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www.marxists.org
저자 드니 디드로는 1713년에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수도인 랑그르에서 태어나 1784년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우선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백과전서≫의 편집을 맡아 완성하였던 대표적인 계몽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이 ≪백과전서≫를 출판하며,≪회의적인 사람의 산보≫,≪고자질장이 보석≫,≪맹인서한≫,≪벙어리와 귀머거리에 관한 편지≫,≪자연해석론≫ 등의 철학적 저서를 작성한다.
이후 그의 관심은 연극 쪽으로 옮겨지며,<사생아>와 이어서 <도르발과의 대담>,<가장>,<극시론>등을 남기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디드로가 희곡 창작뿐만 아니라 연극 이론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그가 우리가 ‘드라마’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소시민 가정을 극의 대상으로 하게 되는 이 관심은 확대되어 소설 장르로 이어진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시도하는 예술비평인 ≪살롱≫을 작성하게 되는 1759년을 즈음하여 그의 첫 소설인 ≪수녀≫의 작성이 개시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살롱≫ 작성은 소설가로서의 그의 관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으며, 어쨌든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문학 영역은 그에게서는 서로 상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운명론자 자크≫, ≪라모의 조카≫ 등을 통해 19세기 소설의 시대를 예견하고 그 문을 연 선구자이다.
이외에도 그는 ≪기만≫, ≪나의 오래된 실내복에 대한 유감≫, ≪부르본느의 두 친구≫, ≪이것은 콩트가 아닙니다≫, ≪달랑베르의 꿈≫, ≪코미디언에 대한 역설≫, ≪그는 호인인가? 악한인가?≫와 같은 작품들을 작성하는데 열중했다.
오늘날 예술비평을 처음으로 문학의 장르에 도입시켰다고 평가받는 디드로의 ≪살롱≫은 22년 동안 아홉 번에 걸쳐 작성되는데, 네 번째 ≪살롱≫(1765년)에는 미술에 관한 그의 첫 총합적인 시도인 ≪회화론≫이 잇따르게 된다. 미술에 관한 그의 견식은 넓어지고, 1769년에는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를 위해 다섯 점의 그림을 사기 시작하는 등 본격적으로 미술품 매수에도 참여한다.
그는 예카테리나 2세와 친분이 두터워지고, 결국 네덜란드, 독일을 거쳐 러시아로 생전 처음으로 큰 여행을 하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한 후 1774년, 다시 함부르크를 거쳐 헤이그로 여행한 후 파리로 돌아오게 되는데, 네덜란드에 있을 때는 꽤 부지런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엘베씨우스의 반론≫에 열중하며,≪마레샬과의 대담≫,≪군주정치≫를 집필하며,≪나카즈에 관한 관찰≫과 ≪생리학요소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1775년에는 ≪러시아를 위한 대학 계획≫이 작성되었으며, 에카테리나 2세는 11월 29일 ≪러시아 연구론≫을 받고 다음해 1월 20일 ≪대학계획서≫를 받게 된다. 디드로는 자신의 도서와 수사본을 러시아 왕립도서관에 팔게 된다.
말년에는 파리 근처 세브르 등에서 집필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1781년에는 고향 랑그르의 시청에 우동이 조각한 디드로 흉상이 놓이며, 또 그해 그는 스코틀랜드 고고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된다.
파리, 리슐리외 거리에 있는 브종 저택 이 층에 이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게 되는데, 예카테리나 2세는 디드로의 과부에게 1000루블을 주도록 허락한다. 1785년, 예카테리나 2세는 자기 아버지의 수사본 총 소장품을 헌납하는 마담 드 방될(디드로의 유일한 후손)의 편지를 받게 되고, 11월 5일 디드로의 도서와 수사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달한다.
해설
본 개론은 그 작가가 계몽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라는 것과, 그가 미술가 또는 미술이론가가 아닌 문인으로서 회화를 접한 후 회화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본다는 데서, 그리고 이 시각이 어떤 완성된 형태가 아니고 나름대로의 완성된 시각을 가지기 위해 나아가는 중 이루어진 중간 점검이라는 데서 의미가 크다.
