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딜타이 Wilhelm Dilthey(독일, 1833~1911)

빌헬름 딜타이는 1833년 11월 19일 목사의 아들로 비스바덴 주의 소도시 비브리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신학을 택했으나 칸트, 레싱, 게르비누스의 철학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교회사, 원시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스승인 트렌델렌부르크에게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뵈크에게서는 문헌학을 수강했다. 신학 분야 국가 시험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지속적 학문과 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김나지움 교사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1859년 슐라이어마허 재단의 현상 논문에 선정되면서 교사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해석학과 철학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 후 해석학, 철학, 윤리학에 관한 지속적 연구 결과 1864년 <슐라이어마허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865년 <도덕의식의 분석 시도>라는 연구로 교수 자격을 얻었다.

대학 교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866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서였다. 이후 킬 대학교과 브레슬라우 대학교를 거쳐 1882년 헤르만 로체(Lotze)의 후임으로 베를린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수행했다. 1883년 ≪정신과학 입문≫을 출간하면서 정신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순간을 맞게 된 딜타이는 브레슬라우 시절부터 교제해 오던 요르크 백작(Grafen Yorck)과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문으로서 정신과학을 기획함으로써, 딜타이는 역사이성 비판의 학문으로서 철학을 혁신하고자 했다. 나아가 역사적 세계에 대한 학문들의 이론, 사회적 체계와 그것의 연구에 대한 이론을 총체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칸트, 헤겔, 슐라이어마허를 넘어 딜타이는 진정한 계몽이 역사적 이성으로 완성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딜타이가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바로 삶은 그 자체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이해의 대상으로 주어져 있고, 지각 가능하며, 이해될 수 있고,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관한 학문으로서 정신과학은 따라서 삶의 자기 이해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해와 이해를 토대로 성립된 학문의 원천은 바로 내적 경험이다. 그 경험이란 내 자신의 고유한 삶의 연관에서 나오며, 언어와 전승을 매개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그런 경험을 의미한다. 이런 전제 하에서 딜타이는 인간의 삶이 전통 철학에서 말하는 이성(Vernunft)에 의해서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감성, 기분, 정서와 같은 요소들이 오히려 ‘원하고, 느끼는’ 인간존재의 본질 규명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딜타이의 창작 활동이 이성적 학문인 철학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 시학, 음악에까지 두루 미치고 있는 점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딜타이의 정신과학이 왜 ‘삶의 철학’으로 명명되는지를 알 수 있다.

베를린 대학교에 정착한 후 딜타이의 삶에서 학자로서의 학문적 강의와 저술 이외에 그다지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1887년 베를린 학술원 회원으로 임명된 후 칸트 전집의 출간에 공헌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후 딜타이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체험과 문학≫(1906), ≪철학의 본질≫(1907), ≪정신과학에서 정신세계의 구축≫(1910) 등을 꼽을 수 있다. 딜타이는 1911년 10월 1일 루르 강 인근 남 티롤 지방의 소도시 자이스에서 사망했다.



해설          

국내 최초 소개

∙ 이 책의 제1부는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의 ≪전집(Gesammelte Schriften)≫ 제Ⅵ권 ≪정신적 세계. 삶의 철학 입문(Die Geistige Welt. Einleitung in die Philosophie des Lebens)≫ 제2부 <시학, 정치학, 교육학 논문집(Abhandlun gen zur Poetik, Politik und Pädagogik)>(Stuttgart: B. G. Teubner; Goettingen: Vandenoeck & Ruprecht, 1958; 1962) 중 <보편타당한 교육학의 가능성에 관하여(Über die Möglichkeit einer allgemeingültigen pädagogischen Wissen schaft)>(1888), 제2부와 제3부는 그루토프(Groothoff)와 헤르만(Herrmann)이 간행한 딜타이의 ≪교육학 선집(Schriften zur Pädagogik)≫(Paderborn: Schöningh, 1971) 중 108∼133쪽을 번역한 것이며, 제4부는 그의 ≪전집(Gesammelte Schriften)≫제Ⅲ권 ≪독일 정신의 역사에 관한 연구(Studien zur Geschichte des deutschen Geistes)≫의 두 번째 연구인<프리드리히 대제와 독일 계몽주의(Friedrich der Grosse und die deutsche Aufklärung)>(Stuttgart: B. G. Teubner, 1959; 1962) 중 일부에 해당되는 158∼175쪽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딜타이 ≪전집(Gesammelte Schriften)≫ 중에서 교육학 관련 부분을 발췌·번역한 것이다. 철학, 역사학, 문학 등 인문학의 모든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딜타이의 경우 교육학을 따로 분리해서 고찰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 책에서 교육학을 주제로 설정한 것은 표면적으로 교육 혹은 교육학과 관련된 딜타이의 글을 한데 묶은 것에 불과하다. 그의 교육과 교육학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 되는 정신과학과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딜타이에 의하면 정신과학은 역사 및 사회적 실재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학문으로 규정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과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복합적 학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 당시 딜타이는 자연과학으로부터 정신과학을 구분하기 위하여 이 개념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인과율이 지배하는 자연의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과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세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인류가 존재하는 정신의 세계에는 도처에 가치들, 삶의 목적, 행위의 목표들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자연과학과는 다른 학문이 절실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기계적인, 공허한 반복의 성격을 갖는 자연 흐름의 객관적 필연성이 존재한다. 자연과학의 과제는 자연 변화 속에 내재하는 규칙성과 자연현상의 인과적 법칙을 밝히고 입증하는 것이다. 딜타이에 의하면 외적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인간의 삶 속에서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정신적 사실들이 정신과학의 대상이 된다. 즉 정신과학은 인간, 역사 및 사회 전반에 관한 학문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이러한 학문의 범주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영역을 포괄하게 된다. 역사, 국민경제, 법학, 국가학, 종교학, 문학이나 시 연구, 미술과 음악, 철학적 세계관의 연구들은 물론 심리학도 정신과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교육학에 관해서 딜타이는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하며, 그 당시 응용심리학의 하나로 교육학을 보려던 경향성에 비추어보면 교육학 또한 이 범주에 포함시켜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처럼 정신과학에서는 인간이 삶의 통일체로서 그 기초를 이룬다. 인간이 삶의 통일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이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한편 인간을 정신적 사실들의 총화로, 다른 한편 육체적인 사실들의 종합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하나의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존재로서 두 가지 사실들의 생동적인 관계를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두 가지 존재 방식을 결코 동시에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적 사실들은 육체적인 사실들과의 구분 속에 파악될 필연성이 생긴다.(중략)

