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영국, 1564~1616)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3일 런던 북동쪽의 한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tford upon Avon)에서 태어나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을의 성삼위일체교회(Holy Trinity Church)에 안장되었다. 1587년경 홀로 런던에 상경한 20대 초반의 셰익스피어는 극단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 아마 처음에는 극장의 매표소에서 일하거나 관객들이 타고 온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극단의 배우로 일하면서 극본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기간의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러나 1592년경 그가 20대 후반에 이르자 셰익스피어란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점차 런던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극작가로 알려진다. 극작 경력의 초기에는 젊음의 활기가 넘치는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등의 낭만적인 희극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점차 나이가 들고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되면서 <햄릿>, <리어왕>등의 비극을 주로 쓰게 된다. 총 37편의 극작품과 2편의 장시, 154편의 소네트 등을 남긴 셰익스피어는 16,17세기 영국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 오늘날 전 세계에서 대문호로서 추앙받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게 된 데에는, 그가 운 좋게도 풍부한 문학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도 한몫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던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문예 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제반 양상들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성숙한 문학적 또는 문화적 분위기,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문학작품 이상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참고서 역할까지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탁월함을 증명해 주는 또 다른 점은 그의 문학적, 연극적 상상력과 감칠맛 나는 표현력을 들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속한 극장의 구조를 십분 활용하면서 구조상의 제약을 뛰어넘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관객과 독자를 매혹한다. 같은 이야기 소재라도 셰익스피어의 손에 들어가면 모든 이의 정서에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시공을 초월하여 거의 모든 삶의 영역을 탐구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 심지어 현대의 경영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도 셰익스피어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또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처럼 셰익스피어는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숱한 명대사를 남겼다. 작품 속 표현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들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들고, 교묘하고 신비로운 표현은 그 속에 인생의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오늘날 영어의 풍부한 표현력은 셰익스피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의 작품이 가져다 주는 문학적 향취에 취해 감탄하게 된다.



해설         

 이 책은 1979년도 아든판(The Arden Shakespeare)을 기본으로 하고, 옮긴이의 판단에 따라 보다 적절한 구문을 선택하기 위해 1995년도 뉴케임브리지판(New Cambridge)을 부분적으로 참조했습니다. 원작의 약 80%를 발췌해서 번역했습니다.

1. 집필 연대

<한여름 밤의 꿈>의 정확한 집필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간의 관계나 몇 가지 주변적 상황을 통해 1595년에서 1596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작품들 간의 연관성 측면에서 볼 때 <한여름 밤의 꿈>은 그 스토리를 역시 1595년에서 1596년 사이의 집필된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많은 부분 빌려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직공들이 공작의 혼례 축하용으로 공연하는 <피라머스와 시스비>이야기는 두 가문의 단절, 그로 인한 두 젊은 남녀가 겪는 사랑의 난관, 시간차로 인한 오해 때문에 벌어지는 자살 등과 같은 비극적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체 스토리와 거의 유사하다. 심지어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젊은 남녀의 사랑과 도피라는 <한여름 밤의 꿈>의 전반적인 스토리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 차이는 <한여름 밤의 꿈>은 희극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라는 점이다. <한여름 밤의 꿈>의 극중극인 <피라머스와 시스비> 자체는 비극이기는 하지만, 무식한 아테네 직공들이 벌이는 공연이 우스꽝스럽게 진행되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희극에 가깝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관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단편적임을 깨닫고, 유사한 내용인 <한여름 밤의 꿈>를 집필함으로써 이성과 감성 그리고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보다 성숙한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는 주장이 있다. <한여름 밤의 꿈>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한 직후에 쓰였다는 점 역시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학자들은 이러한 순차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주변적 상황을 통해 집필 연대를 추정하는 대표적인 예는, <한여름 밤의 꿈>이 결혼 축하극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극이 엘리자베스 여왕과 친분이 깊은 실제 유명 인사의 결혼식 축하용으로 쓰였다는 주장이다. 가령, 1595년 1월 더비 백작(Earl of Derby)과 엘리자베스 비어(Elizabeth Vere)의 결혼, 또는 1596년 2월 토머스 버클리(Thomas Berkeley)와 엘리자베스 커리(Elizabeth Carey)의 결혼 등이 이 작품의 제작 연대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사건들이다.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한여름 밤의 꿈>은 대체로 1595년에서 1596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2. 판타지의 세계

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결혼이며, <한여름 밤의 꿈>에서만큼 이 주제가 폭넓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작품도 드물다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낭만 희극의 범주를 넘어 셰익스피어가 평생 염두에 두어온 세계관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리고자 하는 세계란 바로 모든 존재 양식들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이며, <한여름 밤의 꿈>에서 이러한 세계에 대한 염원은 몽환적인 판타지의 세계를 통해 구축된다. <한여름 밤의 꿈>의 세계가 돋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여타 작품들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등장인물들이 여러 층위의 다양한 인물군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밑에서부터 살펴보자면 가장 아래에는 아테네의 직공들이라는 노동자 계층이 있다. 그 위에는 아테네의 귀족 인물들, 그 위로는 최상위 지배 계층, 그리고 가장 위층에는 요정들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인물군은 판타지의 세계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드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한다.

