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상드 George Sand(프랑스, 1804∼1876)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여성 작가다. 그녀의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센 강변의 새 장수 딸로 태어난 가난한 서민 출신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상드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 있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읽기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인해 곧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해서 <피가로(Le Figaro)>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여섯살 연하인 시인 뮈세, 작곡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스캔들은 당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베르와의 우정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 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 전설의 신비한 여인이었으며 ‘정열의 화신’이었고,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항의하여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주장한 처녀작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의 작품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인 자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18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등 연이어 나온 소설들도 모두 호평을 받았다.

그녀는 장 레이노, 미셸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며 그 영향을 받아 인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소설들을 썼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18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안 씨의 죄≫(1845), 대표작이며 대하소설인 ≪콩쉬엘로≫(1842∼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1844), ≪스피리디옹≫(1838∼1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또한 상드는 1844년 ≪잔≫를 필두로 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련의 전원 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1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 부는 사람들≫(1853)등이 있다.

노년에는 자서전 ≪내 생애의 이야기≫(1847∼1855),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 이야기≫를 쓰면서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1858)과 ≪빌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등을 발표했으며 25편의 희곡과 시,  180여 편에 달하는 평론,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그녀가 남긴 편지들은 파리의 클라식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상드 연구가 조르주 뤼뱅에 의해 26권의 전집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기념비적인 방대한 규모의 서간집은 세계 문학사에서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교환 서간집으로는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뵈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등이 간행되었다.



해설           

이 작품은 전체의 25%를 발췌하였습니다.



≪렐리아≫는 조르주 상드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분류하기 힘들고 가장 호되게 비난받은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렐리아는 상드의 제2의 필명이 될 정도로 네쉬(Nessus)의 피막처럼 상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또한 조르주 상드 자신도 그런 결합을 여러 번 되풀이하여 꾀했다. 우리는 열정적인 시인들이 렐리아(상드)에게 바친 수많은 시들과, 상드의 얼굴에 침을 뱉듯이 그 이름을 내던지며 신랄하게 매도하는 독설가들의 수많은 풍자문들을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이 형이상학적인 소설−아마도 조르주 상드는 이 작품에서 평생의 관심사였던 위대함의 비밀을 간파하려고 시도했으리라−은 그녀에게는 물론이고 낭만주의 사조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상드는 1854년 렐리아의 증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진실하게 쓰여졌다. 거의 치명적이었던 내적 고통, 완전히 심리적이고 정신적이며 종교적인 고통, 인생의 이유와 목적을 추구하지 않고서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번민을 느끼도록 하는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서 집필했다. 훗날 ≪내 생애 이야기≫를 읽게 될 사람들은 의심이란 것이 나에게 무척 진지한 문제이며 몹시 끔찍한 위기였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언급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귀스타브 플랑쉬가 조르주 상드의 앨범에서 전개한 논지를 상기하는 것이 좋겠다.

“≪렐리아≫의 주제는 싹트기 시작하는 열정과 소멸되어가는 열정과의 싸움, 회의주의와 경솔한 믿음간의 싸움, 늙은 영혼과 젊은 영혼간의 싸움이다. 렐리아는 실망, 고통, 불신하고 메마른 마음 그리고 절망을 의미한다. 트랑모르는 징벌 때문에 되살아난 불행, 고통으로 인한 체념과 금욕주의를 의미한다. 마뉘스는 렐리아가 그에게 보여주었던 경멸에서 생겨난 무신론을 상징한다. 마뉘스는 그가 그토록 희망한 사랑을 잃게되자 신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살아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사상과 은유가 인격화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렐리아는 사랑하고 믿고 기도하기를 원하지만 분별력이 없다. 렐리아는 사랑을 할 수 없고 신앙을 가질 수도 없다. 그녀는 영원한 의심, 정신적 불모, 목적 없는 인생에 대한 환멸이라는 선고를 받은 ‘구제불능의 렐리아’이며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렐리아를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이상주의자 스테니오는 이런 렐리아로 인해 절망한다. 절망 속에서 스테니오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고 마침내 자살에 이른다. 한편 미치광이가 된 마뉘스는 렐리아의 목을 조른다. 트랑모르만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짓누르는 저주로부터 벗어난다.

“도처에 괴로워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도처에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고 사용해야 할 힘이 있으며 실현해야 할 운명이 있다.”

트랑모르는 이 말을 끝으로 ‘언제나 인간의 희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광대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떠난다.

조르주 상드의 수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새로운 출발점에서 끝난다. 독자들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쓰라림과 절망으로 가득찬 이 소설의 마지막 단어들 중 하나이며, 이를 통해 무(無)에 귀착되지 않는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리라.

