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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5/05 장끼전
  3. 2008/05/02 효경 孝經
  4. 2008/02/21 유마경 維摩經
  5. 2008/02/21 요정들의 사랑 Les amours féeriques
  6. 2008/01/23 숙향전 淑香傳
  7. 2008/01/03 여우 이야기 Roman de Renart
  8. 2007/12/07 풍토기 風土記
  9. 2007/12/07 토별산수록 兎鼈山水錄
작자 미상   

해설         

<금방울전>은 어떤 작품인가?

<금방울전>은 남주인공 ‘해룡’과 여주인공 ‘금령’이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의 고소설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읽혔는데, 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의 남녀 주인공 해룡과 금령은 원래 동해용왕의 아들과 남해용왕의 딸이었다. 용자와 용녀는 혼인을 하고 신행길에 나섰다. 그런데 용녀는 요괴의 공격을 받아서 죽임을 당했고, 용자는 장원 부인의 몸속으로 몸을 피했다. 그 후 용자는 장원의 아들 해룡으로 태어났으며, 용녀는 과부 막씨의 몸에서 금방울로 태어났다.

해룡은 세 살 때 피난을 가다가 부모를 잃고 장삼의 양육을 받았다. 장삼이 죽자 그의 처 변씨는 해룡을 몹시 학대하였고, 심지어 죽이려 했다. 그래서 해룡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맞았는데, 그때마다 금방울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금령은 과부의 몸에서 방울의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신선들로부터 받은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막씨를 보호하였고, 그녀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병을 얻어 죽은 해룡의 어머니 장 부인을 살렸으며, 장원 부부의 사랑을 받았다. 금령은 장원에게 족자를 가져다준 뒤에 행방을 감추었다.

해룡은 금령의 도움으로 지하국에 사는 요괴에게 납치된 ‘금선공주’를 구하였고, 금선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다. 그 후 해룡은 전장에 나가서, 금령의 도움을 받아 적을 물리쳐 큰 공을 세우고 개선했다.

금선공주의 사랑을 받던 금령은 해룡이 개선하여 돌아오기에 앞서, 해룡에게 전해달라며 족자를 맡겨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막씨와 장원 부부에게 되돌아온 금령은 허물을 벗고 예쁜 처녀로 변신했다.

해룡은 어사가 되어 지방을 순시하던 중에, 꿈속에서 만난 노인의 지시와 족자를 매개로 하여 어릴 때 헤어진 부모를 만났다. 그리고 금령이 방울에서 나와 미인으로 변신하였음을 알았다.

해룡의 보고를 받은 황제는 금령을 양녀로 삼아서 ‘금령공주’라 부르고, 해룡과 혼인하게 해주었다. 해룡은 금령공주와 혼인하였으며, 금선공주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다.

이 작품의 남녀 주인공 해룡과 금령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는 ‘남녀 결합’과 ‘부귀 획득’이다. 이는 이 작품의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인 동시에 그 시대 독자들의 행복에 대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금령은 해룡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황제의 부마가 되게 해준다. 금령의 적극적인 활동과 남녀 간의 애정 성취는 당시 여성 독자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해룡이 황제의 부마가 되어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고, 위왕이 되어 신분 상승에 따르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은, 권력에서 소외된 피지배계층 독자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주인공의 고난과 시련은 이런 독자들의 고통 받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금방울전>은 작가와 당대 독자들의 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필사본이 전할 뿐 아니라, 목판본과 활자본으로 수차 간행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금방울전>은 어떻게 전해왔는가?

<금방울전>은 목판본 12종, 필사본 2종, 활자본 11종이 전한다. 대부분의 고소설 목판본은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안성 지방에서 간행된 안성판본, 전주 지방에서 간행된 완판본이 있다. 그런데 <금방울전> 목판본은 경판본만 전하며, 완판본이나 안성판은 전하지 않는다.

<금방울전> 경판본은 28장본, 20장본, 16장본의 세 가지가 있다. 경판 28장본은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것과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것이 있다. 이것들은 내용은 물론이고 장수(張數), 1면의 행수, 1행의 글자 수, 그리고 글자 위치까지 서로 일치한다. 따라서 두 이본은 동형이판본(同型異板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고어형(古語形), 음운표기, 복모음·조사 사용, 두음법칙 적용, 표현 등에서 서로 다른 곳이 서른다섯 군데에 이른다. 이런 부분들을 면밀히 비교해 본 결과, 대영박물관 소장본이 먼저 간행되고, 국립도서관본은 그 뒤에 간행된 것이 밝혀졌다.

뒤이어 28장본을 부분적으로 축약하고 문장을 가다듬은 경판 20장본이 간행되었고, 또다시 이를 축약한 16장본이 간행되었다. 20장본은 28장본보다 분량은 약간 줄었지만 줄거리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16장본은 분량도 많이 줄었으며, 부마가 된 해룡이 외적과 싸우다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금방울이 구해준다는 내용이 빠지는 등 줄거리에서도 변화가 있다.

필사본으로는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과 일본 동양문고 소장본이 있다. 그중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활자본인 세창서관본을 필사한 것이다.

활자본들은 모두 목판본을 모본(母本)으로 하여 간행한 것이다. 작품명이 <금방울전>인 활자본도 있지만, <능견난사(能見難思)>또는 <금령전>으로 고쳐서 간행한 것도 있다. 작품 제목을 <능견난사>라고 한 것은 금방울의 모습은 능히 볼 수 있지만, 금방울이 지닌 능력은 너무 기이하여 미리 짐작하기 어렵다는 뜻에서 이렇게 바꾼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금령전>은 <금방울전>의 ‘방울’을 한자 ‘령(鈴)’으로 고친 제목이다.

활자본 가운데 신구서림본(1916)과 조선서관본(1916), 경성서적조합본(1925)은 경판 28장본의 문장을 약간 손질하고, 작품 끝에 해룡과 두 공주의 백일승천(白日昇天) 대목을 첨가한 것으로, 9회로 장회(章回)를 구분했다. 회동서관본(1925)과 세창서관본(1952)은 이러한 세 가지 활자본과 내용은 똑같으나 장회를 구분하지 않은 점만 다르다.

