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Platon(고대그리스, BC 427~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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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아테네의 귀족으로 태어나, 당시의 관례대로 정치가가 되려 했으나, 20세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7세에 스승이 부당한 재판의 결과 사형을 당한 후 정치적 탄압을 피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도 받았다. 시라큐스에서 정치개혁에 관여했지만 음모에 빠져 노예로 팔려가다 친지의 도움으로 해방된 후, ‘아카데미아 학원’을 세워 정치가 아닌 청년교육을 통해 진정한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약 30여 편의 ‘대화편’과 몇 권의 편지를 남겼는데, 이 책 이외에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메논≫(Menon), ≪파이돈≫(Phaidon), ≪국가≫(Politeia), ≪소피스테스≫(Sophistes), ≪티마이오스≫(Timaios), ≪법률≫(Nomoi) 등이 있다.

이 ‘대화편’들은 진리를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생생한 대화체의 형태로 재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화와 상징 그리고 풍부한 비유를 담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웅장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그는 이데아(idea)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가능한 한 영혼을 훌륭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목적이자 보람된 행복이라며 영혼의 완성을 역설한 소크라테스의 새로운 도덕을 개인의 차원에서 지성이 지배하고 정의가 구현되는 국가와 자연의 차원으로 확장해, 진리에 대한 사랑 즉 철학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고 새로운 삶을 창출하는 이상적 관념론(Idealism)을 제시한 선구자이다. 이러한 평가는 화이트헤드(A.N. Whitehead)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 시대의] 각주(脚註)"라고 말하듯이, 또한 서양사상의 전통이었던 대수학적 평면적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의 기하학적 입체적 사고에 대해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나 첨단 유전공학자들이 매우 경탄하듯이, 서양의 모든 학문과 문화 전반에 걸쳐 결정적 영향을 지금도 강력하게 행사하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을 완역한 것입니다.

이 책의 변역은 E. Hamilton과 H. Cairns가 편집한 Plato: The Collected Dialogues(New Jersey; Princeton Univ. 1978)와 ≪The Dialogues of Plato≫(The Univ. of Chicago, Encyclopaedia Britannica Inc. 1971)를 공동의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국가≫와 더불어 가장 탁월한 대화체로 평가받는 이 책의 특성을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다소 생소한 구어체로 번역했습니다.

해설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아테네의 귀족으로 태어나, 당시의 관례대로 정치가가 되려 했으나, 20세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7세에 스승이 부당한 재판의 결과 사형을 당한 후 정치적 탄압을 피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도 받았다. 시라큐스에서 정치개혁에 관여했지만 음모에 빠져 노예로 팔려가다 친지의 도움으로 해방된 후, ‘아카데미아 학원’을 세워 정치가 아닌 청년교육을 통해 진정한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초기에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에우티프론≫(Euthyphron), ≪라케스≫(Laches),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등, 전환기에 ≪크라틸로스≫(Kratylos), ≪메논≫(Menon), ≪고르기아스≫(Gorgias) 등, 원숙기에 ≪파이돈≫(Phaidon), ≪향연≫(Symposium), ≪파이드로스≫(Phaidros), ≪국가≫(Politeia),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등, 후기에 ≪소피스테스≫(Sophistes), ≪정치가≫(Politikos), ≪필레보스≫(Philebos), ≪티마이오스≫(Timaios), ≪법률≫(Nomoi) 등 약 30여 편의 ‘대화편’과 몇 권의 편지를 남겼다.