이 시(詩)적인 소설은 때때로 과장되었고 냉정하다. 1839년도 판의 서문에서 조르주 상드 자신도 이 작품의 내용이 장황하며 수사적 허식이 많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여러 장(章)에서 나타나고 있는 서정성은 그녀의 어느 작품보다도 뛰어나다.



작품 중에서     

Ô mon bien-aimè, que nous ne pouvions pas ici suivre la même route, ni marcher au même but. Les douleurs qu'il nous a envoyées n'ont pas été pareilles. Le maître sévère que nous avons servi tous deux nous expliquera le mystère de nos souffrances.

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우리가 지상에서 같은 길을 추구하고 같은 목적을 지향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신이 우리에게 보냈던 고뇌가 비슷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섬겼던 엄격한 주인은 우리에게 고통의 신비를 설명해 주실 거예요.



옮긴이       

 
이재희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조르주 상드 연구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와 유럽의 상드 문학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노앙에서 개최된 상드와 쇼팽 애호가 모임이나 상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으며, 뉴욕 상드협회 <상드 연구>지 국제 편집인이었고, 프랑스 에시롤, 노앙 상드협회 회원이었다. 현재 파리의 상드협회 회원이며 외대 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자서전 연구서 ≪조르주 상드, 문학 상상력과 정원≫, 주제 연구서 ≪상드 연구 1, 2, 3≫이 있고, 상드 번역서로는 ≪상드 서간집 1, 2≫, 자전적 애정소설 ≪렐리아≫, 전원소설 ≪마의 늪≫, ≪소녀 파데트≫, ≪사생아 프랑수아≫ 등과 동화 ≪할머니 이야기≫가 있으며, 그 밖에 ≪쇼팽과 상드≫, ≪상드 전기≫, ≪상드 문학 앨범≫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72년의 생애 동안 2천명이 넘는 사람들과 우정 혹은 사랑을 나눈 ‘정열의 화신’이자,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조르주 상드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렐리아≫는 가장 혹독하게 비난 받은 소설이다. 상드의 제2의 필명이 될 정도로상드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주인공 렐리아의 삶을 통해서 독자들은 상드의 내면 속 고뇌와 서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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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 George Sand(프랑스, 1804∼1876)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다. 그녀의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센 강변의 새 장수 딸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상드는 프랑스 중부 시골마을 노앙에 있던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끝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피가로(Le Figaro)>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여섯 살 연하였던 시인 뮈세,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당시에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베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 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이자 ‘정열의 화신’이었고,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상드는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저항하여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주장한 처녀작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 작품인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가운데 대표작인 자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18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등 연이어 발표한 소설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 장 레이노, 미셀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면서, 그들의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18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안 씨의 죄≫(1845), 그리고 대표작이자 대하소설 ≪콩쉬엘로≫(1842∼18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1844), ≪스피리디옹≫(1838∼1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또한 상드는 1844년의 ≪잔≫을 필두로 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련의 전원 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1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 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1855)를 집필하였고,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서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1858)과 ≪빌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 이야기≫(1873∼1876) 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25편의 희곡을 포함하여, 평론과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180여 편에 달하는 수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그녀의 편지들은 조르주 뤼뱅에 의해 파리의 클라시크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총 26권으로 편집되었는데, 이 방대한 규모의 기념비적인 서간집은 세계문학사에서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왕복 서간집으로는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뵈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등이 간행되었다.



해설       



절판 복간 편역

 

문학의 유형 중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한 장르는 시, 소설, 희곡 그리고 평론이다. 그러나 작가의 생애나 작품을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한 문학 유형은 자서전이나 일기와 편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상드의 생애와 작품 연구에서는 편지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책은 왕복서한이 아닌, 상드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만을 수록하고 있다. 분량이 워낙 방대하여, 상드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서한문학가가 되었다. 서간집엔 상드가 여덟 살부터 세상을 뜬 일흔 두 살까지 쓴 편지가 들어 있는데, 상드의 편지는 모두 1만 8000통에 달하며 분실된 것도 많다. 따라서 상드의 편지를 전부 합하면 4만 통 내지 5만 통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상드의 편지는 분량에서 루소, 볼테르, 괴테를 능가하며, 생트뵈브와 위고의 편지보다도 많다. 루소나 볼테르의 서간집은 왕복서간집인데, 루소의 서간집은 영국에서 나왔고, 볼테르의 서간집은 스위스에서 영어 주석이 붙어서 발행되었다. 상드의 서간집은 파리 클라식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편집되어 출간되었으며,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왕복서간집이 출간되었다. 또 다른 정평 난 서간집으로는 뮈세, 플로베르,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마리 도르발, 폴린 비아르도 등의 서간집이 있다.