세창서관본 <능견난사>는 경판 28장본의 내용을 보다 다채롭고 흥미롭게 변개하고, 제목을 바꾼 것이다. 경성서적조합본 <능견난사>는 같은 출판사의 <금방울전>과 제목만 다를 뿐 그 내용은 똑같다. 대조사본 <금방울전>(1959)은 경판 16장본을, 형설출판사본 <금령전>(1977)은 경판 20장본을 모본(母本)으로 한 것이다. 희망출판사본 <금령전>(1970)은 신구서림본, 조선서관본, 경성서적조합본, 회동서관관, 세창서관본 등의 선행 활자본 <금방울전>을 모본으로 하여 간행한 것이다.

이처럼 <금방울전>은 목판본, 필사본, 활자본으로 전하는데, 경판 28장본의 내용이 모든 이본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금방울전>의 구조

<금방울전>은 배경 공간, 또는 고난과 행운이 교차하는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그 유형은 세 가지다.

첫째, 현실계와 비현실계의 순환이 나타난다. 해룡과 금령은 본래 동해용왕의 용자와 남해용왕의 용녀였는데, 인간계에서 ‘해룡’과 ‘금령’으로 환생한다. 용자와 용녀가 살던 곳은 수중계라는 비현실계다. 비현실계의 존재인 용자와 용녀가 현실계인 지상계에서 해룡과 금령으로 태어난 것이다.

지상계에서 살던 해룡과 금령은 이곳과 다른 지하계로 가서 요괴를 물리치고 금선공주를 구출해 데려왔다. 즉 해룡과 금령은 지하계에 가서 가난하고 비천하여 불행했던 상황을 극복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 결과 해룡은 금선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어릴 때 헤어졌던 부모를 다시 만나고, 금령과 혼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 방울의 모습으로 살던 금령은 탈각(脫殼)하여 미인이 되고, 황제의 양녀가 되었다. 그리고 해룡과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해룡과 금령은 존재의 근원이라는 지하계에 가서 빈천(貧賤)과 불행을 소거(消去)하고, 부귀와 행운을 획득·충족하고 돌아왔다. 따라서 완벽에 가까운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부모를 잃고 천대받던 해룡과 괴이한 모습으로 태어나 천대받던 금령이 지하계에 다녀온 뒤에 행복을 누리는 구조는, 인간의 생명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부·귀·건강 등이 비현실계에 근원을 둔 상태에서 ‘현실계 → 비현실계 → 현실계’로 순환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고난과 행운의 순환이 나타난다. 해룡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장삼의 양육을 받았다. 그런데 장삼이 죽은 뒤에, 그의 처 변씨의 계략에 빠져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맞는다. 부마가 된 뒤에도 전장에 나가선 적의 계략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해룡은 금령의 도움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행운을 얻는다. 이처럼 해룡의 일생은 행운이 고난에 의해서 부정되고, 그 고난은 다시 행운에 의해서 극복되면서 고난과 행운이 교차하여 순환한다. 그런데 해룡은 고난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금령의 도움으로 극복한다.

금령의 일생을 보면, 남해용왕의 딸이 과부 막씨의 몸에서 금방울로 태어나서 자기에게 닥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룡을 도와준다. 그 후에 해룡과 힘을 합하여 요괴를 물리치고, 여인으로 변신하여 해룡과 혼인한다. 금령의 일생 역시 행운이 고난에 의해서 부정되고, 그 고난은 행운에 의해서 극복되면서 고난과 행운이 교차 순환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때의 고난은 본인의 잘못과 무관한 것이며, 행운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해룡과 금령의 일생은 고난과 행운이 반복적으로 대립하면서, 보다 완전한 행복을 향하여 진행된다. 그러다가 모든 고난이 해결되고 행복이 절정에 이르러 완성되면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셋째, 변신을 통한 순환이 나타난다. 막씨의 절개와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자식을 점지하여 상을 주려 했다. 그때 용녀가 원수를 갚게 해달라고 발원(發願)하니, 옥황상제는 용녀를 막씨의 딸로 점지하여 방울로 태어나게 했다. 만일 용녀가 막씨의 몸에서 방울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과부가 딸을 낳은 데 따르는 여러 문제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리고 신행하다가 헤어진 전생의 남편 해룡을 찾는 일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용녀는 금방울로 변신하여 출생했던 것이다. 용녀는 금방울로 변신함으로써 모든 문제와 고난을 해결한 뒤에, 미인으로 변신하여 해룡과 혼인하고 행복을 누렸다. 이처럼 금방울의 일생은 변신순환(變身循環)하는데, 이런 구조는 도선사상(道仙思想)에 의해 치밀하게 구성된 것이다.

사람이 금방울로 변신하고, 금방울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은 현실이라는 실제 공간과 시간 속에선 성립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작품 끝 부분의 행복은 비현실적 상황인 변신에 의해 성취된 것이다. 즉 비현실계의 용녀가 금방울로 태어나서 지하계에 가서 요괴를 퇴치하는 구조는, 비현실계와 현실계의 순환형이 변신순환형과 복합된 것이다.

이러한 순환은 하나의 현실을 폐기하고, 보다 새롭고 행복한 현실을 만들려는 재생적 순환의 의미를 지닌다. 재생적 순환은 인간이 제한된 현실 속에 살면서도 그 제약을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욕망을 바탕으로 한 상상에 의한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상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도선사상과 불교사상, 유교사상, 무속사상, 그리고 시대성과 작가 및 독자들의 의식이 작용하여 한층 흥미롭고 복잡한 구성이 되었다.