(중략)우리 독자들에게 딜타이는 교육학자로서보다는 철학자, 역사학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일 교육학을 접해본 사람은 딜타이가 교육학의 발전에 얼마나 커다란 공헌을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8세기 헤르바르트와 슐라이어마허에 의해 교육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될 수 있었지만 경험과 사변, 연역과 귀납의 조화를 보다 정교화할 수 있었던 것은 딜타이의 공으로 돌릴 수 있다. 딜타이 생존 당시 그의 교육학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딜타이 사후 그의 전집이 발간되면서 1920년과 1930년대 놀(Nohl, 1879∼1960), 리트(Litt, 1880∼1962), 슈프랑거(Spranger, 1882∼1963)와 같은 독일의 학문적 교육학의 대표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놀이 주로 딜타이의 역사적 해석학적 방법론에 관심을 가진 반면 리트는 딜타이의 정신과학 이론과 역사적 세계에, 슈프랑거는 딜타이의 심리학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딜타이의 교육 사상을 정신과학적 교육학으로 승화시키는 데 공헌한 학자들은 주로 놀과 사승 관계에 있었던 베니거(Weniger, 1893∼1961), 플리트너(Wilhelm Flitner, 1889∼1990), 볼노(Bollnow, 1903∼1991) 등이다. 1960년대 이후 적어도 1990년대까지 베니거의 제자들로서 독일 교육학을 주도했던 블랑케르츠, 클라프키, 몰렌하우어 등도 딜타이의 정신과학적 교육학에 기반을 두고 비판 이론을 수용하였던 점을 보더라도 사상적 원류로서 딜타이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딜타이의 교육학에 관한 중요한 문헌들이 번역됨으로써 지금까지 딜타이 학파나 그 계승자들에 의한 간접적 이해를 넘어 사상적 원류에 직접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Dilthey 해석학과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전개과정>(손승남, <교육사상연구> 제21권 제1호, 121∼138, 2007)은 딜타이 교육학의 계승과 발전 과정을 조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연구는 독일 현대 교육학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정신과학적 교육학을 ‘해석학적 전환’이라는 최근 학문적 경향성에 비추어 재조명하고 있다. 이 논문을 통해 독자들은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주는 딜타이 해석학과 소위 ‘딜타이 학파’로 일컬어지는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서 전개된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다양한 입장들을 이론과 실천, 상대적 자율성, 역사성과 해석학과 같은 핵심 개념을 통해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경험적 교육과학과 비판적 교육학의 비판을 받은 후 정신과학적 교육학은 질적 교육 연구의 확산과 함께 교육해석학, 교육학적 전기 연구, 객관적 해석학, 생활 세계 연구 등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도 교육적 ‘경험’이 풍부하게 살아 있는 교육실제에서 출발하면서도 그 경험의 배후에 있는 삶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는 딜타이의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기본 사고를 다시금 정당화해 주는 것이다.

물론 ≪딜타이 전집≫과 ≪교육학 선집≫에 산재된 교육학 관련 글들을 한데 모으다 보니 사상 자체에서 중복된 부분이나 아직 영글지 않은 모습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사상적 흐름을 시대적으로 구분하지 않아서 전후가 매끄럽지 않은 대목도 있다. 독자들은 이런 점들을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아직 국내에선 딜타이에 관한 전기물 하나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없다. 다행히도 한스 쇼이얼(Scheuerl, 1919∼2004)이 엮은 글을 번역한 ≪교육학의 거장들 2≫(정영근 외, 한길사, 2004)에 딜타이의 삶과 저술 등이 소개되어 있으니 이 책과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안에 딜타이 학파에 해당하는 일군의 학자들, 가령 놀, 리트, 슈프랑거, 플리트너 등이 교육학의 거장 반열에 올라 있으므로 계통적으로 읽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울러 흔히 딜타이를 삶의 철학 혹은 생철학의 대표자로 거론하는데, 이 사상을 교육학적으로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이 볼노다. 그의 대표작 ≪실존철학과 교육학≫(윤재흥 역,학지사, 2008)이 다시 번역되었으니 딜타이 생철학이 교육학에서 어떻게 결실을 맺고 있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차례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40

제1부 보편타당한 교육학의 가능성에 관하여···45
1. 기존 교육학 체계의 학문적 낙후성 ······46
2. 교육의 규칙 체계를 가능케 하는 정신적 삶의 고유성 ·····················56
3. 이러한 조건하에서의 교육학적 전체 연관 ···68

제2부 빌헬름 딜타이의 교육학적 기본 사고
1. 빌헬름 딜타이의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기본 사고 과정
1) 교육학의 진리 ·············93
2) 공교육 체제 ··············94
3) 교육의 역사성 ·············94
4) 개인주의적 독일 교육의 특성 ·······95
5) 개별 교육과 공교육의 조화 ·······95
6) 귀납과 실험 ··············96
7) 수업 실천가 ··············96
8) 연역 ·················97
9) 귀납과 연역의 총합으로서 교육학 ·····97
10) 교육학의 현재적 상황 ·········98
11) 교육 실천가의 교육학 체계 ·······99
2. 베를린 강의 유고로부터의 선집
1) 옮긴이 해설: 텍스트 이해를 위한 전제 조건들···················100
2) 머리말 ···············104
3) 서론 ················106
4) 심리학을 교육학에 적하는 단계 ····115

제3부 교육기관의 조직과 개혁에 관하여
1. 학교 개혁과 학교 교실 ··········123
2. 학교 개혁
1) 진정한 개혁의 의미 ··········135
2) 개혁의 급진성을 경계함 ········136
3) 프로이센의 관료제와 국가 의식 ·····137
4) 역사의식 ··············139
3. 최상의 수업에 관한 물음과 교육학 ·····142
1) 보편타당한 교육학에 관하여 ······144
2) 교육의 의미 ·············146
3) 교육의 실현 과정  ···········147
(1) 문제 ················147
(2) 이념 혹은 학문에서의 완전성 개념 ····148
(3) 목적론적 삶의 연관 ··········149
(4) 형식 이념과 그 이념의 추상적 성격 ···150
(5) 교육의 본질 ·············151