상드의 서간집은 모두 26권에 이르며, 각 권은 800쪽에서 1200쪽에 이르는 일반 사전 분량이다. 제1권에서 제24권까지는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출간 과정에서 빠졌거나 다시 발견된 편지들을 보완하여 편집된 것이 제25권과 제26권이다. 상드 서간집이 처음 출간된 때는 1864년이며, 본격적인 상드 서간집은 1964년에 제1권이 나왔다. 제24권까지 완결되어 출간된 건 1990년이며, 이해에 프랑스 TV A2는 ‘아포스트르프’ 마지막 회에서 조르주 뤼뱅과 상드 서간집 특집을 내보냈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엔 제25권, 1995년엔 제26권이 보완되어 출간되었다. 이러한 기념비적인 작업은 상드 연구가 조르주 뤼뱅(Georges Lubin)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상드 연구에 40년 넘는 생애를 바쳤다.

상드 서간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2000명이 넘는다. 어린 시절 친구부터 가족들, 당대의 위대한 문학예술가, 음악가, 화가, 정치가, 학자들, 그리고 별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망라한다. 그들은 국내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이 속한 사람들로, 쇼팽과 리스트, 마르크스, 바쿠닌, 마치니, 하이네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 중에서 상드에게 편지를 보낸 이들도 있으나, 현재까지 톨스토이, 에밀 졸라, 베를리오즈, 안데르센, 앙리 베르그송 등의 편지는 한 통도 발견되지 않았다.

상드 서간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을 수많은 편지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분실되거나 사라졌다. 상드는 쇼팽과 망소와 주고받은 서한들을 직접 태워버렸으며, 상드가 스테판에게 보낸 123통의 편지는 훗날 그의 후손들이 너무나도 은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밖에 상드가 바주앵 자매들에게 보낸 60여 통을 포함하여, 메리메와 라투쉬, 상도, 레이노, 알라르, 로에티에 드 플레시, 플레리 가족, 뒤테유 가족 , 보리 등에게 보낸 편지들이 분실되었다.

상드 서간집은 각 권마다 50명 내지 60명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며, 상드는 하루에 제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20여 통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쇼팽에게 보낸 몇 통의 편지 중에서 첫 번째와 마지막 편지가 남아 있는데, 첫 연서가 가장 짧은 내용인데 반해서 결혼하고 남편과 헤어져 있을 때 사귄 오렐리앙 드 세즈란 연인에 대한 ‘고백편지’(불어판 제1권, 104번 편지)는 200자 원고지 190여 장이 되며 21세 때 하룻밤에 단숨에 쓴 것이다. 같은 양의 또 다른 편지(불어판 제8권, 3699번 편지)는 43세 때 8일간 써서 남자친구 아라고에게 보낸 것이며, 자기 집에서 공연한 연극 장면 이야기, 딸과 사위와 쇼팽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 편지는 우리에게 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상드 서간집의 특징은 첫째 방대함과 다양성과 복잡성이며, 둘째는 솔직함과 진실성이고, 셋째는 지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상드 서간집의 독자들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지속성이다.

상드는 한 번 만나서 편지 한 통을 보낸 뒤에 헤어진 사람도 있지만, 일생동안 편지를 교환한 사람도 많다. 프랑수아 뷜로는 오랫동안 상드와 편지를 교환하다가 서로 사상이 맞지 않아 결별하여, 18년 후 다시 만나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상드와 편지를 주고받던 한 친구는 어떤 사상 사건으로 투옥되었는데, 상드는 감옥으로 그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혁명으로 인해 국외로 추방된 친구에겐 계속 편지를 보내서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어떤 남자친구에겐 편지를 쓰기 시작해서 그의 아내에게도 보냈고, 이후로는 그의 자식을 거쳐서 손자에게까지 편지를 계속 보냈다. 어린 시절 소꿉동무였던 위르쉴 조스에겐 50년 넘게 편지를 보내서 우정을 이어 나갔다.

 이 책에 들어 있는 편지는 모두 26권에 이르는 상드 서간집의 1만 8000통 가운데 55편을 번역한 것이다.



