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 (일본, 1892 ~ 1927) 
그를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이지파, 국민작가, 청춘의 작가 등등. 가장 많이 듣는 칭호는 일본 근대문학의 챔피언이라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도 관점에 따라 시비가 많을 것 같다. 아쿠타가와(芥川)는 1892년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1927년 36세에 도쿄에서 자결했다. 생후 8개월 만에 생모의 정신분열증으로 외가에 맡겨져 양자로 남게 된다. 그러한 기아 및 양자 체험이 그의 예술과 인생의 전반을 결정하게 된다. 타고난 수재형에다 학자형이던 그는 소위 엘리트코스라 불리는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교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청년 시절 서구 근대문학의 세례를 받게 되고, 예기치 않게 대학 재학 중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에게 극찬을 받아 습작기도 없이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그 후 작가로서의 생은 비록 10여 년에 지나지 않지만, 무려 140여 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으니 얼마나 치열하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장편은 물론이거니와 중편마저 쓸 수 없었던 이 단편의 명수는, 작품 대부분이 동서고금 작품들의 패러디로 지적될 정도로 창의성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일찍이 세계 각국에서 평가되어 있을 정도로, 박학한 지식과 스토리에 뛰어난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으로 문학사에 자리 잡고 있다.

아쿠타가와는 탐미주의나 자연주의나 인도주의 같은 사상적 테두리를 싫어했으며, 문학 이념의 벽을 넘어 보편에 닿고자 열망했다. 그는 일본 전통 미학과도 거리를 둔 채 인간 보편의 심리를 추구했는데, 바로 그러한 일반성에 그의 미학의 진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과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그저 멍한 불안 때문이라는 유서만을 남기고 죽고 말았듯이, 그가 구하던 이데아란 오히려 지상에서 아득히 먼 별빛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현재 그의 이름은 가장 권위 있는 신인 작가상의 타이틀로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에게 문학적 세례를 준 것으로 유명하다.

 

해설         
이 책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대표 단편 세 편을 발췌하지 않고 모두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1987년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芥川龍之介全集)≫을 사용했습니다.

아쿠타가와는 그 이름뿐 아니라 작품도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으며 번역도 꽤 되어 있다. 그리고 근자에는 국내 아쿠타가와 연구가들이 모여 전집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을 하면서 새삼 느낀 점이지만, 문학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여정이 참으로 다난하다 싶다. 운문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소설 작품도 그러하다. 이렇게 말하면 엄살로 보이겠지만, 말맛을 살려야지, 생생하게 전달해야지 하는 부담감과 함께, 아쿠타가와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아쿠타가와의 그 신경질적인 언어감각에 사로잡혀 헤어날 수 없었다.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지옥변>이었다. 시대적·문화적 코드가 일치하지 않아서 왕초보 번역가인 나로서는 거듭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의복, 주거, 자연의 이름 등을 우리말에 어울리게 옮기는 작업은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저본으로는 1987년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芥川龍之介全集)≫을 사용했다. 세 편 모두 단편이라는 점과 또 서술적 특징 때문에 발췌 및 요약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축자적으로 번역했다. <지옥변>같이 시종이 상전에게 아뢰는 서술 형식이거나 <갓파>처럼 광인이 서술자인 경우, 그 서술적 말맛을 그대로 살려보고자 했다. 다만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아쿠타가와식의 우회적 어법이나 영문학도로서 구사한 영어식 표현 등은, 그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모르는 척 간결하게 혹은 우리말에 맞게 바꿔버리기도 했다.

작품 선택에서는 나름대로 의도한 바가 있다. 즉 작가의 전·중·후기의 대표 작품을 선정한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큰 사상이라는 것도 없고 더욱이 사상적 변용이 없다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아쿠타가와 문학에도 마디는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옥변(地獄變)>(1918)은 전기의 대표작이다. 이 시기는 일본의 고전에서 제재를 얻어와 패러디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 작품도 일본 중세(13세기 초) 설화집 ≪우지슈이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에서 제재를 따왔지만, 한편으로 보면 젊은 아쿠타가와 자신의 예술가선언이라 할 수도 있다. 예술과 인생과 정치권력의 삼자 대립 구도를 설정하여, 예술적 승리를 구가하는 예술가의 장엄한 삶을 재창조하고 있다. 자연주의 전성기에 데뷔하여 기성 비평가에게 적지 않게 비판을 받기도 했던 작가의 초기 예술관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예술의 승리인가 패배인가의 문제, 딸과 영주와 아버지의 욕망의 삼각구도에 대한 정의, 그리고 딸을 범한 자가 영주인가 아버지인가에 대한 답도 주어져 있다. 아쿠타가와는 자살 직전의 자전적 단편 <하구루마(歯車, 톱니바퀴)>에서 주인공 요시히데(良秀)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을 중첩시키고 있다.