차례           

해설 

동해용왕의 아들이 장원의 아들 해룡으로 태어나다 


해룡이 피난 중에 부모를 잃고 장삼에게 구조되다 

남해용왕의 딸이 막씨에게서 금방울로 태어나다

금령이 죽은 장 부인을 살리고, 족자를 가져다주다 

금선공주가 요괴에게 납치되다 

해룡이 금령의 도움으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다

해룡이 금령의 도움으로 요괴를 물리치고 금선공주를 구하여 혼인하다 

해룡이 출전하여 금령의 도움으로 큰 공을 세우다 

금령이 해룡에게 족자를 남기고, 미인으로 변신하다 

해룡이 변씨를 만나 은혜를 갚고, 부모를 만나다 

해룡이 금령과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다 

옮긴이에 대해



옮긴이         

최운식은 서울교육대학교와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경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한국민속학회장·국제어문학회장·청람어문교육학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에는 ≪심청전 연구≫, ≪한국 고소설 연구≫, ≪한국 설화 연구≫, ≪한국 서사의 전통과 설화문학≫, ≪전래동화 교육의 이론과 실제≫, ≪한국인의 삶과 문화≫, ≪함께 떠나는 이야기 여행≫, ≪다시 떠나는 이야기 여행≫, ≪한국의 민담≫, ≪옛날 옛적에≫, ≪가을 햇빛 비치는 창가에서≫등 4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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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       

해설         


∙이 책은 1922년 대창서관에서 간행한 초판본을 저본으로 하였습니다.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은 편이어서 크게 보태거나 빼지 않고 전문(全文)을 실었습니다.

<장끼전>은 엄동설한에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장끼가 까투리의 만류를 듣지 않고 붉은 콩을 먹다가 덫에 걸려 죽자, 홀로 된 까투리에게 각종 새들이 와서 구혼(求婚)을 하지만, 까투리는 결국 수절(守節)하거나 다른 장끼나 혹은 오리와 재혼(再婚)한다는 내용의 동물 우화소설이다. ‘우화(寓話)’는 간접적·우회적 이야기 방식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서술한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말하기 곤란한 일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이야기 방식이다. 우화의 방식을 선택한 소설이 우화소설이며 동물을 등장시켜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 동물 우화소설이다. 우화소설은 원래 목적성·교훈성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표면적인 이야기와 이면적인 의미 사이의 적절한 간격을 유지함으로써 흥미를 추구하기도 한다. <토끼전>, <두껍전>처럼 동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서술하지만, 실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동물이나 식물 등에 인간의 일을 빗대어 말함으로써 비판하거나 풍자하고자 하는 의도를 우회적으로 은근하게 전달할 수 있고, 또 그러한 의도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우화는 일찍부터 애호되었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장끼전>은 원래 <장끼타령>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판소리 작품의 하나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기도 한 판소리는 이야기를 음악과 몸짓을 통해 표현하는 우리 고유의 예술 양식이다. 오직 북으로만 연주하는 ‘고수’의 반주에 맞추어 ‘창(唱)’이라 불리는 노래와 ‘아니리’라고 불리는 사설을 교대로 엮어가며 ‘발림(또는 너름새)’이라 불리는 몸짓을 덧붙여 가며 이야기를 재미있게 표현하는 공연물이 바로 판소리이다. 흔히 판소리를‘연창(演唱)’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연극적인 몸짓[연(演)]과 음악적 표현[창(唱)]을 통해 서사적인 내용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판소리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세기 중반 무렵에는 ‘열두 마당’, 즉 12편의 작품이 공연되었지만 이후 인기를 얻지 못한 작품들이 없어지거나 흔적만 남게 되면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장끼전>은 창을 잃은 ‘일곱 마당’ 중 하나에 속한다. 일곱 편의 작품이 창을 잃고 전승 과정에서 탈락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바람직한 인물의 모습이나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일곱 편이 대개 지나치게 기괴한 내용을 보이거나 정상적이지 못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 <장끼전>의 장끼 역시 꽤나 뒤틀린 성격을 지닌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로 그려져 있다. 특이한 인물이나 내용의 이야기가 한때는 흥미를 끌 수 있지만, 오래 두고 즐길만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점차 전승의 과정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장끼전>이 판소리로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관극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극시(觀劇詩)는 당시 판소리를 감상한 느낌이나 작품의 내용을 양반이 한시로 써놓은 것인데, <장끼전>의 경우 송만재(宋晩載)나 이유원(李裕元)에 의해 한시로 재구성되었다.