작품 중에서     

Adieu mon ami, que vous guérissiez vite de tous maux, et je l'espère maintenant (j'ai mes raisons pour cela) et je remercierai Dieu de ce bizarre dénouement à neuf années d'amitié exclusive, ― Donnez-moi quelquefois de vos nouvelles, Il est inutile de jamais revenir sur le reste.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당신이 모든 병으로부터 조속히 치유되기를 빌어요. 그게 지금의 내 바람이에요.(그러는 게 마땅하고요.) 그리고 9년간의 독점적인 사랑(우정)을 이렇듯 기이하게 결말지어준 것에 대해 신께 감사드려요. 가끔씩 소식 전해주세요. 나머지 일을 재론한다는 것은 무용한 일이에요.



옮긴이         

이재희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조르주 상드 연구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와 유럽의 상드 문학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노앙에서 개최된 상드와 쇼팽 애호가 모임이나 상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다. 뉴욕 상드 협회 <상드 연구>지 국제 편집인이었고, 프랑스 에시롤, 노앙 상드협회 회원이었다. 현재 파리의 상드협회 회원이며, 외대 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자서전 연구서 ≪조르주 상드, 문학 상상력과 정원≫, 주제 연구서 ≪상드 연구 1, 2, 3≫이 있고, 상드 번역서로는 ≪상드 서간집 1, 2≫, 자전적 애정소설 ≪렐리아≫, 전원소설 ≪마의 늪≫, ≪소녀 파데트≫, ≪사생아 프랑수아≫ 등과 동화 ≪할머니 이야기≫가 있으며, 그 밖에 ≪쇼팽과 상드≫, ≪상드 전기≫, ≪상드 문학 앨범≫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72년의 생애 동안 2천명이 넘는 사람들과 우정 혹은 사랑을 나눈 ‘정열의 화신’이자,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조르주 상드가 8세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쓴 총 1만 8천여통의 편지들 가운데 53편을 발췌해서 실었다. 독자들은  편지들 속에 녹아들어 있는 상드의 솔직하고 진실어린 마음의 따스함에 매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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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 George Sand(프랑스, 1804~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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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www.americanvioletsociety.org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적인 가문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세느 강변의 새장수의 딸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상드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 있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속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피가로>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차림의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6살 연하인 시인 뮈세와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그 당시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메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이천 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이었으며 ‘정열의 화신’이었고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남녀평등과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항의하여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를 주장한 처녀작으로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인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등 연이어 나온 소설들도 호평을 받았다.

다음으로 장 레이노, 미셸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여 그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완 씨의 죄≫(1845), 대표작이며 대하소설인 ≪콩쉬엘로≫(1842∼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44), ≪스피리디옹≫(183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상드는 다시 1844년 ≪잔느≫를 필두로 해서 일련의 전원 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원소설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55),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이야기≫를 쓰면서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58)과 ≪발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등을 발표했으며 25편의 희곡과 시, 평론,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180여 편에 달하는 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그녀가 남긴 편지들은 파리의 클라식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조르주 뤼뱅이 26권으로 편집 완성한 방대하고 기념비적인 서간집으로 세계 문학사에서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 동안 교환 서간집으로는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 봐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등이 간행되었다.

해설              
 

■ 국내 최초 소개

조르주 상드의 방대한 전 작품(180편)중에서 소설은 90여편 되는데, 제 3 기에 속하는 것으로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읽혀진 작품이며 상드의 일련의 전원소설들은 그녀가 소녀 시대에 호흡한 전원의 공기를 그립도록 추상하면서 쓴 것으로 <쟌느>(1844),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6~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 부는 사람들>(1853)이다. 그리고 상드 자신의 천분이 가장 잘 발휘된 것으로 겨우 4일 만에 완성했다는 <마의 늪>과 <소녀 파데트>가 있다. 상드는 원래 전원소설을 연작으로 <삼굿장이의 야화>라는 제목을 붙일 계획이었으나 실현되지 않았으며, 그녀의 민주사상은 고향 농민에 대한 공감으로 승화되었는데, 인물의 미묘한 심리의 움직임, 단순한 줄거리, 뛰어난 풍경 묘사에 대한 그녀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소녀 파데트>는 소녀시대의 상드 자신을 모델로 한 것으로서, 부드럽고 소박한 문제는 프랑스 중부 베리 지방의 방언을 썩어서 작품에 더욱 친밀감을 갖게 하는데, 서문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의 집필 동기는 2월 혁명과 관련이 있다. 열렬한 공화주의자로서 정치활동을 한 그녀는 그해 6월 파리의 시가전에서 민중이 패배하는 것을 보고 몹시 환멸을 느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이처럼 혼란한 시기에는 우수한 작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박한 농촌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 천사 같은 주인공들의 마음이 서로 조화되어 있어, 이상향을 향한 작가의 꿈과 철학이 음악처럼, 흐르는 듯한 시정을 타고 때로는 은은한 목가처럼 때로는 웅장한 교향악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줄기줄기 메아리친다. 넘기 어려운 고개 같으면서도, 꿈과 낭만으로 부푼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엮는 사랑의 심리와 갈등 속에 한 소녀의 마음은 밤하늘의 불꽃처럼 우리 마음에 승화된다. 쌍둥이 랑드리와 실비네의 사랑, 그 한가운데에 귀여운 파데트가 뛰어든다.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면서 각각 다른 성격으로 서로 다른 사랑의 도정을 격는 동안 남들보다 못 생겼지만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파데트의, 사랑에 의한 괴로움과 좀더 높은 사랑을 위한 기도는, 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랑드리뿐만 아니라 고집세고 이기적인 실비네의 뒤틀린 마음까지도 바로 잡아준다. 바르보와 그의 부인, 카이요 씨 등 소박하고 시골사람다운 좋은 마음씨는 동서양의 구별 없이 공통점이 있음을 느낀다. 사랑과 신화가 메마른 우리의 마음속에 꿈과 사랑과 높은 이상을 향한 눈길을 갖다 준다.

