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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2 회화론 Essais sur la peinture
  2. 2008/02/22 살롱 Salons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프랑스, 1713~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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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www.marxists.org


저자 드니 디드로는 1713년에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수도인 랑그르에서 태어나 1784년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우선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백과전서≫의 편집을 맡아 완성하였던 대표적인 계몽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이 ≪백과전서≫를 출판하며,≪회의적인 사람의 산보≫,≪고자질장이 보석≫,≪맹인서한≫,≪벙어리와 귀머거리에 관한 편지≫,≪자연해석론≫ 등의 철학적 저서를 작성한다.

이후 그의 관심은 연극 쪽으로 옮겨지며,<사생아>와 이어서 <도르발과의 대담>,<가장>,<극시론>등을 남기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디드로가 희곡 창작뿐만 아니라 연극 이론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그가 우리가 ‘드라마’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소시민 가정을 극의 대상으로 하게 되는 이 관심은 확대되어 소설 장르로 이어진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시도하는 예술비평인 ≪살롱≫을 작성하게 되는 1759년을 즈음하여 그의 첫 소설인 ≪수녀≫의 작성이 개시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살롱≫ 작성은 소설가로서의 그의 관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으며, 어쨌든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문학 영역은 그에게서는 서로 상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운명론자 자크≫, ≪라모의 조카≫ 등을 통해 19세기 소설의 시대를 예견하고 그 문을 연 선구자이다.

이외에도 그는 ≪기만≫, ≪나의 오래된 실내복에 대한 유감≫, ≪부르본느의 두 친구≫, ≪이것은 콩트가 아닙니다≫, ≪달랑베르의 꿈≫, ≪코미디언에 대한 역설≫, ≪그는 호인인가? 악한인가?≫와 같은 작품들을 작성하는데 열중했다.

오늘날 예술비평을 처음으로 문학의 장르에 도입시켰다고 평가받는 디드로의 ≪살롱≫은 22년 동안 아홉 번에 걸쳐 작성되는데, 네 번째 ≪살롱≫(1765년)에는 미술에 관한 그의 첫 총합적인 시도인 ≪회화론≫이 잇따르게 된다. 미술에 관한 그의 견식은 넓어지고, 1769년에는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를 위해 다섯 점의 그림을 사기 시작하는 등 본격적으로 미술품 매수에도 참여한다.

그는 예카테리나 2세와 친분이 두터워지고, 결국 네덜란드, 독일을 거쳐 러시아로 생전 처음으로 큰 여행을 하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한 후 1774년, 다시 함부르크를 거쳐 헤이그로 여행한 후 파리로 돌아오게 되는데, 네덜란드에 있을 때는 꽤 부지런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엘베씨우스의 반론≫에 열중하며,≪마레샬과의 대담≫,≪군주정치≫를 집필하며,≪나카즈에 관한 관찰≫과 ≪생리학요소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1775년에는 ≪러시아를 위한 대학 계획≫이 작성되었으며, 에카테리나 2세는 11월 29일 ≪러시아 연구론≫을 받고 다음해 1월 20일 ≪대학계획서≫를 받게 된다. 디드로는 자신의 도서와 수사본을 러시아 왕립도서관에 팔게 된다.

말년에는 파리 근처 세브르 등에서 집필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1781년에는 고향 랑그르의 시청에 우동이 조각한 디드로 흉상이 놓이며, 또 그해 그는 스코틀랜드 고고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된다.

파리, 리슐리외 거리에 있는 브종 저택 이 층에 이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게 되는데, 예카테리나 2세는 디드로의 과부에게 1000루블을 주도록 허락한다. 1785년, 예카테리나 2세는 자기 아버지의 수사본 총 소장품을 헌납하는 마담 드 방될(디드로의 유일한 후손)의 편지를 받게 되고, 11월 5일 디드로의 도서와 수사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달한다.

해설              
 

본 개론은 그 작가가 계몽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라는 것과, 그가 미술가 또는 미술이론가가 아닌 문인으로서 회화를 접한 후 회화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본다는 데서, 그리고 이 시각이 어떤 완성된 형태가 아니고 나름대로의 완성된 시각을 가지기 위해 나아가는 중 이루어진 중간 점검이라는 데서 의미가 크다.