제4부 프리드리히 대제와 독일 계몽주의 시대의 교육
1. 교육자로서 국가
1) 17세기와 18세기의 교육학적 운동 ····155
2) 루소와 독일 계몽주의 시대의 교육학자들 ·159
3) 프로이센 국가의 교육 제도 ·······163
4) 프리드리히 대제의 문화 및 국가교육학적 저술 ···················167
5) 체드리츠와 그의 협력자들 ·······173
2. 대중적 문필가 ·············182
1) 빌란트 ···············182
2) 프리드리히 대제 ···········185
3) 레싱 ················185
4) 칸트 ················187
5) 계몽주의 후기의 문필가들 ·······190

참고문헌 ··················196
옮긴이에 대해 ···············199



본문 중에서    

Unter Erziehung verstehen wir die planmäßige Tätigkeit, durch welche die Erwachsenen das Seelenleben von Heranwachsenden bilden. Der Ausdruck wird in einem weiteren Verstande gebraucht, wenn die einem anderen Ziel zugewandte Tätigkeit Erziehung als Nebenerfolg erreicht. So erzieht der Vorgesetzte in dem Amtsverhältnis, oder der Geistliche in dem Gemeindeverhältnis, ja das Leben selber erzieht den Menschen.

교육이란 기성세대가 성장세대의 정신적 삶을 형성하는 계획적인 활동이다. 이 개념은 어느 다른 목적과 관련된 활동이 부수적으로 교육적 성취를 가져오는 경우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공무관련 규정이나 공동체 생활에서의 정신적인 요소들도 교육적인 영향을 주며, 삶 그 자체가 인간을 교육한다.

옮긴이         

손승남은 1963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1990년 전남대학교 사범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 대학교에서 주 전공으로 교육학을, 부전공으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교육학의 학문적 근원을 탐구하던 중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커다란 흐름과 접하면서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의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특히 정신과학의 정초와 관련된 딜타이의 문제의식은 교육의 실증주의화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계기를 주었다.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 즉 정신과학이 단순히 계량적 방법에 의하여 ‘설명’되어서는 안 되며 ‘이해’되어야 한다는 딜타이의 명제는 적지 않은 공명을 남겼다.

정신과학의 방법론으로서의 해석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후 해석학의 흐름을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하이데거, 가다머, 하버마스를 축으로 삼아 이해 지평을 꾸준히 넓혀왔다. 필자의 주 전공이 교육철학인 탓에 철학적 해석학과 교육의 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이제까지 연구를 진행해 온 편이다.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박사학위 논문 <빌헬름 딜타이-교육학적 전기 연구(WilhelmDilthey-Pädagogische Biogra phieforschung)>(1997)에서는 해석학의 방법의 하나로 전기와 자서전에 초점을 두고 딜타이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논문 <딜타이의 슐라이어마허의 삶에 관한 연구>(1997)에서는 해석학적 전기 연구의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저 ≪교육 해석학≫(2004)에서는 해석학과 교육에 대한 관계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기 위하여 딜타이와 가다머의 해석학을 집중 조명하는 것은 물론 해석학의 발전된 형태인 전기 연구와 자서전 연구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해석학의 실제 적용이라는 관점에서 교육적 인간상으로서의 ‘신지식인’ 문제, 미래의 교육 내용으로서 ‘시대적 핵심 문제’ 등에 관한 해석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가다머 최후의 교육 관련 강연집인 ≪Erziehung ist sich erziehen≫(2000)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교육은 자기 교육이다≫(2004)로 펴내기도 했다. 최근 논문 <딜타이의 해석학과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전개 과정>(2007)은 독일 교육철학의 뿌리를 딜타이에서 찾아 소위 ‘딜타이 학파’를 중심으로 그 계보를 추적하고 있다. 최근 <지만지고전천줄>에서 ≪해석학의 탄생≫(2008)을 번역·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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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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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디르히 니체 Friedrich W. Nietzsche(독일, 1844~1900)


프리드리히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작센 주의 뤼첸 근처에 있는 뢰켄 마을에서 목사인 카를 루드비히 니체의 아들로 태어났다. 1849년 니체의 아버지가 죽자 니체의 할머니는 니체 가족을 이끌고 나움부르크로 이사했다. 나움부르크에서 니체는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두 고모 등 네 명의 여자들 틈에서 성장하면서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

1846년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태어났고, 1848년 남동생 요제프가 태어났지만 요제프는 출생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엘리자베트는 니체가 바젤 대학의 교수가 되기 전부터 정신병이 발병하여 죽을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니체를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니체가 사망한 후 생전에 출판하지 않고 남겼던 원고들을 정리하여 니체의 유고집 ≪힘에의 의지≫를 편집, 출판하기도 했다.

니체는 어려서 예술, 특히 음악에 재능을 보였는데 열 살 때 다성(多聲)의 무반주 악곡인 모테트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열다섯 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니체는 자신이 열두 살 때 영광으로 가득한 신을 보았다고 적기도 했다. 니체는 열네 살 되던 해인 1858년 나움부르크를 떠나서 포르타의 김나지움으로 학교를 옮겼다. 여기에서 니체는 크루크, 핀더 등의 친구와 함께 예술․문학 동아리 ‘게르마니아’를 만들어 매월 한 번씩 모여 각자가 소논문을 발표하고,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악보도 논했다. 니체는 횔덜린, 장 파울, 쇼펜하우어, 바그너 등 낭만주의 문학가, 철학가 및 음악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64년 10월 니체는 도이센과 함께 본 대학에 입학했다. 니체는 본 대학에서 예술사, 교회사, 신학, 정치학 등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포르타의 김나지움에서 니체는 무엇보다도 고대 그리스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본 대학에서는 고전언어학 강의를 들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본 대학에는 고전언어학 세미나를 담당하는 두 교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프리드리히 리츨과 오토 얀이었다.