때로는 사건의 전개나 끝의 대목 처리에 좀 천진난만한 낙관주의가 깃들어 있고, 영웅주의자가 갑자기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다소 자포자기와 면밀성이 결여되어있고 정신분석이 약간 희박하며, 너무 긴 대사가 웅변 투이긴 하지만, 가짜 농촌 풍경을 그리는 풋내기 오락작품과는 다르다. 상드가 그리는 농촌 풍경은 고요하면서도 웅대하고 겉으론 변화무쌍하면서도 내면엔 평온과 시정이 흐른다. 특히 그녀가 관심을 갖고 친밀감을 갖는 농촌 사람들의 영상을 설치하는 데 있어, 그들의 풍취 있는 몸짓과 말투를 작품에서 재연하고 외면적으론 거칠지만 내부에 숨겨진 미덕을 잘 들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결점이나 악덕 또는 비뚤어진 모순까지 승화시키지는 않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발자크가 그린 음험한 육식동물이나 졸라가 묘사한 인색하고 음탕한 광인과는 달리, 명암이 뚜렷한 상드의 전원소설의 인물들은 훨씬 더 진실성이 있다. 비평가들이 흔히 상드의 작품을 녹색의 요람에서 이루어진 어린애의 순진한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굉장한 시위나 외침보다 더 절실하고 소박하며, 흙냄새와 도덕관념이 풍기는 농촌 풍경이 그려져 있다. 특히 「소녀 파데트」의 머리말에서 상드 자신이 쓴 바와 같이 상드의 사회적 관심도, 혁명적 열정도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이 깔려 있었다.

상드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사랑을 위해서 투쟁했으며, 사랑을 믿고 사랑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다. 상드의 모든 작품들도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녀의 생애와 예술을 통해 본 사랑의 개념은 완성을 보지 못한 사랑이었다. 그리하여 상드는 개인적으로 가장 불행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을 때마다 그녀가 어릴 때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영향 받은 고향 베리 지방의 자연과 흙과 전원을 배경으로 한 전원소설을 썼는데, 소녀시절의 자신을 모델로 한 어린 소녀들, 마리(<마의 늪>)나 파데트(<소녀 파데트>)같은 16세의 소녀들이 사랑으로 성숙되는 과정을 작품화하여 자신의 슬프고 고독했던 현실적인 불행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던 것이다. 이 작품 번역의 대본으로는 파리 가르니에 출판사 것을 선택했는데 상드의 전원소설들 연구와 편집(피에르 살로몽과 장 말리옹)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Si c'est ainsi, dit le père Barbeau en se grattant l'oreille, j'ai bien peur qu'il ne se marie jamais, car la Baigneuse de Clavières a dit, dans les temps, que lorsqu'il serait épris d'une femme, il ne serait plus si affolé de son frère; mais qu'il n'en aimerait jamais qu'une en sa vie, parce qu'il avait le cœur trop sensible et trop passionné.

“만일 그렇다면” 하고 바르보는 귀를 긁적이며 말했다. “언젠가 클라비에르 목욕탕 주인마누라가 그 애는 평생토록 결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한 말 기억나오? 실비네가 만약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처럼 바보같이 동생 랑드리한테 열중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 애는 너무나 감수성이 풍부하고 열정적이어서 평생 한 여자밖에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오로지 단 한 여자밖에는.”

