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 Voltaire(프랑스, 1694~1779)


빠리의 평민 가정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프랑수와 마리 아루에(F. M. Arouet)이고, 볼떼르라는 이름은 1718년에 비극 ≪오이디푸스≫를 발표하며 사용하기 시작한 필명이다. 젊은 나이에 일찍 사교계에 진출하였고,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희곡으로 명성을 얻고자 하는 야심에 들떠 있던 그는 주로 희곡 집필에 몰두하였다. 그의 첫 소설 ≪쟈디그≫를 발표한 것이 1747년이니, 나이 오십이 넘어서이다. 또한 기지 발랄한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가 처한 사회에서 비방의 대상이 되고 박해를 받기도 하던 그는 잠시 영국으로 피신하기도 하는데(1726∼1729년), 그 시절이 그에게는 영국에서 이미 자리 잡은 정치적 자유주의나 존 로크(J. Lock, 1632∼1704년) 같은 학자의 경험론을 접할 수 있게 된 호기(好機)였던 것 같다. 영국에서 돌아온 후에도, 당시의 정치체제 및 지배 종교와 끊임없는 갈등 관계에 있던 그는, 고향인 빠리에 머물지 못하고, 샤뜰레 부인이나 프러시아의 후레데릭 II세 등과 같은 후원자(지지자)들에게 의지하며 전전하다가, 나이 육십이 넘어서야 스위스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 훼르네(Ferney, Gex 지방)에 정착한다. 그는 황량한 그 마을에 토지를 일구어 경작지를 넓히는 한편 산업을 일으켜, 그곳에 머문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에 그 마을의 면모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일은 그 고장의 전설이 되었다. 또한 ≪철학 사전≫을 비롯한 그의 가장 원숙한 작품들이 발표된 것도 그 시절이며, 영원한 기하학자이며 절대적으로 완벽한 조물주에 대한 신앙(le culte de l'Etre Suprême)이라는 그의 새로운 종교가 확립된 것도 그곳에서이다. 1778년 고향 빠리에 돌아와 타계하였다.



해설         



국내 최초 소개

 
∙이 책은 볼떼르의 5개의 작품을 싣고 있습니다.

≪쟈디그≫와 ≪깡디드≫ 등, 볼떼르의 대표적인 작품들뿐만 아니라, 그의 여타 단편들 속에서도 첫눈에 발견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절대자의 뜻에 따라 이미 치밀하게 기획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한 숙명론 내지 예정설이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선명하게 포착되는 라이트모티프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그를 가리켜 운명론자 내지 비관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떠한 사유(思惟)나 행위도, 나아가 존재니 비존재니 하는 구분조차도, 모두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극히 첨예하고 집요하다. 기이한 현상이다. 특히, 선별적 구원론 내지 낙관주의에서 배태된 종교현상 및 그것의 폐해 등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관찰에서는(≪깡디드≫), 근본주의적인 혁신 의지마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인식하고 있는 인간과, 그 인간이 깃들이고 있는 지구의 실체는 비참하리만큼 초라하다. 지구라는 이 행성은 기껏 하나의 ‘진흙덩이’ 혹은 ‘진흙 원자’에 불과하다. 또는 하나의 ‘개미탑’이나 ‘두더지 흙두둑’일 뿐이다. 그리고, 광막한 우주 공간에서 그 ‘먼지 알갱이’ 표면에 기생하며 꺼떡거리는 우리 인간의 모습은 ‘벌레’나 ‘좀’의 꼴과 다름없다(≪쟈디그≫, ≪미크로메가스≫). 그렇건만, 그 무한히 작은 것이 무한히 거만하다. 심지어, 그 보잘것없는 주제에, 유독 자기들에게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무슨 특권처럼, 혹은 절대자가 내린 신표(信標)처럼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그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무도 시원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영혼이란, 소크라테스의 다이몬(daimon)이나 플라톤의 이데아 등이 그렇듯이, 그 실체가 규명되지도 정의되지도 않은, 순전한 몽상 내지 망상의 소산일 뿐이다. 물론 망상의 소산이라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에 존재하는 무한수의 생명체들 중 유독 자기들에게만 영혼이라는 그 입증되지도 않은 신표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인간 집단의 몽상은, 또 하나의 불가사의이며 경이로운 현상이다. 물론 그 현상 역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은 몽상가들의 유산일 수 있으며, 그것이 아마 미신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형이상학’이라는 아귀다툼의 실마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없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예수교의 존속을 가능케 한 자양을 공급한 이들이 그 두 몽상꾼 아닌가? 델포이를 비롯한 여러 곳 신전들의 신탁(信託, 점괘)과 ‘선지자’란 말은 무관한 것일까? 델포이 신전과 바티칸 신전이 전혀 이질적인 유물일까? 나아가, 프로메테우스와 크리스토스(메샤의 그리스식 명칭)는 전혀 무관한 존재들일까?

그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느끼고 사유하며 말하는 피조물’이며, 상황의 변덕에 따라 일희일비하는(≪백과 흑≫) 덧없는 부유물이고, 그 ‘좀’ 속에 선과 악이 혼재(混在)한다는 볼떼르의 인간관이, 자신을 우주의 중심적 존재라고 믿는 ‘사각모 쓴 미물’(쏘르본느의 신학자, ≪미크로메가스≫)의 인간관보다는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인간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든지, 혹은 ‘하나의 선이나마 태어나게 하지 않는 악은 없다’느니(≪깡디드≫) 하는 등의 언급은, 자신에게 영혼이라는 신표가 있다고 우쭐대는 이들의 주장만큼이나 모호하다. 도대체, 광대무변하고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우주 속에서, 선이니 악이니 하는 개념의 구분이 성립한다는 말인가? 그가 인식한 조물주(demiourgos, 즉 건축가) 혹은 절대자(Être Suprême) 역시 가치중립적이며 무심한 존재이다. 즉, 우주를 주도면밀하게 ‘설계한’ 절대적 창조주가 악이라는 것을 만들었을 리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선과 악의 대립적 구도, 그 유치한 갈등 관계를 탄생시켰을 리 만무할 것이다. 그러한 짓은 간사한 군주나 비열한 정파들의 전유물이다.

그러나 한편, 무한히 지속되는 연계 고리를 어찌나 완벽하게 창조하였던지, 그 연계 고리, 즉 ‘숙명’ 앞에서는, 창조주 자신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볼떼르의 주장이다. 피조물들은 말할 나위 없이, 창조주 역시, 자기의 지혜와 의지와 법칙과 속성의 ‘노예’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무엇을 아무리 간절히 부탁한다 하여도, 그 소청이 가납될 리 없다. 만약 조물주가 그 소청을 들어준다면, 그의 창조 작업이 허술하였음을 시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절대자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행위 자체가 그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또한, 기도로 절대자의 뜻을 바꾸게 하려는 행위 못지않게 실례되는 짓은, 피조물들이 그를 찬양하노라 떠들어대는 일이다. 조물주가 피조물들의 찬사에 기뻐한다는 말인가? 그 절대자가, 로마 시민들의 칭송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어느 황제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툭하면 동티나 일으키는 잡귀들과 그를 혼동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피조물들에게, 조물주를 찬양할 자격이 있다는 것인가?

