루제비치는 역설적으로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 또한 전시(戰時)에는 대학살의 현장으로, 전후에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소련의 위성국가로 대변혁을 거듭했던 조국 땅을 지금껏 한번도 떠나지 않고 역사의 증인으로서 묵묵히 글쓰기를 고집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폴란드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루제비치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극작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폴란드 문단에서 그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루제비치의 시는 무엇보다 단순, 명료하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의도적인 생략이나 간결성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우슈비츠의 광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힘겨운 여과의 과정을 거친 뒤에 비로소 한 단어에 또 다른 단어를 고통스럽게 쌓아 올린 산물이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개개인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선택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현재화된 기억으로 재현된 내용은 이미 진실과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루제비치는 결코 목소리를 높여 확언하는 법이 없다. 그의 단어들은 고통스런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가까스로 숨죽이며 한두 마디씩 분출된다. 그리고 그 언어들은 시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자 삶을 지탱하는 의미가 되고 있다.

루제비치의 시는 대부분 1인칭인 ‘나’의 입으로 고백하는 모놀로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상적인 자기연민을 배제한 건조하고 단조로운 어조는 때로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표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혼란스럽고 성급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내레이터인 ‘나’는 ‘유리창’이라는 보호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과거의 해묵은 상처를 끈질기게 헤집고 반추하는 역사의 증인을 자처하기도 한다. 또한 이율배반적인 현대사회에서 시와 시인은 무엇인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문한다.

루제비치는 ‘기억’의 시인이다. 그의 기억은 시간에 대한 물리적인 반란이다. 역사의 이중성과 현대문명에 대한 환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현대인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정체성을 회복하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과거를 지워버린 사람들, 혹은 너무 쉽게 과거의 잔재를 떨쳐버린 현대인들에게 루제비치의 시는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을 집요하게 일깨운다.

이 책에는 타데우시 루제비치의 대표작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인의 삶의 궤적과 더불어 수록되어 있다. 대학살과 전쟁의 기억이 시인의 작품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으며,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그 기억이 어떻게 굴절되고 작품 속에 또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그리고 시인이 일생 동안 일관되게 추구했던 주제는 무엇인지 한눈에 살펴보기 위함이다. 또한 아우슈비츠 이후 폴란드에서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 왔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시선에 수록된 60편의 시는 아래의 원전에 수록된 텍스트를 옮긴이가 직접 선별하여 한국어로 옮긴 뒤, 시대별로 묶은 것이다.

Różewicz, Tadeusz. ≪시선집(Poezje)(Wrocław, 1987)
≪부조(Płaskorzeźba)(Wrocław, 1991)
≪말 너머의 말(Słowo po słowie)(Wrocław, 1994)
≪타데우시 루제비치 시선집(Tadeusz Różewicz. Selected Poems)(영문판, Kraków, 1997)
≪미소(Uśmiechy)(Wrocław, 2000)
≪어머니는 떠난다(Matka odchodzi)(Wrocław, 2000)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전쟁의 상흔과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 전쟁 직후(1945∼1948) 27

생존자(Ocalony) 32

장미(Róża) 35

한밤중에 비명을 질렀다(Krzyczałem w nocy) 36

얼마나 좋은지(Jak dobrze) 37

나는 미치광이들을 본다(Widzę szalonych) 38

따뜻하게(Ciepło) 39

귀환(Powrót) 40

소년 학살(Rzeź chłopców) 42

어린 시절을 환기하며(Wspomnienie dzieciństwa) 43

증인(Świadek) 45

탄식(Lament) 47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1949∼1955) 51

한국의 봄, 파종기에(Wiosenny siew na Korei) 55

나무(Drzewo) 58

황금 산(Złote Góry) 60

사랑 1944년(Miłość 1944) 62

단어를 넘어서(Nad wyraz) 63

검은 버스(Czarny autobus) 65

핑계로부터(Wymówki) 67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와 기억의 반추(反芻) : 해빙기(1956∼1959) 69