이 ‘대화편’들은 진리를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생생한 대화체의 형태로 훌륭하게 재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화와 상징 그리고 풍부한 비유를 담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웅장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그는 이데아(idea)에 대한 탐구를 통해 영혼의 완성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새로운 도덕을 개인의 차원에서 지성이 지배하고 정의가 구현되는 국가와 자연의 차원으로 확장해, 진리에 대한 사랑 즉 철학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고 새로운 삶을 창출하는 이상적 관념론(Idealism)을 제시한 선구자이다. 이러한 평가는 화이트헤드(A.N. Whitehead)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 시대의] 각주(脚註)”라고 말하듯이, 또한 서양사상의 전통이었던 대수학적인 평면적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의 기하학적인 입체적 사고에 대해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나 첨단 유전공학자들이 매우 경탄하듯이, 서양의 모든 학문과 문화 전반에 걸쳐 결정적 영향을 지금도 강력하게 행사하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이 책 ≪향연≫은 아가톤이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축하해 함께(sym) 먹고 마시는(posium) 만찬장에서 참석자들이 각기 사랑의 신 에로스(Eros)를 찬미한 것을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대화편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찬미한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혼돈(Chaos)이 있었고, 그 다음 대지의 신 가이아(Gaia)가, 그리고 에로스가 생겼다. 따라서 에로스는 인간으로부터 떼어놓기 힘든 가장 오래된 신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인간이 위대하고 훌륭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길잡이이자 원동력이다.

(2) 아프로디테(Aphrodite) 여신과 마찬가지로 에로스에도 나이가 들어 성숙한 천상의 에로스와 젊기에 충동적인 지상의 에로스가 있다. 그런데 에로스 자체는 중립적이므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또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아름답거나 추하게 될 뿐이다.

(3) 의술, 음악, 요리, 농사, 계절의 변화, 종교의식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대립된 요소들이 서로 사랑해 화합하는 조화로 이끌어내는 에로스는 절제와 정의를 지켜가는 기술(技術)을 통해 가장 좋은 것을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신이다.

(4) 남여양성(男女兩性)을 지닌 인간이 강성해지면서 신들을 위협하게 되자 제우스가 정략적으로 둘로 쪼갰다. 그 결과 인간은 본래의 상태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자신의 반편을 항상 그리워하는데, 이것을 실현시켜주는 신이 바로 에로스이다.

(5) 에로스는 결코 늙지 않아 젊고, 굳어진 마음속에는 들어가지 않아 부드럽고, 황량하거나 시든 곳에는 없어 유연하다. 강제되지 않아 정의롭고, 쾌락에 지배되지 않아 절제 있고, 용감한 신조차 장악한 용감한 신이다. 또한 누구나 시인으로 만들며,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인간을 아름답고 훌륭하게 이끄는 지도자이다.


이와 같은 찬미에 이어, 소크라테스는 에로스가 어떤 사람에게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키면서 자신이 디오티마와 대화를 나눈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에로스는 태어난 유래에서 보듯이,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풍요롭지도 궁핍하지도 않은 중간자이다. 그런데 에로스는 자신에게 없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죽지 않은 것(不死)을 갈망한다. 그래서 인간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며 훌륭하게 양육함으로써 자신을 영원히 유지하려 한다. 언제나 현실에 만족하지 않은 인간은 이러한 성장단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아름다움(美) 자체를 철저히 깨닫고 이에 충실하게 살 수 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현명한 여인 디오티마(혹은 자기 자신)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 결론에 스스로 동의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술에 만취했기 때문에 가장 본심을 드러낼 수 있었던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와 자신이나 그 제자들이 가졌던 인간관계, 적들 앞에서 또 적들과 싸우면서 그가 실제로 취한 행동, 밤을 지세며 술을 마셔도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았던 모습 등 소크라테스의 생생한 인간 됨됨이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에로스는 모든 생명체가 자신을 보존하고 종족을 번성시키려는 욕구, 참된 것(眞), 훌륭한 것(善), 아름다운 것(美)을 통해 자신을 확대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만들어내는 직접적 충동이며 근원적 추진력이다. 따라서 에로스는 유한한 인간이 아직 갖고 있지 못한 그 무엇을 항상 욕구하고 사랑하며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끊임없이 열어주는 창조적 생명이다.