극의 전개 과정에서 이러한 다층적 존재들은 불화한다. 계층 간에 불화하고 같은 계층 내에서도 불화한다. 극의 시작 부분은 다분히 비극적이다. 아테네의 귀족인 이지어스는 딸 허미아를 아테네의 통치자인 테세우스 공작 앞으로 데리고 나와 자신의 딸이 아비의 명을 거역하고 다른 남자와 놀아난다며 딸에게 사형선고를 내려달라고 간청한다. 이미 부녀간에 불화가 심각하고, 허미아를 비롯한 네 명의 청춘 남녀들은 서로 엇갈린 사랑을 하면서 불화한다. 이들이 한밤중에 발을 들여놓는 아테네의 숲이라는 판타지의 세계를 지배하는 요정들 역시 불화에 휩싸여 있다. 요정의 왕 오베론과 여왕 티타니아는 사내아이를 놓고 심각하게 대립하면서 요정의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들의 대립은 자연계의 불화까지 야기하여 계절과 계절에 따르는 자연현상이 어긋나게 된다. 요정의 마법으로 인해 연인들의 관계가 민망할 정도로 순간순간 어긋나게 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인간이 당나귀로 변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판타지의 세계라는 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의 분출과 이러한 분출로 인한 혼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혼동의 해결과 궁극적인 화해로까지 확장되는 데 그 의미가 있듯, 아테네 숲의 세계 역시 혼란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요정의 왕과 여왕은 판타지의 악몽을 경험한 뒤 판타지가 동시에 제공하는 치료의 과정을 통해 화해를 이룬다. 인간 연인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난 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악몽의 순간들이 이성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꿈처럼 몽롱하게 희미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이들 간의 불화의 고통은 결혼이라는 사랑의 결합으로 치유된다. 당나귀로 변하는 경험을 한 보틈이라는 직공 역시 악몽에서 벗어나 연극 동료들과 재회하게 되고 당당히 연극 무대에 서게 된다. 모든 존재들이 화해를 이루는 결혼 축하연의 중심에는 아테네의 무식한 직공들이 벌이는 <피라머스와 시스비>라는 극중극이 있다. 이 극중극이 벌어지는 도형적인 상황은 이상적인 조화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한여름 밤의 꿈>의 무대 한복판에서는 직공들의 극중극이 벌어진다. 아테네의 통치자와 귀족들이 관객의 입장에서 극중극 무대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요정들이 인간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끝일까? 물론 <한여름 밤의 꿈>의 무대 위의 상황은 그렇다. 그러나 극장 전체 구도에서 보자면, 이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연극을 보고 있는 실제 관객들을 놓칠 수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 셰익스피어가 버릇처럼 되뇌던인생은 무대다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우리의 인생이라는 연극을 연출하면서 관극하고 있는 신이라는 존재를 동시에 감지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바로 이 작품에서 이렇게 폭넓은 존재의 스펙트럼을 제시해 주면서, 결혼이라는 사건을 통해 모든 불화의 요소들이 화해와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판타지의 세계는 현실 세계에서 이런 방향으로 자양분 역할을 할 때 그 존재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3. 현대적 의의

셰익스피어가 활동을 시작했던 16세기 후반의 영국은 한마디로 전환기였다. 어느 시대인들 전환기가 아닌 시대는 없겠지만, 이 기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적 사건들에서뿐만 아니라 그 밑에 흐르는 이념의 작동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던 분명한 전환기였다. 봉건 체제에서 근대국가 체제로의 전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와 유럽 열강으로의 편입, 상업주의의 부상, 다양한 문화 산업의 번성 등이 눈에 띄는 것이라면, 그 저변에 젠더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인종 문제의 부상, 사회의 유동화에 따른 계층의 와해조짐 등 이념적 변동 양상이 흐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라는 것은 이러한 사회변동 양상을 선구자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한여름 밤의 꿈>의 현대적 의의는 이 작품이 당대 부상하던 젠더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희극이라는 장르 속에 어느 작품보다 훨씬 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젠더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여성의 ‘가변성’과 같은 부정적인 속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남성에 의한 여성 통제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남성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은 언제나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만다. 그러나 상업주의의 부상 등으로 인해 사회의 유동성은 더욱 가시화되고 그럼으로써 여성들의 위치나 활동 영역에도 변화가 오게 되었다. 가령 여성들이 자신들을 속박하는 공간인 가정 밖으로 나가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과 기회가 확대되면서, 남편과 아내의 힘의 균형에 변화가 오게 되었다. 거시적인 견지에서, 당대 사람들은 당연히 남성이어야 할 그들의 군주가 엘리자베스라는 여성임을 목격하면서 젠더 정체성의 혼동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남성들의 불안감을 야기했으며, 그 위험한 변동 양상을 제어하려는 의지를 그만큼 확대시켰다.

이 작품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성 인물은 남성과의 대립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테세우스와 결혼을 앞둔 히폴리타는 여성들만의 국가였던 아마존의 여왕으로, 테세우스가 주도하는 가부장적 힘에 정복당하고 그 체제에 복종하는 과정에 있는 인물이다. 반대로 연이어 등장하는 허미아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아버지에 맞서 이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힘 있게 주장한다. 히폴리타는 패배에 침묵하고 있고, 허미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조금의 주저도 보이지 않는다. 아테네 숲에서도 여성이 가부장 체제에 도전하는 모습은 계속된다.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는 요정의 왕 오베론에게 여성들만의 친목 과정에서 얻게 된 사내아이를 양도하기를 거부하면서 힘에는 힘의 모습으로 맞선다.