17세기 중엽부터 프랑스 회화와 조각 아카데미는 왕궁이 베르사이유로 옮겨 비게 된 루브르에서 매년 혹은 격년마다 미술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루브르의 거실에서 열렸기에 ‘살롱’이라 불렀다. 18세기 철학자이자 문인인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절친한 친구 그림(Grimm)의 권유로 1759년 살롱부터 미술평 《살롱》을 쓰게 된다. 그는 단 한 번의 기획으로 회화에 관해 일목요연한 작품을 시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회화론》으로, 미술 일반에 대한 풍부한 명상이다. 디드로는 《1765년 살롱》에서 그 부록으로 따를 이 《회화론》에 대해 욕망을 피력한다. “우리의 판단에서 가질 수 있는 신뢰할만한 모티브들을 솔직하게 전시한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여러 가지 작품들로 만들었던 엄격한 비평을 완화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 결과로 우리는 감히 한 편의 보잘것없는 《회화론》을 내놓을 것이고, 감히 우리의 방식과 인식을 통해 데생과 색조, 명암, 표현, 구성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이 개론은 1766년 7월에 완성되었으며, 《살롱》과 마찬가지로 〈문학통신〉을 통해 간행되었다.

문인이자 철학자인 디드로가 미(美)에 대해 고민한 이 《회화론》은, 그가 비록 회화의 순수하게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완벽할 수 없다 할지라도, 문학자로서의 통찰력과 철학자로서의 심오한 성찰을 통해 예술을 대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명상(冥想)은 자연에 대한 모방, 미에 대한 사상, 정열에 대한 심오한 인식 위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그것들은 사실 모든 예술의 기초이다. 문학에서의 기초인 것과 마찬가지로 회화와 조각에서의 기초인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해 먼저 독일에서 응답이 있게 된다. 괴테와 실러는 감탄하고 열광한다. 1796년 12월에 괴테는 《회화론》을 읽었다. 실러는 괴테에게 열광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디드로는 참말로 나를 매혹하고 내 심령 밑바닥까지 움직이게 했습니다. (...중략...) 그의 경구들의 각각이 (...중략...) 예술의 신비스러운 심오함을 조명하는 하나의 섬광과 같습니다.” 괴테는 “예술가에게보다는 아마도 작가에게 더 호소하는 마술적인 책”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1797년 8월 7일, 실러는 자신의 열광을 재검토했고 디드로의 예술 인식이 너무 교훈적으로만 이끌려진다고 비판했다. “저의 기호에 따르자면, 디드로는 예술에서의 이상한 궁극원인들에 너무 골몰하고 대상(對象)조차와 실행에 불충분하게 주의합니다.” 괴테의 말에서도 그와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디드로는 예술의 결과가 되는 문화가 그 고유한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발돋움할 줄 몰랐습니다.” 일 년 후, 괴테와 실러, 그들의 공통된 언급은 명확해졌다. 디드로가 고전적인 거짓, 즉 예술과 자연의 결합이라는 영원한 거짓에 속았다는 것이다.

그가 자연을 찬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수법을 배척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충만한 대기(大氣), 빛, 육체와 하늘의 마술을 드러내기 위해 유파와 아틀리에를 비판했다. 우의적인 것에서는 멀어지고자 했다. 그러면서, 영혼에 투영된 풍경화들, 숲들과 건축물들의 일치, 폐허들과 무덤들의 은근한 상징주의를 유발했다. 디드로의 이 미학은 비극적인 경치를 감수했고 연극적인 장면에 얼마간의 애정을 지켰다. 다시 말해, 샤르뎅 스타일의 사실주의, 즉 물질적 세계를 재생하기를 주장하는 사실주의와, 그뢰즈의 작품에서와 같이, 결과에 대한 극적인 탐구 중에서 디드로는 어느 한 가지도 선택하지 않았다.

결국 일 년 후, 《1767년 살롱》에서 디드로는 회화가 시적(詩的)이고, “화가의 태양이 우주의 태양은 아니”라고 고백하게 된다. 이는 《회화론》이 디드로가 미를 경험하는 과정에 있고 미에 대한 그의 인식의 진보에 있어 중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 개론 바로 다음에 올 《1767년 살롱》이 더없이 훌륭한 미에 대한 관찰이자 예술의 세계에 대한 직관과 성찰의 작품이라는 것이고, 지금의 이 개론은 이 영광을 향한 중간 길에 놓인 매우 중요한 시론을 포함한다. 최근에 이 개론을 편집‧소개한 뽈 베르니에르도 《회화론》은 디드로가 처음으로 행한 종합적인 시도일 뿐이지만, 그것은 그가 회화를 대하는데 있어 하나의 회의론적 위기이지 퇴보는 아니라고 확인한다.

