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W. F. 헤겔 Georg W. F. Hegel(독일, 1770~1831)


헤겔은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으며, 1778년부터 1792년까지 튀빙겐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 후 1793년부터 1800년까지 스위스의 베른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 청년기 헤겔의 사상을 보여주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여러 미출간 단편들을 남겼다. 첫 저술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가 발표된 1801년부터 주저 정신현상학이 발표된 1807년 직전까지 예나 대학에서 사강사 생활을 했다. 그 뒤 잠시 동안 밤베르크 시에서 신문 편집 일을 했으며, 1808년부터 1816년까지 뉘른베르크의 한 김나지움에서 교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2년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역임한 후, 1818년 베를린 대학교의 정교수로 취임했다. 1831년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자신의 희망대로 피히테 옆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 정신현상학, 논리학, 엔치클로페디, 법철학 강요 등이 있고, 그의 사후에 미학 강의, 역사철학 강의, 종교철학 강의 등이 제자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해설         


헤겔은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여름학기부터 1829년 베를린 대학교 겨울학기까지 대략 다섯 번 정도 미학 또는 예술철학에 관한 강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18년 여름학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1820/21년 겨울학기 베를린 대학교
1823년 여름학기 베를린 대학교
1826년 여름학기 베를린 대학교
1828/29년 겨울학기 베를린 대학교

그런데 정작 미학 강의를 위해 헤겔 본인이 작성한 원고는 현재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헤겔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이 필기해 놓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열두 편의 원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1818년 여름학기에 하이델베르크에서 행한 미학 강의와 관련된 자료는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판본은 헤겔 사후에 그의 제자인 호토(H. G. Hotho)가 베를린 강의에 사용한 헤겔의 수고와 수강자들의 필기 노트들을 모아서 1835년(초판)과 1842년(개정판)에 세 권으로 간행한 것이다. 지금까지 많이 읽힌 한글 번역본(헤겔미학 , , Ⅲ≫, 두행숙 옮김, 나남출판)도 이 판본에 기초한 주어캄프판(G. W. F. Hegel Werke in 20 Bänden, hrsg. von E. Moldenhauer & K. M. Michel,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69∼1971) 제13, 14, 15권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이후 이 판본을 호토판 미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호토판 미학은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근래에 헤겔 미학의 문헌학적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는 바에 의하면, 호토판 미학은 헤겔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라 다분히 편집자인 호토의 견해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상 수강자들의 실제 필기록들이 호토판 미학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면서 이러한 혐의는 더욱더 짙어지고 있다. 호토는 헤겔 미학을 편집하면서 다른 저서들처럼 미학도 완결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분히 그러한 방향으로 헤겔 미학을 편집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호토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헤겔의 수고와 직필 노트들을 ‘재구성’하여 호토판 미학을 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호토는 하이델베르크 강의 노트뿐만 아니라 1820/21년 베를린 첫 강의의 원자료를 편집에서 제외해 버렸다. 그 결과 주로 베를린 시기의 세 편의 미학 강의와 관련된 자료들을 호토 나름으로 재구성하여 펴낸 호토판 미학은 헤겔의 본래 강의 내용에 들어맞지 않는 점들도 마치 헤겔의 것인 양 보여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825년 강의 이전까지 헤겔은 미학 강의를 크게 두 부분, 즉 ‘보편적 부분’과 ‘특수한 부분’으로 나누고, 상징적·고전적·낭만적이라는 세 가지 예술형식들을 거의 동일한 분량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헤겔은 1828/29년 마지막 강의에서 ‘개별적 부분’을 추가하여 근대 예술 등과 관련해서 좀 더 풍부한 예들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미학 강의의 구성과 내용이 변화의 과정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호토판 미학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호토판 미학은 ‘보편적 부분’에서 세 가지 예술형식들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내용을 ‘특수한 부분’이나 ‘개별적 부분’에서 반복함으로써 분량도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나고, 불필요한 중복으로 인해 오히려 내용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근래에 들어와 헤겔 미학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호토판 미학이 헤겔 미학의 정본이라는 생각을 접고, 다양한 필기록들에 기초하여 이전보다 좀 더 다양하고 진척된 성과물들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헤겔 미학 강의를 새롭게 편집, 간행하고 연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A. 게트만ᐨ지페르트(Annemarie Gethmann-Siefert)는, 1833년 베를린 대학에서 행한 호토의 미학 강의 노트와 1835년에 출판된 호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예비연구(Vorstudien für Leben und Kunst)를 헤겔 미학 강의에 관련된 자료들과 비교 검토하여, 호토판 미학이 헤겔 자신의 미학이라기보다는 호토의 미학 강의의 완성본이라는 주장까지 제기한 바 있다.