숲에 발을 들여놓은 두 쌍의 청춘 남녀가 얽히고설킨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여성 인물들인 허미아와 헬레나에게 더욱 끌리게 된다. 남성 인물들인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어스는 이름 외에는 개성을 드러낼 만한 특징이 없는 밋밋한 인물들인 반면, 허미아와 헬레나는 각자 독특한 성격과 외모를 가진−허미아는 작은 키와 까무잡잡한 피부에 공격적인 성격, 헬레나는 큰 키와 하얀 피부에 소극적 성격−개성화된 인물들이다. 오베론이 마법의 꽃즙을 가지고 사랑의 대상을 바꾸게 만드는 인물들도 남성인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어스다. 허미아를 놓고 동시에 사랑 경쟁을 벌이던 이 남성 인물들은 오베론의 꽃 즙 때문에 허미아를 버리고 헬레나에게 구애를 하게 된다. 역으로 허미아와 헬레나는 자신들의 사랑을 변치 않고 꿋꿋이 지켜나간다. 남성 오베론이 주도하는 마법에 종속되지도 않고 자신들의 주장도 굽히지 않는 것이다. 여성을 가변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이를 남성 통제에 묶어두려는 가부장적 의도는 이 숲에서 오히려 남성이 가변적인 존재로 그리고 여성이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려짐으로써 실패한다. 물론 5막에서 이러한 위험한 여성들−남성의 시각에서 볼 때−은 남성 주도의 결혼 제도에 편입됨으로써 그 위험성이 희석되지만, 그 이전 단계까지는 남성의 세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사회적 이슈들 중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젠더의 혼돈 문제를 이미 400여 년 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의 소재로 삼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여름 밤의 꿈>은 우리 시대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현대적 의의를 갖는다.

옮긴이는 <한여름 밤의 꿈>의 원전을 번역하면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분량을 조절하였다. 이 번역은 1979년도 아든판(The Arden Shakespeare)을 기본으로 하고, 필자의 판단에 따라 보다 적절한 구문을 선택하기 위해  1995년도 뉴케임브리지판(New Cambridge)을 부분적으로 참조했다. 원작의 총 2120행 중에서 약 1740행 즉, 약 80%를 우리말로 옮겼다. 번역 과정에서 옮긴이는 원문의 어감과 우리말 어감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고, 양자택일이 필요할 경우 우리말 어감이나 의미를 살리는 쪽을 택했다. 가령 원문에서 두운이나 각운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노래 형태의 대사와 같은 경우 원문과 우리말 번역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우리말 두운과 각운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원문의 인물명이나 지명 등의 우리말 표기는 2005년도 한국셰익스피어학회가 발간한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의 우리말 번역을 주로 따랐고, 일반적인 원어는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르거나 상식적인 우리말 표현을 사용하였다. 발췌의 기본 원칙은 먼저 전반적인 스토리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생략된 대사로 인해서 갑자기 등장인물이 사라지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러한 원칙 아래에서 발췌로 인해 생략된 부분은, 지나치게 역사나 민속 등 당시의 시대상황과 관련된, 장황한 주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원문 자체의 어감이나 의미가 번역 과정에서 되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부분, 스토리가 중복되는 부분 등이다. 주석은 모두 옮긴이가 붙인 것이다.



작품 중에서     

Things base and vile, holding no quantity,
Love can transpose to form and dignity: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1막 1장)

아무리 쓸모없고 비천한 것이라 해도 사랑은
그것들을 가치 있고 귀한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어.
사랑은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니까.



옮긴이         

김용태는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한 뒤, 1994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에서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의 로마극과 제임스 1세의 통치 양상을 연결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명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유물론적 관점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르네상스기 극작가들이 자신들의 극작품에서 당대 사회 문화 현상들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셰익스피어 영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4년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했고, 저서로 우리말 주석본 <한여름 밤의 꿈>, 공동 집필서인 ≪셰익스피어 해설서 Ⅱ≫,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시공을 초월해서 삶의 모든 영역에 관해 다룬다. 그 가운데 그의 희극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한여름 밤의 꿈>은 불화의 모든 요소들이 결혼을 통해 화해와 조화를 이루게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셰익스피어의 탁월함을 증명해 주는 연극적 상상력과 감칠맛 나는 표현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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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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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영국, 1564~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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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www.london-se1.co.uk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3일 존(John)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Mary Ard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존은 1550년 경 스트랫퍼드-어펀-에이븐에 정착하여 장갑제조업을 시작했고, 1557년에 로버트 아든의 막내딸인 메리 아든과 결혼했으며, 1568년에는 스트랫퍼드의 행정책임자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던 스트랫퍼드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살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인 벤 존슨(Ben Jonson)은  “라틴어는 신통하지 않고 그리스어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셰익스피어를 조롱하고 있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고 천재이다.   