프리드리히 리츨과 오토 얀은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리츨은 결국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고, 니체는 리츨을 지도 교수로 삼고 그 역시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다. 리츨의 권고에 따라서 니체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소논문 두 편을 썼다. 1869년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고전언어학 교수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리츨 교수는 니체에게 임시 박사학위를 주선해 주고 니체를 추천했다. 니체는 25세에 바젤 대학의 고전언어학 임시 교수로 채용되었고, 그 다음 해인 1870년 정식 교수가 되었다. 1872년 니체는 첫 작품 ≪비극의 탄생≫을 출판했다. 1873년에는 ≪반시대적 고찰≫ 1편을 출판했다. 1878년에는 ≪인간적인 것,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 1편을 출판했다. 니체는 자주 병치레를 하였고, 1879년 극도로 몸이 쇠약해지자 바젤 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 사이 니체는 바그너와 다년간 교제하다가 사이가 나빠져 결별했고, 말년에 ≪니체 대 바그너≫ 등의 작품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혹평했다. 니체는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접어들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바그너의 경우≫, ≪이 사람을 보라≫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니체는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의 투린에서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고,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예나에서 거주했다. 어머니가 죽자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니체를 바이마르로 옮겼고, 니체는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니체가 죽자 엘리자베트는 고향 뢰켄의 아버지 묘 옆에 니체를 안장했다.



해설           

∙ 이 책은 전체 분량의 3분의 1을 발췌한 것입니다.

19세기 말 서양철학은 헤겔의 거대한 체계적 관념철학의 해체라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 키르케고르, 니체 등은 모두 합리론과 관념론을 해체하면서 등장한 사상가들이다.

니체(1844∼1900)는 청년 시절 잠시 스위스의 바젤 대학 고전언어학 교수를 지내다가 질병 때문에 은퇴하고 연금과 책 인세로 생활했다. 니체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방랑하는 중에 저술에 몰두하면서 수많은 책을 출판했는데 상당수의 저술을 시 형식으로 출판했다. 니체는 1889년 정신병이 발작해 1900년 바이마르에서 죽을 때까지 10년 이상을 폐인으로 지냈다. 정신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본 대학 시절 창녀촌에서 걸린 매독 때문이라는 설과 아버지로부터의 유전이라는 설이 있지만 후자가 신빙성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니체 철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문명비판 철학이다. 니체는 문명의 요소들을 도덕, 종교, 예술, 학문(철학)으로 보고 있으며, 소크라테스의 지성 중심적 합리주의 이래로 니체 당시까지의 문명을 허무주의 내지 퇴폐주의로 낙인찍는다. 그러므로 니체는 창조적 정신에 의해서 지금까지의 문명의 가치를 해체하고 ‘힘에의 의지’라는 새로운 긍정적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중기 저술로 초기 저술들과 후기 저술들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초기 저술들은 ≪비극의 탄생≫(1872), ≪반시대적 고찰≫(1873∼1876) 등이 있으며, 중기 저술들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6)와 ≪인간적인 것,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1878∼1880), ≪여명≫(1881), ≪즐거운 학문≫(1882) 등이 있고, 후기 저술들로는 ≪선과 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1887), ≪반기독교도≫(사후 1911년 출판) 등이 있다.

초기 저술들에서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를 허무주의로 규정하고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참다운 예술의 근원으로 본다. 미술적인 형식과 음악적인 내용이 예술의 원천을 이룬다는 주장이다. 중기 저술들에서 니체는 초기의 예술비판을 확장해 문명 전체에 대한 비판의 붓을 든다.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현대 문명의 허무주의와 퇴폐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면서도 창조적 문명의 건설을 외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허무주의, 초인, 영겁회귀, 운명애, 힘에의 의지 등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들을 전개한다. 니체는 시적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긍정적, 창조적 철학을 절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상적 삶은 끊임없이 되돌아오므로 이러한 운명은 긍정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삶의 내면의 원리인 디오니소스적 원동력, 곧 힘에의 의지를 알게 되고 힘에의 의지에 의해서 허무주의 문명을 긍정적 문명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타락한 종교인 기독교, 노예적인 기독교 도덕, 형식주의적 철학(학문), 낭만적이며 단지 사회와 영합하는 예술 등의 문명을 해체하고 왜소한 인간을 극복하는 길은 힘에의 의지를 자각한 초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니체는 비체계적, 비지성적 사상가다. 니체 철학은 현대의 하이데거, 야스퍼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뿐만 아니라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문 중에서    

Ich lehre euch den Übermenschen.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Was habt ihn gethan, ihn zu überwinden?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쳐주고자 한다. 인간이란 극복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다.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가?



역자 소개      

강영계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건국대 철학과 교수이며 중국 서북대학 객좌교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연구했고 건국대 문과대학장, 부총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기독교 신비주의 철학≫, ≪사회철학의 문제들≫, ≪니체와 예술≫, ≪정신분석 이야기≫, ≪헤겔, 절대정신과 변증법 비판≫, ≪청소년을 위한 철학 에세이≫ 등이 있다. 역서로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브루노의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쾨르너의 ≪칸트의 비판철학≫,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 베르그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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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프랑스, 1930~2004)

프랑스령 알제리에 귀화한 유태계 양친(에메 데리다와 조르제트 사파르) 사이에 태어난 네 자녀들 중에 르네와 자키의 두 데리다만이 생존한다. 1930년 7월 15일, 알제리의 엘비아르에서 태어난 자키가 훗날 자크(필명) 데리다로 성장한다. 1940년에 발발한 알제리 독립 운동의 여파로 프랑스 사회에 번진 셈족에 대한 편견과 폭력은 어린 자키의 가슴에 깊은 상처(trauma)를 남긴다. 바칼로레아를 마친 후, 19세에 파리 고등 사범학교의 철학 전공에 입학한 자키는 카뮈와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으며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반유태주의와 유태 민족주의에 대해 똑같이 반감을 갖게 된다. 결국 자신의 소속 또는 자기 동일성으로 인한 실존적 고통은 ‘고유한 것의 해체’라는 철학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고등 사범학교에서 자키는 헤겔 학자인 장 이폴리트 아래서 헤겔, 후설, 하이데거, 바타유, 블랑쇼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후설 현상학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다시 <문학적 대상의 이념성>이란 표제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중에 문학과 글쓰기의 텍스트적인 성격을 인식하면서 점차 해체적(deconstructive) 입장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리하여 그는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풍미하던 ‘고전적’ 구조주의에 대해서도, 불변적인 구조는 의미의 차이 나는 놀이(differential play)를 제한한다고 비판하게 된다. 1960년 이후 4년 동안 소르본 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현상학과 구조주의 그리고 문학이론의 접점에서 연구를 계속한다. 알제리 독립 전쟁이 끝난 1962년에 그의 최초의 주저인 ≪기하학의 기원≫이 출판된다. 이 저서로 그는 카바이예(Cavaillès) 상을 수상한다. 1965년 이후에 그는 고등 사범학교에서 철학사를 가르치면서 ≪음성과 현상≫,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 ≪파종≫, ≪철학의 여백≫, ≪조종≫ 등 많은 저술을 쏟아낸다. 197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리세(lycée)의 3학년 과정에서 철학을 제외하려는 계획에 반대하기 위한 모임(GREPH)을 주도하고, 1983년에는 국제 철학대학의 초대 학장을 역임하기도 한다. 2004년 10월 10일 10시 53분, 이른바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는 신장암으로 투병하다가 숨을 거둔다.