천줄 발췌라는 의무조항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디드로의 훌륭한 문장들을 파괴해야 했다. 그러나 편집이 어떤 원칙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논리 및 문맥만은 살린다는 기본적인 방침 위에서, 될 수 있으면 그가 예증하려는 문장들을 생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본문에 등장하는 ‘당신’이나 ‘친구’라는 단어들과 그에 따르는 대화체는 원래 작가의 친구인 그림(Grimm)을 향한 것이다. 본 《회화론》이 《1765년 살롱》의 부록으로 따른다고 언급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문학통신〉을 통해 간행되었고 그 편집장인 친구 그림(Grimm)에게 향한 서한 형식으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화체는 전시된 회화작품에 대해 친구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비칠 수 있고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는 동시에 다른 비평가들의 비난도 화가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이었던 《살롱》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능란한 수법이다. 게다가 일반 독자를 향한 친밀한 감정을 비추는 데도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디드로의 독자는 친한 친구 독자 위에 우리와 같은 일반 독자로 형성되므로 겹겹이 층을 지어 이루어져있고, 바로 그것이 솔직한 생각의 표현과 독자의 이해 및 독자와의 소통에 도움을 주는 형태라는 것이다.

2004년 벽두에 우리는 본 《회화론》의 첫 번역을 내놓았다. 지금의 천줄 발췌 번역은 그것을 꼼꼼히 되돌아보게 했다. 첫 번역에서는 참으로 많은 부분들에서 착오, 오류가 발견되었다. 나름대로 단어 하나 놓치지 않으며 저자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점은 가상하나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 말 사용도 문제였다. 문맥상 엉뚱하다 싶을 정도가 있어 되새김질의 독서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곳도 많았다. 우리 말의 자연스런 흐름이 되지 않음은 당연했다. 심지어 유사한 단어 스펠링에 속아 엉뚱하게 번역한 단어도 한 개 발견되었고, 반대 의미로 번역한 부분도 한 군데 있었다. 결국 우리 말 구사능력 부족에다 프랑스어 해독능력 불능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할뿐만 아니라 좌절감을 안겨주어 역자의 존재 가치까지도 의문시하게 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책의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가능하다면 꼭 그러고 싶다. 역자의 게으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역자 소개        


백찬욱
은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 경희대에서 수학하였으며, 프랑스 파리3대학-소르본 누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인의 문화적 정체성≫(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공역),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한영대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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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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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프랑스, 1713~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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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www.freewebs.com


저자 드니 디드로는 1713년에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수도인 랑그르에서 태어나 1784년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우선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백과전서≫의 편집을 맡아 완성하였던 대표적인 계몽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이 ≪백과전서≫를 출판하며,≪회의적인 사람의 산보≫,≪고자질장이 보석≫,≪맹인서한≫,≪벙어리와 귀머거리에 관한 편지≫,≪자연해석론≫ 등의 철학적 저서를 작성한다.

이후 그의 관심은 연극 쪽으로 옮겨지며,<사생아>와 이어서 <도르발과의 대담>,<가장>,<극시론>등을 남기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디드로가 희곡 창작뿐만 아니라 연극 이론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그가 우리가 ‘드라마’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소시민 가정을 극의 대상으로 하게 되는 이 관심은 확대되어 소설 장르로 이어진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시도하는 예술비평인 ≪살롱≫을 작성하게 되는 1759년을 즈음하여 그의 첫 소설인 ≪수녀≫의 작성이 개시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살롱≫ 작성은 소설가로서의 그의 관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으며, 어쨌든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문학 영역은 그에게서는 서로 상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운명론자 자크≫, ≪라모의 조카≫ 등을 통해 19세기 소설의 시대를 예견하고 그 문을 연 선구자이다.