그러나 에로스 자체는 맹목적 충동일 뿐이며, 지성(nous)에 의해 올바른 목표가 제시되어야 한다. 이렇게 지성이 에로스에게 제시하는 목표가 곧 이데아이며 이상(Ideal)이다. 이데아는 그 자체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의 충동에 의해 비로소 찾아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데아가 없는 에로스는 맹목적 광기(狂氣)에 불과하고, 에로스가 없는 이데아는 공허한 화석(化石)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데아는 동전의 일정한 가치를 나타내는 앞면이라면, 에로스는 그 동전이 결코 위폐가 아님을 입증해주는 뒷면과 같다. 결국 플라톤 철학의 창조적 열정을 대변하는 에로스를 전제하지 않고는 그의 철학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조차 없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사랑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불교는 자비(慈悲)를, 수시로 강조하며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삶과 현실은 이에 비례해 더욱더 이 위대한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져만 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혹시 이러한 물음을 해결할 실마리를 가장 이론적인, 따라서 가장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로부터 찾으려 한다면, 플라톤의 철학 즉 그의 ≪향연≫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이 책은 진(眞), 선(善), 미(美)의 인간이 인간다움을 깨닫고 실현할 수 있는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며, 우리를 그 길로 이끌도록 강렬하게 몰아대기 때문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 만찬장으로 가는 길

2. 만찬이 열림

3. 신화, 시(詩), 관습, 의술(醫術)을 통해 에로스를 찬미함

4. 에로스의 본성과 공적(功績)을 찬미함

5. 에로스를 찬미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

6. 에로스에 대한 디오티마의 암시

7. 소크라테스의 인간 됨됨이


옮긴이에 대해

작품 중에서     

And since we have agreed that the lover longs for the good to be his own forever, it follows that we are bound to long for immortality as well as the good, which is to say that Love(Eros) is a longing for immortality.

Conception takes place when man and woman come together, but there's a divinity in human propagation, an immortal something in the midst of man's mortality which is incompatible with any kind of discord. Ugliness is at odds with the divine, while beauty is in perfect harmony.


그런데 우리가 동의한 대로, 만약 사랑이 자신에게 좋은 것을 영원히 가지려는 것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죽지 않는 것을 좋은 것과 함께 욕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필연적으로 죽지 않음[不滅]에 대한 갈망입니다.

결국 남자와 여자의 결합도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 속에 있는 죽지 않는 것이므로 신적인 것이지요. 이런 일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일어날 수 없는데, 추한 것은 모든 신적인 것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조화를 잘 이룹니다.

역자 소개       
 

이종훈(李宗勳)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성균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의 강사를 거쳐 현재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현대의 위기와 생활세계≫(동녘, 1994), ≪아빠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현암사, 1994, 2006) 1~3권, ≪현대사회와 윤리≫(철학과 현실, 1999) 등이, 옮긴 책으로 ≪시간의식≫(한길사, 1996),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한길사, 1997), ≪경험과 판단≫(민음사, 1997), ≪데카르트적 성찰≫(한길사, 2002),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한길사, 2007) 1~3권,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박영사, 1995), ≪언어와 현상학≫(철학과 현실, 1995) 등이 있다. 후설 현상학과 어린이철학교육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이 있다.