해설           

이 책은 완역으로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책은 1974년에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에서 출판한 재판을 저본으로 했습니다.
∙이 책은 전체 11장의 서문 중에서 2∼7장을 발췌하고, 1장과 8∼11장, 그리고 일부 고딕체로 작성된 부분은 원활한 논의의 전개를 위해 옮긴이가 요약한 부분입니다.

1962년에 출판된 ≪기하학의 기원≫은 데리다에게 카바이예(Cavaillès) 상을 안겨준 그의 처녀작이다. 데리다는 이 책에서 후설의 유명한 단편 <Die Ursprung der Geometrie(불어판 L’Origine de la Géométrie)>를 번역하고, 여기에다가 매우 긴 서문 해설을 붙였는데, 이 긴 서문 해설로 인해서 이 책이 더욱 유명해졌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번역서라기보다는 전문적인 연구서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데리다가 후설 현상학에 대해 쓴 다른 논저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서문의 스타일은 아직 해체적 독해의 기법이 적용되기 이전의 시기에 속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어떤 텍스트를 대본으로 삼아 그 위에 새로운 텍스트를 산출하는 구조적 형식은 확실히 해체적 독해의 전략을 예시하고 있다.


후설의 짧은 단편 속에는 그의 오랜 철학적 연구의 결실들이 농축되어 있다. 그래서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권의 저서를 압축하고 있는 파일과 같다. 데리다는 압축된 파일들을 아주 모범적인 논술 형식으로 정교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후설의 원문을 읽다가 데리다의 해설을 읽으면, 마치 흑백 TV를 보다가 해상도가 뛰어난 컬러 TV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조명 효과는 후설에 대한 연구의 깊이와 함께 철학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그가 메를로퐁티나 사르트르 그리고 하이데거 등에 맞서서,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론적 의의를 해명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절로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데리다가 이 저서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데리다에 의해 창시된 ‘해체주의’는 현대 지성사에 매우 다양한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고, 가장 많은 연구 논저들을 쏟아내게 만든 철학적 운동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니체 못지않게 격렬한 적의와 무모한 오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데리다의 철학 사상이나 방법은 기존의 개념 틀 안에서 파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데리다의 해체주의 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는 실마리는 분명 ‘차연(différance)’ 개념일 것이다. ‘차연’ 개념이 맨 처음 등장한 저서라는 점에서, 그리고 글쓰기의 문제론을 맨 처음 명확하게 부각시킨 저서라는 점에서도 이 처녀작은 데리다의 사상적 노정 전체의 기원 내지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번역에 사용된 텍스트는 1974년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에서 출판한 재판이다. 이 판본은 1962년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초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는 한글로 처음 번역하는 작업이라서 영어 번역(Edmund Husserl’s Origin of Geometry: An Introductio, Tr. John P. Leavey, New York: Nicolas Hays, 1977)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여러 곳에서 다름을 밝혀둔다. 데리다의 원저는 서문(3∼171쪽)과 번역(173∼215쪽) 그리고 문헌 비평(216∼219쪽)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번역에 해당하는 부분이 본문을 이루겠지만, 이 본문에서 불어로 번역된 텍스트는 오래전에 출판된 독일어 문헌으로서 이미 우리말로 옮겨져 있다. 전술했듯이 데리다의 이 저서가 갖는 고전적인 가치는 번역(본문)에 있지 않고, 거기에 곁들인 서문에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위해 발췌한 부분(25∼92쪽)도 당연히 서문 중의 일부에 해당한다. 서문 전체는 11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에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발췌한 부분은 2장 중간부터 7장 중간까지인데, 전체 169쪽 중에서 하필 이 부분을 발췌한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다. 첫째로 지면의 제약 때문이고, 둘째로 독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좀 더 많은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논하는 부분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췌된 부분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에 비추어, 이 책에 ‘글쓰기의 문제’라는 부제를 달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서문 전체에 대한 개괄적인 해설 또는 요약 형식의 발췌는 원저의 의미와 가치를 심각하게 손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발췌 부분을 각주까지 포함하여 충실하게 번역하고,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역자의 주까지 달았다.

이 책은 그 제목 ≪기하학의 기원≫이 시사하듯, 수학의 한 분야인 기하학이 형성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갖는 역사적 전기들을 밝히는 그런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런 내용은 탈레스로부터 피타고라스와 그 학파에 속하는 몇몇 철학자들 그리고 플라톤과 그의 아카데미에 속하는 철학자들 그리고 유클리드 등의 수학적 업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내용의 역사를 경험적·사실적 역사라고 부른다면, 이 책에서 이런 역사적인 고찰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적잖이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하학의 형성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은 한낱 우연한 사실에 불과할 뿐이어서, 기하학이란 학문의 본질에 대해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다. 기하학은 이념적 공간과 이념적 대상성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 이런 이념성은 실재적 공간 속의 실재적 사물들과 관계하는 생활세계에서 이념화라는 조작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 이러한 이념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언어, 게다가 글쓰기라는 것, 이런 것이 기하학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특히 글쓰기의 구성적 기능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철학자들도 간과하기 쉬운 ‘문명의 비밀’에 속한다.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이러한 글쓰기의 문제에서 출발해 기존의 철학적 한계를 돌파하고자 한다는 점도, 문화에 관심을 가진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이유다.



본문 중에서     

L’acte d’ecriture est donc la plus haute possibilité de toute <<constitution>>.
C’est à cela que se mesure la profondeur transcendentale de son historicité.

그러므로 글쓰기 행위는 모든 <구성>의 최고의 가능성이다.
이념적 객관성의 역사성이 지닌 초월론적인 깊이는 바로 이것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다.