호토판 미학에 대해 제기되는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최근에는 헤겔이 미학 강의를 했던 시기별로 본래의 필기록들을 새롭게 편집하여 출판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미학 강의는 대략 열두 편 정도가 된다. 이 원자료들 중 1828/29년 강의가 아직 책으로 출판되지 않았으며, 그 외 나머지 베를린 시기의 강의들은 현재까지 다음과 같이 독일에서 새롭게 편집, 출판되었다.

1820/21년 강의:
Vorlesungen über Ästhetik. Berlin 1820/21. Eine Nachschrift. I. Textband, hrsg. von H. Schneider, Frankfurt am Main: Peter Lang, 1995.

1823년 강의: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Kunst. Berlin 1823. Nachgeschrieben von H. G. Hotho, hrsg. von Annemarie Gethmann-Siefert, Hamburg: Felix Meiner, 1998.

1826년 강의:
Philosophie der Kunst oder Ästhetik. Nach Hegel. Im Sommer 1826. Mitschrift F. C. Hermann & Vitor von Kehler, hrsg. von Annemarie Gethmann-Siefert & Bernadette Collenberg-Plotnikov, München: Wilhelm Fink, 2004.

1826년 강의:
Philosophie der Kunst. Vorlesung von 1826. Nachgeschrieben von P. von der Pforten, hrsg. Annemarie Gethmann-Siefert & Jeong-Im Kwon & Karsten Berr, Frankfurt am Main: Suhrkamp, 2004.

이 강의들 중 1820/21년 강의와 1823년 강의의 ‘들어가는 말(Einleitung)’에 해당하는 부분 전체만을 발췌한 것이 바로 이 번역본이다. 처음에는 베를린 강의 ‘들어가는 말’ 네 편 모두를 발췌 번역하여 펴내고 싶었으나, 1828/29년 강의가 아직 독일에서 책의 형태로 출판되지 않은 상태이고, 발췌 번역본의 분량 문제도 있어 우선 1820/21년 강의와 1823년 강의 두 편의 ‘들어가는 말’만 별도로 이 번역본은 소개한다. 1820/21년 강의는 아직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적이 없으나, 1823년 강의는 얼마 전 헤겔 예술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다[헤겔 예술철학(권정임·한동원 옮김, 미술문화)]. 본래의 번역 원고에서는 필기록과 저본으로 삼은 텍스트들의 쪽수를 모두 다 기재했으나, 가독성 등 발췌 번역서가 지녀야 할 장점을 살리기 위해 편집 과정에서 생략했음을 밝혀둔다.

우선 이 두 강의에 관련된 문헌학적 배경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20/21년 강의는 본래 ‘예술철학으로서 미학(Ästhetik als Philosophie der Kunst)’이라는 명칭으로 공고되었고, 매주 5회, 5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었다고 한다. 미학을 강의한 이 겨울학기는 1820년 10월 24일부터 시작하여 1821년 3월 24일에 종강되었으며, 헤겔은 50명 정도의 수강생을 두고 강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강생 중에는 하이네(Heinrich Heine)와 같은 저명한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1820/21년 강의의 원 텍스트는 본래 테르보르크(Sax van Terborg)라는 사람의 유고에 남아 있던 원고다. 이 원고는 직접 강의를 들으면서 작성한 직필 노트가 아니라 추후에 쓴 것이다. 즉 본래의 필기록을 추후에 아셰베르크(Wilhelm von Ascheberg)라는 사람이 정서(淨書)한 것이다.

1820/21년 필기 노트는 4절판 크기 종이에 27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서를 한 아셰베르크는 세 번째 면부터 쪽수를 표기했다. 271면 중 테르보르크가 작성하여 끼워 넣은 면은 114쪽, 그리고 121쪽 중간부터 131쪽까지이고, 132쪽은 비어 있는 면이다. 나머지는 모두 아셰베르크가 정서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표지는 다음처럼 기재되어 있다.