인간과 조물주의 관계가 그러한데, 그 실상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외면해 버리는 오만에서, 온갖 미신이 ‘종교’라는 간판을 내걸고 창궐한다. 그리고 각 종교는, 각개의 교리와 의식을 정비하고, 사제를 임명하며, 신당(전)을 마련한 다음, 세력 확장에 매진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종교가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참혹한 재앙을 가져다주는 양상과 핵심적 요소들, 그것들이 볼떼르의 소설들을 점철하고 있다. 뭇 종교의 근간인 복술(卜術) 혹은 예언, 사리를 밝히려는 이들에 대한 증오, 음모, 탐욕, 궤변, 위선, 사기, 협박, 광신주의, 종교재판, 말뚝형, 화형, 기타 가학적 처형 등, 이루 다 열거하기조차 민망스러우리만큼 추한 현상들이, 볼떼르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주요 소재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현상들의 핵심적 동인(動因)을 볼떼르는 광신주의에서 발견하는 듯하다. 광신주의란 하나의 종교를 지탱시켜 주는 필수 불가결의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의 생산자가 사제, 설교가 및 해당 종교 이론가들이다. 하지만 이론가들의 역할은 그리 크지 못하다. 그들은 비교적 사리 밝은 이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았고, 따라서 그들의 말이나 글 자체가 상당한 합리성을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가 어찌 페르시아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겠으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신의 나라≫를 읽었기 때문에 십자군의 일원이 된 자가 있겠는가?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알비 성전(13세기 초에 프랑스 서남부 지방의 카타로스파를 잔혹하게 토벌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겠는가?

하나의 종교에 그 지탱 에너지와 확산 에너지를 확보해 주는 첨병들은 사제 내지 설교가들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원천은 열광인데, 열광은 오직 광신(狂信), 즉 사리를 무시하거나 분별치 못하는 상태의 믿음에서만 가능하다. 그러한 맹신자들 내지 광신도들의 수효가 종교의 존속을 담보해 준다. 따라서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의 경우처럼, 종교의 존속에 있어서 최대의 관건은 맹신자들의 확보이다. 맹신자들을 확보하는 방법들 중, 협박이라는 보편적 수단 이외에 가장 유구한 것이, 아마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피해망상증이나 열등감 등을 적당히 자극하는 행위, 즉 선동일 것이다. 또한 그 선동된 상태, 즉 그 열광 상태를 유지시키고 증폭시키는 촉매제 내지 흥분제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다른 개체나 집단에 대한 질투와 증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러한 질투와 증오를 존속 수단 내지 무기로 삼은 천한 종파나 정파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다. 또한 그것이 아직도 인류를, 특히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위험스럽고 추한 전염병이다.

볼떼르는 유럽인들을 일천 년 이상 혹독한 재앙 속에 처박은 원흉을 그러한 광신주의라고 여기는 듯하다. 뚤루즈의 늙은 상인이며 깔뱅(J. Calvin)파 개신교도였던 쟝 깔라스(J. Calas)가 이웃에 사는 카톨릭교도들의 무고로 인해 차형(車刑)에 처해지고 그 가정이 파괴되자, 그 사건에 뛰어들어 깔라스의 무죄를 밝히고, <관용론(Traité sur la tolérence)>을 집필한 것 또한 그러한 시각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여 물론, 그가 <관용론>에서 어느 특정 종파를 두둔하거나 나무라지는 않는다. 그의 여러 소설에서처럼, 숱한 종교전쟁이나 종파들 간의 학살 행위, 가학적 보복, 증오 등을 촉발시키는 광신주의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카톨릭이나 개신교, 마호메트교,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등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그것들 속에서 배타적 광신주의를 발견한 그가 꿈꾸던 것은, 사랑도 질투도 노여움도 모르며, 인간의 변덕에 무심한 절대자를 숭배하는 종교(le culte de l'Être Suprême), 그 ‘영원한 기하학자’를 숭배하며, 열광이 아닌 이성과 양식에 기초한, 새로운 종교인 듯하다.

무수한 인물과, 사건, 고장, 시대, 풍습 등, 광대한 문학적 공간을 동원하여 펼친 그의 이야기들을 일관하는 주제는, 종교와 형이상학이다. 그러나 그가 작품들 속에서 비판하고 있는 형이상학의 속성은 대부분 종교의 속성과 다름없다. 즉, 형이상학자들은, 예를 들어, ‘신의 본질’, ‘영혼의 불멸성’, ‘영혼과 육체의 관계’ 등과 같은 것들을 문제라고 하며 제기하는데, 우선 그것들 중 대부분은 인위적으로, 때로는 사제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영영 풀릴 수 없는 문제들이다. 즉 사이비(似以非) 문제들이다. 따라서 결국에는 그것들이 많은 사람들을 부질없는 고뇌에 빠지게 하고, 그들의 생명을 헛되게 소진시키며, 결국 자연스러운 삶에 등을 돌리게 한다. 예수교를 가리켜 ‘체념과 죽음의 종교’라고 한 미슐레(J. Michelet, 1798∼1874)의 시각 또한 같은 선상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위험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위험은, 형이상학이 종교적 양상으로 변해, 언제든 광신적 배타성을 띠고, 결국에는 사회를 분열시키며, 집단과 집단 사이에 가학적 증오의 씨를 뿌린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볼떼르의 긴 생애를 사로잡고 있었던 중추적 주제는 종교 문제였던 것 같다. 그를 가리켜 흔히들 계몽 철학자 혹은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의 모든 작품에 감도는 해학이다. 그의 작품들은 중세의 패설(稗說, fabliaux)들을 방불케 한다. 특히 디드로나 루쏘의 작품들과 비교할 때 그러한 특색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의 어느 작품을 대하더라도, 경쾌하고 때로는 혹독한 해학적 풍자가 톡톡 튀고, 글의 행간에 어느덧 그의 미소가 어른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비록 철학자이며 지칠 줄 모르는 논쟁꾼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프랑스의 가장 유구한 문학적 전통에 뿌리 내리고 있음을 즉각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중세의 패설들과 ≪여우 이야기≫를 지은 이름 모를 문인들이나, 뤼뜨뵈프, 뻬리에, 라블레, 샤를르 쏘렐, 몰리에르, 르 싸주 등으로 이어지는, 갈리아적 익살꾼들의 계보에 당당하게 오를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들 속에 스며 있는 그러한 특색 때문이다.