역자 소개       

배의용은 1951년 음력 6월 17일 전남 한려수도의 작은 섬 개도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여수로 전학한 후 고등학교를 마친다. 고등학교 은사의 영향으로 불교와 철학에 심취한 그는 동국대 불교대학 철학과에 진학하여 불교와 철학을 공부한다. 철학에서 그는 실존철학을 거쳐 현상학으로 소급하게 되고, 후설을 공부하다가 데리다를 만나게 된다. 그 후 현상학을 주축으로, 불교 유식론과 데리다를 두 바퀴로 삼아 기호와 의미, 언어의 주제를 통해 동서철학의 융합을 모색한다. 현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철학과에서 인식론, 현상학, 철학과 언어, 현대철학 사조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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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르족: 나일계 민족의 생활양식과 정치제도
The Nuer: A description of the modes of livelihood and political institutions of Nilotic people

E.E.에번스-프리쳐드 E.E.Evans-Pritchard(영국, 1902~1973)

에번스-프리처드(1902∼1973)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말리노프스키와 래드클리프-브라운을 제치고 가장 존경받는 인류학자로 꼽히기도 한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1924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런던 정경대학으로 학교를 옮겨, 셀리그먼의 지도로 인류학 전공을 시작하여 말리노프스키에게서 배웠으며, 아잔데족 조사를 통해 192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런던대학에서 사회인류학을 강의하면서 계속하여 조사를 수행했다. 1932년 카이로 푸아드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가 되었으나 곧 그만두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이보다 앞선 1930년에 셀리그먼의 주선으로 수단 지역의 원주민 집단에 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영국군의 정보장교로 복무하면서, 수단과 에티오피아의 국경에서 이탈리아군에 맞서 게릴라 부대를 지휘했다.

그의 초기 저작은 ≪아잔데족의 마술과 신탁(Witchcraft, Oracles and Magic among the Azande)≫(1937), ≪누에르족(The Nuer)≫(1940), ≪누에르족의 친족과 결혼(Kinship and Marriage among the Nuer)≫(1951), 그리고 마이어 포티스와 함께 편집한 ≪아프리카의 정치체계(African Political Systems)≫(1940) 등이 있으며, 영국 인류학의 조류인 구조주의와 기능주의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후기의 중요한 저작으로는 ≪원시종교론(Theories of Primitive Religion)≫(1965), ≪아잔데족(The Azande: History and Political Institutions)≫(1971) 등을 들 수 있으며, 인류학의 과학적인 측면보다는 해석학으로서의 인문학적인 측면을 추구한다.



해설           

이 책은 ≪The Nuer: A description of the modes of livelihood and political institutions of Nilotic people≫(E. E. Evans-Pritchard, Oxford University Press, 1940)를 기본으로 요약했다. 전후 맥락을 고려하여 전체적으로 요약한 부분과 부분적으로 발췌한 부분이 섞여 있다. 원본은 본문 266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을 원고지 약400매 분량으로 요약했다. 누에르족의 단어는 알파벳 표기를 생략하고 모두 한글로만 표기했다. 소에 대한 용어 번역은, ‘cattle-소’, ‘cow-암소’, ‘bull-수소’, ‘ox-거세소’로 했다.

≪The Nuer≫는 누에르족 3부작 중 첫 번째로 1940년에 출판된 이래 사회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이 되었다. 에번스-프리처드의 누에르족 3부작은 ≪The Nuer≫(1940), ≪Nuer Religion≫(1956), ≪Kinship and Marriage among the Nuer≫(1951)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여러 번에 걸쳐 자료수집과 분석의 한계를 고백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후 모든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치밀한 구성과 번뜩이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래서 출판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의 향기를 풍기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누에르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소다. 그들은 소 오줌으로 세수를 하고 우유와 유제품을 주식으로 삼으며, 소의 피를 먹고 쇠똥을 벽에 바르며, 쇠똥을 태운 재로 화장하고 양치질하며, 수많은 의례와 상징들에 소를 동원한다. 생활과 이동의 주기는 소의 생태에 맞추어 이루어지며, 소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를 가지고 배상을 해야 한다. 그들에게 소가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땅은 나쁜 땅이며, 소를 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인류학자가 그들의 동료가 되기 위해서는 소의 소유자가 되어서 그들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의 제1장에서는 누에르족의 소에 대한 관심을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 누에르족의 생태환경 이용 방식,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 정치체계, 친족과 출계, 연배체계 등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누에르족이 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2장은 생태환경에 대한 설명이다. 생태환경은 생물이나 기후 변동과 분포뿐 아니라 인간 집단의 생활환경과 관련시킬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누에르족은 자신들이 이용하고 이동하는 일정한 지역을 가지고 있고, 다른 집단들과 자신들의 영역을 구조화시키고 있다. 소먹이, 물, 재배작물, 물고기 등을 확보하기 위한 계절적인 이동은 생태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최적의 상태로 접근하게 된다.

제3장은 누에르족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관한 분석이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상대적이고 구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생태학적 시간은 1년 단위로 마을과 캠프를 왕복하는 시점들을 이어주며, 구조적 시간은 장기간에 걸쳐 규정되는 사회적 변화의 주기나 개인의 삶의 궤적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두 지점 간의 거리는 물리적으로 규정되기보다는 그 사이에 있는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강이나 체체파리 서식지를 사이에 둔 두 지점은 매우 거리가 멀다. 이런 생태학적 조건은 집단과 집단 사이의 구조적 거리를 만든다. 결국 구조적 시간이란 사회체계 속에 있는 인간 집단 간의 거리를 반영한 구조적 거리이며, 구조라는 차원에서 볼 때 시간과 공간은 단일한 모델이 된다.

제4장 정치체계는 이 책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제5장 출계체계와 함께 집권적 정치체계가 없는 누에르족이 어떻게 거대한 집단을 포섭하는 사회구조를 형성하는지 규명하고자 한다. 지은이는 누에르족의 정치체계를 작은 분절들이 보다 큰 분절로 통합되어 가면서 마침내 누에르족 전체로 확장되는 분절체계로 파악한다. 부락이나 마을을 대표하는 권력자가 존재하지 않고, 친족 내에서도 집단을 대표하는 권력자가 존재하지 않지만, 분쟁이 일어나면 그 사안에 대해서만 권위가 인정되는 표범가죽 추장이 나서서 대립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막는다. 공동체 내에서의 극한 대립을 방지하는 이러한 장치, 그리고 분절 간의 대립구조가 보다 큰 외부 분절과의 대립 상황에서는 통합되는 반복구조는 누에르족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통합하는 구조적 원리가 된다.

