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 (일본, 1892 ~ 1927)
그를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이지파, 국민작가, 청춘의 작가 등등. 가장 많이 듣는 칭호는 일본 근대문학의 챔피언이라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도 관점에 따라 시비가 많을 것 같다. 아쿠타가와(芥川)는 1892년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1927년 36세에 도쿄에서 자결했다. 생후 8개월 만에 생모의 정신분열증으로 외가에 맡겨져 양자로 남게 된다. 그러한 기아 및 양자 체험이 그의 예술과 인생의 전반을 결정하게 된다. 타고난 수재형에다 학자형이던 그는 소위 엘리트코스라 불리는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교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청년 시절 서구 근대문학의 세례를 받게 되고, 예기치 않게 대학 재학 중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에게 극찬을 받아 습작기도 없이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그 후 작가로서의 생은 비록 10여 년에 지나지 않지만, 무려 140여 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으니 얼마나 치열하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장편은 물론이거니와 중편마저 쓸 수 없었던 이 단편의 명수는, 작품 대부분이 동서고금 작품들의 패러디로 지적될 정도로 창의성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일찍이 세계 각국에서 평가되어 있을 정도로, 박학한 지식과 스토리에 뛰어난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으로 문학사에 자리 잡고 있다.
아쿠타가와는 탐미주의나 자연주의나 인도주의 같은 사상적 테두리를 싫어했으며, 문학 이념의 벽을 넘어 보편에 닿고자 열망했다. 그는 일본 전통 미학과도 거리를 둔 채 인간 보편의 심리를 추구했는데, 바로 그러한 일반성에 그의 미학의 진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과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그저 멍한 불안 때문이라는 유서만을 남기고 죽고 말았듯이, 그가 구하던 이데아란 오히려 지상에서 아득히 먼 별빛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현재 그의 이름은 가장 권위 있는 신인 작가상의 타이틀로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에게 문학적 세례를 준 것으로 유명하다.
해설
이 책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대표 단편 세 편을 발췌하지 않고 모두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1987년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芥川龍之介全集)≫을 사용했습니다.
아쿠타가와는 그 이름뿐 아니라 작품도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으며 번역도 꽤 되어 있다. 그리고 근자에는 국내 아쿠타가와 연구가들이 모여 전집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을 하면서 새삼 느낀 점이지만, 문학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여정이 참으로 다난하다 싶다. 운문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소설 작품도 그러하다. 이렇게 말하면 엄살로 보이겠지만, 말맛을 살려야지, 생생하게 전달해야지 하는 부담감과 함께, 아쿠타가와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아쿠타가와의 그 신경질적인 언어감각에 사로잡혀 헤어날 수 없었다.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지옥변>이었다. 시대적·문화적 코드가 일치하지 않아서 왕초보 번역가인 나로서는 거듭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의복, 주거, 자연의 이름 등을 우리말에 어울리게 옮기는 작업은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저본으로는 1987년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芥川龍之介全集)≫을 사용했다. 세 편 모두 단편이라는 점과 또 서술적 특징 때문에 발췌 및 요약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축자적으로 번역했다. <지옥변>같이 시종이 상전에게 아뢰는 서술 형식이거나 <갓파>처럼 광인이 서술자인 경우, 그 서술적 말맛을 그대로 살려보고자 했다. 다만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아쿠타가와식의 우회적 어법이나 영문학도로서 구사한 영어식 표현 등은, 그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모르는 척 간결하게 혹은 우리말에 맞게 바꿔버리기도 했다.
작품 선택에서는 나름대로 의도한 바가 있다. 즉 작가의 전·중·후기의 대표 작품을 선정한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큰 사상이라는 것도 없고 더욱이 사상적 변용이 없다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아쿠타가와 문학에도 마디는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옥변(地獄變)>(1918)은 전기의 대표작이다. 이 시기는 일본의 고전에서 제재를 얻어와 패러디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 작품도 일본 중세(13세기 초) 설화집 ≪우지슈이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에서 제재를 따왔지만, 한편으로 보면 젊은 아쿠타가와 자신의 예술가선언이라 할 수도 있다. 예술과 인생과 정치권력의 삼자 대립 구도를 설정하여, 예술적 승리를 구가하는 예술가의 장엄한 삶을 재창조하고 있다. 자연주의 전성기에 데뷔하여 기성 비평가에게 적지 않게 비판을 받기도 했던 작가의 초기 예술관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예술의 승리인가 패배인가의 문제, 딸과 영주와 아버지의 욕망의 삼각구도에 대한 정의, 그리고 딸을 범한 자가 영주인가 아버지인가에 대한 답도 주어져 있다. 아쿠타가와는 자살 직전의 자전적 단편 <하구루마(歯車, 톱니바퀴)>에서 주인공 요시히데(良秀)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을 중첩시키고 있다.