<무도회(舞踏會)>(1920)는 중기의 대표작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예술과 생활의 이항대립적 구도를 지양하고자 하는 진지한 고민이 결말 부분의 찰나적 폭죽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도회장과 아키코(明子)라는 인물은 다름 아닌 서구 근대를 그대로 모방하는 일본 근대를 희화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아쿠타가와가 <지옥변>과 같은 예술지상주의적 태도를 서서히 지양하는 과도기적 작품 중 하나이자, 중기에 집중적으로 보이는 개화물(開化物)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프랑스 장교는 실존하는 인물로, 그의 일본 체험을 통해 나온 문장들을 참고하여 완성한 귀여운 단편 중 하나다.

<갓파(河童)>(1927)는 작가 스스로가 ‘걸리버풍 이야기’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여러 서구 문학의 수용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걸리버 유의 작품들이 가지는 풍자성을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고립적 삶과 죽음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자의식의 도식을 상징적으로 묘출한, 자살 직전의 유서 같은 작품이다. 근대 지식인들의 예술과 인생을 일본 고유의 민속학적 모티프인 갓파(河童)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수직적으로 하강하는 지하세계를 이루고 있는 갓파의 나라는 근대 지식인의 인식 세계라 할 수 있으며, 그 지하세계를 모르는 표층적 인간 나라는 다름 아닌 상식을 바로미터로 하여 살아가는 일상적 세계의 상징인 것이다. 갓파를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에 따라 광인과 동물의 대립성이 설정되는 것은, 중국 근대소설 루쉰(魯迅)의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유사한 면이 있다. 갓파를 보지 못하는 자가 동물도 아니거니와 갓파를 본 자가 광인도 아니라는 이중 부정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적인 니힐리즘으로 맺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이하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이름이나 여러 설정들을 퀴즈를 풀듯이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고백컨대, 오래전부터 문학 작품 번역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경험과 요령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니 어휘력과 표현력 그리고 어학 실력에 대한 깊은 반성만 남았다. 결국, 일본어와 한국어라는 양면의 화폭에 아쿠타가와라는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다 극복하지 못한 채 원고를 내놓게 되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옥변(地獄變)
무도회(舞踏會)
갓파(河童)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서평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사상적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전·중·후기의 대표 작품 세 편을 모았다. 자신의 딸이 화마에 휩싸인 순간에도 그림에만 몰두하는 지독한 열정의 화가 요시히데와, 파업을 일으킬 경우 모두 죽여 그 고기를 먹어버리는 ‘갓파’ 세상의 모습 등을 통해, 그의 뛰어난 예술적 상상력과 패러디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인 문학상의 이름으로 회자되며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중에서   
其処には丁度赤と青との花火が、蜘蛛手に闇を弾きながら、将に消えようとする所であつた。明子には何故かその花火が、殆悲しい気を起させる程それ程美しく思はれた。

「私は花火の事を考へてゐたのです。我々ののやうな花火の事を。」

暫くして仏蘭西の海軍将校は、優しく明子の顔を見下しながら、教へるやうな調子でかう云つた。

거기에는 마침 빨갛고 파란 폭죽의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방사선처럼 어둠을 가르며 마침 꺼지려는 참이었다. 아키코는 왠지 그 불꽃이 슬플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불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과 같은 불꽃을.”

잠시 후 프랑스 해군 장교는 아키코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가르치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옮긴이        
김명주(金明珠)는 경상대학교 국어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나와, 일본 나라여자대학(奈良女子大学) 국문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고베여자대학(神戸女子大学)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일어교육과에서 일문학사와 일문학개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로 한일 근대문학 비교연구를 하고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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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르케니 이슈트반 Örkény István (독일, 1864-1918)
외르케니 이슈트반은 1912년 4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문계 학교를 마친 후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여 약사가 되었다. 1937년 단편소설 <윤무>를 발표하면서 당시 잡지를 편집하던 어틸러 요제프와 친교를 맺었다. 1941년 헝가리가 독일과 함께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전쟁에 나갔고 종전 후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늦게 귀국했다. 1946년부터는 주로 작가로 활동했다. 1953년 첫 장편 ≪부부≫를 출간하고 이어서 1955년에 발간한 단편집 ≪폭설≫로 어틸러 요제프 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중반 연달아 네 권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외르케니는 크게 주목을 받았고 성공도 거두었다. ≪예루살렘의 공작≫(1966), ≪파리 잡이 찐득이 위의 신혼여행≫(1967), ≪1분 소설≫(1968), ≪시간에 따라서≫(1971) 등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들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외르케니는 연극계에 종사하면서 연극을 위한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한편 자기 소설을 연극용으로 개작하기도 했다. <글로리아>(1957), <토트 씨네>(1964), <고양이 놀이>(1963) 등. <토트 씨네>와 <고양이 놀이>가 외국에서 자주 공연됨으로써 외르케니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특히 <토트 씨네>는 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헝가리 작품 중 하나다. 1972년 노동훈장, 1973년 코슈트상을 수상했고, 1979년 6월 24일 부다페스트에서 타계했다.

 

해설         
이 책은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발췌하지 않고 모두 번역하였습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Tóték≫(Magvető, 1974)를 사용하였습니다.