셰익스피어의 생애에서 세례일과 결혼일을 제외하고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셰익스피어는 1582년 11월 28일, 18세가 되던 해에 자신보다 8년 연상인 인근 마을 농부의 딸인 앤 해써웨이(Ann Hathaway)와 결혼했고, 1583년 5월 23일에는 수산나(Susanna)라는 딸이 탄생한다. 앤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황으로 보아 그리 늙은 신부가 아니었지만 셰익스피어가 연상의 아내를 그리 사랑한 것 같지는 않다. 연상의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든 개인적인 성공의 야심에서였든, 아니면 고향에 머무를 수 없을만한 사고를 저질렀든, 셰익스피어는 1585년에 햄닛(Hamnet)과 주디스(Judith)라는 쌍둥이가 태어난 후 곧장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닌다. 1585년 이후 7-8년 간 고향을 떠나 떠돌아 다녔는데, 이 기간 동안 셰익스피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1590년경에야 런던에 도착해 이때부터 배우, 극작가, 극장 주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대작가의 생애는 대부분의 경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포함하지만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그리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다.

런던에 이주한 셰익스피어는 눈부시게 변하고 있던 수도 런던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1558-1603) 통치하던 이 시기의  런던은 많은 농촌 인구가 유입되어 대단히 북적거리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런던은 인구의 급격한 팽창으로 도시는 지저분해지고 많은 문제점이 야기된 도시였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다양한 경제 활동, 다양한 문화 활동과 행사, 특히 빈번한 연극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흥을 제공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1590년 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는데,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기는 더해 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한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몇 편의 장시와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37편의 희곡 작품들은 상연 연대에 따라 대개 4기로 분류된다.

1기는 습작기(1590-1594)로 이 기간 동안 주로 사극과 희극을 집필했지만 그리 주목할 만한 극작품은 없다. 2기는 성장기(1595-1600)로 1595년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낭만 희극을 상연하여 호평을 받으면서 습작기를 벗어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12야>> 등의 낭만희극과 <<베니스의 상인>> 등 많은 희극작품들이 상연되었고, <<헨리 4세>> 1부와 2부 같은 역사극과 <<줄리어스 시저>>라는 로마극이 상연되었으며, 본격적인 비극으로는 첫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상연되었다. 이를 통해 비극과 희극과 사극이란 모든 장르에 탁월한 극작가로서 명성을 쌓게 된다. 셰익스피어를 세계 문학사에서 불후의 명성을 지닌 작가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제3기에 집필된 극작품들일 것이다.

제 3기는 원숙기(1601-1607)로 이 기간 중 4대 비극작품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가 상연되었다. 이들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깊은 인생 통찰을 보여주고 있음과 동시에 걸출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있다. <<햄릿>>에서는 우유부단한 주인공 햄릿을 통해 복수에 관련된 윤리성, 삶과 죽음의 문제, 정의와 불의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오셀로>>에서는 무어인 장군 오셀로와 베니스의 귀족 여성 데스데모나, 그들 사이에서 이간질을 일삼는 이아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신뢰와 질투의 문제를, <<리어왕>>에서는 리어왕과 그의 세 딸인 코델리어, 거네릴, 리건의 이야기를 통해 효와 불효, 말과 진실, 외양과 실재의 문제를, <<맥베스>>에서는 야심에 찬 맥베스와 그의 아내가 자행하는 찬탈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문제를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상연된 것도 이 시기이다.

제 4기(1608-1613)에 들어 셰익스피어는 비희극이란 새로운 장르를 시험하는데, 이 시기 동안 대중들의 감상적인 기호에 부합하는 4개의 비희극이 상연되었다. 이 시기에 상연된 <<폭풍우>>는 셰익스피어의 달관된 인생관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이제 연희는 끝났고, 지구의 삼라만상은 마침내 용해되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인간은 “꿈과 같은 물건이어서, 이 보잘것없는 인생은 잠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4막 1장) 말하는데, 이는 무대에 대한 셰익스피어 자신의 고별사로 받아들여진다.

37개의 작품 전부를 과연 대학교육도 받지 않은 장갑제조업자의 아들 셰익스피어가 혼자 집필했을까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어떤 학자는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저자라고 추정하기도 하고 에섹스 백작 또는 옥스퍼드 백작이 실제 저자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셰익스피어라는 천재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실제 삶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

다음의 샤뮤엘 존슨의 논평은 아마 셰익스피어를 가장 적절하게 평가하는 글일 것이다. “보편적인 자연을 올바르게 재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많은 사람들을 오래도록 즐겁게 할 수 없다. . . . 셰익스피어는 어느 작가보다도 자연의 시인이다. 즉 그는 독자들에게 삶과 세태의 모습을 충실히 비추어 주는 거울을 들어 보이는 시인이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 . . 공통의 인간 본성을 지닌 인류의 진정한 자손들이며 . . . 그가 그린 인물들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전 체계를 움직이게 하는 보편적인 감정과 원칙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개별적 인간이라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종(種)이다.”

셰익스피어는 <<뜻대로 하세요>> 2막 7장에서 제이퀴즈의 입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다음의 7단계로 구분한다. “세상은 무대요 온갖 남녀는 배우.  각자 퇴장도하고 등장도 하며 주어진 시간에 각자는 자신의 역을 하는 7막 연극이죠. 첫째는 애기 장면. 유모의 팔에 안겨 울며 침을 흘리죠. 다음은 킹킹대며 우는 학동. 가방을 메고 아침에 세수해서 반짝이는 얼굴로 달팽이처럼 싫어하며 학교로 기어 들여가죠. 다음은 애인. 용광로처럼 한숨지으며 연인의 눈썹을 찬미하여 바치는 슬픈 노래를 짓고.  . . . 이상하고 파란 많은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장면은 제 2의 소년기인데, 망각만이 있을 뿐. 이빨도, 시력도, 맛도 아무 것도 없는 마지막 장이죠.” 셰익스피어는 53세인 1616년 4월 23일 사망하여 고향의 성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에 묻히게 된다. 그의 흉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푸스는 그를 소유한다.”