이외에도 그는 ≪기만≫, ≪나의 오래된 실내복에 대한 유감≫, ≪부르본느의 두 친구≫, ≪이것은 콩트가 아닙니다≫, ≪달랑베르의 꿈≫, ≪코미디언에 대한 역설≫, ≪그는 호인인가? 악한인가?≫와 같은 작품들을 작성하는데 열중했다.

오늘날 예술비평을 처음으로 문학의 장르에 도입시켰다고 평가받는 디드로의 ≪살롱≫은 22년 동안 아홉 번에 걸쳐 작성되는데, 네 번째 ≪살롱≫(1765년)에는 미술에 관한 그의 첫 총합적인 시도인 ≪회화론≫이 잇따르게 된다. 미술에 관한 그의 견식은 넓어지고, 1769년에는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를 위해 다섯 점의 그림을 사기 시작하는 등 본격적으로 미술품 매수에도 참여한다.

그는 예카테리나 2세와 친분이 두터워지고, 결국 네덜란드, 독일을 거쳐 러시아로 생전 처음으로 큰 여행을 하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한 후 1774년, 다시 함부르크를 거쳐 헤이그로 여행한 후 파리로 돌아오게 되는데, 네덜란드에 있을 때는 꽤 부지런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엘베씨우스의 반론≫에 열중하며,≪마레샬과의 대담≫,≪군주정치≫를 집필하며,≪나카즈에 관한 관찰≫과 ≪생리학요소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1775년에는 ≪러시아를 위한 대학 계획≫이 작성되었으며, 에카테리나 2세는 11월 29일 ≪러시아 연구론≫을 받고 다음해 1월 20일 ≪대학계획서≫를 받게 된다. 디드로는 자신의 도서와 수사본을 러시아 왕립도서관에 팔게 된다.

말년에는 파리 근처 세브르 등에서 집필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1781년에는 고향 랑그르의 시청에 우동이 조각한 디드로 흉상이 놓이며, 또 그해 그는 스코틀랜드 고고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된다.

파리, 리슐리외 거리에 있는 브종 저택 이 층에 이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게 되는데, 예카테리나 2세는 디드로의 과부에게 1000루블을 주도록 허락한다. 1785년, 예카테리나 2세는 자기 아버지의 수사본 총 소장품을 헌납하는 마담 드 방될(디드로의 유일한 후손)의 편지를 받게 되고, 11월 5일 디드로의 도서와 수사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달한다.

해설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이 계몽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백과전서≫의 책임 편집자로도 유명하다. 이외에도 그는 희곡작가, 연극이론가이자 ‘드라마’라는 장르의 창시자, 소설가, 콩트 작가, 예술비평가이다.

특히 그는 1759년부터 1781년까지의 미술비평작품인 ≪살롱(Salons)≫을 통해 ‘예술비평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그것은 그가 예술비평이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문학에 도입시켰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가 ≪백과전서≫의 철학적인 마지막 항목들을 완성한 1759년, 막역한 친구인 그림(Grimm)이 그에게 ≪문학통신≫에, 문학에서는 새로운 영역인 예술비평을 쓰도록 제안한다. 17세기 중엽, 프랑스 회화·조각 아카데미는 매년 또는 격년으로, 왕궁이 베르사유(Versailles)로 옮겨가 비게 된 루브르(Louvre)의 응접실에서 미술전시회를 열었다.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철학·정치·문예지 ≪문학통신≫의 편집장 프리드리히ᐨ멜히오르 그림(Fridrich-Melchior Grimm) 남작은 이 전시회를 비평하다 별 신통치 못함을 스스로 깨닫게 되어 친구 디드로에게 이 일을 맡긴다.

디드로는 친구의 간청에 응하며 여태까지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인, 화가들의 말을 번역하는 실험을 해본다. 이 실험에 있어 우선 그림에 대한 묘사가 문제이다. 그림(Grimm)이 발행했던 ≪문학통신≫은 국외로 보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삭스ᐨ고타의 공비나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 같은 유럽 왕궁의 사람들이 예탁했던 문예지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디드로의 그림묘사가 파리(Paris)의 루브르에 전시되는 그림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글로 그들의 눈에 그림들을 전시해야 하므로 디드로는 그림들의 전체 효과를 그들의 시야에 펼치기 위해 그림 묘사를 일화, 여담, 희곡, 콩트, 편지로 만든다.