푸른 꽁지 수놓은 가슴 장끼와 까투리

밭이랑에 흐트러진 낟알, 의심스런 붉은 콩

한 번 쪼다 덫에 걸려 푸드덕거리네

추운 산 바싹 마른 가지에 눈 덮인 때에

靑楸繡臆雉雄雌

留畝蓬科赤豆疑

一啄中機紛幷落

寒山枯樹雪殘時

송만재, ≪관우희≫ 중



눈 쌓인 온 산에 새조차 날지 않는데

꿩들이 어지러이 내려앉아 셀 수도 없네

아녀자의 간곡한 부탁 저버리고

구복이 구구해 덫을 건드렸구나

雪積千山鳥不飛

華蟲亂落計全非

抛他兒女丁寧囑

口腹區區觸駭機

이유원, ≪관극팔령≫ 중


관극시에 나타난 <장끼전>에는 장끼가 덫에 걸려 죽게 된 부분까지만 나온다. 관극시가 비록 넉 줄짜리 짧은 한시이지만 중심 내용을 빠짐없이 잘 담아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송만재나 이유원의 관극시에 나타난 <장끼전>의 내용에 까투리의 재혼과 관련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장끼의 장례식에 문상 온 뭇 새들이 까투리에게 재혼을 요구하는 <장끼전>의 후반부에서 까투리가 보이는 반응이 여러 이본의 각편(各篇)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유한 인물로 그려진 오리의 억지 혼인 요구를 거부하며 수절하는 결말이 많은 편이지만, 오리와 재혼하는 결말도 없지 않다. 또는 오리의 억혼은 거부하지만 홀아비 장끼나 젊은 장끼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뭇 새의 협박에 못 이겨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결말이 다양하게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작품의 주제 역시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다양한 결말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를 지닌 <장끼전>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결말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이 과부의 재가 문제를 다룬 동물 우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화에는 여러 의미가 겹쳐 있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마련인데 <장끼전> 역시 동물의 생태적 속성과 중첩되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낳았던 것 같다. 게다가 과부의 ‘재혼’이라는 관심거리가 중심 문제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었고, 이것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키웠을 것이다. 말하자면, 졸지에 과부가 된 까투리가 절박한 상황에서 행해야만 했던 ‘선택의 향방’을 둘러싼 당대인들의 지대한 관심과 그 관심이 반영된 필사(筆寫)라는 ‘향유 행위’로 인해 <장끼전>의 각편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사(筆寫)’는 매우 적극적인 향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작품을 향유할 때 단순히 읽거나,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기만 하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서 책을 빌려다 직접 붓으로 베끼는 필사본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단순한 베끼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의 독서 체험이나 향유 경험을 발휘하여 작품의 내용을 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필사를 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삭제하거나 다른 본을 참조하여 고치기도 하였으며, 아예 새롭게 창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장끼전>은 판소리로 공연되었기에 특정 작가가 없었고, 우화라는 속성도 지니고 있었으므로 필사의 과정에서 다양한 결말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필사본이 생성·유통·향유된 결과 현재 알려진 <장끼전>의 각편은 60여 종에 달한다. 이들 중 작품의 전개와 결말이 전적으로 유사한 것은 활자본 계열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이는 이 작품에 쏠렸던 관심이 생각보다 많았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장끼전>의 결말을 ‘개가 허용’−‘개가 금지’로 구분하거나, 또는 ‘개가 유형’−‘개가 삭제 유형’ 등으로 나누어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원래 형태가 ‘개가’였는지 ‘수절’이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고, 오히려 ‘개가’의 유형과 ‘수절’의 유형이 동시에 존재했을 가능성까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송만재나 이유원의 관극시에 작품의 후반부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이 책은 1922년에 대창서관에서 출판한 활자본 ≪쟝젼≫을 주 대본으로 하되 여러 필사본도 부분적으로 참고하였으며, 원문을 현대어 표현으로 다듬고 주석을 붙였다.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은 편이어서 크게 보태거나 빼지 않고 전문(全文)을 실었다. 또한 원전의 맛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작품의 원문을 그대로 활자로 옮겨 실었다. 중세 국어 표기법이 다소 생소하겠지만, 현대어 표현과 대비하거나, 주석을 참조하면 훨씬 더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대본으로 삼은 대창서관본은 까투리가 홀아비 장끼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결말을 보이며, 작품의 내용 전개가 자연스럽고 문체도 간결한 편이다. 60여 종의 <장끼전> 각편이 모두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재가를 하는 결말을 보이는 계통에서는 대창서관본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되어 선택하였다. 다만, 까투리가 재혼 상대를 선택하는 대목은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 <자치가라>를 참고하여 손질하였다. 재가의 이유를 밝히는 부분이 더 자연스럽게 구성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까투리가 수절을 택하는 경우, 까투리가 뭇 새의 청혼을 거부하고 동해로 떠나는 경우, 오리와 재혼하는 경우 등 서로 다른 결말을 보이는 각편을 골라 해당 부분을 뒤쪽에 따로 실었다. 실제 대부분의 <장끼전> 각편들은 장끼가 죽는 대목까지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장끼의 장례식장에 나타난 뭇 새들이 까투리를 차지하고자 다투는 대목에서부터 조금씩 차이를 보이다가, 오리가 나타나 까투리에게 억지 혼인을 요구하는 대목 이후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결말이 달라진다는 것은 작품의 주제가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장끼전>의 다양한 결말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결국 <장끼전>의 주제를 다양하게 인식했던 당대인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작품 향유의 실상을 살펴보는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장끼전>은 작품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지만 한자어와 고사(故事)가 많이 쓰인 편이어서 주석의 양이 꽤나 많아졌다. 본문만으로도 원전의 맛을 느낄 수 있겠지만, 주석을 통해서 당대의 사유 방식과 인식 체계를 아울러 이해한다면 훨씬 더 입체적으로 원전이 주는 재미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열린 결말’을 통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필사’로써 작품의 해석에 ‘적극적 개입’을 했던 우리 조상들의 <장끼전> 사랑을 이해하는 동시에 쉽고 재미있게 원전을 접하는 데에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차례           

해설  장끼전

장끼와 까투리가 눈 덮인 들판으로 먹이 찾아 나서다 ·19

장끼와 까투리가 붉은 콩을 앞에 두고 치열하게 말다툼하다 ························23

까투리의 간곡한 충고를 무시한 장끼가 차위에 치여 최후를 맞이하다 ····················36

뭇 새가 찾아온 장끼의 장례식장은 난장판이 되다 ···43

까투리가 드디어 최종 선택을 하다 ·········51

장끼전 전문

장끼전 ·····················61

장끼전의 다른 결말들

오리의 청혼을 물리친 까투리가 수절하다 ······83

뭇 새의 청혼을 견디다 못한 까투리가 동해로 향하다 ·87

까투리가 오리와 재혼하다 ·············94

옮긴이에 대해 ··················109

옮긴이         

최진형은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하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주로 판소리와 고소설 관련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였다.
단독으로 쓴 책으로는 ≪판소리의 미학과 장르 실현≫(2002), ≪서사 문학과 문화 담론≫(2008)이 있다.
최근에는 고소설이 출판물로 유통되고 향유되었던 상황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여, <심청전의 전승 양상>, <흥부전의 전승 양상>, <출판문화와 토끼전의 전승> 등의 논문을 연이어 썼다.