17세기 중엽부터 프랑스 회화와 조각 아카데미는 왕궁이 베르사이유로 옮겨 비게 된 루브르에서 매년 혹은 격년마다 미술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루브르의 거실에서 열렸기에 ‘살롱’이라 불렀다. 18세기 철학자이자 문인인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절친한 친구 그림(Grimm)의 권유로 1759년 살롱부터 미술평 《살롱》을 쓰게 된다. 그는 단 한 번의 기획으로 회화에 관해 일목요연한 작품을 시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회화론》으로, 미술 일반에 대한 풍부한 명상이다. 디드로는 《1765년 살롱》에서 그 부록으로 따를 이 《회화론》에 대해 욕망을 피력한다. “우리의 판단에서 가질 수 있는 신뢰할만한 모티브들을 솔직하게 전시한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여러 가지 작품들로 만들었던 엄격한 비평을 완화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 결과로 우리는 감히 한 편의 보잘것없는 《회화론》을 내놓을 것이고, 감히 우리의 방식과 인식을 통해 데생과 색조, 명암, 표현, 구성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이 개론은 1766년 7월에 완성되었으며, 《살롱》과 마찬가지로 〈문학통신〉을 통해 간행되었다.
문인이자 철학자인 디드로가 미(美)에 대해 고민한 이 《회화론》은, 그가 비록 회화의 순수하게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완벽할 수 없다 할지라도, 문학자로서의 통찰력과 철학자로서의 심오한 성찰을 통해 예술을 대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명상(冥想)은 자연에 대한 모방, 미에 대한 사상, 정열에 대한 심오한 인식 위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그것들은 사실 모든 예술의 기초이다. 문학에서의 기초인 것과 마찬가지로 회화와 조각에서의 기초인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해 먼저 독일에서 응답이 있게 된다. 괴테와 실러는 감탄하고 열광한다. 1796년 12월에 괴테는 《회화론》을 읽었다. 실러는 괴테에게 열광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디드로는 참말로 나를 매혹하고 내 심령 밑바닥까지 움직이게 했습니다. (...중략...) 그의 경구들의 각각이 (...중략...) 예술의 신비스러운 심오함을 조명하는 하나의 섬광과 같습니다.” 괴테는 “예술가에게보다는 아마도 작가에게 더 호소하는 마술적인 책”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1797년 8월 7일, 실러는 자신의 열광을 재검토했고 디드로의 예술 인식이 너무 교훈적으로만 이끌려진다고 비판했다. “저의 기호에 따르자면, 디드로는 예술에서의 이상한 궁극원인들에 너무 골몰하고 대상(對象)조차와 실행에 불충분하게 주의합니다.” 괴테의 말에서도 그와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디드로는 예술의 결과가 되는 문화가 그 고유한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발돋움할 줄 몰랐습니다.” 일 년 후, 괴테와 실러, 그들의 공통된 언급은 명확해졌다. 디드로가 고전적인 거짓, 즉 예술과 자연의 결합이라는 영원한 거짓에 속았다는 것이다.
그가 자연을 찬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수법을 배척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충만한 대기(大氣), 빛, 육체와 하늘의 마술을 드러내기 위해 유파와 아틀리에를 비판했다. 우의적인 것에서는 멀어지고자 했다. 그러면서, 영혼에 투영된 풍경화들, 숲들과 건축물들의 일치, 폐허들과 무덤들의 은근한 상징주의를 유발했다. 디드로의 이 미학은 비극적인 경치를 감수했고 연극적인 장면에 얼마간의 애정을 지켰다. 다시 말해, 샤르뎅 스타일의 사실주의, 즉 물질적 세계를 재생하기를 주장하는 사실주의와, 그뢰즈의 작품에서와 같이, 결과에 대한 극적인 탐구 중에서 디드로는 어느 한 가지도 선택하지 않았다.