살롱(salon)은 큰 저택의 ‘응접실’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의 일반 명사이지만, 고유명사로서는 두 가지가 지칭되는데, 한 가지는 17세기와 18세기에 철학자, 문인, 학자, 예술가 등이 모여 대화와 토론을 나누었던, 주로 부인들의 응접실을 지시하고, 두 번째는 언급했다시피, 루브르의 응접실에서 열렸던 미술전시회를 가리킨다. 디드로도 간편하게 ‘살롱’이란 단어로 자기 글의 제목을 붙이고 있는데, 그것은 미술작품들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지만 미술전시회에 대한 보고이기도 하여 저널(journal)적 성격을 지닌다. 그림들이 걸린 루브르의 입체적 공간에다 어떤 담소가 있는 공간이 포괄되어 암시되는 것이다.

이런 데서는 관람자들의 감동, 칭찬이나 비난, 날카로운 비평이 빠질 수 없다. 관람자들 중에는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매우 전문적인 사람들도 포함된다. 화가들이나 그 보호자들 말이다. 디드로는 여담과 일화를 통해 그들 모두를 자신의 화평 속에 불러들여 자신의 독자들에게 루브르의 따분한 칸막이를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디드로의 ≪살롱≫을 통해 18세기 당시의 루브르와 이 전시회장을 둘러싼 온갖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관람자들의 느릿한 겉치레나, 또는 그들 의복의 매끄러운 비단과도 같이 작품들을 대하는 냉담한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또 혹은 안절부절못하거나 일부러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예술가들과도 만날 수 있다.

당시는 17세기에 아카데미의 원장이었던 르 브랭이 만들었던 화가의 구별 규정을 지키고 있었다. 역사화가와 종교화가는 아카데미 교수나 교장이 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풍경화가나 정물화가와 같은 풍속화가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지위는 루브르 전시회에서 그림들의 위치를 선정하는 데 대한 전권을 가진 ‘타피스리 제작자’이다. 1761년부터 타피스리 제작자는 샤르댕이었는데, 그는 좋은 그림을 살리고 나쁜 그림을 죽이는(?) 데 능했던 그림 위치 선정자였다. 디드로는 자신의 ≪살롱≫에서 샤르댕의 이 안목을 지극히 능란하게 활용한다.

디드로는 ≪살롱≫을 통해 화가 라 투르의 성격이 급했고 경멸적이었다는 것까지 알려준다. 또 루브르의 수위인 플리포가 소박한 사람이었다는 것까지도 보고한다. 그렇게 디드로는 루브르 중앙 기둥 위에 시선을 보내며, 손에는 카탈로그와 수첩을 들고 천장까지 네 개의 열로 전시된 삼백여개의 그림들 앞에 있다.

그러나 비평은 엄격해야 하고 또 그 자신은 이미 진지하게 말해야 할 철학자이다. 그래서 디드로는 친구 그림(Grimm)을 향한 편지의 형식으로 화평을 시도한다. 이 서한방식은 친구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비칠 수 있고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는 동시에 다른 비평가들의 비난도 화가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능란한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문학에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다. 그는 회화를 “눈을 중개로 영혼으로 가는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미술비평은 소리 나지 않는 회화 앞에서 소리를 내야하는 막연한 장르이다. ≪1765년 살롱≫에서 디드로는 친구에게 겸손하면서도 문학에서는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작업방식조사, 적당한 언어에 대한 탐구, 즉 예술비평이라는 장르의 창조 그 자체를 보고한다.