내용 소개          

<<줄리어스 시저는>>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의 하나이다. 시저의 살해라는 중요 사건을 극화한 이 작품은 다양한 인간성과 권력, 그리고 현실과 이상에 대한 작가의 심오한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앤토니와 브루터스의 연설 등 수많은 명대사와 명구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명작이다.

머리말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는 시저 살해라는 로마 역사의 특별히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1598년과 1601년 사이에 출판된 이 작품의 정확한 창작연도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598년을 유력한 연도라고 간주하고 있다. 주요출처는 1597년 노스(North)가 영역하여 출판한 플루타크(Plutarch)의 <<영웅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저 살해에 관련된 흥미로운 사건은 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는 출전으로부터 작품의 골격을 가져오고 있지만, 인물의 형상화는 출전과 차이가 많다.

셰익스피어는 플루타크보다 줄리어스 시저를 다소 부정적으로 재현한다.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에게 루퍼칼 축제에서 경기 도중 아내를 스쳐 달라고 주문하는 시저를 미신을 믿는 인물로 재현한다. 그러면 아내가 불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시저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특히 카시어스의 입을 통해 시저의 신체적 약점을 강조한다. 카시어스에 따르면 시저는 격랑에 휩싸인 타이버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렸으며, 스페인 전쟁터에서 열병에 걸려 벌벌 떨며 발작을 했으며, 병든 계집애처럼 신음했다. 셰익스피어는 또한 시저가 간질병에 걸렸고, 한쪽 귀가 먹은 인물로 제시한다. 셰익스피어는 시저의 신체적인 약점뿐만 아니라 그의 오만성 또한 강조한다. 3막 1장에서 심버가 형의 사면을 청했을 때, 시저는 자신의 마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북극성”처럼 확고부동하다고 말하며, 올림포스 산과 같은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고 질책한다. 이 장면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시저의 오만성과 독재자 시저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반면 셰익스피어는 로마의 이상을 지키려는 브루터스를 원전보다 다소 긍정적으로 재현한다.

브루터스의 덕성이 강조되고, 시저의 부정적인 측면이 과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저 시해를 둘러싼 브루터스와 안토니의 대결을 다루고 있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의 비중은 적지 않다. 시저가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는 몇몇 장면에 제한되어 있지만, 사후에도 그는 여전히 모든 이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힘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생략)

본문 중에서     
 

Why Brutus rose against Caesar? This is my answer.

Not that I loved Caesar less, but that I loved Rome more.

Had you rather Caesar were living, and die all slaves,

than that Caesar were dead, to live all free men?


왜 내가 시저에게 대항해 일어섰느냐고? 내 답은 이러하오.

시저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여러분은 시저가 죽고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는,

시저가 살고 여러분 모두가 노예로 살기를 바랍니까?

출판사 서평     
 

세계문학사의 거물답게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 ≪리처드 3세≫에 이어 벌써 세 번째로 <지만지> 리스트를 장식한다. “브루터스, 너마저?”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작품. 제목은 ≪줄리어스 시저≫지만 주인공은 브루터스와 안토니. 셰익스피어는 천재적 언어감각으로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브루터스와 안토니라는 걸출한 두 영웅을 창조한다.


역자 소개     

김종환

편역자 김종환 교수는 1981년 계명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2년에 미국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에 제4회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제1회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2006년에는 원암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6년부터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교육센터장과 통번역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영어영문학회의 섭외이사와 한국셰익스피어학회의 편집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와 타자>>와 <<Introduction to Korean Mask-Dance Drama>>가 있으며, <<연극개론>>, <<햄릿>>, <<맥베스>>,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번역서가 있다.

편집자 일러두기 

이 작품은 원전의 약 70% 정도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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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평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출판사가 주관적으로 부여한 것으로 작품의 가치와는 무관합니다.

본 포스트의 저작권은 편역자와 출판사에 있으므로, 무단 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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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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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Shakespeare, William (영국, 1564~1616)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1564년 4월 23일 존(John)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Mary Ard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존은 1550년경 스트랫퍼드ᐨ어폰ᐨ에이븐(Stratford-Upon-Avon)에 정착하여 장갑제조업을 시작했고, 1557년에 로버트 아든의 막내딸인 메리 아든과 결혼했으며, 1568년에는 스트랫퍼드의 행정 책임자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던 스트랫퍼드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세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인 벤 존슨(Ben Jonson)은 “라틴어는 신통하지 않고 그리스어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셰익스피어를 조롱했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고 천재이다.