역자 소개       

이재희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조르주 상드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와 유럽의 상드 문학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노앙에서 개최한 상드와 쇼팽 애호가들 모임이나 상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으며 뉴욕 상드 협회 <상드 연구>지 국제 편집인이었고 프랑스 에시롤/노앙 상드 협회 회원이었다. .현재 파리의 상드협회 회원이며 외대 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자서전 연구서 ≪조르주 상드, 문학 상상력과 정원≫주제 연구서 ≪상드 연구 (1, 2)≫가 있고, 번역서 ≪상드 서간집(1, 2)≫, 자전적 애정 소설 ≪렐리아≫, 전원소설 ≪마의 늪≫, ≪소녀 파데트≫, ≪사생아 프랑수아≫들과 동화 ≪할머니이야기≫가 있으며 그 밖의 ≪쇼팽과 상드≫, ≪상드전기≫, ≪상드 문학 앨범≫, ≪상드연구(3)≫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쌍둥이 랑드리와 실비네, 그 사이에 귀여운 파데트가 뛰어든다. 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면서 각각 다른 성격으로 서로 다른 사랑의 도정을 겪는 동안, 남들보다 못생겼지만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파데트의 사랑은 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인 랑드리뿐만 아니라 고집 세고 이기적인 실비네의 뒤틀린 마음까지도 바로잡아 준다.  파데트는 사랑과 신화가 메마른 우리의 마음속에 꿈과 사랑을 향한 새로운 눈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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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 George Sand(프랑스, 1804~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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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www.mimifroufrou.com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적인 가문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세느 강변의 새장수의 딸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상드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 있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속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피가로>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차림의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6살 연하인 시인 뮈세와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그 당시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메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이천 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이었으며 ‘정열의 화신’이었고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남녀평등과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항의하여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를 주장한 처녀작으로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인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등 연이어 나온 소설들도 호평을 받았다.

다음으로 장 레이노, 미셸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여 그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완 씨의 죄≫(1845), 대표작이며 대하소설인 ≪콩쉬엘로≫(1842∼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44), ≪스피리디옹≫(183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상드는 다시 1844년 ≪잔느≫를 필두로 해서 일련의 전원 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원소설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55),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이야기≫를 쓰면서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58)과 ≪발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등을 발표했으며 25편의 희곡과 시, 평론,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180여 편에 달하는 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그녀가 남긴 편지들은 파리의 클라식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조르주 뤼뱅이 26권으로 편집 완성한 방대하고 기념비적인 서간집으로 세계 문학사에서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 동안 교환 서간집으로는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 봐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등이 간행되었다.

해설              
 

■ 국내 최초 소개

≪사생아 프랑수아≫의 머리말에서 전원에 대한 꿈을 ‘세파에 찌들고 지친 영혼이 숨어들고 싶어 하는 향기로운 에덴동산’에 비유하면서, 상드가 떠올리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이 소설을 쓰면서 느낀 즐거움 이었다. 그 시절 상드에게는 위로와 위안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상드는 딸 솔랑주가 조각가 클레젱제와 결혼하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결혼은 솔랑주 자신의 경솔함으로 어쩔 수 없이 치러진 잘못된 결혼이었고, 그 결과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은 머지않아 깨지고 말았다. 쇼팽은 솔랑주보다 앞서서 사태를 직시하고 있었고 변덕스러운 성격의 아름다운 처녀가 폭군의 손에 맡겨지는 것을 딱하게 여겼다.

한편 노앙에서는 솔랑주의 심술과 남편의 난폭한 행동으로 가정 분위기가 곧 불안해졌다. 상드가 양딸처럼 데리고 있던 사촌 여동생 오귀스틴 브로를 솔랑주는 질투했고 증오했다. 브로는 화가 태오도르 루소와 곧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솔랑주가 브로에 관해 악담을 퍼부었고 결국 혼사는 파경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클레쟁제는 빚더미에 몰려 돈이 필요해지자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요구를 드러내 놓고 해왔다.

파리에서 이런 일을 시종 지켜보던 쇼팽은 이 젊은 부부의 편을 들었고, 심지어 그들의 입장에 서서 중재에 나서기까지 했다. 이것이 상드를 불만스럽게 했다. 쇼팽은 상드에게 경멸적이고 냉랭한 편지를 써 보낸다. 이에 상드는 7월 28일자로 너무나 모욕적인 어투의 답장을 써 보냈고, 그리하여 쇼팽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상드로부터 후회한다는 말 한마디, 애정 어린 몸짓이 전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9년간 지속되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끝이 났다. ‘아무런 다툼도, 언쟁도’ 오가지 않았다.

상드가 그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고통스런 시기’라고 당연히 이야기할 만했다.