우리를 내버려 두라(Zostawcie nas) 72

부서진 것(Rozebrany) 74

해결책(Wyście) 77

공포(Strach) 78

기념비(Pomniki) 79

새로운 비교(Nowe porównania) 80

짐을 벗어던지다(Zdjęcie ciężaru) 82

나는 용기가 없다(Nie mam odwagi) 83

낯선 사람(Obcy człowiek) 85

생의 한가운데에서(W środku życia) 88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리고 시작(詩作)에 대한 끊임없는 정의 내리기 : 1960년대 93

바쁜 일상 속에서(Wśród wielu zajęć) 96

교정원(Korektka) 98

이력서에서(Z życiorysu) 100

웃음소리(Śmiech) 102

처음은 늘 숨겨져 있는 법(Pierwsze jest ukryte) 103

(Trawa) 105

가시(Cierń) 106

(Wiedza) 109

나의 시(Moja poezja) 111

시인이란 누구인가(Kto to jest poetą) 114

새로운 운문(韻文)의 탄생(Powstanie nowego poematu)  116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현실−현대문명의 위기 : 1970∼1980년대 119

***(먼지 낀 유리창을 통해) 122

***(꿈속에서) 124

(Drzwi) 126

***(집 외벽의 출입문) 129

관통(Przenikanie) 132

밑으로 내려가는 중(Schodząc) 134

***(아침에 일어나기) 136

***(나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141

갑자기(Nagle) 142

(Wiersz) 144

시(詩)에 관한 묘사(Opis wiersza) 147


침묵으로 말하기 : 1990년대 151

거울(Zwierciadło) 154

지금은(Teraz) 157

***(나의 시대는 갔다) 159

이런저런 생각(Coś takiego) 161

입에서 입으로(Z ust do ust) 162

기억(Przypomnienie) 167

***(때때로 시란) 169


세상과의 화해, 그리고 정체성의 회복 : 2000년대 171

***(10년 전) 174

동화(Bajka) 179

옮긴이에 대해 185




작품 중에서     

시인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이고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시인이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고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다
넘어지는 사람이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시인이란 떠나가는 사람이고
결코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Poetą jest ten który wierzy
i ten który uwierzyć nie może
poetą jest ten który kłamał
i którego okłamano
ten który upadł
i ten który się podnosi

poetą jest ten który odchodzi
i ten który odejść nie może.



옮긴이         

최성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폴란드 국립 바르샤바 대학교 폴란드어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1997∼2001),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평전−안녕하세요 교황님≫(바다출판사, 2004), ≪세계의 소설가 Ⅱ−유럽·북미편≫(공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3) 등이 있고, 역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명상시집−내 안에 그대 안식처 있으니≫(따뜻한 손, 2003), ≪고슴도치 아이≫(보림출판사, 2005), ≪쿠오바디스 I, Ⅱ≫(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5), ≪끝과 시작−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시선집≫(문학과지성사, 2007), ≪바다 한가운데서/미망인들≫(지만지, 2008) 등이 있다. ≪비단안개−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3인 시선집≫(Dialog, 2005)을 폴란드어로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폴란드 문학을 한국에 널리 알리고, 한국 문학을 폴란드에 소개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폴란드 문학의 특수성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폴란드 문학을 연구하는 동양의 학자로서 동서양의 문학 및 사상을 비교하는 연구에도 전념하고 있다.
논문으로 <폴란드 문학을 통해 살펴본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양문학 속의 동양문화 열풍>, <폴란드 콜럼버스 세대와 윤동주의 저항시 비교 연구>, <폴란드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에 나타난 한국전쟁>, <폴란드 현대시에 나타난 일본 시가 하이쿠의 영향>,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와 노장사상의 상생적, 유기론적 자연관>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폴란드의 가장 권위 있는 출판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 수상자인 타데우시 루제비치의 시다. 전쟁 직후인 1945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루제비치는 시적 언어로 폴란드의 역사와 필사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루제비치는 폴란드 민족들이 살아내야만 했던 현실을 조심스레 곱씹으며, 괜찮다고, 그러나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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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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