셰익스피어의 생애에서 세례일과 결혼일을 제외하고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셰익스피어는 1582년 11월 28일, 18세가 되던 해에 자신보다 8년 연상인 인근 마을 농부의 딸인 앤 해서웨이(Ann Hathaway)와 결혼했고, 1583년 5월 23일에는 수산나(Susanna)라는 딸이 탄생한다. 앤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황으로 보아 그리 늙은 신부가 아니었지만 셰익스피어가 연상의 아내를 그리 사랑한 것 같지는 않다. 연상의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든 개인적인 성공의 야심에서였든, 아니면 고향에 머무를 수 없을 만한 사고를 저질렀든, 셰익스피어는 1585년에 햄닛(Hamnet)과 주디스(Judith)라는 쌍둥이가 태어난 후 곧장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닌다. 1585년 이후 7∼8년간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녔는데, 이 기간 동안 셰익스피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1590년경에야 런던에 도착해 이때부터 배우, 극작가, 극장 주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대작가의 생애는 대부분의 경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포함하지만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그리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다.

런던에 이주한 셰익스피어는 눈부시게 변하고 있던 수도 런던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이 통치하던 이 시기의 런던은 많은 농촌 인구가 유입되어 대단히 북적거리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런던은 인구의 급격한 팽창으로 도시는 지저분해지고 많은 문제점이 야기된 도시였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다양한 경제 활동, 다양한 문화 활동과 행사, 특히 빈번한 연극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흥을 제공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1590년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는데,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인기는 더해 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한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몇 편의 장시와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37편의 희곡 작품들은 상연 연대에 따라 대개 4기로 분류된다.

1기는 습작기(1590∼1594)로 이 기간 동안 주로 사극과 희극을 집필했지만 그리 주목할 만한 극작품은 없다. 2기는 성장기(1595∼1600)로 1595년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낭만 희극을 상연하여 호평을 받으면서 습작기를 벗어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12야≫ 등의 낭만 희극과 ≪베니스의 상인≫ 등 많은 희극 작품들이 상연되었고, ≪헨리 4세≫ 1부와 2부 같은 역사극과 ≪줄리어스 시저≫라는 로마극이 상연되었으며, 본격적인 비극으로는 첫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상연되었다. 이를 통해 비극과 희극과 사극이라는 모든 장르에 탁월한 극작가로서 명성을 쌓게 된다. 셰익스피어를 세계 문학사에서 불후의 명성을 지닌 작가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제3기에 집필된 극작품들일 것이다.

제3기는 원숙기(1601∼1607)로 이 기간 중 4대 비극작품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가 상연되었다. 이들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깊은 인생 통찰을 보여주고 있음과 동시에 걸출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있다. ≪햄릿≫에서는 우유부단한 주인공 햄릿을 통해 복수에 관련된 윤리성, 삶과 죽음의 문제, 정의와 불의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오셀로≫에서는 무어인 장군 오셀로와 베니스의 귀족 여성 데스데모나, 그들 사이에서 이간질을 일삼는 이아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신뢰와 질투의 문제를, ≪리어왕≫에서는 리어왕과 그의 세 딸인 코델리어, 거네릴, 리건의 이야기를 통해 효와 불효, 말과 진실, 외양과 실재의 문제를, ≪맥베스≫에서는 야심에 찬 맥베스와 그의 아내가 자행하는 찬탈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문제를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상연된 것도 이 시기이다.

제4기(1608∼1613)에 들어 셰익스피어는 비희극이란 새로운 장르를 시험하는데, 이 시기 동안 대중들의 감상적인 기호에 부합하는 네 개의 비희극이 상연되었다. 이 시기에 상연된 ≪폭풍우≫는 셰익스피어의 달관된 인생관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이제 연희는 끝났고, 지구의 삼라만상은 마침내 용해되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인간은 “꿈과 같은 물건이어서, 이 보잘것없는 인생은 잠으로 끝나는 것”(4막 1장)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무대에 대한 셰익스피어 자신의 고별사로 받아들여진다.

37개의 작품 전부를 과연 대학 교육도 받지 않은 장갑제조업자의 아들 셰익스피어가 혼자 집필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어떤 학자는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저자라고 추정하기도 하고 에섹스 백작 또는 옥스퍼드 백작이 실제 저자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셰익스피어라는 천재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실제 삶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

다음의 새뮤얼 존슨의 논평은 아마 셰익스피어를 가장 적절하게 평가하는 글일 것이다. “보편적인 자연을 올바르게 재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많은 사람들을 오래도록 즐겁게 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어느 작가보다도 자연의 시인이다. 즉 그는 독자들에게 삶과 세태의 모습을 충실히 비추어주는 거울을 들어 보이는 시인이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공통의 인간 본성을 지닌 인류의 진정한 자손들이며… 그가 그린 인물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전 체계를 움직이게 하는 보편적인 감정과 원칙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개별적 인간이라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종(種)이다.”

셰익스피어는 ≪뜻대로 하세요≫ 2막 7장에서 제이퀴즈의 입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다음의 7단계로 구분한다. “세상은 무대요, 온갖 남녀는 배우. 각자 퇴장도 하고 등장도 하며 주어진 시간에 각자는 자신의 역을 하는 7막 연극이죠. 첫째는 아기 장면. 유모의 팔에 안겨 울며 침을 흘리죠. 다음은 킹킹대며 우는 학동. 가방을 메고 아침에 세수해서 반짝이는 얼굴로 달팽이처럼 싫어하며 학교로 기어 들어가죠. 다음은 애인. 용광로처럼 한숨지으며 연인의 눈썹을 찬미하여 바치는 슬픈 노래를 짓고… 이상하고 파란 많은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장면은 제2의 소년기인데, 망각만이 있을 뿐. 이빨도, 시력도, 맛도 아무것도 없는 마지막 장이죠.” 셰익스피어는 53세인 1616년 4월 23일 사망하여 고향의 성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에 묻히게 된다. 그의 흉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푸스는 그를 소유한다.”