뱀이 자기 스스로를 삼켜버리면, 그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뱀의 빈자리는 남아 있을까?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의 최후의 마지막 조각까지 다 먹어 치우게 하는 그런 폭력이란 진정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존재할까? 어려운 문제로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있을까? 없을까?’ 중의 하나다. 없다는 쪽으로 기울면 소설은 아름다운 동화의 모습일 터이고, 반대로 있다면 그건 매우 잔혹한 것이리라.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무겁게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래도 알 수 없다는 의혹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런 점이 바로 외르케니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를 평가한 어떤 글의 한 대목이다.

‘어느 작가든 그의 예술적 특징은 그 작가의 작품을 한두 개 분석하면 대충 드러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외르케니는 그런 통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늘 새로운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고, 따라서 그 마스크 속의 얼굴이 누구인지를 수수께끼처럼 찾아야 한다.’ 바로 그러한 수수께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이 번역은 ≪Tóték≫(Magvetö, 1974)를 저본으로 삼아 전문을 옮긴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테마는 전쟁이다. 전쟁을 통하여 인간성이 말살되어가는 과정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외르케니는 인간성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폭력이 있음을 제시했다. 2차대전에 참여했던 외르케니는 전쟁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이 동시에 나타나는 희비극에 부조리극적 요소를 혼합한 소설을 썼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쳐버린 인간들이다. 모든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간 뒤, 쓸모없고 모자라는 무지렁이 주리는 우체부가 되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 오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소식은 다 없애버리고 좋은 소식만 배달해 주는 등의 우스꽝스런 행동을 한다. 토트 씨가 심신의 위안을 구하려고 찾아간 토머이 신부님도 마찬가지다. 이미 극도로 심신이 지친 토트 씨를 무조건 꾸짖으면서 비상식적인 엉뚱한 조언을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전쟁 중임을 들어 다 참아야 한다며, 돌출행동을 하지 못하게 개처럼 방울을 달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전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는 의사의 처방도 가관이다. 소령보다 키가 커서 소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듯하다는 얘기에 다리를 반쯤 구부리고 다니라고 말한다.

토트 씨가 신부님과 의사 등을 찾아가는 이유는 소령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으면서 심신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을 쳐다보면 소령은 뒤에 뭐가 있느냐고 화를 내고, 밤 새워 일을 하다가 하품을 하면 하품을 하지 못하게 입에 전등을 물게 하고,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모자를 눈 아래까지 푹 눌러 쓰게 한다. 토트 씨네는 이렇듯 온갖 수모와 고통을 참아낸다. 오직 참전 중인 아들의 상관인 소령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고통을 호소하러 찾아간 그 지역의 인사들, 병을 치유하고 사람들을 돌봐야 할 사람, 정신적 어려움에 위로를 주어야 할 성직자들은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엉뚱한 답만 준다. 토트 씨네의 주변 환경은 완전히 정상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하나같이 다 미쳐버린 인간들이다.

이렇게 다 미친 세상에 그래도 제정신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토트 씨 자신이다. 그런데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세상에서 그래도 아직 인간인 토트 씨, 인간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그 토트 씨가 소령을 죽인다. 작두로 네 도막을 낸다. 세 도막을 냈느냐는 부인의 물음에 네 도막을 냈다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참으로 희극적이다. 살인은 광기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려는 구원의 행위다. 배움이 많고 점잖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시류에 따라 미쳐가고 있을 때, 인간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다.

이처럼 사회를 지탱해야 할 기둥들은 제정신이 아닌 광기에 휩쓸려 있다. 정신이 혼란스러운 보통사람들을 더욱 완벽하게 혼란에 빠뜨리는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독자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소령이 도착했을 때 아들은 이미 전사한 상태다. 그러나 친절한 우체부의 배려로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장차 소령이 귀대한 후 전선에서 아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고통을 견뎌내는 장면들은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은 필시 보이지 않는 눈물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극히 비극적인 사건을 세부적인 희극적 요소로 치장한 구성은 참 인상적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의 마지막 조각까지 다 먹어 치우게 하는 그런 폭력이 진정 존재한다는 것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장
2장
3장
4장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서평   
없다면 아름답고 있다면 잔혹한 것. 이것이 바로 폭력이라고 외르케니는 말한다. 그의 소설 <토트 씨네>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아들의 상관인 버로 소령 앞에서 무릎을 구부린 채 걸어다니고 밤을 새워 상자를 만드는 토트 씨와 가족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인간성의 최후가 숨어 있다 



본문중에서   
Háromba? Nem. Négy egyforma darabba vágtam... Talán nem jól tettem?
De jól tetted, édes, jó Lajosom - mondta Mariska. - Te mindig tudod, mit hogyan kell csinálni.
Feküdtek, hallgattak, forgolódtak. Oly fáradtak voltak, hogy végül mégiscsak elnyomta őket az álom. Tót azonban alva is forgolódott, rúgott, nyögött, egyszer majd kiesett az ágyból.
Rosszat álmodott talán? Ez azelőtt nem volt.