이제 그의 작품 몇 편을 선정하여 소개하려는 뜻은, 흔히 사상가 혹은 계몽주의 철학자로만 널리 알려진 그의 다른 측면, 즉 진정한 이야기꾼의 측면을 드러내려는 데에 있다. 또한, ‘신들의 몫’이라고 하는 그 고귀한 웃음을 잃으신 분들에게, 작은 파적거리나마 찾아드리고 싶은 소박한 충동에 이끌리기도 하였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미크로메가스 

세상 돌아가는 대로

백과 흑

체스터휠드 백작의 귀

스카르멘타도의 유랑기

주요 작품 연보 


옮긴이에 대해 



작품 중에서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곳에 있던 사각모 쓴 미세동물이, 다른 철학자 미세동물들의 말을 끊으며 나섰다. (...) 그는 하늘에서 온 두 나그네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 나서, 그 두 나그네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는 세계, 그들의 태양들, 그들의 별들 등, 모든 것들이 오직 인간만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Mais il y avait là, par malheur, un petit animalcule en bonnet carré, qui coupa la parole à tous les animalcules philosophiques;(...) il regarda de haut en bas les deux habitants célestes; il leur soutint que leurs personnes,leurs mondes, leurs soleils, leurs étoiles, tout était fait uniquement pour l'homme.

옮긴이        

이형식은 197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빠리4대학과 빠리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르셀 프루스트−희열의 순간과 영원한 본질로의 회귀≫, ≪프루스트의 예술론≫, ≪작가와 신화≫, ≪감성과 문학≫, ≪정염의 맥박≫, ≪루시퍼의 항변≫,≪현대 문학 비평의 방법론≫(공저), ≪프루스트, 토마스 만, 조이스≫(공저), ≪프랑스 현대 소설 연구≫(공저), ≪그 먼 여름≫(장편소설)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외상 죽음≫(쎌린느), ≪밤 끝으로의 여행≫(쎌린느), ≪미덕의 불운≫(싸드), ≪사랑의 죄악≫(싸드), ≪철부지 시절≫(까바니), ≪미소 띤 부조리≫(사바띠에), ≪여우 이야기≫(이형식 편역), ≪트리스탄과 이즈≫(베디에), ≪중세 시인들의 객담≫(이형식 편역), ≪요정들의 사랑≫(이형식 편역), ≪농담≫(이형식 편역), ≪롤랑전≫, ≪웃는 남자≫(위고),  ≪꼴롬바≫(메리메), ≪프랑시옹≫(쏘렐)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관용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볼떼르의 소설 묶음집이다. <미크로메가스>, <세상 돌아가는 대로> 등 볼테르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기막힌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된, 흔히 계몽주의로 부르는 볼테르의 사상을 확인해볼 수 있는 귀한 작품집이다. 이 소설들을 읽어보면 볼떼르가 얼마나 놀라운 상상력과 함께 뛰어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번역 또한 소설 읽는 재미에 한몫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 포스트의 저작권은 편역자와 출판사에 있으므로, 무단 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zmanz

댓글을 달아 주세요

웨이스와 보롱(Wace, Boron)


웨이스(Robert Wace, 12세기)는 주로 노르망디(깡, 바이으)에 살면서 노르망디 공작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글을 썼던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성모 마리아의 수태≫, ≪성녀 마르그리뜨의 생애≫, ≪니꼴라 성자의 생애≫ 등 성자전을 썼으나, 1155년에 ≪오뒷세이아≫, ≪아이네이스≫, ≪롤랑전≫ 등과 같은 에포포이아적 작품 ≪브루트 이야기≫를 완성하였다. 그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12세기 프랑스 문예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160년에, 노르망디 공작 가문의 시조인 롤롱(Rollon, 860∼933년경)으로부터 잉글랜드를 정복한 기욤(Guillaume le Conquérant, 윌리엄 Ⅰ세, 1027∼1087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루 이야기(
Roman de Rou)≫를 쓰기 시작하였으나, 1166년에 중단하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이 세력가들의 구미에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주의적이고 풍자적인 문체 때문이었을까?

한편 보롱(Robert de Boron, 12∼13세기)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으로 보아 그가 부르고뉴 지방 출신일 것이라는 사실 이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부르고뉴에 샘을 뜻하는 보롱이라는 마을이 있다). 젊은 시절에 ≪성배 이야기(L'Estoire dou Graal)≫라는 운문(8음절) 작품을 썼으나, 1200년대 초에 완성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프랑스 최초의 산문 소설 ≪선지자 메를랭 혹은 성배 이야기≫로 유명하다. 삼부작으로, 아리마타이아의 요셉(Joseph d'Arimathie)과 메를랭 및 뻬르스발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설           

국내 최초 소개


∙ 이 책의 제1, 2, 5장은 보롱의 작품에서 취하였고, 나머지 제3, 4, 6, 7, 8, 9, 10, 11, 12장은 웨이스의 작품에서 취하여 번역하였습니다.

프랑스 중세 문예 작품들 중, 문예사 전문가들이 이른바 궁정문학(Littérature courtoise)이라는 범주로 분류하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작품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켈트인들의 전설, 즉 그들의 감성과 꿈(몽상)과 세계관 및 역사의 편린들을 간직하고 있다. 베룰(Beroul, 12세기)이나 토마스(Thomas, 12세기) 등 많은 문인들이 노래한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 이야기를 비롯하여, 마리 드 프랑스(Marie de France, 12세기) 및 기타 이름 모를 문인들이 운문 단편소설(Lai) 형태로 노래한, 요정들 혹은 매나 늑대, 사슴 등으로 변신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사랑 이야기 등이 그 예이다. 또한 프랑스 근대소설의 초석을 놓았다고들 하는 크레띠앵(Chrétien de Troyes, 1135∼1183년경)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랑슬로(Lancelot), 뻬르스발(Perceval), 고뱅(Gauvain), 이뱅(Yvain), 이데르(Yder), 케(Key, Keu), 갈라아드(Galaad) 등 원탁의 기사들을 등장시켜 꾸민 이야기들, 즉 흔히 기사도 소설이라고 하는 작품들이 또 다른 예이다.

그런데, 사랑과 기사도 및 성배(聖杯, Graal)를 찾아 나서는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로 꾸며진 그 모든 작품들의 배경 혹은 밑그림을 형성하고 있는 인물들은, 켈트인들의 전설적인 왕 아서(Arthur, Artus)와, 그의 탄생 및 원탁의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지자(마법사) 메를랭(Merlin)이다. 따라서 그러한 문학, ‘궁정문학’이라 하기보다는 ‘켈트문학’이라 칭하여야 할 그 문학의 근원이나 실체를 명료하게 포착하기 위하여서는, 메를랭과 아서 왕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읽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메를랭과 아서≫라는 제하에 이 편역집을 구상하게 된 것은 그러한 필요를 절감하였기 때문이다.