편집자 리뷰

흔히 생김새는 그럴 듯하나 어리석은 장끼와 현명한 아내 까투리의 허무한 이별과 갖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수절하는 까투리의 정절을 다룬 우화로 알려져 있는 ≪장끼전≫. 그러나 수십여 종의 이본을 자랑하는 ≪장끼전≫의 결말은 그때그때 다르다. 콩알 하나로 인해 남편을 잃은 까투리와 그런 까투리를 넘보는 뭇 새들. 까투리의 다양한 선택에 따른 귀추에 주목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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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       

이 책은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실린 ≪효경정의(孝經正義)≫(台北, 新文豐出版公司 影印本, 民國66年)를 저본으로 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이 책은 발췌하지 않고 모두 완역한 것입니다.



해설          

≪효경(孝經)≫은 유가의 주요 경전인 십삼경(十三經)의 하나이다. 이 책은 ‘효도(孝道)’를 주된 내용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효경≫이라고 하였으며, 십삼경 중에서 처음부터 책 이름에 ‘경(經)’ 자를 붙인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효경≫의 저자와 저작연대

≪효경≫의 저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즉, 공자(孔子)가 지었다는 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가 지었다는 설, 공자의 70여 제자의 유서(遺書)라는 설, 증자의 문인(門人)들이 집록(輯錄)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확증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효경≫ 본문에 공자와 증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과 학통(學統) 상으로 보아 증자의 문인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썼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효경≫의 저자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저작연대 또한 불명확하다. 아마도 춘추시대 말기에서 전국시대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효경≫의 전승(傳承)과 판본(板本)

≪효경≫은 진(秦)의 분서(焚書) 때 하간(河間) 사람 안지(顔芝)가 보관해 두었던 것을 한(漢)나라 초기에 협서율(挾書律)이 해제되면서 안지의 아들 안정(顔貞)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것은 한대의 서체인 예서체(隸書體)로 된 것이었으므로 ‘금문효경(今文孝經)’이라 부른다. ≪금문효경≫은 전한(前漢)의 장손씨(長孫氏), 강옹(江翁), 익봉(翼奉), 후창(后蒼), 장우(張禹) 등에 의하여 전해졌다. 그 뒤 후한 말의 학자 정현(鄭玄)이 주석한 ≪효경≫ 1권이 있는데, 이것을 정주본(鄭注本)이라고 한다. 정주본에 대해서도 이설(異說)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현이 주석하였다고 한다.
이에 반해서 한 무제(武帝) 때 노(魯)의 공왕(恭王)이 공자의 옛집을 헐면서 벽 속에서 ≪상서(尙書)≫, ≪논어(論語)≫ 등과 함께 ≪효경≫이 나왔는데, 이것은 고문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고문효경(古文孝經)’이라고 한다. ≪고문효경≫은 한 무제 때의 사람 공안국(孔安國)이 주석을 썼는데, 이것을 공안국전(孔安國傳) 또는 공씨전(孔氏傳)이라고 한다. 따라서 ≪효경≫에는 정주본인 ≪금문효경≫과 공씨전인 ≪고문효경≫의 두 가지 종류가 있게 되었다.
이상의 두 종류의 ≪효경≫이 양(梁)나라 때까지 함께 전해졌었는데, 공안국전은 양나라 말엽에 있었던 난리 때 망실되어 진(陳), 주(周), 제(齊)에는 금문정주(今文鄭注)만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 뒤 수(隋)나라 때에 이르러 비서감(秘書監) 왕소(王邵)가 공씨전을 경사(京師, 수도)에서 얻어 하간사람 유현(劉炫)에게 보냈고, 유현이 여기에 소(疏)를 써서 사람들에게 가르쳤다고 하는데, 당시의 사람들은 이것이 옛 공씨전이 아니고 유현 자신이 쓴 위서(僞書)라고 의심하였다. 한편, 공씨전은 위(魏)의 왕숙(王肅)이 정주본에 반대하여 쓴 위서라는 설도 있다.
이와 같이 금문정주와 고문공전에 대한 신뢰성 여부가 문제되어, 당(唐)의 현종(玄宗)은 719년(開元7)에 여러 학자들에게 명하여 두 종류의 ≪효경≫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의하게 하였다. 유지기(劉知幾)는 고문을 위주로 하여 금문정주를 반박하고 유현이 교주(校注)한 고문공전을 주장하는 데 비해, 사마정(司馬貞)은 그와 반대로 고문공전을 유현의 위작이라 하여 반대하고 금문정주를 택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두 입장이 대립하여 결정이 나지 않자, 현종은 스스로 금문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주를 냈다. 이 신주는 ≪고문효경≫ 가운데 장점을 취하여 ≪금문효경≫을 보완한 것이다. 그 후 현종은 원행충(元行冲)에게 명하여 소(疏)를 짓게 하고 천하에 반포하였는데, 이것을 ≪어주효경(御注孝經)≫이라고 한다. 현종은 그 뒤 743년(天寶2) 5월에 ≪효경≫을 다시 주하여 천하에 반포하고, 2년 뒤인 745년 9월에 이것을 돌에 새겨 태학(太學)에 건립하였는데 이것을 ‘석대효경(石臺孝經)’이라고 한다.
송(宋)나라 진종(眞宗) 때 형병(邢昺) 등이 왕명으로 ≪효경정의(孝經正義)≫를 편찬하였는데, 이것도 원행충이 소를 쓴 ≪어주효경≫에 의거하였다. 현재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수록되어 있는 ≪효경≫이 바로 이것이다.
그 밖에 송대 사마광(司馬光)은 ≪효경지해(孝經指解)≫를 지었고, 철종(哲宗) 때 범조우(范祖禹)도 ≪효경지해설(孝經指解說)≫을 지은 바 있다. 또한 주희(朱熹)는 ≪고문효경≫과 ≪금문효경≫이 같지 않음을 보고, ≪효경≫의 내용을 독자적으로 분류하여 장(章)과 절(節)로 나누어서 ≪효경간오(孝經刊誤)≫를 지었는데, 이것은 고문을 위주로 하였다. 주희는 ≪효경≫을 경(經) 1장과 전(傳) 14장으로 나누고, 경 1장은 공자와 증자가 묻고 대답한 것을 증자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 하고, 전은 혹자가 전기(傳記)를 이끌어 경문(經文)을 해석한 것이라 하였다.
여하튼 ≪효경≫은 금문, 고문의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어느 것을 취하느냐 하는 것은 학자의 견해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금문을 위주로 하여 만든 ≪어주효경≫이 널리 보급되었다.
≪효경≫의 대표적인 주석서로는 당대(唐代) 육원랑(陸元朗)의 ≪효경음의(孝經音義)≫, 당 현종(玄宗)의 주(注)와 송대 형병(邢昺)의 소(疏)를 모은 ≪효경정의(孝經正義)≫, 주희(朱熹)의 ≪효경간오(孝經刊誤)≫, 원대(元代) 오징(吳澄)의 ≪효경정본(孝經定本)≫, 동정(董鼎)의 ≪효경대의(孝經大義)≫, 주신(朱申)의 ≪효경구해(孝經句解)≫, 명대(明代) 황도주(黃道周)의 ≪효경집전(孝經集傳)≫, 청대(淸代) 장용(藏庸)의 ≪효경정씨해집(孝經鄭氏解輯)≫, 모기령(毛奇齡)의 ≪효경문(孝經問)≫, 엄가균(嚴可均)의 ≪효경정씨주(孝經鄭氏注)≫, 장서(張叙)의 ≪효경정의(孝經正義)≫, 정안(丁晏)의 ≪효경술주(孝經述注)≫, 주춘(周春)의 ≪효경외전(孝經外傳)≫ 등이 있다.