“만일 제가 회화와 조각에 따르는 몇 가지 지식을 가졌다면, 고맙게 여겨야 할 사람은, 친구여, 바로 당신입니다. 저는 살롱에서 한 무리의 빈둥거리는 사람들을 따라갈 것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피상적이고 은근히 한 번 흘낏 보고 말 것입니다… 화폭 위에다 제 눈을 고정시키고 대리석 주위로 저를 향하게 했던 것은 당신이 제게 보여주었던 노력입니다. 저는 제게 도달하고 스며드는 인상에다 시간을 내주었을 뿐입니다. 제 영혼을 (화폭과 대리석의) 효과들에 열었으며, 그것들이 투입되도록 내버려두었을 뿐입니다… 정묘한 데생, 진실의 자연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빛과 음영의 마술을 알았습니다. 색을 알았습니다. 살에 대한 감각을 터득했습니다. 제가 보고들은 것을 명상했습니다. 또 제 입속에서는 그토록 친밀하지만 정신 속에서는 그토록 희미한 ‘통일·다양성·대조·대칭·질서·조화·특징·표현’이라는 예술의 이 용어들은 제한되고 고정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디드로는 미술에 대해 하나하나를 터득해가며, 그의 ≪살롱≫들은 22년 동안에 걸쳐 아홉 번 펼쳐진다. 1759년, 1761년, 1763년의 것들은 미술에 대해 아직 충동적이고 서투른 그의 안목을 보여준다. 어조도 단호하기만 하며, 어떠한 원칙도 없는 비평방식이 감행된 것이다. 그러나 1765년, 1767년, 1769년의 것들은 그의 이전 비평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엄청난 탈선이 시도되어 미술에 대한 책자가 지닐 수 있는 따분함을 벗어나도록 한다. 비평에 대한 그의 실험은 풍부해지고, 예술에 대한 그의 접근들은 미묘하게 진보한다. 그러나 1771년에는 퇴조의 기미가 보이며, 1773년에는 그가 네덜란드와 러시아를 여행했기 때문에 작성되지 못한다. ≪1775년 살롱≫에서는 그의 권태가 감지되지만, 이 ≪살롱≫ 전체의 초안이 연극적 양상으로 잡혀 흥미롭다. 1781년의 것은 그가 비록 늙었지만 예술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던 데서 오는 안목과 직관을 보여준다. 1783년에는 그가 이미 병들어 있었다.

디드로의 비평은 편협한 감식안에서는 거리가 멀다. 풍부한 경험, 심오한 연구, 감수성과 천재성에다 예언능력까지 갖추었다. 하지만 디드로 스스로는 예언자를 자처하지는 않았다. 그로서는 서로 모순적인 것들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열정과 덕성, 자연과 사회, 열광과 이성적 차분함, 치명적인 비약과 의식적인 억제, 아마추어로서의 문예애호와 프로로서의 전문성이 그 자신 내부에서 충돌했다. 그와 같이 그는 비평의 입구가 되는 모든 길을 따르며 예술에 접근했다. 근‧현대 비평의 얼굴들인 샤토브리앙과 보들레르, 졸라, 공쿠르 형제, 아폴리네르, 바레스, 프루스트 이전에 예술비평의 윤곽을 잡을 줄 알았던 것이다.

디드로는 필립 도를레앙 섭정 시대와 퐁파두르 치세의 “아양 떠는 잔치들(fêtes galantes)1)”들부터 신고전주의 전까지 자기 세대의 것들을 표현하고 또 그것들을 강렬하게 공유한다. 그가 공격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철천지원수’이자 로코코의 대가인 프랑수아 부셰부터, 역량과 꼿꼿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1781년의 다비드의 <벨리사리오스>까지, 회화에서의 그의 발견은 그뢰즈의 부르주아적 비장미를 넘어, 조잡한 대상들에 대한 탐구와 사실주의의 샤르댕을 경유하며, 폐허와 무덤들의 우아함, 하늘, 나무들, 바다와 맑은 물의 낭만주의로 이어진다. 베르네는 그에게 대기(大氣), 빛, 안개 낀 하늘, 달빛, 아침, 저녁의 어스름한 빛들을 보여주며,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위베르 로베르는 그에게 폐허에 대한 시적 서정을 확립하게 한다. 공쿠르 형제들은 한 세기의 예술을 가로질러 그의 영혼이 나타난다고 했다.

총 아홉 편으로 된 그 많은 쪽수의 ≪살롱≫ 전체를 염두에 둔다면 여기서의 천 줄 발췌는 디드로의 회화에 대한 인식과 이 인식의 진보, 그리고 그의 미학 등을 보고하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편집원칙이 중요해진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원칙이 가장 합당한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좋아하거나 논박한 부셰, 샤르댕, 그뢰즈, 베르네와 같은 몇 명의 위대한 화가들을 집합시키는 것으로 만족한다. 가능하면 에피소드를 담은 글, 일화적인 내용은 피하고, 미학적 논의성이 있는 글을 중심으로 편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역자 소개       
 

백찬욱은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 경희대에서 수학하였으며, 프랑스 파리3대학-소르본 누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인의 문화적 정체성≫(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공역),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한영대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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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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