편집자 리뷰     

이 책은 아폴로도로스가 아리스토데모스로부터 아가톤의 집 만찬에서 사랑에 관해 나눈 말들을 전해 듣고, 그 이야기를 글라우콘에게 얘기해주는 식으로 기록된, 플라톤의 원숙기 걸작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 입을 빌려 주장하는 플라톤의 사랑에 관한 말들은 단지 사랑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삶 전체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을 터인데,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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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l(독일, 1859~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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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Phänomenologie)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독일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할레 대학의 강사, 괴팅겐 대학의 강사와 교수,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를 거쳐 은퇴 후 오히려 더욱 왕성한 의욕과 새로운 각오로 연구와 강연에 매진하면서 죽는 날까지, “철학자로 살아왔고 철학자로 죽고 싶다”는 자신의 유언 그대로, 진지한 초심자의 자세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수행한 말 그대로 ‘철학자’ 자체였다.
이 50여 년의 외길 삶은 이론과 실천, 가치를 포괄하는 보편적 이성을 통해 모든 학문의 타당한 근원과 인간성의 목적으로 되돌아가 물음으로써 궁극적 자기책임에 근거한 이론(앎)과 실천(삶)을 정초하려는 ‘엄밀한 학문(strenge Wissenschaft)으로서의 철학’(선험적 현상학)의 이념을 추구한 것이다. 그 방법은 기존의 철학으로부터 정합적으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편견에서 해방되어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사태 자체로(zur Sachen selbst)’ 되돌아가 직관하는 것이다.
이 이념과 방법은 철학의 참된 출발을 부단히 모색해 갔던 험난한 구도자의 길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물론 초기 저술의 정태적 분석과 후기 저술이나 유고의 발생적 분석에서 드러난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것들은 서로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떤 건물에 대한 평면적 파악과 입체적 조망처럼,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보완 관계이다.
수학의 기초를 논리학에서, 논리학의 기초를 인식론에서 찾았고, 또 이 기술(記述)적 현상학을 정초할 선험(先驗)적 현상학을 해명했던 그는 생전에 ≪산술철학≫(1891), ≪논리연구≫(19001901),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1911),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제1권(1913), ≪형식 논리학과 선험 논리학≫(1929), ≪데카르트적 성찰≫(1931),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1936)을 남겼다.
후설 현상학은, 객관적 실증과학을 극복할 새로운 방법론으로 간주되든 독자적 철학으로 간주되든, ‘현상학 운동’으로 발전해 가면서 실존주의·인간학·해석학·구조주의·존재론·심리학·윤리학·신학·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과 문화예술 전반에 다양하게 응용되면서 강력한 영향을 지금도 미치고 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유고(유태인 저서 말살 운동으로 폐기될 위험에서 구출된 약 4만 5000장의 속기 원고와 1만여 장의 타이프 원고)는 벨기에 루뱅대학의 후설 아카이브(Husserl-Archiv)가 1950년부터 후설 전집을 출간한 이래 2005년 제38권까지 계속되고 있다.

내용 소개       

나치정권이 등장하면서 정치사회적 비합리주의에 대한 반발과 유럽 문명에 대한 회의가 지배적인 시대상황에서 후설이 학문과 인간성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근대과학의 발생과 철학의 역사를 목적론적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현상학을 새로운 형태로 제시하고자 모색한 1935년 비엔나 강연. 후설의 최후저술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의 모체이다.

역자 소개       

이종훈(李宗勳)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성균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의 강사를 거쳐 현재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현대의 위기와 생활세계≫(동녘, 1994), ≪아빠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현암사, 1994, 2006) 1~3권, ≪현대사회와 윤리≫(철학과 현실, 1999) 등이, 옮긴 책으로 ≪시간의식≫(한길사, 1996),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한길사, 1997), ≪경험과 판단≫(민음사, 1997), ≪데카르트적 성찰≫(한길사, 2002),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한길사, 2007) 1~3권,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박영사, 1995), ≪언어와 현상학≫(철학과 현실, 1995) 등이 있다. 후설 현상학과 어린이철학교육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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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John Stewart 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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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users.ox.ac.uk