≪미학≫

헤겔 교수의 강의에 의거
1820∼1821년 겨울학기
10월 26일에 시작
빌헬름 폰 아셰베르크가
그의 작스 판 테르보르크에게

Ästhetik

nach
dem Vortrage der Herrn Professor HEGEL
im Wintersemester 1820∼1821.
angefangen den 26sten OCTOBER
WILHELM VON ASCHEBERG
seinem
W. SAX VAN TERBORG.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아셰베르크는 능숙한 필기자(Heftschreiber)로서 다른 학생들의 강의 노트를 유상으로 정서해 주는 일을 했는데, 테르보르크와는 개인적인 친분관계도 있어서 그에게 노트를 정서해 준 것으로 판단된다. 본래 원고 226면과 227면 사이에 끼워져 있던 메모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에 따르면, 226면까지는 아셰베르크 자신이 직접 노트를 베껴 쓴 부분이며, 그 이후 부분은 미덴도르프(Middendorf)라는 사람의 노트를 다시 정서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아셰베르크는 226면까지만 그 내용의 정확성을 본인이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1820/21년 강의는 직필 노트로 남아 있지 않고 한 번 더 걸러진 정서 노트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직필 노트보다는 헤겔 자신의 본래 강의와 좀 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시기의 미학 강의는 소실되었고, 베를린에서의 첫 번째 미학 강의의 원자료로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이 노트밖에 없다. 비록 정서 노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 첫 번째 미학 강의를 통해 베를린에서 헤겔 미학이 발전되어나갈 방향을 조망해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후 헤겔 미학의 풍성한 개념들이 발전되어나갈 기초가 이미 이 시기에 상당 부분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호토판 미학에 의해 가려져 있던 헤겔 사유의 기본 입장을 확인해 보는 자료로 이 첫 번째 베를린 미학 강의는 유일하면서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 강의는 크게 ‘보편적 부분’과 ‘특수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점은 1828/29년 미학 강의를 제외한 나머지 강의와 공통되는 점이다. 이에 비해 호토판 미학은 이렇게 시기별로 상이한 형식적 구분조차 상세히 반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베를린에서 헤겔 미학이 발전되어나가는 과정의 흔적을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1820/21년 강의에 비해, 1823년 강의는 헤겔이 강의한 것을 호토가 강의시간에 직접 받아 적은 직필 노트를 원자료로 삼고 있다. 1823년 여름학기 강의는 ‘미학 또는 예술철학’이라는 명칭으로 주당 4시간짜리 강의였다. 이 강의는 표지를 제외하고 모두 289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추후에 누군가가 연필로 쪽수를 기입해 놓았다. 속표지에는 다음처럼 제목이 기재되어 있다.

≪예술철학≫

헤겔 교수의 강의에 의거
여름
1823년
베를린
H. 호토
Die Philosophie der Kunst
Nach
dem Vortrage d. H. Prof. Hegel.
Im Sommer
1823.
Berlin
H. Hotho

이 호토의 직필 노트의 가장 특징 중 하나는 적지 않은 약식 부호 및 약어들이 사용되고 있고, 특히 여백에 상세한 난외 주석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은 호토가 직접 강의를 받아 쓴 직필 노트에 나중에 많은 교정들을 가했으며, 이해한 내용을 난외 주석에 기재하면서 자기 나름으로 정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1823년 미학 강의를 새롭게 편집 간행한 지페르트 교수의 문헌학적 작업을 통해서도 드러난 바이지만, 다행히도 본래의 직필 부분과 추후에 첨가된 내용들은 잉크색 등의 차이로 비교적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 본래의 미학 강의를 직접 받아 적은 내용이고, 어느 부분이 호토가 이해나 정리를 위해 추가한 것인지 구분 가능하다. 이 점은 호토판 미학에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호토판 미학이 헤겔 미학을 하나의 최종적인 결과물로 보여주는 데 비해, 필기 노트에 기초하여 새롭게 발간된 미학 강의들은 헤겔 미학을 마지막까지 형성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헤겔 철학에 대한 해석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헤겔의 철학 체계를 완결된 결과물로 보고 이러한 체계의 관점에서 헤겔의 모든 저작들을 해석해 내려는 경향이다. 이는 미학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 미학을 소위 변증법적인 삼분법적 도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도 없지 않다. 그런데 헤겔 미학은 이렇게 작위적인 도식에 딱 들어맞지 않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은 예를 들어 세 가지 예술형식에 대한 헤겔 자신의 언급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헤겔은 예술의 형식을 상징적 예술형식, 고전적 예술형식, 그리고 낭만적 예술형식으로 구분한다. 이 세 가지 예술형식에는 개별 예술들의 체계가 대응한다. 즉 상징적 예술형식에는 건축이, 고전적 예술형식에는 조각이, 그리고 낭만적 예술형식에는 회화, 음악, 시문학이 대응한다. 그렇다고 어떤 예술 장르가 하나의 예술형식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예술형식에 대응하는 예술 장르는 대표적인 장르를 의미한다.

헤겔에 의하면 상징적 예술형식의 가장 큰 특징은 내용과 형식이 서로 부적합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절대자는 아직 내용에 적합한 개별적 형태로 표현되지 못하고 이질적인 자연 대상으로 대체될 뿐이다. 이처럼 상징적 예술형식에서는 표현되어야 할 내용과 표현된 것이 어떤 낯설음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 단계의 지배적인 범주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숭고다. 동방의 건축에서처럼 절대자를 적절하게 형상화할 수 없는 무능력은 신들을 위한 숭고한 장소를 제공할 뿐 신들을 구체적으로 형태화하지는 못한다.