≪효경≫의 내용

글의 내용면에서 볼 때, 제1장인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은 효의 전체 대요(大要)를 밝히고, 제2장에서부터는 효의 세부적인 사항을 다루었다.
≪효경≫에 나타난 효의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종족(宗族)의 영속(永續)이라는 생물학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가문의 명예라는 가치 혹은 문화적 측면이라 하겠다.
첫째로 효는 종족 보전이라는 생물학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또한 인류 문명의 전수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람의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開宗明義章>)라는 구절에서 볼 때, 나의 몸은 부모(조상)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그것을 다시 후손에게 물려주어 자자손손 대를 이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와 문명을 후대에 잇게 해야 한다. 대를 잇지 못하고 단절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최대의 불효가 되는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오형장(五刑章)>에서는 죄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불효라고 하였다. 이에 맹자는 불효 중에서 가장 큰 불효는 대를 단절시켜 후손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孟子≫ <離婁章句上>).
둘째로 효는 가치적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인격을 올바르게 세우고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님의 명예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開宗明義章>)라는 구절에서 볼 때, 사람은 훌륭한 일을 하여 그 이름을 세상에 떨쳐 가문의 명예를 빛나게 하는 것이 보다 더 큰 효행이라 하겠다. 여기에서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의 명예를 빛나게 한다는 것은, 속된 의미에서의 명예가 아니다. 즉 삶이란 생물학적인 생명 보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적 삶을 실현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바탕으로 집안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 치국(治國)의 근본이며, 효도야말로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를 관철하고 모든 신분계층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고덕목·윤리규범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중국·일본의 봉건사회에서 ‘효’가 통치사상과 윤리관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차례            

해설

효경서(孝經序) 


당 현종(唐 玄宗)

효경(孝經) 

1. 근본을 열어서 의리를 밝힌다  開宗明義章第一 
2. 천자의 효 天子章第二
3. 제후의 효 諸侯章第三 
4. 경대부의 효 卿大夫章第四 
5. 선비의 효 士章第五 
6. 서인의 효 庶人章第六 
7. 하늘과 땅과 사람의 법칙인 효 三才章第七 
8. 효로써 다스린다 孝治章第八 
9. 성인의 다스림 聖治章第九
10. 효행의 기준 紀孝行章第十 
11. 불효의 죄 五刑章第十一 
12. 중요한 도리인 효 廣要道章第十二 
13. 지극한 덕인 효 廣至德章第十三 
14. 널리 이름을 알리는 효 廣揚名章第十四 
15. 간쟁함 諫諍章第十五
16. 효에 대한 신명(神明)의 감응(感應) 感應章第十六 
17. 임금을 섬기는 원리인 효 事君章第十七 
18. 어버이 사후의 효 喪親章第十八


부록: ≪효경대의(孝經大義)≫ 

옮긴이에 대해



작품 중에서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사람의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자신의 인격(人格)을 올바르게 세우고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님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



옮긴이          

도민재는 196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조선전기 예학사상 연구>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중국 북경대학교 철학과에서 고급진수과정을 이수하였고, 성균관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상지대학교에서 강의하였으며, 현재 영산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유가철학과 예학 분야로, 전통 예절의 현대적 의미와 예절교육과 관련된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논어의 종합적 고찰≫(심산, 2003)이 있으며, <조선전기 예학사상 연구>, <한강 정구의 학문과 예학사상>, <한국의 전통 가정교육과 유교>, <유교 제례의 구조와 의미>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편집자 리뷰    

효경은 전통사회에서 효의 기본서로 읽히던 책이다. 민간의 아동들로부터 군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필독서였다. 종족의 영속이라는 생물학적인 측면부터 이름을 날려 부모의 명예를 빛나게 하는 문화적 측면까지 효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효경의 정확한 저자와 저작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것이 중요치 않을 정도로 고래를 막론하고 동일한, 효의 가치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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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작자 미상

해설              
 

석가모니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에서 열반하신 후 붓다의 장례는 붓다의 뜻에 따라 말라족의 재가신도들에 의해 전륜성왕의 의식으로 거행되었다고 한다. 붓다의 유골은 8부족에게 나누어져 8개의 사리탑이 세워졌고, 그 후 불교신앙은 사리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붓다 입멸 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확인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마하 카사파(대가섭)를 중심으로 500명의 비구가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과 율을 결집했다고 한다. 이것을 제일결집이라 하는데 이후 몇 차례의 결집이 더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시불교의 경전은 이 첫 결집에 의해 정리되어 구전되었다고 한다.