(영국, 1806~1873)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정규학교에서가 아니라 경제학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로부터 3살에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해, 14살까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문학·논리학·역사·수학·경제학 등의 중요한 고전들을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독특한 천재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방식은 아침 식사 전에 항상 함께 산책을 하면서 밀이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암기하도록 하고, 그 주제의 핵심을 주입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밀이 스스로 생각해 어느 정도 이해한 다음에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 후 1년간 프랑스에서 생시몽의 사회주의와 콩트의 실증주의를 접하는 등 견문을 쌓았다. 17살에 아버지의 조수로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했고, 20살 무렵 인간이 행복하려면 엄격한 이성주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히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섬세한 감성이 필요하다고 느껴 음악·시·미술 등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인 벤담의 공리주의(功利主義)에 공감해 ≪판례의 합리적 근거≫의 저술에 참여하고 토론회를 결성해 왕성하게 보급했으며, 동인도회사가 해산될 때까지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틈틈이 저술들을 발표했다.
밀은 20여 년간 사귀어왔던 친구가 죽자 그의 부인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와 1851년 결혼했는데, 그녀는 1857년 프랑스로 여행하던 중 갑자기 병을 얻어 죽었다. 그녀는 자유의 존엄성을 지키고 진리를 추구해 갔던 자신의 사상들을 함께 검토하고 수정해 저술들로 출간했던 평생의 동료이자 동반자였다. 그는 동인도회사를 은퇴한 후 1865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자신의 원칙에 따라 정치활동을 했으나, 재선에 실패한 뒤 정치계를 떠나 그녀가 묻힌 프랑스 아비뇽과 런던에서 반년씩 살다 식물채집 여행에서 얻은 풍토병으로 죽었다.
저서로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하고 경험적 사례들에서 일반적 법칙을 발견해 내는 귀납논리를 정립한 ≪논리학 체계≫(1843), 생산법칙과 분배법칙을 분리해 경제학을 사회과학으로 체계화하고 개인의 욕구와 다수의 행복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해 노동계급의 지위와 복리를 향상시킨 ≪정치경제학 원리≫(1848), 개인의 자유와 사회 권력의 올바른 관계 속에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통해 민주사회의 기본원리를 확립한 ≪자유론≫(1859), 공리주의에 질적 요소를 보완해 원숙한 윤리학으로 제시한 ≪공리주의≫(1863), 민주정부의 이상을 밝히고 대중정치의 문제점을 분석한 ≪대의제정부 고찰≫(1863), 남녀평등 보통선거와 비례대표제 등을 실시할 것을 주장한 ≪여성의 종속≫(1869)이 있다. ≪자서전≫(1873), ≪종교에 관한 에세이≫(1874), ≪사회주의론≫(1879)은 사후에 출간되었다.

내용 소개      

밀은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적 저술인 이 책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권력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모색하면서, 전통적 권위와 맹목적 관습을 타파해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독자적 개성을 발전시킬 자유가 필연적이며, 지배적 세력을 지닌 여론이 개인의 사상을 표현할 자유를 억압하면 진리를 발견하기는커녕 어떤 진보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를 철저히 밝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굳건히 수립하였다.