“세 도막 냈느냐고? 그렇지 않아. 네 도막으로 잘랐소, 그것도 똑같이… 그런데 내가 뭐 잘못한 것이라도 있소?”
“당신도! 당신은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머리슈커가 말했다. “당신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적이 없지요.”
그들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웠다가 다시 뒤척일 뿐이었다. 그들은 엄청나게 피곤했다. 밀려오는 잠을 도무지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토트 씨는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몸을 뒤척였다. 몸을 한번 쭉 뻗어보았다. 신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그가 혹시 잠을 잘못 잔 것일까? 전에는 결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옮긴이       
정방규는 전라도 고창에서 1948년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의 괴팅겐에서 헝가리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했다. 1990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헝가리문학에 대하여 강의하고 있다. <통일 후 독일 지성인의 심리적 갈등 연구>(<문화예술논총 5>, 1993년) 등의 논문이 있고, ≪(서보 머그더의) 노루≫(1994년) 등의 번역서가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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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레르몬토프 Михаил Ю. Лермонтов (러시아, 1814 ~ 1841)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19세기 러시아 낭만주의 작가들 중에서 낭만주의를 가장 잘 표현했을 뿐 아니라, 산문에 있어서 낭만주의적 수법과 리얼리즘적인 수법을 결합시킴으로써 러시아 리얼리즘의 발전에 공헌을 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서구의 낭만주의자들인 바이런, 위고, 뮈세, 드 비니 등과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영향 하에 러시아적 바이러니즘을 완성하였을 뿐 아니라,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신 속에 내면화한 바이러니즘의 허구성을 냉철하게 조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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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년에 태어나 1841년에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레르몬토프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다. 세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고, 러시아의 명문가인 스톨리핀가의 후손인 외할머니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서 성장한 그는 청소년기에 이미 280여 편에 가까운 시를 쓴 문학 소년이었다. 모스크바대학에서 교수에 대한 불경한 행동으로 퇴학을 당한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근위사관학교에 입학하지만, 이 선택이 그의 죽음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1837년 1월 29일에 시대의 양심으로 여겨지던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이 프랑스의 망명자 단테스와의 결투로 사망하자, 레르몬토프는 그 죽음을 애도하는 <시인의 죽음>을 단숨에 써내려가고, 이 시는 곧 상트페테르부르크 전역에 퍼진다. 주콥스키, 뱌젬스키, 크라옙스키와 같은 당대의 시인들은 그 시를 읽고 푸시킨의 뒤를 이을 천재적인 시인이 탄생했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레르몬토프는 시인을 살해한 황제 중심의 권력층과 그 주변인들을 후대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시구를 담은 마지막 연의 16행으로 인해 황제를 비롯한 권력층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 후 레르몬토프는 카프카스로 유형 길에 올라 체첸인들과의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전역하여 전적으로 문인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그의 계획은 황제에 의해 번번이 거부당한다. 결국 말년에 주옥같은 시들과 대표작인 서사시 <악마>, ≪우리 시대의 영웅≫ 등을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근위사관학교 동급생이었던 마르티노프와 사소한 시비 끝에 결투를 벌여 허망하게 사망한다.

 

해설         
국내 최초 번역입니다.

이 책의 원전으로 1959년 러시아의 대학자 보리스 에이헨바움이 편집하고 소비에트 아카데미 출판사가 총 4권으로 출간한 레르몬토프 전집 중 제4권에 수록된 판본을 사용했습니다.

미완성 소설 ≪리곱스카야 공작부인≫ 제1장, 제2장, 제3장, 제5장은 약 80%, 제4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은 40%에서 약 50%를 발췌해서 번역했습니다.
레르몬토프의 유일한 완성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은 약 80%를 발췌해서 번역했습니다.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러시아인들이 푸시킨 다음으로 꼽을 정도로 깊이 사랑하는 시인이다. 레르몬토프의 중심 테마는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존재론적인 문제,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 세계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달성할 수 없는 완벽과 완전에 대한 영원한 갈망, 그리고 영원한 조화와 안식에 대한 희구였다. 레르몬토프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폭발적인 영혼의 에너지를 지녔지만, 그 힘을 어디에 분출시킬지 몰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파괴적인 영향력만을 행사하다 허망하게 사라지고 마는 시대적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전달하고, 그 영혼이 느끼는 갈망과 우수를 때로는 맑고 때로는 통렬하기까지 한, 호소력 강한 시어로 담아냄으로써 깊은 공명을 자아낸다.

 레르몬토프는 러시아 민족의 승리는 이미 과거로 묻히고, 1825년 데카브리스트 반란의 진압 이후 숨 막히는 니콜라이 1세의 헌병정치의 억압 속에서 젊은 지성들이 사회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음울하게 시들어가야만 했던 시절에 청년기를 보낸 인물이었다. 레르몬토프는 삶의 전선에 나서자마자 사회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어둠을 목도하고 사회와 삶, 세계 구조 자체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좌절한 시인이었다.