내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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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원전의 약 70% 정도를 발췌한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 가운데 ≪베니스의 상인≫은 특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인공 샤일록은 유대인을 언급하는 곳에서 너무나도 많이 인용되는 인물이고, 포샤는 현명한 여성의 전형으로 늘 인용되고 언급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두 인물은 햄릿과 마찬가지로 역사상 실존하는 어느 인물보다 잘 알려진 인물이다. 또한 이 작품의 세 개의 상자 플롯이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한 차용 증서 플롯이나 반지 플롯은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구성해 내어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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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평점은 출판사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작품의 가치와는 무관합니다.


머리말 중에서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10편의 비극,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몇 편의 장시와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고전으로 남아있다. 셰익스피어를 두고 벤 존슨은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not of an age, but for all time)”이라고 극찬했고, 존 드라이든은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했으며, 샤뮤엘 존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거울”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찬사의 근거는 걸출한 등장인물의 창조와 인간 본성에 관한 심오한 해석과 시적인 묘미와 아름다움을 드러내 주는 그의 천재적 언어 감각이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 가운데 <<베니스의 상인>>은 특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인공 샤일록은 유대인을 언급하는 곳에서 너무나도 많이 인용되는 인물이고, 포셔는 현명한 여성의 전형으로 늘 인용되고 언급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두 인물은 햄릿과 마찬가지로 역사상 실존하는 어느 인물보다 잘 알려진 인물이다. 또한 이 작품의 세 상자 플롯이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한 차용증서 플롯이나 반지 플롯은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구성해내어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는다.


차례
해설 ··························          7
지은이에 대해·····················    14
나오는 사람들·····················    21
제 1막·························         23
제 2막·························         49
제 3막·························         89
제 4막························        133
제 5막························        161

옮긴이에 대해····················    181

역자    김종환  계명대 영문학과

김종환은 1981년 계명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2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에 제4회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제1회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2006년에는 원암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6년부터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영어영문학회의 섭외이사와 한국셰익스피어학회의 편집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와 타자≫가 있으며, ≪연극개론≫, ≪햄릿≫, ≪맥베스≫,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번역서가 있다.


편집 후기
  계명대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을 뵈었다. 그동안 셰익스피어의 글이 어떤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어떤 식으로 발췌를 하는 것이 좋은지 전혀 모르던 나에게 막힌 길을 뚫어주셨다. 셰익스피어 전공 선생님들의 내공이란...

  원래 ≪베니스의 상인≫은 2월 출간 예정이었다. 하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1월로 출간 일정을 바꿔야 했다. 또다시 재게 재게! 나에겐 조급함이 몰려왔지만, 선생님께서는 여유를 좀 찾으라는 듯 바로바로 원고를 손봐주셨다. 나 혼자만 다급한 것은 아닌지...

  ≪베니스의 상인≫의 각주에는 기가 막힌 반전이 있다. 한 대사의 의미를 고찰해 나가다가 마지막에 ‘...과연 그럴까?’로 끝이 나는 것이다. 정말 이 대사가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끔 한다. 현명한 포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듯하다. “당신은 매우 조급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2008년 1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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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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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Shakespeare, William(영국, 1564~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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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르네상스 영국 연극의 대표적 극작가로서 사극, 희극, 비극, 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창작의 범위와 당대 사회의 각계각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관객층에의 호소력으로 크리스토퍼 말로, 벤 존슨, 존 웹스터 등 동시대의 탁월한 극작가 모두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특히 유럽 본토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된 영국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교차적 흐름 속에서 그가 그려낸 비극적 인물들은 인간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가장 심오한 극적 구현으로 간주된다. 1580년대 말로의 주인공들이 중세적 가치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상승적 에너지의 영웅적 면모를 구현하고 있고, 1610년대 웹스터의 주인공들이 인문주의적 가치의 이면에 놓인 어두운 본능의 세계에 함몰되는 추락의 인간상을 대변한다면, 1590∼1600년대에 등장한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은 중세적 속박과 르네상스적 해방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과도기의 산물로서 그러한 상승과 추락의 변증법을 극명하게 체현하고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초시대성을 획득하는 극소수의 작가 반열에 드는 것은 특정한 시대정신의 명징한 관념적 표상이 아니라 무한한 모순의 복합체로서의 인간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롭게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분열적으로 모순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와 문예를 혁신하는 원동력이었다면, 그러한 인식의 비등점을 이룬 낭만주의, 모더니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활발히 탐구되고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고전임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내용 소개


이 책은 총 3887행 가운데 약 2412행을 발췌하였습니다.