해설 중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로부터 3살에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해, 14살까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중요한 고전들을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 그는 이렇게 쌓은 단단한 기초를 바탕으로, 건전한 상식을 존중하는 영국 경험론의 전통과, 대화를 통해 타협을 모색해 가는 영국 의회민주주의의 전통에 따라, 또 새로운 사상이나 반대자의 의견을 항상 경청하는 그의 열린 마음 자세로, 또한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생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용감히 싸워나갔던 독창적인 사상가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결코 극단적인 개인적 자유주의로 해석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의 지위향상과 복리증진을 주장했지만 지나친 자유방임과 횡포를 경계했고, 민주주의 정부를 이상적 정부로 규정했지만 대중의 인기를 좇는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듯이, 부당한 권력과 권위에 대항해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이것과 사회의 이익이나 정당한 통제를 어떠한 기준에 따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하는 문제를 부단히 모색했기 때문이다.
밀은 벤담(J. Bentham)을 만나면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독특한 천재 교육에서 벗어나 독자적 사상가로 발전한다.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과 ‘모든 사람은 하나로 취급되어야만 한다’는 원리에 입각해, 쾌락(pleasure) 자체가 곧 선(善)이며, 질적 차이 없는 이 쾌락의 양(量)을 강도·계속성·확실성 등의 기준에 따라 과학적 방법으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제시했다. 이것은 유용성(utility)의 원칙에 따라 최대의 쾌락을 산출하고, 그 결과를 자애(charity)의 원칙에 따라 가능한 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배분하려는 사회적 쾌락주의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쾌락의 양만 추구하는 ‘돼지 철학’이라고 비난받자, 밀은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며 쾌락에 질(質)적 요소를 추가하고, 인간의 행동에서 개인적 이기심 이외에도 사회적 관습·명예욕·희생정신 등 도덕적 의무감을 부각시켜 보완했다. 즉 그는 언론 탄압과 선거권 제한에 맞서 봉기한 프랑스 7월 혁명과 정신의 역사적 발전을 중시한 독일 이상주의(理想主義)에 깊은 영향을 받아, 18세기 계몽주의(啓蒙主義)가 추구했던 이성에 치우친 벤담의 주장에는 감성적 정서가 없다고 비판하고, 콩트(A. Comte)의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사회학은 물론 철학과 심리학을 포함한 학문 일반에 적용해 낡은 도덕철학을 새로운 도덕과학으로 만들었다.
(생략)

차례               
 
해설                           ····················9
지은이에 대해                ················18
제1장 서론                    ·················21
제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    ············51
옮긴이에 대해              ················139

역자 소개       
 
이종훈(李宗勳)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성균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의 강사를 거쳐 현재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현대의 위기와 생활세계≫(동녘, 1994), ≪아빠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현암사, 1994, 2006) 1~3권, ≪현대사회와 윤리≫(철학과 현실, 1999) 등이, 옮긴 책으로 ≪시간의식≫(한길사, 1996),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한길사, 1997), ≪경험과 판단≫(민음사, 1997), ≪데카르트적 성찰≫(한길사, 2002),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한길사, 2007) 1~3권,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박영사, 1995), ≪언어와 현상학≫(철학과 현실, 1995) 등이 있다. 후설 현상학과 어린이철학교육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이 있다.

편집자 일러두기
 
이 책은 밀이 1859년 발표한 ≪자유론(On Liberty)≫에서 제1장 ‘서론’과 제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옮긴 것입니다. 전체 다섯 장 가운데 두 장만 옮긴 것은 민주사회의 진정한 자유에 관한 그의 핵심사상이 이 두 장 속에 간명하게 압축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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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Platon(Plato)(고대 그리스, BC429?~BC347)
 

아테네의 귀족으로 태어나, 당시의 관례대로 정치가가 되려 했으나, 20세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7세에 스승이 부당한 재판의 결과 사형을 당한 후 정치적 탄압을 피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도 받았다. 시라큐스에서 정치개혁에 관여했지만 음모에 빠져 노예로 팔려가다 친지의 도움으로 해방된 후, ‘아카데미아 학원’을 세워 정치가 아닌 청년교육을 통해 진정한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약 30여 편의 ‘대화편’과 몇 권의 편지를 남겼는데, 이 책에 수록된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와 ≪크리톤≫ 이외에 ≪메논≫(Menon), ≪파이돈≫(Phaidon), ≪향연≫(Symposium), ≪국가≫(Politeia), ≪소피스테스≫(Sophistes), ≪티마이오스≫(Timaios), ≪법률≫(Nomoi) 등이 있다.