메를랭과 아서에 관한 이야기는, 크레띠앵이나 베룰, 토마스, 마리 드 프랑스 등의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또 프랑스 문학 강의실에서조차 가볍게 언급되곤 하는 웨이스(Robert Wace, 12세기)나 보롱(Robert de Boron, 12∼13세기)의 작품들 속에 자세히 펼쳐져 있다. 웨이스가 1155년에 완성했다는 ≪브루트 이야기(Roman de Brut)≫(브루트는 곧 브루투스, 즉 아이네아스의 증손자이며 브리타니아에 와서 그곳의 최초 왕이 되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을 가리킨다)는, 몬머스(Geoffrey Monmouth, 1100년경∼1154년)가 1138년경에 라틴어로 쓴 ≪브리타니아 왕들의 역사(Historia Regum Britanniae)≫를 프랑스어로 번안한 것이다. 또한 메를랭이나 아서 왕에 관하여 프랑스어로 쓴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 작품의 아서 왕 편은, 아서의 탄생 및 그의 치세, 특히 그의 정복 전쟁 및 로마 제국과의 갈등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연대기적 혹은 역사적 서술의 성격과 고대 에포포이아(속칭 서사시) 형태가 복합된 그 이야기에는, 카이사르 및 브리타니쿠스(즉 클라우디우스) 등의 로마 군단이나 프랑크족 군대에 쫓겨 프랑스 서부 해안지역(아르모르, 브르따뉴)으로 혹은 바다 건너 알비온(알바, 브리타니아의 켈트식 명칭)이나 아일랜드로 건너갔다가, 색슨족 및 앵글족 등 북방에서 남하하던 종족들과의 투쟁 과정에서 다시 노르망디나 브르따뉴 지역으로 되돌아오던(5∼6세기) 켈트인들의 고단한 심경도 스며 있다. 또한 켈트인들의 그 고적하고 구슬픈 심경의 반작용인 듯, 브레누스(Brennus)라는 켈트족 장군이 기원전 390년에 로마를 점령하였던 사실도 일종의 그리움처럼 회고되며, 로마 정벌 후 알라마니아(게르만) 지역도 평정하겠다는 보복적 결의도 보인다. 특히 웨이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괄목할 만한 특징은, 축제 장면이나 출항 및 귀향 정경의 묘사인데, 그의 묘사에서는 사람들 간의 신분적 분별은 물론, 인간과 사물들 간의 분별마저 허물어버리는 시각이 발견된다. 즉, 그러한 특징 때문에, 프루스트가 ‘만물의 평등을 선언한’ 새로운 세계관이라고 극찬했던 플로베르의 묘사를 연상시키기도 하며,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프랑스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웨이스가 크레띠앵보다 오히려 더 ‘근대적’인 작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메를랭에 관한 이야기는, 보롱이 1200년대 초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최초의 산문 소설 ≪선지자 메를랭 혹은 성배 이야기(Merlin le Prophète ou le Livre du Graal)≫에 상세하게 개진되어 있다. 특히 그 작품에는 메를랭의 탄생 이야기가 매우 기이한 어투로 기술되어 있는데, 예수의 탄생 설화에 던지는 그의 의혹 어린 시선은, 라블레(≪가르강뛰아≫, 1534년 작)나 몰리에르(≪암피트뤼온≫, 1668년 작)의 시각을 연상시킨다.

켈트 문학의 기점 혹은 축을 제시하려는 생각으로 ≪메를랭과 아서≫라는 이 편역집을 꾸밈에 있어, 이상의 두 작품에서 일화들을 취한 것은, 두 작품의 그러한 시각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이 편역집의 제1장(악마들의 비상 회의), 제2장(메를랭의 탄생), 제5장(아서 왕의 등극)은 보롱의 작품에서 취하였고, 나머지 일화들은 웨이스의 작품에서 취하였음을 밝혀둔다.

차례         

해설

지은이들에 대해 


메를랭과 아더

1. 악마들의 비상 회의 


2. 메를랭의 탄생 

3. 아서 왕의 탄생 

4. 우터 왕의 죽음 

5. 아서 왕의 등극 

6. 아서 왕과 색슨족 

7. 정복 전쟁 


8. 아서 왕의 전성기 풍정 

9. 아서 왕과 로마제국

10. 몽-생-미셸의 거인

11. 로마 정벌을 위하여

12. 반역

옮긴이에 대해



작품 중에서     

아더가 그 많은 왕국에서 불러 모아 손수 키운 아름다운 젊음이 그곳에서 꽃잎처럼 졌다. (...) 전하는 이야기 거짓 아니리니, 아더 역시 몸에 치명상을 입었고, 그가 좌우에 명하여 자신을 아발론 섬으로 데려가라 하였다. 그곳에 가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모든 브리튼 사람들은 그가 아직도 그곳에 있다고 말하며, 그렇게 믿고, 그를 기다린다.


Dunc peri la bele juvente que Arthur aveit grant nurrie et de plusurs terres cuillie (....) Arthur, si la geste ne ment, fud el cors nafrez mortelment; en Avalon se fit porter pur ses plaies mediciner. Encore i est, Bretun l'atendent sicum il dient et entendent.

옮긴이         

이형식은 197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빠리4대학과 빠리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르셀 프루스트−희열의 순간과 영원한 본질로의 회귀≫, ≪프루스트의 예술론≫, ≪작가와 신화≫, ≪감성과 문학≫, ≪정염의 맥박≫, ≪루시퍼의 항변≫,≪현대 문학 비평의 방법론≫(공저), ≪프루스트, 토마스 만, 조이스≫(공저), ≪프랑스 현대 소설 연구≫(공저), ≪그 먼 여름≫(장편소설)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외상 죽음≫(쎌린느), ≪밤 끝으로의 여행≫(쎌린느), ≪미덕의 불운≫(싸드), ≪사랑의 죄악≫(싸드), ≪철부지 시절≫(까바니), ≪미소 띤 부조리≫(사바띠에), ≪여우 이야기≫(이형식 편역), ≪트리스탄과 이즈≫(베디에), ≪중세 시인들의 객담≫(이형식 편역), ≪요정들의 사랑≫(이형식 편역), ≪농담≫(이형식 편역), ≪롤랑전≫, ≪웃는 남자≫(위고),  ≪꼴롬바≫(메리메), ≪프랑시옹≫(쏘렐)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켈트인의 전설적인 왕 아서와 머린(Merlin)으로 더 잘 알려진 선지자(마법사) 메를랭의 탄생 비화 및 활약상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이 매우 흥미로운 점은 지금껏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아서왕와 메를랭의 탄생 비화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12세기 중세의 이야기를 통해 그때 사람들의 꿈과 환상을 쫓아가는 것도 재밌게 책을 읽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 포스트의 저작권은 편역자와 출판사에 있으므로, 무단 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zmanz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샤를르 소렐  Charles Sorel(프랑스, 1600~1670)