 이런 그의 절망과 환멸, 염세주의는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불화 가운데 성장한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과도 연결된다. 레르몬토프는 예민한 청소년기에 명망 있고 부유한 스톨리핀 가문의 후예인 외조모 아르세니예브나와 스코틀랜드에 뿌리를 둔 한미한 귀족 출신인 부친 유리 레르몬토프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장했다. 레르몬토프는 절대적인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외조모와 한미한 귀족이라는 이유로 박대를 당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일이 왕왕 있었고, 이러한 현실로 인해 그는 깊은 좌절과 우수를 체험했다. 청년이 되어 사교계를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레르몬토프는 자신의 한미한 출신으로는 사교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부친의 가문에 대한 왜곡된 자부심과 더불어 열등의식을 지니게 되었고, 이것이 청년기의 반항심으로 이어지면서 내성적이면서도 비타협적인 성격으로 발전하였다. 그의 유명한 ‘신랄한 독설’ 또한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로 인해 그는 긍정적이며 밝고 미래 지향적인 푸시킨과는 달리 회의적이고 어둡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나타나게 된다.

 레르몬토프는 푸시킨과 마찬가지로 서정시를 비롯하여 서사시, 드라마, 소설 등 각 문학 장르에 걸쳐 작품을 쓰고, 각 장르에서 유명한 걸작들을 남긴다. 유명한 서정시로는 <시인의 죽음>, <자신을 믿지 마라>, <세 그루의 종려나무>, <기도>, <지루하고 슬프다>, <조국>, <얼마나 자주 현란한 군중들에 둘러싸였던가>, <유언>, <나 홀로 길을 나선다> 등이 있고, 드라마로는 <가면무도회>, 서사시로는 <악마>와 <견습 수도사>, 소설로는 ≪우리 시대의 영웅≫을 걸작으로 남겼다.

 레르몬토프는 미완성 소설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을 1836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837년 1월경에 중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레르몬토프 생전에 출판되지 못하고, 1882년에 문학잡지 <러시아 소식(Русский Вестник)> 1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본 편역서는 1959년 러시아의 대학자 보리스 에이헨바움이 편집한 소비에트 아카데미 출판사의 4권짜리 레르몬토프 전집 제4권에 수록된 판본을 원본으로 사용했다. 옮긴이가 원전에서 직접 번역했는데, 제1장, 제2장, 제3장, 제5장은 80% 이상 번역했다, 크게 삭제한 부분은 주인공들의 대화 부분으로 대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는 방식을 취했다. 같은 방식으로 제4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을 40%에서 50% 정도로 축약 번역했다. 이 작품에는 전지적 서술자가 외모와 전기, 실내 인테리어, 행동 등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형상을 전형으로서 구축하고자 한 노력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옮긴이는 위의 부분들을 최대한 살려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리곱스카야 공작부인≫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레르몬토프가 끊임없이 사교계의 인물들과 세계를 하나의 전형으로서 보편화해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페초린이 네구로바를 유혹하는 것도 최초로 사교계에 등장한 신참이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보편적 방식 중 하나로 해석되고, 네구로바의 삶 또한 사교계의 아가씨가 노처녀가 되어가는 보편적 과정으로 해석되며, 무도회의 인물들, 극장 앞의 인물들에 대한 캐리커처 또한 페테르부르크 사회 전체의 미니어처로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가 끊임없이 천착하는 부분은 객관성과 일반화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이러한 요소들에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다. 자신의 특별함을 인식하고, 열정적이고 야망은 있지만, 현실에 좌절하여 폭풍 같은 분노를 삭이면서 살아가는 가난한 귀족이자 관리인 크라신스키, 타인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약간은 냉소적이며 지적인 장교 페초린, 그리고 범상치 않은 내면을 간직한 열정적인 여인 베라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이 그런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주인공들이 서술자에 의해 때로는 지극히 제한된 시점에서 묘사되곤 한다. 예를 들면, 페초린이 안락의자에 앉아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서술자인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분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 서술자는 때로 자기 마음대로 독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장면의 전환과 이야기의 전환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관리 크라신스키에 대한 묘사에서는 일상의 추한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고골의 수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 작품은 연애소설과 자연파적 수법, 낭만주의적 수법과 리얼리즘적 수법, 1인칭 서술시점과 3인칭 서술 시점이 일관성 없이 혼용되다가 중단된다. 어쨌든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형상을 객관적 관찰의 결과로서 구축하고자 하는 리얼리즘적 서술의 기법을 최초로 시도한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크다.

 레르몬토프의 유일한 완성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은 1840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1841년에 저자 서문이 덧붙여진 채 재출간되었다. 본 편역서는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이 수록된 동일 판본을 원본으로 사용하였고, 편역자 자신이 원본에서 직접 번역하였다. 각 노벨라들을 70%에서 80% 정도로 발췌했고, 내용을 연결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간단하게 언급하거나 요약하는 식을 취했다. <따만>의 경우는 원작 자체의 완벽에 가까운 완결성으로 말미암아 95% 이상 번역하였다.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는 주인공 페초린의 내적 고백이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각 노벨라마다 주인공의 고백 부분의 번역에 충실하고자 했다.