이 ‘대화편’들은 진리를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생생한 대화체의 형태로 재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화와 상징 풍부한 비유를 담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웅장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그는 이데아(idea)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가능한 한 영혼을 훌륭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목적이자 보람된 행복이라며 영혼의 완성을 역설한 소크라테스의 새로운 도덕을 개인의 차원에서 지성이 지배하고 정의가 구현되는 국가와 자연의 차원으로 확장해, 진리에 대한 사랑 즉 철학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고 새로운 삶을 창출하는 이상적 관념론(Idealism)을 제시한 선구자이다. 이러한 평가는 화이트헤드(A.N. Whitehead)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 시대의] 각주(脚註)"라고 말하듯이, 또한 서양사상의 전통이었던 대수학적인 평면적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의 기하학적인 입체적 사고에 대해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나 첨단 유전공학자들이 매우 경탄하듯이, 서양의 역사에서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과 문화 전반에 걸쳐 결정적 영향을 지금도 강력하게 행사하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내용 소개
<Apology>은 소피스트의 무지를 폭로하고 대화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해가는 새로운 도덕성을 일깨우다 재판을 받게 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철학적 작업의 참모습을 법정에서 직접 밝힌 대화편. <Criton>은 억울한 재판결과에 불복해 탈옥해 망명할 것을 권유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가 “정당한 절차로 합의한 약속(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자신의 삶의 원칙을 분명하게 제시한 대화편.

머리말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가지 단계를 분명히 구별해 파악해야만 한다.

첫째, 무지(無知)를 자각하는 단계인 반어법(Socratic Irony) 즉 논박술(elenchos)은 자신이나 상대방의 무지를 확인함으로써 진리를 깨닫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논박술은 단순히 논쟁에서 무조건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던 소피스트들의 논쟁술(eristike)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둘째, 영혼(靈魂)을 활용하는 단계인 산파술(maieutike)은 이성을 주고받는 대화(dia+logos)를 통해 망각된 진리를 스스로 기억해내 직관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아를 발견하고(知) 실현함으로써(德) 행복하게(福)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 그가 삶과 죽음을 통해 역설한 도덕혁명의 핵심이다.

그런데 잘 사는 지혜로운 삶은 영혼의 완성임을 강조한 그의 철학은 새로운 도덕으로 평가되기는커녕, 1) 기존의 도덕을 빼버리는 활동(de+moral+ize)을 통해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새로운 신인 정신(精神) 즉 영혼(daimon)을 잘 모시는 것(eu+daimon+ia)이 진정한 행복이자 새로운 삶의 규범이라고 주장한 것은 결국 2) 국가가 믿는 신(神)들을 믿지 않지 않는 것(나중에 신들을 모독한 것)이라고 오해되어 고소되었다.

이 책 제1부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열린 법정에 서서 그가 일부 친지들과 제자들에게만 알려진 자신의 철학을 배심원이자 일반 시민들에게 전모를 낱낱이 밝히면서 “왜 더 많은 재산과 명예를 얻는 데는 마음 쓰면서 지혜를 사랑하고 영혼을 완성하는 데는 생각도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하고 질타하며 “캐묻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며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신과의 부단한 대화 즉 비판적 캐물음을 통해 보람된 삶의 의미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웅변적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에도 첨단 과학기술과 정보시대에 흔히 잃어버리기 쉬운 인격적 주체의 자기책임과 진정한 인간성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이 책 제2부 ≪크리톤≫은 이러한 재판의 결과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크리톤이 감옥으로 찾아와 외국으로 망명할 것을 권하지만, 그 당시 법률인 다수가 약속한 결정은 비록 자신에게 불리해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고 오히려 설득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단순히 “악법(惡法)도 법(法)”이라는 실정법의 선구자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법률)과 개인의 도덕원칙 혹은 자기이익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나갈지, 또 부당한 법률에 대한 시민의 불복종운동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고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역자 이종훈 춘천교대 윤리교육과

2008년 상반기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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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계수나무 2008/05/12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교수님블로그 방문으로인해 좋은 공식 블로그알고갑니다. 그런데 이블로그에 자주올려면 어떻게 하지요? 가입이라던가.. 아니면 이웃추가 뭐 이런 기능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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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르네 Rene Descartes
 

르네 데카르트(Renè Descartes, 1596~1650)는 예수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법학과 의학을 공부했지만,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을 폭넓게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다녔고 군대에도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전통에 얽매여 정체된 철학을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으로부터 일정한 순서에 따라 ‘천천히 걷지만 곧은길을 따라가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보편적 학문으로 수립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생생한 기록인 ≪방법서설≫은 논쟁에 휘말릴 것을 염려해 1637년에야 출판했다.