강력했던 군주 헨리 5세 사후, 그의 유약한 아들 헨리 6세의 통치하에 있던 15세기 영국은 왕가인 랭커스터 가문과 그 친척이자 경쟁자였던 요크 가문의 권력투쟁으로 삼십여 년의 내란을 겪는다. 두 가문이 각각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문장으로 했던 까닭에 이 내란을 ‘장미전쟁’이라 한다. 헨리 6세와 그의 태자(‘최후의 랭커스터’)의 죽음으로 전쟁은 에드워드 4세가 이끄는 요크 가의 승리로 끝난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사의 이 기간을 연대기적으로 극화한 작품은 그의 출세작으로 간주되는 ≪헨리 6세 3부작≫이다. 이어서 발표된 작품이 바로 ≪리처드 3세≫이다. 이 극은 에드워드 4세의 짧은 통치 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동생 리처드 3세 때의 이야기이다. 이 시기 영국은 귀족들의 반란으로 다시 내란에 휩싸였고, 결국 랭커스터 가의 외척이자 튜더 왕조의 시조가 된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에 의해 평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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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평점은 출판사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작품의 가치와는 무관합니다.


머리말 중에서
역사적 배경: 장미전쟁

강력했던 군주 헨리 5세 사후, 그의 유약한 아들 헨리 6세의 통치 하에 있었던 15세기 영국은 왕가인 랑카스터 가문과 그 친척이자 경쟁자였던 요크 가문의 권력투쟁으로 삼십여 년의 내란을 겪는다. 두 가문이 각각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문장으로 했던 까닭에 이 내란을 “장미전쟁”이라 한다. 헨리 6세와 그의 태자(“최후의 랑카스터”)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전쟁은 에드워드 4세가 이끄는 요크가의 승리로 끝난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사의 이 기간을 연대기적으로 극화한 작품은 그의 출세작으로 간주되는 ≪헨리 6세 삼부작≫이다. 이어서 발표된 작품이 바로 ≪리차드 3세≫로서 이 극은 에드워드 4세의 짧은 통치 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동생 리차드 3세 통치 하에서 귀족들의 반란으로 영국이 다시 내란에 휩싸이고, 마침내 랑카스터 가의 외척이자 튜더 왕조의 시조가 된 리치몬드 백작 헨리 튜더에 의해 평정되기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리차드 3세: 역사와 허구

역사적 기록은 두 모습의 리차드를 보여주고 있다. 튜더 왕조 하에서 토마스 모어가 기술했던 리차드 3세의 전기는 그를 친형 클라렌스 공작의 암살을 포함하여 수많은 정적을 숙청하고 적통의 왕위 계승자인 조카(에드워드 4세의 아들)를 살해함으로써 권좌를 찬탈한 잔학과 음모의 화신이며 파괴와 학살을 자행했던 폭군으로 묘사한다. 특히 소아마비의 결과로 보이는 기형적 척추와 한쪽 다리의 불구는 내면의 절대악에 대한 징표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토마스 모어 이전의 파편화된 기록들은 그가 전사로서의 용맹함과 출중한 지략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그의 몰락 또한 폭정의 결과이기보다는 봉건귀족들의 권리를 축소하고 그 군사력과 재산을 중앙정부로 귀속시키려는 개혁정책에 대한 귀족들의 저항에 기인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차례
해설 ·················        9
지은이에 대해 ············· 22

나오는 사람들·············  25
프롤로그 ···············     27
제1막 ················       29
제2막 ················       75
제3막 ················       89
제4막 ···············      121
제5막 ···············      157
옮긴이에 대해 ············172


역자    강태경 이화여대 영문과
 
강태경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와 영국 르네상스 연극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당대의 사회사적 맥락에서 극작품들의 의미를 규명하는 일련의 논문과 모더니즘ᐨ실존주의 시대의 셰익스피어 공연들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드라마투르그로서 국내 셰익스피어 공연들에 참여하고 있다. 현대 미국 연극의 대표적 작품들에 대한 공연학적 연구를 병행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에쿠우스>의 브로드웨이 공연에 대한 일련의 문화사적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다. 저서로는 ≪희곡의 연출적 독서 : <밤으로의 긴 여로>를 분석모델로≫, ≪셰익스피어/현대 영미극의 지평≫(공저), ≪현대 영어권 극작가 15인≫(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오이디푸스 왕≫이 있다.

편집 후기

  계약을 하러 이화여대에 선생님을 찾아뵈러 갔다. 선생님께서는 1월에 책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원고를 12월 3일까지 준단다. 정말일까?

  정말이었다. 정확히 하루의 오차도 없이 12월 3일에 원고가 들어왔다. 일정이 촉박하여 원고에 오류가 많지는 않을까?

  아니었다. 띄어쓰기조차도 별로 틀리지 않은 원고였다. 감탄했다.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게다가 내용까지 흥미진진하니... 매우 쉽게, 금세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라 자만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레이아웃을 하다 보니, 긴 행을 한 줄에 담을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의 판형이 너무 작은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원고 마감일쯤에 지방을 다녀오신다고 한다. 재게 재게 디자인을 마무리하고, 선생님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역시 너무 급하면, 사고가 난다. 일을 쉽게 하려고 ‘찾아 바꾸기’로 원고를 수정하다 보니 등장인물이 바뀌게 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이때는 이런 오류가 생긴지 몰랐다.)

  선생님께서 그러한 오류를 전부 잡아내 주셨다. 그리고 행도 전부 나눠주셨다. 주말, 하루 만에 모든 걸 하셨다. 또다시,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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