샤를르 쏘렐의 생애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프랑시옹≫과 같은 걸작을 남긴 사람의 자취가 그토록 희미해지다니, 프랑스 문예사 속의 대표적인 불가사의이다. 우선 그의 출생년도만 보더라도, 그것이 1598년 혹은 1599년일 것이라는 이가 있는가 하면, 1602년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다만 그의 사망 년도가 1674년이라고들 믿어, 그가 1600년 전후에 태어났으리라 추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프랑시옹≫의 초판본(제1∼7권)이 1623년 초에 서점에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샤를르 쏘렐의 출생년도가 1600년 훨씬 이전일 것으로 짐작된다. 나이 스물 전후의 소년이 ≪프랑시옹≫과 같은 작품을 썼으리라고 생각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의 사회적인 활동에 관한 기록 또한 전무한 형편이다. ≪프랑시옹≫의 초판본이 자취를 감춘 지 250여 년이 지난 후, 즉 1891년에야 다시 모습을 드러낸 사실로 보아, 그의 작품들이나 생애의 흔적을 지워버리려 한 대대적이고 암묵적인 시도가 있었던 듯하다. 루크레티우스(BC 98∼BC 55)나 세네카(4∼6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등의 작품들에까지 인용되던 에피쿠로스(BC 341∼BC 270)의 저서들이, 어느 순간 몽땅 자취를 감춘 사실을 연상시키는 문예사적 기현상이다.

해설             

■ 국내 최초 소개

이 작품은 프랑시옹이라는 어느 귀족 청년의 우스운 행적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야기이다. 조금 부연하자면, 심각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우스개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이소포스의 ≪우화≫나 프랑스 중세의 패설들(fabliaux), ≪여우 이야기≫, ≪즐거운 한담≫, ≪캔터베리 이야기≫, ≪데카메론≫, ≪노벨리노≫ 등과 같은 일화집이 아니라, 유유히 이어지는 긴 이야기이다. 따라서 누구나 그 긴 이야기의 흐름에 스스로를 맡긴 채, 각자의 능력껏 나름대로의 의미를 발견하고 즐거움도 취할 수 있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구태여 작가의 서문을 읽지 않더라도, 그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 즉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려는 그의 지극한 정을 작품 갈피갈피에서 느낄 수 있는 바, 시대적 혹은 보편적 질곡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는 잠시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갈리아적 기질, 즉 프랑스의 가장 유구한 기질을 짙게 간직한 작품이다. 따라서, 문예 일반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프랑스인들에게는 귀중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건만, 우리나라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물론,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그리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심지어 많은 프랑스인들에게조차 낯선 작품이다. 몰리에르나 스까롱의 이름을 들으면 잘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도, 샤를르 쏘렐이나 그의 작품 ≪프랑시옹≫ 이야기를 꺼내면, 대다수 프랑스인들이 멈칫거리는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어찌 된 연유인가?

“그분의 덕망과 용맹 뛰어나셨으나, 프랑스 역사책에는 그분에 대한 언급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금세기 역사가들의 등한함과 신의의 결여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인품과, 그분이 당신의 주군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접전을 치르셨는지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프랑시옹≫ 제3권에서, 프랑시옹이 자기의 선친 이야기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샤를르 쏘렐(1600?∼1670?)의 생애나 작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위의 구절이 작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고 있다는 감회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타계하였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는 것은 물론,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부친이 법조인이었고, 그 자신이 한때 왕실 사관(史官)이었으며, 수비니 공(sieur de Souvigny)으로 불렸고, 몇몇 문인들과 교분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어느 백작의 개인 서기였다는 이야기가 고작이다. 또한 그의 ≪프랑시옹≫이 1623년부터 1633년까지 3회에 걸쳐 출판되었으며, 만년에는 프랑스 문학, 물리학, 윤리학 연구에 몰두했다는 것 등이, 그의 활동에 관한 기록이다. 그의 ≪프랑시옹≫을 17세기의 걸작품들 중 하나라고 하면서, 그리고 하찮은 작품을 남긴 사람들의 생애까지도 샅샅이 파헤치기를 좋아하는 프랑스 학자들이, 그의 생애나 작품에 대하여서만은 간단한 언급으로 그치니, 한마디로 기이한 현상이다. 구태여 다른 작가들을 폄훼하려는 뜻은 없으나, 17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그의 ≪프랑시옹≫에 비할 만한 소설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의 이름을 라블레, 르싸주, 싸드, 발자끄, 쎌린느 등과 나란히 놓아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프랑스 학자들 중에는, ≪프랑시옹≫을 가리켜 “≪질 블라≫의 조상” 혹은 “17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독보적인 작품”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언급들은 작품의 특성이나 문학적 가치 등을 별로 드러내주지 못한다. 그저 의례적이며 마지못해 하는 칭찬 내지 노변정담식 논평일 뿐이다. 그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차마 상세한 이야기는 펼치지 못하겠다는 듯한 조심스러운 어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프랑시옹≫ 역시, 싸드의 작품들과 유사한 운명에 놓여 있다. 어휘 및 구문의 독특한 용례들로 넘치는 그 언어적 보고가, 사전 편찬자들에 의해 외면당했다는 점에서도, 싸드의 작품들과 그 처지가 비슷하다. 그러나 여하튼, 작품의 구성적 측면이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해학적 일화들의 풍자성을 고려할 때, ≪프랑시옹≫을 프랑스의 ≪돈끼호떼≫라 칭하여도 무방할 듯하다.
이 초역본은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상의 면모와 사회적 만화경을 드러내는 일화들을 몇몇 선별하여 구성하였다. 또한 작가의 세계관과 내밀한 의지 및 문체적 특성을 독자들께서도 짐작하실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물론 작품의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줄거리를 요약하는 형태의 초역은 시도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이동함에 따라 새로운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그 사건들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구성상의 특징(삐까레스꼬 소설의 특징이다) 때문이다. 오직 작품의 특성을 드러내는 징후임 직한 표본을 제시하려 하였을 뿐이다.
번역의 대본으로는 앙뚜완느 아담(A. Adam) 씨가 편집하여 1958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간행한 판본(Bibliothéque de la Pléiade)을 사용하였다.

일러두기         
 
이 책은 삐까레스꼬 소설인 이 작품의 특성을 드러내는 일화들을 중심으로 원전에서 약 20% 정도 발췌하였습니다. 따라서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줄거리를 요약하는 형태의 초역(抄譯)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각 일화에 붙인 일련번호들은 총 11권으로 되어 있는 원전의 번호체계와는 상관없이 옮긴이가 임의로 붙인 것입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 엽색꾼

2. 매춘부
3. 학창시절
4. 시인들
5. 미치광이
6. 사교계
7. 연회
8. 공개 교접
9. 수전노
10. 목동
11. 마법사
12. 선동꾼
13. 돌팔이

작품 연보

옮긴이에 대해

본문 중에서     

“하지만 저는 진실을 하도 사랑하는지라, 부인들의 노여워하시는 성정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감추지 않겠습니다. 특히, 입을 다물어 감추어 두는 것보다는 널리 유포시키는 것이 이로울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Neantmoins j'ayme tant la verité que malgré vostre fascheuse humeur, je ne veux rien celer, et principalement de ce qui profite plus estant divulgué, que non pas estant teu."