결국 일 년 후, 《1767년 살롱》에서 디드로는 회화가 시적(詩的)이고, “화가의 태양이 우주의 태양은 아니”라고 고백하게 된다. 이는 《회화론》이 디드로가 미를 경험하는 과정에 있고 미에 대한 그의 인식의 진보에 있어 중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 개론 바로 다음에 올 《1767년 살롱》이 더없이 훌륭한 미에 대한 관찰이자 예술의 세계에 대한 직관과 성찰의 작품이라는 것이고, 지금의 이 개론은 이 영광을 향한 중간 길에 놓인 매우 중요한 시론을 포함한다. 최근에 이 개론을 편집‧소개한 뽈 베르니에르도 《회화론》은 디드로가 처음으로 행한 종합적인 시도일 뿐이지만, 그것은 그가 회화를 대하는데 있어 하나의 회의론적 위기이지 퇴보는 아니라고 확인한다.
천줄 발췌라는 의무조항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디드로의 훌륭한 문장들을 파괴해야 했다. 그러나 편집이 어떤 원칙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논리 및 문맥만은 살린다는 기본적인 방침 위에서, 될 수 있으면 그가 예증하려는 문장들을 생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본문에 등장하는 ‘당신’이나 ‘친구’라는 단어들과 그에 따르는 대화체는 원래 작가의 친구인 그림(Grimm)을 향한 것이다. 본 《회화론》이 《1765년 살롱》의 부록으로 따른다고 언급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문학통신〉을 통해 간행되었고 그 편집장인 친구 그림(Grimm)에게 향한 서한 형식으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화체는 전시된 회화작품에 대해 친구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비칠 수 있고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는 동시에 다른 비평가들의 비난도 화가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이었던 《살롱》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능란한 수법이다. 게다가 일반 독자를 향한 친밀한 감정을 비추는 데도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디드로의 독자는 친한 친구 독자 위에 우리와 같은 일반 독자로 형성되므로 겹겹이 층을 지어 이루어져있고, 바로 그것이 솔직한 생각의 표현과 독자의 이해 및 독자와의 소통에 도움을 주는 형태라는 것이다.
2004년 벽두에 우리는 본 《회화론》의 첫 번역을 내놓았다. 지금의 천줄 발췌 번역은 그것을 꼼꼼히 되돌아보게 했다. 첫 번역에서는 참으로 많은 부분들에서 착오, 오류가 발견되었다. 나름대로 단어 하나 놓치지 않으며 저자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점은 가상하나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 말 사용도 문제였다. 문맥상 엉뚱하다 싶을 정도가 있어 되새김질의 독서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곳도 많았다. 우리 말의 자연스런 흐름이 되지 않음은 당연했다. 심지어 유사한 단어 스펠링에 속아 엉뚱하게 번역한 단어도 한 개 발견되었고, 반대 의미로 번역한 부분도 한 군데 있었다. 결국 우리 말 구사능력 부족에다 프랑스어 해독능력 불능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할뿐만 아니라 좌절감을 안겨주어 역자의 존재 가치까지도 의문시하게 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책의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가능하다면 꼭 그러고 싶다. 역자의 게으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역자 소개
백찬욱은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 경희대에서 수학하였으며, 프랑스 파리3대학-소르본 누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인의 문화적 정체성≫(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공역),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한영대조)≫ 등이 있다.
'쉽게 찾아보기 > 화제의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파시즘 세균 法西斯细菌 (0) | 2008/05/02 |
|---|---|
| 실종자 Der Verschollene (0) | 2008/04/02 |
| 회화론 Essais sur la peinture (0) | 2008/02/22 |
| 살롱 Salons (0) | 2008/02/22 |
| 사생아 프랑수아 François le Champi (0) | 2008/02/22 |
| 전쟁론 Vom Kriege (0) | 2008/02/21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