이에 비해 고전적 예술형식은 표현되어야 할 내용과 표현된 형식이 완전하게 일치함으로써 미의 이상을 실현한 것으로 서술된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에서 절대자가 개별적인 인간 신체로 구체화되는 것처럼, 고전적 예술형식은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형상화한다. 헤겔에 의하면 그리스인들에게 예술은 종교를 위한 부가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종교다. 특히 헤겔이 고전적 예술형식에서 미 또는 예술의 이상이 진정으로 실현되었음에 주목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낭만적 예술형식은 고전적 예술형식이 성취한 미와 예술의 완성이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해체는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에 머문 상징적 예술형식으로의 퇴행은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예술에 대한 해체이자 초월이다. 헤겔에 의하면 상징에 있어서는 이념의 결핍이 형상화의 결함을 수반하는 데 반하여, 낭만적인 것에 있어서는 이념이 정신과 심정으로서 그 스스로 안에서 완성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더 고차적인 완성을 바탕으로 이념은 자신의 진정한 실재성과 현상을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찾고 또 완성함으로써 외적인 것과의 통일에서 벗어난다. 낭만적 예술형식의 가장 큰 특징은 정신의 내면성이다. 어떤 외적 형식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주관적 내면성이 곧 낭만성이다. 그런데 이 같은 낭만적 예술형식의 특징은 결국 외적인 표현에 있어서 어떤 것도 좋다는 식의 무제한적인 개방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이제 미는 자신의 고귀한 자리에서 강등되고, 불행이나 고통과 같은 추한 것,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들도 예술의 표현 소재로 수용된다. 낭만적 예술형식은 삼차원적 자연성을 최초로 지양하는 회화로 시작하여, 시간성 안에서의 순수 내면의 울림인 음들의 질서로서의 음악을 거쳐, 정신적인 것을 말을 통하여 표상케 하는 시문학에 이른다.

이처럼 ‘추구하기(Erstreben), 도달하기(Erreichen), 뛰어넘기(Überschreiten)’로 진행되는 헤겔의 예술형식론은 어떤 면에서는 순환적이기보다는 직선적이다. ‘상징ᐨ고전ᐨ낭만’의 전개는 ‘분리, 통일, 해체’의 과정으로서, 이것은 ‘원초적 통일ᐨ분열ᐨ재통합’이라는 일반적인 헤겔식의 도식에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사실상 호토판 미학에는 조화롭지 않은 두 측면이 공존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하나는 그리스 고전 예술이 예술의 정점이라는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변증법적 논리 구조에 따라 낭만적 예술형식이 완성의 단계이며 앞선 예술형식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견해다. 이렇게 잘 조화되지 않는 두 입장이 마치 정합적이며 체계적인 듯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호토판 미학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필기 노트들에서는 체계적인 정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 가지 예술형식들이 가치 서열적으로 체계화되기보다는, 예술형식들이 구조적으로 유사한 역사적 기능을 각 시대마다 수행한다는 점에서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이 더 부각된다.