역자소개        
 
이형식은 197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빠리4대학과 빠리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르셀 프루스트―희열의 순간과 영원한 본질로의 회귀≫, ≪프루스트의 예술론≫, ≪작가와 신화≫, ≪감성과 문학≫, ≪정염의 맥박≫, ≪루시퍼의 항변≫, ≪현대 문학 비평의 방법론≫(공저), ≪프루스트, 토마스 만, 조이스≫(공저), ≪프랑스 현대 소설 연구≫(공저), ≪그 먼 여름≫(장편소설)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외상 죽음≫(쎌린느), ≪밤 끝으로의 여행≫(쎌린느), ≪미덕의 불운≫(싸드), ≪사랑의 죄악≫(싸드), ≪철부지 시절≫(까바니), ≪미소 띤 부조리≫(사바띠에), ≪여우 이야기≫(이형식 편역), ≪트리스탄과 이즈≫(베디에), ≪중세 시인들의 객담≫(이형식 편역), ≪중세의 연가≫(이형식 편역), ≪농담≫(이형식 편역), ≪롤랑전≫, ≪웃는 남자≫(위고)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프랑시옹≫은 그 뛰어난 문학성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프랑시옹’이라는 귀족 청년의 기상천외한 풍자와 해학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면모까지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신혼 첫날 아이를 낳은 신부의 이야기와, 부정한 아내를 가려내기 위한 프랑시옹의 묘안은 큰 웃음을 자아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 포스트의 저작권은 편역자와 출판사에 있으므로, 무단 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zmanz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작자 미상       


해설 중에서    

■ 국내 최초 소개

중세 프랑스 문예작품들 중 켈트문명의 잔영 내지 전설을 짙게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대개 세 부류로 나뉘어질 수 있을 듯하다.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주축으로 하여 펼쳐지는 전쟁과 성배(聖杯, Saint Graal) 이야기가 그 하나로, 웨이스(12세기) 및 크레띠앵 드 트르와(12세기),보롱(12∼13세기) 등의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이며, 그것들은 영화나 동화 형태로 개작되어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부류의 작품들은, 남녀간의 사랑을 지고(至高)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이 남긴 것들로, 베룰(12세기)이나 토마스(12세기)를 비롯하여, 12~13세기의 많은 문인들이 노래한 트리스탄의 전설 등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트리스탄의 전설 또한 숱한 문인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시각과 감성으로 개작을 거듭하였고, 특히 바그너의 가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덕분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두 부류의 작품들을 태동시켰음직한 감성과 꿈의 원형을 보여주는, 요정들의 사랑 이야기 및 변신과 마법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또 하나의 범주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부류의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우선, 그러한 이야기들이 대부분 민담 형태로 구전되었고, 운문 단편소설(lai)의 형태를 갖춘 것들이 있기는 하나, 그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또한 오늘날까지 전하는 몇 편 아니 되는 작품들을 지은 이들은, 프랑스 최초의 여류 문인이라고들 하는 마리 드 프랑스(Marie de France, 12세기) 이외에, 그 이름조차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작품들이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프랑스 문예사가들의 등한함과 프랑스를 짓눌러온 종교적 전통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프랑스 문예사가들은 요정 이야기들을 한낱 실없는 옛날이야기 쯤으로 치부하여 왔다. 그 이야기들 속에 ‘이데올러기나 상상력이 결여되었으며’, 따라서 그저 ‘이야기하는 재미로’ 지은 가벼운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소박하되 세련된 언어로 씌어진 그 작품들을 관류하고 있는 인간의 원초적이고 짙푸른 욕망과 보편적인 몽상이, 한낱 심심풀이의 소산일 수 있을까? 특히, 대다수 작품에 선명하게 부각된 문명간의 혹은 종교간의 갈등 및 화해의 흔적들을, 실없는 이야기꾼의 수다로 단정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그 무사무욕하고 열정적인 요정들의 모습이, 19~20세기에 이르러서도 프랑수와즈(≪어린 요정≫, 조르쥬 쌍드)나 알빈느(≪무레 사제의 실절≫, 에밀 졸라)라는 착한 소녀들의 모습으로 부활하여, 야만스러운 교조 및 편견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아가, 질베르뜨나 오르안느를 각각 멜뤼진느와 호수의 귀부인(La Dame du Lac, 즉 비비안느)으로 몽상하는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그 은유적 원천을, 중세의 요정 이야기 이외에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또한 ≪사랑에 빠진 마귀≫(까죠뜨, 18세기)나 ≪까르멘≫(메리메, 19세기)과 ≪옹딘느≫(지로두, 20세기), ≪씨도≫(꼴레뜨, 20세기) 등도 유사한 몽상의 소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중세의 요정 이야기들은, 장구한 세월 동안 프랑스인들은 짓눌러온 지배교조와, 그에 편승하여 경도된 학문적 조류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옛 켈트인들의 몽상과 맥박 그 자체이다.

이 편역집은, 마리 드 프랑스의 ≪운문 단편집≫(éd. H. Piazza, 1974)과, 작자 미상의 작품들을 모은 ≪12~13세기 운문 단편집≫(G-Flammarion, 1992)에서 선별한 작품들과, 쟝 다라스(14세기)의 ≪멜뤼진느≫(éd. Stock, 1979) 및 보롱의 ≪메를랭과 아더 왕≫(éd. R. Laffont, 1989), 랑글레의 ≪아더 왕 이야기≫(éd. H. Piazza, 1965) 등에서 발췌한 일화들로 재구성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또한 요정들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켈트 종교(드루이다교)의 특성 중 하나로 알려진 변신의 신화(혹은 마법)와 관련된 사랑 이야기도 포함시켰음을 밝혀 둔다.

차례              
 

해설

랑발

갱가모르

데지레

그랠랑

비비안느

멜뤼진느

요넥

기쥬메르

비스끌라브레

본문 중에서     
 
A toz jors m'avriez perdue,
Se ceste amor estoit seüe;
Jamês ne me porriez veoir,
Ne de mon cors saisine avoir.

이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순간,
그대는 저를 영영 잃게 될 거예요.
다시는 저의 몸을 즐기지 못하실 뿐만 아니라,
저의 모습조차 보실 수 없을 거예요.