 ≪우리 시대의 영웅≫은 레르몬토프의 유일한 완성 소설로서 1830년대에 등장한 ‘단편소설 모음’의 장르에 속한다. 기존의 ‘단편소설 모음’ 장르에서는 각 단편이 서로 다른 서술자를 지니고, 플롯상 상호 관련이 없는 사건들을 다루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시대의 대표자인 한 주인공을 외면 시점에서 내면 시점으로 조명하여 논리적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천재적이고 획기적인 측면이 있다. 서술의 차원에서도 1인칭 시점을 일관되게 사용하여, 관찰과 고백이라는 서술의 노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낭만주의적 소설기법과 사실주의적 소설기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레르몬토프는 페초린을 통해 니콜라이 1세 치하에서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할지 모른 채 타인의 삶에 파괴적인 역할만을 하는 시대적 주인공의 모습뿐 아니라,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악행만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 죄악과 그것에서 오는 인간의 절망과 우수를 잘 표현한 형이상학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주인공의 고백을 담은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로 대변되는 러시아 심리소설의 선구라고 볼 수 있다.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은 이미 국내에 번역본으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은 러시아 문학에서 소설사적으로 보았을 때 대단히 중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작이라는 이유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 지만지 고전천줄의 기획으로 이 작품을 발췌의 형식으로나마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레르몬토프 전공자로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리곱스카야 공작부인
우리 시대의 영웅·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жесты его были отрывисты, хотя часто они выказывали лень и беззботное равнодушие, которое теперь в моде и в духе века… и в свете утверждали, что язык его зол и опасен… ибо свет не терпит в кругу своём ничего сильного, потрясающего, ничего, что бы могло обличить характер и волю; - свету нужны французские водевили и русская покорность чуждому мнению.

그의 몸짓은 요즘 시대의 정신이자, 유행인 나태함과 태평한 무심함을 자주 드러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절도가 있었다… 사교계에서는 그의 말에 독이 있고, 그의 혀는 위험하다고들 했다…. 왜냐하면 사교계는 성격과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강한 것, 충격적인 것은 무엇이든 참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교계에 필요한 것은 프랑스의 보드빌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러시아식 공손함이다.

--- 리곱스까야 공작부인 ----


Герой нашего времени, милостивые государя мои, точно, портрет, но не одного человека: это портрет, состравленный из пороков всего нашего поколения, в полном их развитии. Вы мне опять скажете, что человек не может быть так дурен, а я вам скажу, что ежели вы верили возможности существования всех трагических и романтических злодеев, отчего же вы не веруете в действительность Печорина?

우리 시대의 영웅은, 친애하는 신사숙녀 여러분, 정확히 말해서 초상이지만, 한 사람의 초상이 아니다. 그는 우리 세대 전체의 악덕을 가장 발전된 형태로 소유한 인물의 초상이다. 여러분은 사람이 그렇게 나쁠 수는 없다고 내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께 묻겠다. 여러분들은 온갖 종류의 비극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악인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믿으면서, 어째서 페초린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가?

 ----- 우리 시대의 영웅 -----



출판사서평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레르몬토프의 미완성 소설<리곱스카야 공작부인>과 그의 유일한 완성 소설 <우리시대의 영웅>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두 작품에서 작가는 냉소적이고 지적인 장교 페초린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내면의 에너지를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해 결국 타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악행만을 거듭하는 그를 통해 인간의 절망과 우수를 표현한 러시아 심리소설의 선구작이다.

 

옮긴이       
홍대화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논문 <레르몬토프의 소설들에 나타난 구성의 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도스토옙스키였지만, 대학교 3학년 때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을 읽고, 주인공 페초린에게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악령≫의 주인공 스타브로긴의 모습을 발견하고 레르몬토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90년 여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찾아간 레르몬토프 박물관의 낭만주의적 정취에 매료되어 레르몬토프를 전공할 결심을 했다. 1991년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때마침 1992년부터 레르몬토프에 대한 특강이 진행될 계획임을 보고, 결정적으로 그곳에서 레르몬토프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다. 1995년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 2003년도부터 ‘악마성’이라는 테마의 틀 속에서 푸시킨, 레르몬토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에 나타난 악마적인 주인공 형상들의 상호 관련성을 추적하는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주요 업적으로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열린책들, 2000년, 번역)과 ≪도스토옙스키≫(살림출판사, 2005년, 도스토옙스키 입문서) 등이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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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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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약 沈約 (중국, 441~513) 
작자 심약(沈約, 441∼513)은 남조 양(梁)나라의 문학가이자 사학가로, 자(字)는 휴문(休文)이며 오흥(吳興) 무강(武康, 지금의 절강성 덕청현 무강진) 사람이다. 심약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했지만 학문에 뜻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여 군서(群書)를 널리 섭렵했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송(宋)·제(齊)·양 3조에 걸쳐서 대대로 벼슬했는데, 송나라 때는 상서탁지랑(尙書度支郞)을 지냈고, 제나라 때는 어사중승(御使中丞)·동양 태수(東陽太守)·보국장군(輔國將軍)·오병상서(五兵尙書) 등을 역임했다. 양나라 때는 무제(武帝) 소연(蕭衍)의 창업을 도와 그 공로로 상서복야(尙書僕射)가 되고 건창 현후(建昌縣侯)에 봉해졌다가 다시 상서령(尙書令) 겸 태자소부(太子少傅)로 전임되었다. 시호는 은(隱)이다. 그는 일찍이 문학으로 이름나서 제나라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의 문하에 들어가 사조(謝眺)·왕융(王融) 등과 함께 ‘경릉팔우(竟陵八友)’의 하나가 되었으며, 시가 창작에 있어서 ‘사성팔병설(四聲八病說)’을 제창하고 ‘영명체(永明體)’를 창시했다. 그의 저작으로는 ≪속설≫ 외에 ≪진서(晉書)≫·≪송서(宋書)≫·≪제기(齊記)≫·≪양무제기(梁武帝記)≫·≪이언(邇言)≫·≪송문장지(宋文章志)≫·≪사성보(四聲譜)≫ 등이 있으나, ≪송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망실되었다. 그리고 후대에 명(明)나라 사람이 모아 엮은 ≪심은후집(沈隱侯集)≫이 있다.