이 같은 점은 특히 ‘예술의 종언’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헤겔 미학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예술형식들이 서열화 되기보다 각 예술형식들의 고유한 의미나 가치가 부각된다면, 예술의 종언이나 죽음은 그냥 예술이 끝나버렸다거나 더 이상 예술이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될 수 없는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겔은 실제로 ‘예술의 종언’이나 ‘예술의 죽음’이라고 직접 표현한 적이 없으며, 이 표현은 헤겔 미학의 수강생들에게서 흘러나온 부정확한 발언에 기인하여 헤겔 해석자들이 유행시킨 것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헤겔이 ‘예술의 종언’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있는 그 유명한 말을 인용해 보면 이러하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신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종교나 우리의 이성문화(Vernunftbildung)는 예술이 최고의 방식을 형성했던 단계를 뛰어넘어 이제 절대자를 의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예술창작과 그 작품들이 지닌 고유한 방식은 우리의 최상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예술작품들을 신처럼 존중하고 숭배할 수 있는 단계를 우리는 이미 넘어섰다. 예술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인상은 좀 더 사려 깊은 방식(besonnener Art)을 띠며, 예술작품들을 통해서 우리 속에 유발되는 것은 좀 더 고차적인 시금석(Prüfstein)과 다른 식의 확증을 필요로 한다. 사상과 반성이 아름다운 예술을 능가했다. 한탄이나 질책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하나의 타락이라고 간주하고, 이 현상을 예술의 진지함과 명랑함을 밀어내려는 지나친 열정과 이기적인 관심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궁핍함이나 시민생활과 정치생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한탄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사소한 관심사에만 얽매여 있는 마음이 예술의 더 고귀한 목적을 향해 해방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성 자체가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유용성만을 지니는 학문 속에서 이러한 궁핍함과 관심에만 헌신하고, 자신을 이렇게 무미건조한 상태에 고착화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어떻든 간에, 이제 예술은 옛날 여러 민족들이 그 속에서 추구하고 발견했던 그러한 정신적인 욕구의 만족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예전에 이 만족은 적어도 종교적인 측면에서 예술과 가장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던 만족이었다. 고대 그리스 예술의 아름다운 시절과 후기 중세의 황금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오늘날에는 우리 삶의 반성문화(Reflexionsbilung)로 인해, 우리는 의지뿐만 아니라 판단과 관련해서도 보편적 관점을 확정하고 특수자를 규정하려는 욕구를 지니게 되고, 보편적 형식들, 법칙들, 의무들, 법들, 준칙들이 [의지와 판단을 결정하는] 규정근거로 타당하고 지배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예술적 관심이나 예술 창작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오히려 생동성(eine Lebendigkeit)이다. 생동성 속에서 보편자는 법칙과 준칙으로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상상(Phantasie) 속에서 보편적이며 이성적인 것이 구체적이며 감각적인 현상과 통일 상태로 유지되듯이, 보편자는 마음과 감각과 함께 동일하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는 그 일반적 상황으로 볼 때 예술에게 형편이 좋은(günstig) 시대가 아니다. 모든 이런 상태들을 고려할 때, 예술은 최고의 규정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지나가버린 과거지사(ein Vergangenes)이자 과거지사로 남아 있다.”