<무도회(舞踏會)>(1920)는 중기의 대표작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예술과 생활의 이항대립적 구도를 지양하고자 하는 진지한 고민이 결말 부분의 찰나적 폭죽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도회장과 아키코(明子)라는 인물은 다름 아닌 서구 근대를 그대로 모방하는 일본 근대를 희화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아쿠타가와가 <지옥변>과 같은 예술지상주의적 태도를 서서히 지양하는 과도기적 작품 중 하나이자, 중기에 집중적으로 보이는 개화물(開化物)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프랑스 장교는 실존하는 인물로, 그의 일본 체험을 통해 나온 문장들을 참고하여 완성한 귀여운 단편 중 하나다.
<갓파(河童)>(1927)는 작가 스스로가 ‘걸리버풍 이야기’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여러 서구 문학의 수용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걸리버 유의 작품들이 가지는 풍자성을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고립적 삶과 죽음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자의식의 도식을 상징적으로 묘출한, 자살 직전의 유서 같은 작품이다. 근대 지식인들의 예술과 인생을 일본 고유의 민속학적 모티프인 갓파(河童)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수직적으로 하강하는 지하세계를 이루고 있는 갓파의 나라는 근대 지식인의 인식 세계라 할 수 있으며, 그 지하세계를 모르는 표층적 인간 나라는 다름 아닌 상식을 바로미터로 하여 살아가는 일상적 세계의 상징인 것이다. 갓파를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에 따라 광인과 동물의 대립성이 설정되는 것은, 중국 근대소설 루쉰(魯迅)의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유사한 면이 있다. 갓파를 보지 못하는 자가 동물도 아니거니와 갓파를 본 자가 광인도 아니라는 이중 부정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적인 니힐리즘으로 맺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이하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이름이나 여러 설정들을 퀴즈를 풀듯이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고백컨대, 오래전부터 문학 작품 번역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경험과 요령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니 어휘력과 표현력 그리고 어학 실력에 대한 깊은 반성만 남았다. 결국, 일본어와 한국어라는 양면의 화폭에 아쿠타가와라는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다 극복하지 못한 채 원고를 내놓게 되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옥변(地獄變)
무도회(舞踏會)
갓파(河童)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서평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사상적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전·중·후기의 대표 작품 세 편을 모았다. 자신의 딸이 화마에 휩싸인 순간에도 그림에만 몰두하는 지독한 열정의 화가 요시히데와, 파업을 일으킬 경우 모두 죽여 그 고기를 먹어버리는 ‘갓파’ 세상의 모습 등을 통해, 그의 뛰어난 예술적 상상력과 패러디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인 문학상의 이름으로 회자되며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중에서
其処には丁度赤と青との花火が、蜘蛛手に闇を弾きながら、将に消えようとする所であつた。明子には何故かその花火が、殆悲しい気を起させる程それ程美しく思はれた。
「私は花火の事を考へてゐたのです。我々ののやうな花火の事を。」
暫くして仏蘭西の海軍将校は、優しく明子の顔を見下しながら、教へるやうな調子でかう云つた。
거기에는 마침 빨갛고 파란 폭죽의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방사선처럼 어둠을 가르며 마침 꺼지려는 참이었다. 아키코는 왠지 그 불꽃이 슬플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불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과 같은 불꽃을.”
잠시 후 프랑스 해군 장교는 아키코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가르치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옮긴이
김명주(金明珠)는 경상대학교 국어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나와, 일본 나라여자대학(奈良女子大学) 국문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고베여자대학(神戸女子大学)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일어교육과에서 일문학사와 일문학개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로 한일 근대문학 비교연구를 하고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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