불교는 시대적으로 원시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로 구분한다. 원시불교는 석가모니부처님 입멸 후 100여년 경 불교교단이 분열하기 이전까지를 말하며, 부파불교는 불교교단 분열이후 시기를 말한다. 출가교단의 엄격한 금욕생활에 대한 규정의 완화를 둘러싸고 상좌부와 대중부의 근본분열을 시작으로 18개 또는 20개의 부파로 분열하였다. 각 부파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비달마의 연구를 통해 불교철학의 시대를 열었다. 부파 중 유력한 부파는 각자 독자적으로 삼장(율, 경, 논)을 편찬하여 전승하였다. 각 부파의 승려들은 승원을 중심으로 교리해석에 의한 전문적인 법(法) 중심의 불교와 자기 수행에 치중하여 붓다의 근본정신이었던 대중구제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소승불교라는 폄칭에는 원시불교와 부파불교가 모두 포함되지만, 대중구제를 소홀히 한 자기 이익(自利) 중심의 부파불교를 말한다. 부파불교는 대승불교 성립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대승불교와 경쟁하면서 세력을 유지했었다.

대승불교 운동은 부파불교의 자리(自利) 중심의 왜곡된 불교관과 힌두교의 흥성에 자극받아 기원전 1세기 전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대승불교운동은 대중부에서 대승불교로 발전하였다는 설과 붓다의 유해를 모신 불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불교운동이라는 설이 있다. 대승불교 운동가들은 붓다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붓다의 덕을 찬탄하고, 그 자비의 힘으로 모든 사람들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출가자들이 자신만의 구제에 전념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승불교 운동을 밑받침할 대승경전이 제작되었다.

대승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타행을 실천하기 위한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의 출현이다. 보살이라는 개념은 원시경전에서는 석가모니가 부처되기 이전의 수행자 시절이나 미륵보살을 지칭하지만, 대승불교의 보살은 출가자, 재가자를 막론하고 이타(利他)의 서원을 세우고 깨달음을 향해서 노력하는 자이다. 그들은 때로는 자신의 깨달음을 뒤로 하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중생 구제에 힘쓰는 구도자이다. 즉 보살은 붓다의 자비에 근거해서 중생 구제에 매진하는 이상적 인격자라 할 수 있다.

둘째,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라는 삼신(三身)사상의 구체화이다. 역사적 실재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앙의 대상인 초월적 존재로 변하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화현한 화신불(化身佛)이고, 초월적 붓다는 진리의 부처인 법신불(法身佛)이다.

셋째, 깨달음에 대한 보편화이다. 우리들은 누구다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인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삼세시방(三世十方)에 수많은 부처가 상정되게 된다. 

넷째, 공(空)개념의 이해와 실천이 강조된다. 공이란 원시불교의 무상(無常), 무아(無我)설의 대승불교적 전개이다. 일체존재는 연기적 산물 즉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성립되기 때문에 실체적인 것은 없다. 즉 무자성(無自性)이다. 무자성이기 때문에 공이다. 공은 이념으로서 이해되어야 하기 보다는 실천되어야 한다. 이 실천이 6바라밀로 구체화 되어 일상생활에서 이것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6바라밀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般若)이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 그 자체가 진실의 기반이며, 이것을 떠나서 따로 청정한 생활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된다.

가장 먼저 생겨난 대승경전은 공의 실천이념인 반야바라밀을 중심으로 하는 『반야경』이다. 『반야경』을 비롯한 주요 대승경전들은 대체로 기원 전후에 제작되었는데, 점차적으로 『화엄경』, 『법화경』 등이 제작되었고, 이후 『승만경』, 『열반경』, 『해심밀경』등이 제작되고, 마지막으로 밀교계 경전들이 제작되었다.

많은 대승경전의 제작에 의해서 대승경전을 수지(受持), 독송(讀誦), 해설(解說), 서사(書寫)하게 되면 많은 이익이 있음이 말해져 대승경전에 대한 신앙이 일어나게 된다. 대승경전의 신앙은 바로 법(法)의 절대화로 진행되어 역시 대승불교의 학문화, 철학화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반야부 계통에 속하는『유마경』은 재가거사인 유마힐을 주인공으로 한 경전이다. 불교경전 중에서 재가자를 주인공으로 한 경전은 『유마경』과 승만부인을 주인공으로 한 『승만경』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두 경은 매우 중요한 경전으로 간주된다.『유마경』에서는 출가 중심의 왜곡된 불교를 철저하게 비판하여 대승불교의 진의를 밝히고 있다. 유마거사가 살고 있는 바이살리는 중인도 갠지스강 지류인 간다아크강의 연안에 발전된 상업도시로 화폐경제가 발달되었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이 넘쳤던 곳이었다. 유마거사는 이 시대의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비판적인 정신을 대표하고 있다.