이 ‘예술의 종언’에 관한 헤겔의 언급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헤겔이 예술의 종언을 얘기했다고 해서, 그로부터 모든 예술 활동의 전면적 중단이나 무의미함이 결과하는 것도 아니고, 헤겔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느 시대보다 강렬한 예술적 활동의 시대에 살았던 헤겔이 예술의 종언을 주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예술의 과거성 문제에 대한 연구자들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헤겔의 언급 자체가 예술에 대해서 부적절하다고 해석하는 비판적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의 대표자로 크로체(Benedetto Croce)를 들 수 있다. 크로체는 예술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과 예술 활동을 구분해야 한다고 하면서, 헤겔 미학은 예술 자체에 적대적이며 예술에 대한 추도사라고 한다. 그래서 예술이 이미 죽었다고 선언한 헤겔의 미학에 대한 적절한 비판은 그러한 형이상학적 게임에 참여하기를 거절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본다. 사실상 플라톤(Platon) 이래 예술과 철학의 대결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헤겔의 입장은 전형적으로 철학의 편에 서서 예술을 추방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헤겔은 예술의 존엄성을 플라톤적 비판으로부터 옹호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결국 예술의 철학에 대한 플라톤적 종속관계를 심화시키며, 플라톤적 예술 이해를 극복한다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철저화하고 그 극단까지 몰고 가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이에 비해 헤겔의 언급은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타당하며, 특히 현대 예술의 전개과정과 관련해서도 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대표자로는 가다머(Hans-Georg Gadamer)가 있다. 가다머에 의하면 예술의 종언 정식은 ‘충격적인 냉정함’을 지니며, 어떤 본질적인 면에 적중한다. 그에 따르면 헤겔은 예술에서 과거가 현재하고 있음을 보고 있고, 이는 예술이 우리 모두의 의식 내부에서 실제로 획득한 커다란 새로운 영예로 간주될 수 있다. 그래서 언뜻 예술의 종언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도 사실은 바로 새로운 예술의 시작이 되는 것이라고 가다머는 주장한다. 헤겔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이러한 해석은 현재까지 두 가지 흐름으로 세분되어 전개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체계이론적 미학의 입장인데, 이 입장은 예술이 종교성과 진리요구를 상실함으로써, 다시 말해 헤겔식으로 예술이 ‘과거지사’로 규정됨으로써 오히려 예술이 분리독립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한다는 해석이다.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근대 예술은 종교의 굴레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이 마치 학문처럼 인식을 해야 한다는 부당한 요구로부터도 벗어난다. 이제 예술은 미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활동 자체만으로도 그 목적을 성취한다. 따라서 헤겔의 ‘예술의 종언’ 명제는 종교, 학문 그리고 예술이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제각각 차별화되는 과정에 대한 반응의 표현이고, 이 반응의 결과물이 바로 18세기에 도래한 근대세계로서, 근대세계에서는 사회적 의사소통 형식들이 차별화되고 제도화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보는 헤겔 미학의 긍정적인 점은 그가 선언한 예술의 종언을 통해 비로소 예술의 자율성이 확보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러한 입장은 헤겔 미학 내에서도 자기주장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헤겔 미학을 꼼꼼히 읽어 보면, 헤겔이 예술의 과거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의 양상까지도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낭만적 예술을 다루는 마지막 단계에서 헤겔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하나의 특수한 의미내용에 얽매인다는 것과 오로지 그러한 소재에만 맞는 표현방식은 오늘날의 예술가에게는 과거지사이며, 따라서 예술은 예술가로 하여금 자신의 주관적인 솜씨에 따라 모든 내용−그것이 어떤 방식의 것이든 간에−과 동일하게 관계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로운 도구가 되었다. 그가 형식적인 법칙−모름지기 아름다워야 하며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에 모순되지만 않는다면, 그에게는 그 어떠한 소재라도 상관없다. 오늘날 즉자대자적으로 이러한 상대성을 초월해 있는 소재는 없다. 그리고 설혹 그 소재가 그것을 초월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이 예술에 의해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절대적 욕구는 현존하지 않는다.” 이 언급을 예술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제 더 이상 예술작품이 어떤 외재적 연관 없이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예술의 종언’ 이후라는 것을 헤겔은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의 종언에 대한 마지막 해석의 입장은, 헤겔의 예술의 종언 명제가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해 주면서도, 동시에 내용적인 측면에서 예술 이외의 것과의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은 후마누스(Humanus)라는 개념이다. 이와 관련하여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술의 자기 스스로를 넘어섬(Hinausgehen über sich selber)은 동시에 인간의 자기에로의 복귀, 자기 자신의 가슴으로 내려옴(Hinabsteigen in seine eigene Brust)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예술은 특정 범위의 내용과 관점에 확고히 한정되었던 것을 떨쳐버리고, 이제 후마누스를 자신의 새로운 성자로 만드는 바, 이제 거룩한 것은 [신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심정(Gemüt) 그 자체의 깊이와 높이, 그의 기쁨과 슬픔에 있는 보편인간의 것(das Allgemeinmeschliche), 그의 노력들, 행위들 및 운명들이다. 이에 예술가는 그의 내용을 바로 자기 스스로에 즉해 얻으며, 또한 그는 실제로 자기 자신을 규정하고, 자신의 감정들과 상황들의 무한성을 고찰하고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인간 정신인 바, 이에 인간의 가슴속에서 생동적으로 될 수 있는 것 중에 인간에게 낯선 것은 더 이상 없다.” 이 후마누스와 관련된 헤겔의 언급에 의하면, 예술이 더 이상 종교적 내용에 속박되지 않고 세속화됨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단순히 무가치하고 사소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고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여전히 표현해 낼 수 있다. 헤겔은 특히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일상의 평범하고 작은 것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잘 표현하고 있는 예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헤겔에게 예술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로서도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다. 무한히 다양하고 분열되어 있는 듯 보이는 인간의 삶 속에서, 예술은 여전히 뭔가 보편적 의미를 인간 자신 속에서 발견하고 표현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헤겔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것처럼, 헤겔은 예술이 단지 지나가버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고 그리워하거나 한탄만 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역사적 관점에서나 체계적 관점에서 헤겔은 더 강력한 ‘예술의 부활’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예술의 새로운 부활은 철학이 시대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헤겔의 문제의식에서 볼 때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철학이 예술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시대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헤겔의 대안 제시는 다만 추상적인 사유와 굳어버린 개념의 울타리 속에만 갇힌 채 아름답고 풍성하게 표현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열을 극복한 절대 진리의 구체적 모습은 예술적 감성을 통해서 가장 먼저 표현되고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예술가는 한 시대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전위대’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예술가의 역할을 헤겔은 어디서도 부정한 적이 없다. 헤겔의 미학을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진리는, 우리 시대에 있어 예술의 역할과 의미에 관한 물음은 이미 죽은 헤겔에게 제기하거나 헤겔이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우리 시대의 예술가에게 우리 스스로가 제기하고 풀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이다.

연세대 윤병태 교수님의 지도하에 칸트의 판단력 비판과 매개의 문제라는 석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독일 관념론 미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이후, 헤겔로 박사학위를 받고 칸트와 헤겔의 미학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헤겔 미학을 제대로 한번 번역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문헌학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헤겔 미학을 번역해야 하는지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지만지고전천줄의 제의를 받고 이렇게 두 편의 ‘들어가는 말’만을 발췌하여 번역으로 내놓는다. 앞으로 역자는 헤겔 미학을 완역판으로 내놓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헤겔 미학의 ‘완역’은 앞서 언급한 문헌학적인 이유로 인해 ‘특별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실상 헤겔이 행한 미학 강의 전체의 필기록들을 모아서 완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시기별로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모으고, 거기에 1820/21년 강의를 중심으로 본문을 덧붙여 새로운 완역본을 편집 출판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각 시기별 서론을 통해 비교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헤겔 미학의 가장 원초적인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호토판 미학 뿐만 아니라 얼마 전 1823년 미학 강의가 다행히도 번역 출판되어, 국내에서도 헤겔 미학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이고 다양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본서에서 소개하는 두 편의 ‘들어가는 말’을 서로 비교 검토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일 뿐만 아니라, 기존에 번역 출판된 책들과 비교 검토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운 소일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일이 아름다운 일이니,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모두와 함께 이 작은 책의 출판을 즐기고 싶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820/21년 들어가는 말