그해 말에 이르러서 상드는 겨우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아들 모리스의 따스한 효성과 함께 빅토르 보리가 함께 있어주어 상드는 지난날의 악몽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노앙에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바로 이처럼 되찾은 평온한 분위기에 휩싸여 평화로운 전원의 한가운데서 상드는 이 소설을 쓴다. 상드는 이 소설을 밤의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를 옮겨 쓰는 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상드는 친구 롤리나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제 농가에서 있는 밤의 모임에 갔었다. 삼 재배인이 새벽 2시까지 여러 편의 이야기를 했다. 신부의 하녀가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거들어 주기도 했고 그를 대신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도 했다.”

잠시 뒤 롤리나는 이렇게 고쳐 말한다. 이제 그는 ‘여러 편의 이야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제는 단 한 편의 이야기, ‘마치 고백 소설 같은 느낌을 주는 장편의 실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 삼 재배인의 이야기는 고백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생아 프랑수아≫에서도 역시 삼 재배인, 노파, 호기심 많은 처녀, 그리고 주의 깊게 귀 기울이는 듣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골의 밤의 모임을 특징짓는 그런 무시무시한 불가사이한 이야기의 요소는 전혀 없다. 따라서 ≪사생아 프랑수아≫는 밤의 모임에서 이야기되는 그런 전형적인 이야기로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상드 자신이 이 작품의 기원에 대해 한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상드가 한 버림 받은 아이를 우연히 만났고, 며칠 뒤 전원 소설의 기법에 관해 롤리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사실만으로도 상드의 상상력에 불을 당기기에 충분했다.

이런 제일 소재는 소설의 제재를 구성하기에는 불충분했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계속 진전됨에 따라 이미 체험한 추억들과 인상들로 윤색되었다.

양어머니가 양육원에 다시 데려다 주려고 하는 사생아 프랑수아의 운명은 실제로 있었던 한 삽화적 사건이 문학적으로 전환된 것이다. 1843년 3월에 팡쉐트라고 하는 한 여자아이는 라샤트르의 문 근처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사생아 프랑수아≫에서 이 주제를 다시 다루면서 상드는 이와 똑같은 종류의 집념을 선보인다. 상드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대항하고, 부유층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위를 일깨워 준다. 그렇게 해서 ≪사생아 프랑수아≫는 상드의 사회주의적 영감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그것은 소설적 상황, 즉 비정상적인 사랑, 비합법적인 출생, 부모로부터 버려진, 혹은 부모와 헤어진 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혈연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들의 신비로운 애정 등에 대한 상드의 관심과도 관련이 있다. 상드는 이처럼 접근하기 쉬운 것에서 작품의 영감을 자주 얻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생아 프랑수아≫의 또 다른 주제와 접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연상의 여인에 대한 한 청년의 열정, 사랑의 주제이다. 프랑수아의 감정은 역으로 진행되며 그것은 프랑수아가 마들렌의 양자일 뿐이라는 사실로 가능해진다.

상드는 한 여자가 자신보다 연하이거나, 사회적으로 보다 열등한 계층, 혹은 마들렌에 비해 본 프랑수아의 경우처럼 이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젊은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경우를 창안해 내기를 좋아했다. 상드는 정확히 말해서 그런 식의 사랑을 꿈꾸고 그 꿈이 결국에는 실생활로 옮겨지고야 만다는 점에서 상드 자신 그런 상황에 여러 번 처해 있었다. 1847년에 사랑은 그런 모습으로 한 번 더 상드에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마들렌과 프랑수아의 숭고한 사랑을 감싸고 있는 그 독특한 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

상드가 쇼팽을 멀리하면서 그를 버리고 새로이 선택한 사람은 빅토르 보리였다. 빅토르 보리는 1818년생으로 상드보다는 4살이 연하였다. 상드는 그를 1844년부터 알고 지냈다. 보리는 르루 형제의 추천으로 <앵드르의 정찰병>지의 편집인으로 상드에게 발탁된다. 상드는 3년 동안 거의 모성애에 가까운 애정으로 보리를 대했다.