경의 성립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개 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경의 주인공인 유마힐은 Vimalakīrti의 음역으로 “깨끗한 이름(淨名)” 또는 “때 묻지 않는 이름(無垢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경의 또 다른 이름인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은 제14장 「위촉품」에서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 경을 불가사의 해탈문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한 것에 근거해서 붙여진 경명이다. 이 경의 내용이 상식이나 이론적인 입장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종교적 체험의 경지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마경』은 산스크리트 원전은 없어졌지만, 일부가 월칭(月稱)의 『중론석(中論釋)』이나 적천(寂天)의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에서 인용되고 있다. 대승경전 중에서 유마힐이 언급되는 경전으로는 『불설대방등정왕경(佛說大方等頂王經)』, 『불설월상녀경(佛說月上女經)』등이 있다. 『유마경』의 번역본으로는 고오탄(于闐)어 역 단편과, 페르시아의 한 방언인 소구드(Sogdh, 栗特)어 번역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티베트 역은 산스크리트 원전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한역(漢譯)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불엄조(佛嚴調) 역, 『고유마힐경(古維摩詰經)』 2권(187년)

지겸(支謙) 역, 『불설유마힐경(佛說維摩詰經)』 2권(223〜253)

축숙란(竺叔蘭) 역,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 3권(296년)

축법호(竺法護) 역, 『유마힐소설법문경(維摩詰所說法門經)』1권(303년)

사문 지다밀(沙門 祗多密) 역, 『유마힐경(維摩詰經)』 4권(미상)

구마라집(鳩摩羅什) 역,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3권(406년)

현장(玄裝) 역,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6권(650년)

이 중 현존하는 것은 지겸, 구마라집, 현장 역본이다. 한역 중 티베트 역과 가장 일치하는 것은 현장 역이지만, 전통적으로 구마라집 역본이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

『유마경』에 대한 주석서로는 인도에서 세친(世親)의 주석서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중국의 주석서로는 구마라집의『유마경소(維摩經疏)』, 승조(僧肇)의『주유마힐경(註維摩詰經)』, 혜원(慧遠)의『유마힐기(維摩詰記)』, 지의(智顗)의『유마경현의(維摩經玄義)』, 지의(智顗)설 담연(湛然)약(略)의『유마경약소(維摩經略疏)』, 지원(智圓)의『유마경약소(維摩經略疏)』,『수유기(垂裕記)』, 길장(吉藏)의 『정명현론(淨名玄論)』,『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 규기(窺基)의 『설무구칭경소(說無垢稱經疏)』, 전등(傳燈)의 『유마경무아소(維摩經無我疏)』, 양기원(揚起元)의 『유마경평주(維摩經評註)』, 정연(淨挺)의 『유마힐경요설(維摩詰經饒舌)』등이 있다.

『유마경』은 재가의 거사인 유마힐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출가중심주의의 형식적인 부파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진의를 드러내고 있다. 유마거사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대승의 보살도를 성취하여 출가자와 동일한 종교 이상을 실현하며 살고 있었다. 유마거사는 방편으로 병이 들었는데, 문병 오는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제자들에게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갈 것을 명하였지만, 일찍이 유마거사로부터 힐난을 들은 적이 있는 제자들은 병문안 가는 것을 극구 사양한다. 유마거사는 비록 세속에 있지만, 대승의 가르침을 자각하였기에 10대 제자들과 보살들이 그를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명을 받아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가게 된다. 두 사람은 유형적 상대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대화한다. 유마거사는 기존의 출가중심의 불교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당시 불교의 문제점을 비판 지적하고 있다. 경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실의 국토가 불국토이다. 불국토라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곳이다. 「불국품」에서 “직심(直心), 심심(深心), 보리심(菩提心)이 보살의 정토이다.” “이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도 청정하다.”라고 하여 정토라는 것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보살의 실천정신 가운데 이미 표현되어 있으므로 현실국토가 바로 정토라고 하였다.

둘째, 자비정신의 실천이다. 「문질품」에서 “어리석음과 탐욕,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일 모든 중생들의 병이 나으면, 그 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라는 유마거사의 말은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보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즉 보살의 병은 보살의 자비에 의한 것이다. 보살은 이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번뇌에 싸인 중생들을 깨달음에로 인도하는 것이 보살이다. 5무간죄,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 탐, 진, 치의 3독에 몸을 던지면서도 이에 속박됨이 없는 것이 보살의 길이다.

셋째 평등의 불이사상(不二思想)의 실천이다. 출가, 재가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보리와 번뇌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정토와 예토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사상을 통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 실상의 진리는 형상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공의 경지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깨달음은 언어문자를 초월해 있다.

넷째, 중생들에게 모두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유마거사는 현실의 인간이 비록 번뇌를 가지고 악을 행하고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체의 번뇌가 곧 여래의 종성이다.”라고 하여 불법은 번뇌 가운데 나타난다고 하였다.

『유마경』의 번역본 중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은 구마라집의 역본이다. 본 역서도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토대로 하였다. 『유마경』은 전체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번역에서는 『유마경』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3장, 5장 9장을 중심으로 완역 또는 발췌 번역하였지만 12장에서 14장은 제외하였다.


차례              
 

1. 불국품(佛國品)

2. 방편품(方便品)

3. 제자품(弟子品)

4. 보살품(菩薩品)

5.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

6. 부사의품(不思議品)

7. 관중생품(觀衆生品)

8. 불도품(佛道品)

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

10. 향적불품(香積佛品)

11. 보살행품(菩薩行品)


옮긴이에 대해


본문 중에서      

從癡有愛 卽我病生. 以一切衆生病 是故我病. 若一切衆生 得不病者 卽我病滅. 所以者何 菩薩 爲衆生故 入生死.

어리석음으로 인한 애착이 있어 나에게 병이 생겼습니다. 일체중생이 병이 들었기 때문에 나도 병이 들었습니다. 만약 일체 중생에게 병이 없어지게 되면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들을 위하여 생사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역자 소개      
 

조수동(曺洙東)은 대구에서 출생하여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여래장(如來藏) 사상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대구한의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인도철학사』(1995, 이문출판사), 『여래장』(1997, 이문), 『삼국유사의 종합적 연구』(2002, 박이정, 공저), 『불교사상과 문화』(2003, 세종), 『한의 학제적 연구』(2004, 철학과 현실사, 공저), 『종교의 이해』(2005, 학진출판사), 『현대인의 윤리학』(2005, 학진출판사)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대중구제를 소홀히 하고 자기 이익만 중시하던 부파불교를 비판한 대승불교의 경전.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고,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병든 유마힐과 문병 온 부처의 제자들의 대화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 불교 경전이 아닌, 고전을 읽는 맛이 있다. ‘모든 중생들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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