제5장에서는 부계 친족의 최대 집단인 씨족을 정점으로 하는 출계체계와 분절체계, 출계체계와 정치체계, 출계체계의 구조적 시간, 딩카족을 출계체계 속에 편입시키는 구조적 원리, 출계집단과 외혼을 통한 연계망의 확장, 씨족의 신화를 통한 정치적 가치와 친족적 가치의 동화 등을 설명한다. 그리고 우월적 지위의 씨족을 인정함으로써 지역공동체의 상징적인 중심축을 상정하는 것을 통해, 부족의 정치체계와 출계집단의 분절체계가 형태적으로 같다는 것을 지적한다.

제6장의 연배체계에서는 일정한 시기에 성인식을 행한 연배집단들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고, 이 연배체계가 누에르족의 사회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특징인 분절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예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연배체계는 친족체계나 정치체계와 독립하여 존재하며, 동일한 원리에 따라서 정치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아프리카의 부시맨이나 피그미족,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집단은 규모가 매우 작다. 따라서 연장자의 권위와 같은 비공식적이면서 한시적인 지도 체제를 통해 집단이 유지되며 구성원들의 관계가 아주 평등하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수천 명 혹은 수만 명 이상의 규모를 지닌 아프리카의 거대한 집단들을 상대할 경우에, 이런 사회들이 어떤 원리로 질서를 유지하며 사회관계는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설명할 때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인구가 20만 명에 달하는 누에르족은 중앙정부나 특별한 정치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평등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잘 통합되어 있고, 일정한 지역을 점유하는 부족 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거대한 집단이 분쟁을 해결하고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지니면서 집단을 유지해 나가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논점이다.

≪The Nuer≫에서 드러나는 에번스-프리처드의 관점은 기본적으로는 구조주의적인 정태성에 근거하며 영국의 구조-기능주의적 시각을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나 거프 등은 이러한 관점의 몰역사성과 구조-기능주의를 비판하면서, 시간적인 맥락 속에서 누에르족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에번스-프리처드 스스로가 래드클리프-브라운의 구조-기능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사로서의 사회인류학을 주창하고 나섰다. 그리고 인류학자는 다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충실히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연과학적인 엄밀성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의미와 상징성을 발견하는 것이 한층 중요하다고 보았다. ≪The Nuer≫는 역사와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의 저술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역사적인 관점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사회인류학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서문 


제1장 소에 대한 관심 
제2장 생태환경 
제3장 시간과 공간
제4장 정치체계 
제5장 출계체계 
제6장 연배체계 

옮긴이에 대해



작품 중에서     

The Nuer is a product of hard and egalitarian upbringing, is deeply democratic, and is easily roused to violence. His turbulent spirits finds any restraints irksome and no man recognizes a superior. Wealth makes no difference. A man with many cattle is envied, but not treated differently from a man with few cattle. Birth makes no difference. A man may not be a member of the dominant clan of his tribe, he may even be of Dinka descent, but were another to allude to the fact he would run a grave risk of being clubbed.

누에르족은 엄격한 평등주의적 원칙에 따라 양육되며, 매우 민주적이고, 간단히 폭력을 행사한다. 그의 야성적 정신은 어떤 속박도 거부하며 우월자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재산도 차별을 낳지는 않는다. 소를 많이 소유한 남자는 부러움을 사기는 하지만 소가 적은 남자와 다른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출신에 따른 차별도 없다. 어떤 남자가 부족의 우월 씨족이 아니라든가, 심지어 딩카족 출신일지도 모르지만 타인이 이것을 언급하려고 하면 곤봉으로 머리를 얻어맞을 위험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옮긴이        

박동성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은 <근대 일본의 ‘지역사회’의 형성과 변용: 시즈오카현 시모다시의 사례를 중심으로>(2006, 일본어)다. 주요 논문은 <일본의 공중목욕탕: 한 지방도시의 사회사와 센토의 변천>, <일본의 한 지역의 사회사와 향토사 운동: 이즈시라하마(伊豆白浜)의 사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정보인류학의 세계: 원숭이가 컴퓨터를 만든 이유≫(오쿠노 다쿠지奧野卓司 저, 정보문화센터, 1994), ≪쌀의 인류학: 일본인의 자기인식≫(오누키 에미코 大貫惠美子 저, 소화, 2001)이 있다.


편집자 리뷰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류학자 가운데 한 명인 에번스-프리처드의 누에르족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누에르족≫에서 에번스-프리처드가 사회관계에서의 구조와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누에르족의 소에 대한 관심을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정치체계, 연배체계 등의 구조적인 사회체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누에르족≫은 상대적으로 역사적인 관점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사회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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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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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톨트 겔렌 Arnold Gehlen(독일, 1904~1976)



아르놀트 겔렌은 1904년 독일 동부의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겔렌은 10세가 되기 전 개인교사로부터 기초교육을 받은 후 1914년 10세가 되던 해에 김나지움에 입학한다. 김나지움 과정을 마친 후 겔렌은 라이프치히 대학에 진학하여 철학과 독어학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물리학과 동물학 등에도 관심을 갖고 청강했다. 그리고 1925년 겨울학기에 막스 셸러(Max Scheler)와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의 강의를 청강하면서 철학적 인간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의 존재론적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겔렌은 1927년 박사과정을 마치고 1930년 <사실적 정신과 비사실적 정신(Wirklicher und unwirklicher Geist)>이란 논문으로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당시 겔렌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한스 드리슈(Hans Driesch)의 생물학주의적 시각은 겔렌에게 철학적 사유의 방법론적 근거가 되었다. 1933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겔렌은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같은 해 출판된 ≪의지의 자유에 대한 이론(Theorie des Willensfreiheit)≫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한 학기 후 그는 다시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스승 드리슈가 정년퇴임한 자리를 이어받는다.