역자 소개       

이형식은 197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빠리4대학과 빠리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르셀 프루스트−희열의 순간과 영원한 본질로의 회귀≫, ≪프루스트의 예술론≫, ≪작가와 신화≫, ≪감성과 문학≫, ≪정염의 맥박≫, ≪루시퍼의 항변≫,≪현대 문학 비평의 방법론≫(공저), ≪프루스트, 토마스 만, 조이스≫(공저), ≪프랑스 현대 소설 연구≫(공저), ≪그 먼 여름≫(장편소설)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외상 죽음≫(쎌린느), ≪밤 끝으로의 여행≫(쎌린느), ≪미덕의 불운≫(싸드), ≪사랑의 죄악≫(싸드), ≪철부지 시절≫(까바니), ≪미소 띤 부조리≫(사바띠에), ≪여우 이야기≫(이형식 편역), ≪트리스탄과 이즈≫(베디에), ≪중세 시인들의 객담≫(이형식 편역), ≪중세의 연가≫(이형식 편역), ≪농담≫(이형식 편역), ≪롤랑전≫, ≪웃는 남자≫(위고)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요정들의 사랑≫은 프랑스에서 12~14세기에 쓰여진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집이다. 프랑스 최초의 여성 작가라고 하는 마리 드 프랑스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중세의 이야기답게 황당한 요소들이 없지 않지만 현실을 초월하여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당시 사람들의 꿈과 소망을 엿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한다. 이 책의 특징은 옮긴이가 우리말의 호흡을 살려 번역했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야기 읽는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 포스트의 저작권은 편역자와 출판사에 있으므로, 무단 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쉽게 찾아보기 > 재미있는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사전 高士傳  (0) 2008/02/22
오렐리아 AURELIA  (0) 2008/02/21
요정들의 사랑 Les amours féeriques  (0) 2008/02/21
캉디드 Candide  (0) 2008/02/21
마의 늪 La mare au diable  (0) 2008/02/14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0) 2008/02/11
Posted by zmanz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출처]colleges.ac-rouen.fr

죠제프 베디에  Joseph Bédier(프랑스,1864∼1938)
 
프랑스 중세문학 연구가로 유명하며, ≪트리스탄≫ 이외에 ≪롤랑전≫ 및 패설들(Fabliaux)을 수집. 편집하여 현대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특히 1900년에 발표한 ≪트리스탄과 이즈(Le Roman de Tristan et Iseut)≫는, 마리 드 프랑스(12세기), 아일하르트(12세기), 토마스(12세기), 베룰(12세기), 고트프리트(13세기) 등의 편린만 남은 작품들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당시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트리스탄과 이즈의 전설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물론 바그너(R.Wagner)가 앞서(1854∼1859)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가극을 발표하였으나, 그의 작품은 중세 문인들의 정서나 켈트 전설과 너무나 동떨어져, 베디에의 작품에 비할 바 못된다.


머리말 중에서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 이야기는, 곡진하고 자상한 심정이 엮어낸 한 편의 긴 노래이다. 간절하되 고요하며, 뜨겁되 악착스럽지 않은 노래이다. 더구나 그러한 노래가, 기사도 소설이나 무훈전, 풍자소설, 풍자극, 성자전 등이 거센 주류를 이루던 12세기 중엽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으니, 그 노래의 출현은 프랑스 문학 내지 유럽 문학 속에 일어난 하나의 기적이다. 그 작품이 출현한 시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것과 유사하거나, 그것에 견줄 만한 사랑 이야기가 없으니, 또한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다프니스와 클로에≫(롱구스), ≪에티오피아 찬가≫(헬리오도로스), ≪로미오와 쥴리엣≫(셰익스피어), ≪끌레브 대공 부인≫(라화이예뜨 부인), 혹은 ≪적과 흑≫(스땅달), ≪보바리 부인≫(플로베르), ≪채털리 부인의 사랑≫(로렌스) 등을 뇌리에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 이야기와 나란히 놓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영악스러운 인문학적 시선이 너무 강하게 번득이거나, 주제가 편중 내지 경도되었거나, 혹은 이념적 아귀다툼에 너무 짙게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작품들 속에서는 다정함이나 섬세함 혹은 심정 상의 고매함 등을 느낄 수가 없다. 물론 트리스탄의 이야기에서는 숙명적이고 맹목적인 정염 그 자체를 노래하고 있는 반면, 위에 열거해본 작품들 중 일부는, 정염으로 인해 야기되는 제현상을 이념적 주장의 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주제를, 어떠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노래했다 하여도, 모든 작품에는 작가 고유의 기질 혹은 성정이 감돌기 마련이며, 그것만이 진정한 독특성의 징후이다. 영악스러운 기지가 셰익스피어의 지배적인 특성이라면, 음흉함과 게걸스러움은 각각 스땅달과 플로베르의 특성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여인이여, 우리의 운명 역시 그러하니, 나 없이 그대 없고, 그대 없이 나 또한 없도다!”, “이즈 나의 연인, 이즈 나의 사랑, 그대 속에 나의 죽음 있고, 그대 속에 나의 삶 있나니!” 이상 두 구절이 집약하고 있는 트리스탄과 이즈의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전설에는, 각박한 나무람이나 영악스러운 풍자가 없다. 오직 다정함과 섬세함, 자애로움, 슬픔, 그리움 등이 이야기의 전편에 끊임없이 감돌며, 슬픔과 아쉬움의 절정에서 표출되는 죽음 저 너머로 향한 몽상이 펼쳐질 뿐이다. 또한 그러한 심정상의 고매함이 두 주인공이나 특정 인물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피해자인 마크 왕, 트리스탄의 어머니 블랑슈플뢰르, 이즈의 시녀 브랑지앵, 트리스탄의 양부 로할트, 그의 사부 고르브날, 리당의 영주 디나, 트리스탄이 마지막으로 몸을 의탁했던 까르헤의 성주 호엘, 그의 아들이며 트리스탄의 벗이 된 카헤르딘, 이즈로부터 브랑지앵을 죽이라는 밀명을 받았던 이름 없는 농노 등, 그 모든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다정함과 섬세함과 한결같은 신의이다. 심지어, 코온월에 조공을 받으러 왔던 그 사나운 모르홀트가 트리스탄과의 결투 끝에 죽어, 아일랜드의 기사들이 그 시신을 사슴 가죽에 싸서 고국으로 모셔 가는데, 시신이 아일랜드에 도착하는 정경을 그리는 어조까지도 무척이나 다감하다. “옛날, 와이즈포트 항에 개선할 때마다, 모르홀트는 자기를 환대하는 부하들과, 누님이신 왕비, 그리고 동녘에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황금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질녀 이즈 등을 대하며 기뻐하였노라. 모두들 그를 따뜻하게 환영하였고, 혹시 상처를 입은 경우에는 왕비와 그의 질녀가 상처를 치료해주었도다. 그러나 아무리 신통한 약이라 한들 이제 무슨 소용이랴!”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이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부딪치면 파열할 수밖에 없는 법, 블랑슈플뢰르와 트리스탄 그리고 이즈의 운명이 그러하며, 그 운명이 또한 작품의 중추적 주제이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자 블랑슈플뢰르는 문득 마비된 사람처럼 변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명이나 탄식 한 마디 새어나오지 않는다. “수족은 기운을 잃어 텅 빈 것 같은데, 영혼은 그녀의 육신을 빠져나가고픈 열망에 사로잡히도다.” 또한 기다리던 이즈가 오지 않는다고 믿게 된 트리스탄은 이즈의 이름만을 세 번 외친 후 아무 말 없이 숨을 거둔다. 뒤늦게 도착한 이즈 역시, 그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기절하더니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

내연기관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그들의 정염이, 외부로부터의 제약을 그만큼 힘들게 감내해야 하는 것도 따라서 하나의 필연이다. 중세 문인들의 말처럼, 그들의 사랑은 ‘가시덤불 위를 감도는 향기’, ‘쓰디쓴 잔’, ‘죽음’, ‘돌아올 수 없는 길’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무질서 혹은 취기이며, 때로는 대혼돈이기도 하다. 인습도, 교조도, 심지어 죽음도 그 정염의 팽창을 막지 못한다.