유사점은 그 이외에도 또 있다. 프랑수아가 자니의 친구였던 것처럼 빅토르 보리 역시 상드의 아들 모리스의 친구였다. 또한 두 사람의 나이 차이 역시 5살이었다. 자니는 모리스를 연상시킨다. 모리스 역시 소년 시절에 오랫동안 체질이 허약했고, 커서는 상냥하지만 경박하고 가벼운 청년으로 자란다. 마들렌 블랑셰에게는 오로르 뒤드방의 모습을 여럿 엿볼 수 있다. 불행한 결혼, 강한 자존심, 어딘가 처량한 듯한 모습, 역경 속에서도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비심이 그렇다. 또한 마들렌은 더 멀리는 ≪복음서≫와 ≪성인전≫을 읽으면서 열렬한 신앙심을 품고 있는 젊은 소녀, 오로르 뒤팽의 모습과도 닮았다. 이미지의 일치가 흥미롭다. 행실이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업에 서툴고, 자신이 잘못한 일임에도 남에게 화를 내는 옹졸한 카데 블랑셰의 경우에는 카지미르 뒤드방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린다. 이러한 것들이 소설가가 상상 속에서 즐기는 유희이다.

상드는 배경 묘사에는 그리 많은 수고를 들이지는 않는다. 그저 상드가 사랑하는 ‘검은 계곡’을 묘사하거나 상기시키는 것으로 그친다.

그렇지만 상드는 카데 블랑셰의 물방앗간에 소설적 명칭을 부여하는 일은 신중을 기했다. 그리하여 카데 블랑셰의 물방앗간에 상상의 명칭을 붙이고 상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지명들은 모두 실제와 일치한다. 아마도 게랭 방앗간만이 예외일 것이다.

상드가 고심하는 유일한 문제는 바로 문체에 관한 것이다. 상드는 머리말에서 문체의 조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상드의 야망은 근대어를 사용하는 파리 사람과 자기 지방의 토속어에만 익숙해져 있는 농부가 동시에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문체를 구사하는 것이다. 간혹 상드는 스스로 창안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드의 창조적인 천재성은 문법에 맞는 표현, 비유, 격언 풍의 어법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이 분야에서는 명확한 구별을 짓고 확실하게 시골적인 표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결정짓기가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상드는 일상적인 표현에 엉뚱한 세부적인 의미를 끌어들임으로써 그 표현을 변형시키고 있다. 그 결과 야기되는 서투름은 농부의 문체 같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효과를 낸다. 요컨대 상드는 베리 사투리를 잘 알고 있어서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독자는 19세기의 전원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기사도 연애소설을 각색한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체가 농부의 생활을 실감나게 하고 생동감을 부여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원소설의 매력의 상당한 부분이 바로 이 문체에 있다.

본문 중에서       

Il lui prit la main et le bras, et il ne put lui rien dire du tout. Mais comme tout en trermblant elle voulait aller du côté où étaient Jeannie et Jeannette, il la retint comme de force et la fit retouner avec lui. Et Madeleine, sentant comme sa volonté le rendait hardi de résister à la sienne, comprit mieux que par des paroles que ce n'était plus son enfant le champi, mais son amoureux François qui se promenait à son côté.

프랑수아는 마들렌의 손을 잡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떨고 있는 마들렌을  자니와 자네트가 있는 쪽으로 향하게 했다. 마들렌은 그가 평소와 달리 자신의 의지에 저항하는 것을 느끼면서, 지금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사생아 소년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로서의 프랑수아임을 수많은 말보다 더 또렷이 깨달았다.

역자 소개       
 

이재희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조르주 상드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와 유럽의 상드 문학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노앙에서 개최한 상드와 쇼팽 애호가들 모임이나 상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으며 뉴욕 상드 협회 <상드 연구>지 국제 편집인이었고 프랑스 에시롤/노앙 상드 협회 회원이었다. .현재 파리의 상드협회 회원이며 외대 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자서전 연구서 ≪조르주 상드, 문학 상상력과 정원≫주제 연구서 ≪상드 연구 (1, 2)≫가 있고, 번역서 ≪상드 서간집(1, 2)≫, 자전적 애정 소설 ≪렐리아≫, 전원소설 ≪마의 늪≫, ≪소녀 파데트≫, ≪사생아 프랑수아≫들과 동화 ≪할머니이야기≫가 있으며 그 밖의 ≪쇼팽과 상드≫, ≪상드전기≫, ≪상드 문학 앨범≫, ≪상드연구(3)≫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사랑의 경계선은 존재할까? 박애, 자애, 연정, 우애, 모정, 우정, 성애… 수많은 사랑의 이름들을 모두 칼로 두부 자르듯 확연히 나나눌 수 있을까? 무지개의 경계처럼 사랑도 그 사이 사이에 수많은 그라데이션이 존재한다. 프랑수아와 마들렌의 사랑도 그렇다. 처음에는 연민과 모정에서 시작한 사랑이 점층적으로 다른 색의 사랑으로 변화한다. 자칫 통속적이고 진부하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순수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화신"이라 불렸던 저자 조르주 상드의 천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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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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