그는 사상과 문화에 보다 자유롭고 관대했던 네덜란드에서 주로 은둔하며 저술활동을 했는데, 주요저술로는 이 책 이외에 ≪제1철학에 대한 성찰≫(1641), ≪철학의 원리≫(1644), ≪정념론≫(1649) 등이 있다. 점차 가톨릭교회와 학계가 자신의 사상을 무신론으로 왜곡하고 매도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스웨덴으로 이주해 활동했지만, 곧 병세가 악화되어 1년여 만에 54세로 죽었다.

그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의 출발점(목적)을 찾아 ‘방법적 회의’를 수행한 결과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더라도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사실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원리이며, 이처럼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된 정합적 연역체계를 모두 진리로 파악했다. 대수학을 기하학에 접목시켜 공간과 공간적 관계들을 수(數)의 언어로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석(解析)기하학을 고안해냈던 그는, 이성에 근거해 자연의 수학적 질서를 밝혀 기계론적 세계상을 제시했다.

생각하는 주체인 자아(ego)를 강조한 그의 철학은 교회중심의 중세사회에서 벗어나 이성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했고, 기계론적 유물론과 결합해 계몽주의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이성적인 것만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이성에 맞지 않는 것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로 전환되어, 불합리한 구제도(ancien règime) 전체를 급진적으로 타파하려는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길잡이가 되었다. 이렇듯 그의 철학은 ‘근대사상의 아버지’일뿐 아니라, 현대 서양문화 전반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적 전통이다.


머리말 중에서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Renè Descartes, 1596~1650)는 프랑스 중서부 투렌지방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1년여 만에 폐결핵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병약한 몸을 물려받았으나, 이 불리한 신체조건을 오히려 복잡한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그 가운데 긍정적 측면을 찾으려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습관으로 극복했다. 예수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법학과 의학을 공부했지만, 기존의 스콜라철학과 학문들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종교전쟁으로 유럽 전체가 극도의 혼란을 겪는 시기에,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을 폭넓게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또 군대에 들어가 살아 있는 지식들을 쌓았다.

그러던 1619년 11월 그는 중세의 낡은 전통에 복잡하게 얽매여 정체된 철학을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으로부터 일정한 순서에 따라 ‘한 걸음씩 확실하게 시작하는’, 즉 ‘천천히 걷지만 곧은길을 따라가는’ 새로운 기하학적 방법(more geometrico)에 기초해 보편수학(mathesis universalis)으로 수립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자사전과 같이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책 ≪방법서설≫이지만, 그는 번거로운 논쟁에 휘말리거나 종교재판에 회부될 것을 염려해서 오랜 동안 고심하던 중,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1637년에야 출판했다.

세상의 평판을 쫒기보다 학문과 진리를 연구하고 마음의 휴식과 평안을 추구했던 그는 사상과 문화에 보다 자유롭고 관대했던 네덜란드에서 주로 은둔생활을 하며 저술활동을 했다. 그의 주요저술로는 이 책 이외에 ≪제1철학에 대한 성찰≫(1641), ≪철학의 원리≫(1644), ≪정념론≫(1649) 등이 있다. 그는 점차 일부 가톨릭교회와 학계가 자신의 사상을 무신론으로 왜곡하고 매도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이 철학에 대한 자문을 요청하자 1649년 스웨덴으로 이주해 활동했지만, 곧 병세가 악화되어 1년여 만에 비교적 젊은 나이인 54세에 죽었다.


역자  이종훈  춘천교대 윤리교육과

2008년 상반기 출간예정

본 포스트의 저작권은 편역자와 출판사에 있으므로, 무단 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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