트리스탄과 이즈의 전설은 그러한 정염과 인습 간의 투쟁에서, 정염이 승리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승리는 죽음을 수반하며,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또한 인습 혹은 세속과의 불가피한 갈등관계에 처하여 고통을 감내해야 하니, 두 연인의 몽상은 필연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지향한다. 투명한 공기로 쌓은 성벽이, 백화만발한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 속에서는 씩씩한 영웅이, 아름다운 연인의 품에 안겨 영원히 늙지 않고 살며, 어떠한 적도 그 성벽을 깨뜨리지 못하는 곳, 두 연인이 꿈꾸는 그 이상향은 곧 죽음의 나라, 혹은 아더 왕이 잠들어 있다는 아발론 섬 같은 피안이다. 트리스탄의 전설이 삶과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죽음의 노래이다. 또한 그 죽음은,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심정에서 연원한 숙명적 사랑의 불가피한 귀결점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이야기의 최초 발상지가 어디인지, 또 그것을 처음 노래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야기에 아더 왕이 등장하고, 또 그와 마크 왕이 우호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 점을 볼 때, 남부 스코틀랜드의 여러 켈트 부족을 규합하여, 앵글로색슨 족에게 저항하였다는 아더 왕의 치세기(대략 5∼6세기) 이야기로 추측될 뿐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설화 중 하나인 디아르무이트(Diarmuid 혹은 Dermot)와 그레인느(Grainne 혹은 Grania)의 사랑 이야기에, 마크 왕의 결혼 및 트리스탄과 이즈의 탈출,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는 마크 왕의 일화 등이, 마치 같은 판에 찍어낸 듯 유사한 형태로 나타남을 볼 때, 트리스탄의 전설이 켈트인들의 감성과 꿈의 소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아더 왕이나 아일랜드의 전설 모두 그 시기를 알 수 없으려니와, 켈트족 및 켈트 문명 자체가 기이하게도 때 이르게 전설 속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켈트족의 역사와 문화 및 종교가 문득 전설 속으로 사라진 연유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프랑스 대혁명 혹은 프랑스 제1제정 이전까지, 즉 절대적인 왕권과 결탁한 예수교가 막강한 세력을 누리고 있던 동안에는, 켈트족이나 그들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였던 것 같다. 중세 이후 19세기 초반까지, ‘켈트’ 라는 어휘를 사용한 문인들을 발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불가사의이다. 쫓고 쫓기는 정복 전쟁의 와중에 휩쓸려 스스로 잠적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교도들’에 대한 악착스러운 박해 때문이었을까? 여하튼 그렇게 잠적한 문화권의 전설이건만, 12세기에 이르러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이 문인들의 작품에 은유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쎄르까몽(Cercamon, 12세기 전반), 방따두르(Bernard de Ventadour, 12세기 중반), 꾸씨(Châtelain de Coucy, 12세기 후반)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들은 노래에서 트리스탄과 이즈의 한결같은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설이 최초로 소설의 형태를 얻은 것은 마리 드 프랑스(Marie de France, 12세기 후반)의 ≪인동덩굴≫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 작품은 110여 수에 불과한 단편이고, 거의 같은 시기(1165∼1180년 사이)에 아일하르트(Eilhart d'Oberg), 토마스(Thomas d'Angleterre 혹은 de Bretagne), 베룰(Béroul) 등이 ≪트리스트란트(Tristrant)≫ 및 ≪트리스탄과 이즈(Tristan et Yseut)≫라는 제하에 장편 운문소설(속칭 서사시)을 내놓게 된다. 또한 12세기 말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트리스탄의 광대짓(Folie Tristan)≫이 전하는데 작자는 미상이다. 그리고 13세기 초에 쓰여진 고트프리트(Gottfried de Strasbourg)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et Isolde)≫ 등이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다. 그 이후 20세기 초까지, 발라드나 가극 혹은 소설의 형태로 개작된 많은 작품들은, 모두 위에 인용한 작품들에 입각해서 쓰여진 것들이다. 그러나 위의 작품들 중 온전한 형태로 전하는 것은 없다. 모두 편린만 남았고, 특히 13세기 말 이후 18세기 말까지 근 5세기 동안, 트리스탄의 전설이 프랑스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였는데, 그러한 현상은 그 시기의 정치적, 종교적, 기타 사회적 요인 및 그것에서 파생된 학문적 혹은 예술적 유행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트리스탄과 이즈라는 두 연인의 사랑을 노래한 중세 문인들의 그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성정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도외시되거나 망각된 원인을 이제 와서 따지고 밝힌들 무엇 하겠는가! 또한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다만 ≪부생육기≫만큼이나 착하고 정성스러우며 아름다운 옛 이야기를, 마침내 여러분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된 이제, 토마스가 자신의 작품에 붙였던 발문 한 구절로 소회의 피력을 대신할 뿐이다. “나 토마스는 이제 나의 이야기를 마치노라. 아울러 모든 연인들과, 사랑의 몽상에 젖어있는 이들, 연모하는 이들, 사랑하고픈 열망에 사로잡힌 이들, 음탕한 이들, 심지어 패륜아들에게도 나의 정중한 인사를 보내노라… 나는 많은 전설들과 시인들의 노래를 애써 모아 이 이야기를 지었노라. 그것은, 하나의 전형을 제공하고, 이야기를 더욱 아름답게 빛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니, 이 이야기가 모든 연인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또한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가끔 그들 스스로의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노라. 부디 모든 연인들께서는, 지극치 못한 절개, 연인의 과오, 온갖 번민과 고통 등, 그 모든 사랑의 덫에 걸려들었을 때에라도, 이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기를 바라노라.”

차례               
 

해설 

1. 트리스탄의 어린 시절 

2. 아일랜드의 모르홀트

3. 금발의 미인을 찾아서

4. 사랑의 미약

5. 브랑지앵의 죄

6. 커다란 소나무

7. 난쟁이 후로쌩

8. 트리스탄의 탈출

9. 모르와 숲

10. 은자 오그랭

11. 위험한 도섭장

12. 신명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