 

해설         
국내 최초 번역입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속설(俗說)≫을 사용했습니다.

≪속설≫에 대한 저록(著錄)은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자부(子部) 잡가류(雜家類)에 ‘≪속설≫ 3권은 심약이 지었다. 양나라 때는 5권이었다(≪俗說≫三卷, 沈約撰. 梁五卷)’라는 기록에서 처음 보이며, 그 이후의 사지(史志)와 서지(書志)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唐)나라 때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추정된다.≪속설≫의 유문(遺文)은 ≪예문유취(藝文類聚)≫·≪북당서초(北堂書鈔)≫·≪태평어람(太平御覽)≫·≪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남아 있다. 집본(輯本)으로는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본과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두 종류가 있다. 이 두 집본은 각각 52조씩 집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4조만 서로 다르다.

≪속설≫은 주로 동진(東晉)과 유송(劉宋) 시대 상류층 문인 명사들의 언행과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문을 통하여 살펴보면 내용이 상당히 광범위하며 당시에 유행하던 청담(淸談)과 인물 품평의 풍기를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다. 전체 52조 가운데서 몇 조의 고사를 살펴봄으로써 ≪속설≫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한다.

고호두[顧虎頭: 고개지(顧愷之)]가 남을 위해 부채에 인물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을 그릴 때는 모두 눈동자를 찍지 않은 채로 곧장 부채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눈동자를 찍으면 곧바로 살아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오!”

고개지(顧愷之)는 동진의 저명한 화가로 시부(詩賦)와 서예에도 뛰어나 재절(才絶)·화절(畫絶)·치절(痴絶)의 삼절대사(三絶大師)로 불린다. 고개지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의 초상을 그리면서 눈동자를 찍지 않은 것에는 매우 심오한 이치가 함축되어 있다. 그는 인물화를 그릴 때 특히 점정(點睛)을 중시했다. ≪세설신어≫ <교예(巧藝)>편의 기록을 보면 그가 점정을 중시한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고장강[顧長康: 고개지(顧愷之)]은 인물화를 그릴 때 간혹 몇 년 동안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곤 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고개지가 대답했다.

“형체의 미추는 본래 그림의 진수와는 무관하지요. 정신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듯이 그려내는 비법이 바로 이[點睛]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즉 인물화에 있어서 ‘정신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듯이 그려내는[傳神寫照]’ 관건이 바로 점정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 점정은 단순히 인물화에 있어서 운필(運筆)의 정교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회화 예술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관건인 것이다. ≪속설≫의 본 고사는 바로 그러한 고개지의 회화론을 ‘점정변어(點睛便語, 눈동자를 찍으면 곧 살아서 말을 한다)’라는 넉 자로 다 표현하고 있다. 이는 지인소설이 지향하는 언어 묘사의 간결성과 함축성을 잘 구현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룡점정(畫龍點睛)’이라는 성어의 출전은 당나라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이지만, 그 근원을 찾아보면 이러한 고개지의 점정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순개자[荀介子: 순백자(荀伯子)]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순개자의 부인은 투기가 대단하여 항상 순개자의 서재 안에 있다가 손님이 오면 곧장 병풍을 가리고 그 뒤에 숨었다. 당시 중병참군(中兵參軍)으로 있던 환씨(桓氏)라는 어떤 손님이 순개자를 찾아와 일을 논의했는데, 일에 대한 논의를 이미 끝내고도 계속 남아서 여담을 나누었다. 환씨는 당시 젊었으며 자태와 용모가 매우 훌륭했다. 순개자의 부인이 병풍 안에 있다가 곧장 환씨에게 말했다.

“환참군, 당신은 사람의 도리도 모르시오? 일에 대한 논의를 이미 끝냈는데 어찌하여 떠나지 않는 것이오?”
그러자 환씨는 허둥지둥 곧바로 달려 나갔다.

이 고사는 남편을 항상 감시하고 남편을 찾아온 손님까지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도록 쫓아버린 순개자 부인의 극단적인 투기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작자는 마지막 순개자의 부인이 환참군에게 한 말을 통하여 그녀의 비뚤어진 투기 심리를 다분히 해학적으로 잘 나타내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속설≫은 취재고사의 일부분이 전대 작품의 고사와 직간접적으로 중복이 되긴 하지만, 등장인물의 언행과 풍모를 간결한 필치로 그려내 문학성과 예술성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루었다.