1940년 겔렌의 첫 번째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인간(Der Mensch)≫이 출판되고, 1942년 그는 독일철학회 회장이 된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을 형태학적·생물학적 기반으로 탐구하고 있으며, 동물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특수성을 밝혀내고 있다. 그는 이를 인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위해 피할 수 없는 방법으로 간주했다. ≪인간≫ 이후 긴 공백기를 가진 후 1949년 ≪기술 시대의 영혼(Die Seele im technischen Zeitalter)≫이 출간되고, 이것이 당시 기술 개념을 둘러싼 담론의 물꼬를 트게 된다. 아울러 이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자본주의적 기술 문화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독일에서 실증주의적인 시각에서 기술의 문제를 논할 수 있는 자극제 역할을 한 중요한 성과물이었다.

이후 그의 저서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대표적인 주저는 역시 1956년에 출판된 ≪최초의 인간과 그 이후의 문화(Urmensch und Spätkultur)≫다. 이 책은 나중에 독일 현대철학에서 중요한 문화 이론서이자 기술인간학과 연관된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이는 오늘날 문화 이론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책이기도 하다. 1969년 겔렌의 마지막 저서라고 할 수 있는 ≪도덕과 초(超)도덕: 하나의 다원주의적 윤리(Moral und Hypermoral: Eine pluralistische Ethik)≫이 세상에 나온다. 이 책은 오늘날 복잡하고 이질적인 복합 사회에서는 어떤 문화적 규범이 형성될 수 있으며 또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있다.

겔렌은 나치에 대한 참여와 동조로 전후 전범 처리와 관련하여 많은 재판에 출석했으며, 이러한 전력이 그의 철학 자체에 대한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학문적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그의 오랜 친구였던 사회학자 헬무트 셸스키(Helmut Schelsky)까지도 그를 이해해 주지 못했다. 겔렌의 인생에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40년대 이후, 이런 상황과 연관해 그의 사회적 위상은 현저히 달라졌으며, 결국 1940년대 후반에는 스파이어의 작은 전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그곳에서 가장 긴 교직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아헨공과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76년 1월 30일 함부르크에서 72세의 나이로 하직한다.



해설           

국내 최초 소개


 이 책은 ≪Urmensch und Spätkultur : Philosophische Ergeb nisse und Aussagen≫(Athenäum Verlag GmbH, Frankfurt am Main, Bonn 1964)의 제1부 <제도(Institutionen)>를 중심으로 원문의 50% 정도를 발췌한 것입니다.

이 책은 아르놀트 겔렌의 ≪최초의 인간과 그 이후의 문화: 철학적 성과와 진술(Urmensch und Spätkultur: Philoso phische Ergebnisse und Aussagen)≫ 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과 그 이후의 문화≫는 겔렌의 대표적인 저작일 뿐 아니라, 현대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 이론서이자 기술 인간학과 연관된 주요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겔렌은 독일에서도 철학자 혹은 철학적 인간학자로서보다는 사회철학자 또는 문화인류학자로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그의 학문적 위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저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겔렌이 늘 관심을 두고 있던 영역일 뿐 아니라, 특히 그는 기술 개념을 둘러싼 문화 담론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기술 및 문화 철학은 오늘날 기술 문화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당면한 현대 사회의 위기를 반성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겔렌의 철학적 사유의 화두는 뭐니 해도 ‘문화’다. 그리고 인간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문화의 기원을 찾기 위한 첫 번째 과제다. 인간적인 것의 기원이 곧 문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기원에 관한 물음을 이렇게 바꾸어보자. 즉 오늘날 우리가 과거라는 시간의 동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면 거기서 만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렇게 궁색하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의 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우리는 거기서 분명 우리를 닮은 모습, 혹은 더욱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 자신들의 그림자’를 만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동굴 벽화를 그렸던 빙하기의 거대한 수렵 인간들이 피카소의 선배들로서 우리들 앞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시간을 역행해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서 문화의 기원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문화가 마치 저 평원에 그 자체의 고유한 씨앗으로부터 움터 오른 자연적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흔적이 담겨 있다. 문화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겔렌에게 있어서 문화에 대한 이해는 인간적인 것 혹은 인간의 징표를 그것의 범주적 연관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며, 문화의 기원을 찾는 것은 곧 인간적인 것의 기원, 즉 인간의 원형을 찾는 인류학적 탐구이자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문화의 기원을 추론해 가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1940년에 나온 그의 첫 번째 주저인 ≪인간≫은 ≪최초의 인간과 그 이후의 문화≫가 나오기 위한 예비적 서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겔렌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그 철학적 의미를 인간에 대한 물음을 규명하는 객관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학은 인간의 형태학적·생물학적 기반을 연구하는 것이며, 나아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수성을 밝히는 것이다. 그 특수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결핍’이다. 다른 동물들은 생존하는 데 필요한 특수한 기관들을 가지고 있으나 인간에게는 그것이 없다. 그러므로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생존하기에 적합하지도 못하고 특수화되지도 못한 원시적인’ 생물이다. 그리고 이 결함이 바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수한 지위를 규정한다. 형태학적인 면에서 인간은 결코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극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자연이 버린 고아’다. 태어날 때부터 고도로 발달된 특수 기관들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은 그 나름의 생존 방식을 통해 독립된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동물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욕구나 충동이 이미 자연적인 상태에서 저절로 주어져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생존을 위한 ‘합목적적 운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생득적인 합목적적 생존 수단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형태학적 ‘결함’은 결국 생존 조건의 ‘결여’로 연결된다. 인간에게 자연은 낯선 곳이며, 자연은 결코 인간의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생존 조건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인간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 그 길은 하나뿐이다. 생존하기에 부적합한 환경을 적합한 환경으로 바꾸어가는 수밖에 없다. 인간을 ‘행동하는 존재’로 정의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세계로부터 밀려오는 갖가지 장애를 행위를 통해 극복하면서 스스로 삶의 조건을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다. 행동하는 존재로서 인간 규정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 그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며 실제의 상태다. 겔렌은 이 엄연한 사실로부터 ‘행위 이론으로서 인류학적 탐구’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탐구의 학문적 성과가 바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최초의 인간과 그 이후의 문화≫다.

그의 인류학적 탐구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개념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개방성’이다. 환경과 유기적 전체를 이루고 있는 동물의 활동은 그 전체적 연관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환경적 요소에 합목적적으로 반응하는 동물의 본능적 운동은 극히 폐쇄적이고 편협하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열려 있는 존재다. ‘세계 개방성’은 한편으로 환경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나타내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존 조건을 창조해 가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시하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이미 지각 및 표상의 영역에서부터 그 터전이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