예술의 개념 
예술의 분류 
상징적 예술 
고전적(완성된) 예술 
낭만적(근대적) 예술

1823년 들어가는 말

예술에 관한 통념
예술의 개념과 분류
보편적 부분 
특수한 부분 

옮긴이에 대해 



작품 중에서     

Das Kunstwerk darf aber nicht bloß vorübergehenden Eindruck machen; es ist eine Frage, Anrede, Echo für unser Gemüth.

예술작품은 단순히 지나가버리는 인상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예술작품은 우리의 심정에 물음을 던지고 말을 건네며 메아리를 울린다.



옮긴이         

서정혁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칸트철학으로 석사학위를, 헤겔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의사소통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철학의 벼리, 논술 교육, 읽기가 열쇠다−선생님을 위한 읽기 교육의 방법과 활용, 논증과 글쓰기(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헤겔 예나 시기 정신철학, 헤겔의 법철학 강요, 헤겔의 교수 취임 연설문, 피히테의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K. 뒤징의 헤겔과 철학사가 있다. 그 외 독일 관념론, 의사소통교육 및 교양교육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편집자 리뷰    

헤겔의 미학을 강의를 수강했던 학생들의 필기를 통해서라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헤겔은 예술이 단지 지나가버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나 체계적 관점에서 더 강력한 예술의 부활을 꿈꾸었다. 이 책은 헤겔이 1820/21년과 1823년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의 서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헤겔 미학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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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독일, 1770~1831
)

 

헤겔은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으며, 1778년부터 1792년까지 튀빙겐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 후 1793년부터 1800년까지 스위스의 베른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 청년기 헤겔의 사상을 보여주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여러 미출간 단편들을 남겼다. 첫 저술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가 발표된 1801년부터 주저 <<정신현상학>>이 발표된 1807년 직전까지 예나 대학에서 사강사 생활을 했다. 그 뒤 잠시 동안 밤베르크 시에서 신문 편집 일을 했으며, 1808년부터 1816년까지 뉘른베르크의 한 김나지움에서 교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2년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한 후, 1818년 베를린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했다. 주요 저서로 <<정신현상학>>, <<논리학>>, <<엔치클로페디>>, <<법철학 강요>>, <<미학 강의>>, <<역사철학 강의>> 등이 있다. 1831년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자신의 희망대로 피히테 옆에 안장되었다.


내용 소개       

 

<<법철학 강요>>는 헤겔이 처음부터 출판을 위해 저술한 것이 아니고, 법철학 관련 강의록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헤겔이 본격적으로 법철학 관련 강의를 시작한 것은 베를린 대학의 1818-1819년 겨울 학기부터다. 헤겔은 이 겨울 학기에 ‘자연법과 국가학’이라는 강의를 시작했으며, 유사한 강의를 1825년까지 개설했다. 이렇게 강의를 위해 준비된 강의록이 <<법철학 강요>>라는 체계적 형태의 저서로 출판된 것은 1820년이다. 물론 베를린 시기 이전에도 헤겔이 법철학이나 실천철학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헤겔은 예나 시기에 흔히 <자연법 논문>이라고 알려진 글을 발표하거나 <인륜성의 체계>와 같은 글을 쓰기도 했으며, 1803년부터 1806년 사이에 정신철학을 체계적으로 기획하면서 <<법철학 강요>>의 기본 골격을 준비하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헤겔이 <<법철학 강요>>에서 ‘인륜적 삶’을 통해 정초하고자 한 공동체의 모습에는, 분열된 삶을 극복하고 조화롭고 통일된 삶을 지향하던 초기 헤겔의 문제의식이 간접적으로 담겨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법철학 강요>>는 헤겔의 실천적 문제의식을 총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철학 강요>>를 제대로 이해하면, 헤겔이 품고 있었던 실천철학적 문제의식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면, <<법철학 강요>>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독일이 취할 정치적 태도에 관한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 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다. 헤겔은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독일이 어떤 헌법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법률을 성문화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고려하며 자신의 사고를 지속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법철학 강요>>다. 하지만 <<법철학 강요>>를 정독해 보면 이러한 시대적 문제에만 제한되지 않는 헤겔의 철학적 깊이를 접하게 된다. <<법철학 강요>> 전반에 걸쳐 헤겔은 고대와 근대의 정치철학 및 도덕철학과 지속적으로 대결하면서도 그것을 아우르고 뛰어넘는 관점을 보여준다. 그러한 시도가 과연 성공적이었는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고대의 실체적 세계관과 근대의 주체적 세계관을 변증법적으로 매개하려는 헤겔의 문제의식으로 인해, <<법철학 강요>>는 철학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그리고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등과 더불어 정치철학 및 도덕철학의 고전으로 평가되어 왔다. (생략)