이 책은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속설(俗說)≫을 저본으로 했다. 저본에 집록된 52조의 고사 전체를 우리말로 옮기고 간략한 주를 달았다. 고사의 제목은 저본에는 없지만 옮긴이가 임의로 달았다. 아울러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실려 있는 마국한(馬國翰)의 <속설서(俗說序)>를 첨부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주백인의 배를 가리키며 말하다 有人指周伯仁腹曰
완광록의 큰아들이 죽다 阮光祿大兒喪
사안이 어렸을 때 명성을 얻다 謝安小兒時便有名譽
만이 잠자리에서 늘 늦게 일어나다 萬眠常晏起
사만이 사태부와 함께 간문제를 찾아뵙다 謝萬與太傅共詣簡
유진장이 짚신을 짜서 모친을 봉양하다 劉眞長織芒履以養母
진나라 애제의 왕황후가 자마금 가락지를 끼다 晉哀帝王皇后有一紫磨金指環
진나라 간문제가 여러 담객들을 모으다 晉簡文集諸談士
석도안의 왼팔 위로 살점 하나가 돋아나다 釋道安生左臂上一肉
사인조가 스스로 잘못을 고쳐서 명사가 되다 謝仁祖自改遂爲名流
사인조의 첩 아비 謝仁祖妾阿妃
왕자경이 왕이보를 흉내 내다 王子敬學王夷甫
은중감이 원강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 殷仲堪看袁羌圍棋
고호두가 남을 위해 부채에 그림을 그리다 顧虎頭爲人畫扇
환대사마가 환함에게 성을 내다 桓大司馬瞋桓瑊
환온의 처 남군공주가 투기가 심하다 桓溫妻南郡主甚妬
환령보가 ≪장자≫를 직접 강론하다 桓靈寶自講≪莊子≫
환현이 시를 지으면서 피리를 불다 桓玄作詩鼓吹
환현의 첩이 해산할 때 바람을 두려워하다 桓玄妾當産畏風
환선성이 동생 환매득을 볼모로 잡히고 양을 얻으려 하다 桓宣城以弟買得質羊
환석호가 호랑이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다 桓石虎拔虎箭
환표노가 제갈랑과 경주하다 桓豹奴與諸葛郞競走
환표노가 피로하여 병들다 桓豹奴病勞
왕승경이 한 시대의 표상이 되다 王僧敬爲一時之標
왕승경 형제가 신상과 같다 王僧敬兄弟若神
환현이 서예를 좋아하다 桓玄愛書
사인조가 쟁을 타며 <추풍사>를 부르다 謝仁祖彈箏歌<秋風>
환현이 정기를 총애하다 桓玄寵丁期
진나라 명제가 송위를 완요집에게 내려주다 晉明帝以宋褘賜阮遙集
원산송이 송위의 무덤에 올라 <행로난> 노래를 짓다 袁山松上宋褘冢作<行路難>歌
왕동정이 태공을 찾아가 하룻밤 묵으면서 작별하다 王東亭就汰公宿別
왕효백이 거사하자 왕동정이 근심 걱정하다 王孝伯起事王東亭憂懼
도기가 왕효백의 참군으로 있을 때 시를 짓다 陶夔爲王孝伯參軍嘗作詩
왕경손이 만족의 시종이 되다 王慶孫爲蠻人行者
사첨의 털이 남다르다 謝瞻殊毛
치승이 청계를 유람하면서 시를 짓다 郗僧遊靑谿中作詩
사혼이 왕고려의 손을 잡고 말하다 謝混執王高麗手曰
은백이 하무기와 함께 저포 노름을 하다 殷伯與何無忌共樗蒲
양원보가 황제의 부름을 받다 羊元保被召見
사마낭군이 기녀 놀이를 좋아하다 司馬郎君好作妓
서간목이 젊었을 때 까마귀 꿈을 꾸다 徐干木年少時嘗夢烏
모태가 옥와 하나를 사다 毛泰買一玉窪
순개자의 부인이 투기가 대단하다 荀介子婦大妬
차무자의 부인이 투기가 대단하다 車武子婦大妬
부량이 장부와 작별하다 傅亮與張敷別
부량이 북정에 나섰을 때 멀리 숭고산을 바라보다 傅亮北征遙見嵩高山
하승천이 안연년에게 콩꼬투리를 묻다 何承天問藿囊於安延年
주상이 강이를 기용하여 첨사를 겸임시키려 하다 主上欲用江夷領詹事
사복야와 도태상이 오령군을 찾아가다 謝僕射·陶太常詣吳領軍
유류와 부적의 독서 劉柳與傅迪之讀書
유광록이 멋진 거위를 기르다 劉光祿養好鵝
심승조가 사람의 길흉을 기록하다 沈僧照記人吉凶
속설서 俗說序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顧虎頭爲人晝扇, 作嵇·阮, 都不點眼睛,
便送還扇主, 曰: “點眼睛便欲能語!”

고호두가 남을 위해 부채에 인물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혜강과 완적을 그릴 때는 모두 눈동자를 찍지 않은 채로 곧장 부채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눈동자를 찍으면 곧바로 살아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오!”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