머리말 중에서   

 

(중략) 본서는 <<법철학 강요>> 중 주로 본문에 해당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발췌 번역했으며,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부연 설명 부분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함께 번역했다. 총 360개의 절 중 여기에 발췌된 부분은 서문과 서론을 포함하여 총 159개에 해당한다. 양적으로 보자면 <<법철학 강요>>의 거의 5분의 2 정도를 번역한 셈이다. 본 역서는 원전의 구조적 특성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발췌된 절 뒤에 번호를 표기하고 절과 절 사이에 여백을 두었으며, 원서에서 이탤릭체로 굵게 강조된 부분은 그대로 살려 굵은 이탤릭체로 표기했고,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역자가 [ ] 속에 내용을 간략히 보충했다. 그리고 내용상으로 본 역서는 주로 두 가지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째, <<법철학 강요>> 전체의 구성과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가능한 한 <<법철학 강요>>를 구성하는 핵심 부분들을 주제별로 고르게 선별했다. 헤겔의 실천철학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 난해함으로 인해 전체를 아우르는 개괄적 읽기를 시도해 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이 점에서 본 역서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둘째, 본 역서는 가능한 한 현재 우리에게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하여 소개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에서 본 역서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헤겔 철학에 독자들이 좀더 쉽게 접근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바다. 하지만 발췌 번역된 책을 읽는 것에 머물러서는 헤겔 철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결국에는 원전 전체를 통독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역자는 추후에 이 발췌 번역본에서 부족했던 점들을 보완하여 <<법철학 강요>>를 완역할 예정이다. 좀더 좋은 완역본이 나오기 위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날카롭고 차가운 비판이 요구된다. 부디 이 역서에 많은 질타와 비판을 주시기를 바란다.

출판사 서평     
 

‘이성적인 것, 이것이 참으로 현실적이며, 참으로 현실적인 것, 이것이 이성적이다’라는 명구로 기억되는 헤겔의 대표작. 독일 관념론을 완성한 철학자로 평가되는 헤겔은 이 책에서 고대와 근대의 정치철학 및 도덕철학과 지속적으로 대결하면서 고대의 실체적 세계관과 근대의 주체적 세계관을 변증법적으로 매개하려는 문제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철학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본문 중에서     
 

die Philosophie, weil sie das Ergründen des

Vernünftigen ist, eben damit das Erfassen

des Gegenwärtigen und Wirklichen, nicht das

Aufstellen eines Jenseitigen ist, … Was vernünftig

ist, das ist wirklich; und was wirklich ist, das ist

vernünftig.


철학은 이성적인 것에 대한 근본 탐구이기 때문에, 철학은

현재적이며 참으로 현실적인 것에 대한 파악이지, 피안적인 것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 이성적인 것, 이것이 참으로 현실적이며,

참으로 현실적인 것, 이것이 이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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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평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출판사가 주관적으로 부여한 것으로 작품의 가치와는 무관합니다.


역자 소개       
 

서정혁
서정혁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칸트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헤겔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철학의 벼리>>, <<논증과 글쓰기>>(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헤겔 예나 시기 정신철학>>, 헤겔의 <<교수 취임 연설문>>, 피히테의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K. 뒤징의 <<헤겔과 철학사>>가 있다. 그 외 독일 관념론 및 교양 교육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편집자 일러두기 

1. 이 책은 ≪법철학 강요≫의 약 5분의 2를 발췌했습니다.

2. 본 번역본은 주어캄프 출판사(Suhrkamp Verlag)에서 나온 ≪헤겔 전집(G. W. F. Hegel Werke in zwangzig Bänden)≫ 중 제7권을 저본으로 했습니다.

3. 원서에서 이탤릭체로 강조된 부분은 본문에서 굵은 글씨체로 표기했습니다.

4.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옮긴이가 [ ] 속에 내용을 간략히 보충했습니다.

5. 이 작품은 지만지에서 원전을 모두 번역한 완역본도 함께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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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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