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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8 라덴 란다이 บทละครเรื่อง ระเด่นลันได

프라마하몬뜨리(쌉) พระมหามนตรี(ทรัพย์) (태국, ?~1845?)    
태국에 성씨(姓氏) 제도가 도입된 시기는 라마 6세(1910∼1925) 때다. 그전에는 한두 음절로 된 이름만 있었다. 라마 3세(1824∼1851) 때 활동했던 프라마하몬뜨리(쌉)[또는 프라마하몬뜨리옹카락(쌉)]는 끌런에 매우 능했고, 싹디나 2000라이 급(級)의 당시 궁정 내 경찰이었다는 기록과 작품 두 편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 관등명으로 보아 가문은 알 수 없으나 이름과 직책은 알 수 있다. 괄호 안의 ‘쌉’이 그의 본명이고, ‘프라마하몬뜨리옹카락’은 관직명이다. 그의 관등은 ‘프라’ 급이고 관직이 ‘옹카락’인 것으로 보아 왕이나 왕실의 호위를 맡고 있는 궁정 경찰이나 근위대로 보인다. ‘옹카락’이 왕으로부터 사령장을 수여받은 관등이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는 왕궁을 지키는 경찰대나 근위대에 소속된 고위 관료였던 것 같다. ‘마하몬뜨리’는 그 직의 우두머리임을 말해준다.

관등이나 관직명 뒤의 괄호 안에 한 음절로 된 이름이 들어 있는 현상은 성이 아직 없었던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 중 이름이나 관등이 겹치는 경우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라마 1세 때에 활동했던 작가 짜오프라야프라클랑(혼)은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루엉써라위칫(혼)과 관등명과 이름을 함께 씀으로써 구별하고 있다.

당시 태국 관등은 맨 위로부터 쏨뎃짜오프라야, 짜오프라야, 프라야, 프라, 루엉, 쿤, 믄, 판, 타나이 9등급이었는데, 쿤 이상의 관료는 사회적으로 고급 관료로 간주되고, 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9등급 중 상위 2등급은 대체로 왕족이 전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라’ 급이 비교적 높은 관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프라마하몬뜨리(쌉)는 라마 1세 때에 태어나 1845년경이나 그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태국의 대문호라 일컫는 쑨턴푸−프라쑨트라워한(푸)−와 거의 동시대 인물로 평가될 뿐 더 자세한 이력이나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작품으로는 라마 2세의 작품인 ≪극본 이나오≫를 패러디한 작품이라 평가되는 ≪라덴 란다이≫ 외에 경찰의 권력 남용 사실을 고발한 ≪플렝야우ᐨ밧쏜테≫가 있다. 나중 작품은 그가 왕궁 경찰의 검을 보관해 두는 무기고에 숨겨두었으나, 그의 생존 시 다른 동료에 의해 발견되어 공개되었다고 하는데, 이 고발 작품으로 인해 그의 문학적 명성이 알려졌고 동료들은 앞을 다투어 그 작품을 베꼈다고 전한다. 그의 두 작품의 성격으로 보아 그는 시대성에 민감하였음을, 특히 비윤리적이거나 부도덕한 사건에는 그 대상이 누구건 간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정의감이 강한 성격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해설         

국내 최초 번역입니다.

이 책은 ≪프라마하몬뜨리(쌉)의 봇라컨 르엉 라덴 란다이≫(태국교육위원회, 1981)을 원전으로 삼고 번역하였습니다.

≪라덴 란다이≫는 태국 최초로 패러디 기법을 사용한 풍자문학이라는 점에서 태국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제목이나 형식만 보면 공연 콘을 위한 봇라컨의 구색을 모두 갖추었으나 내용을 보면 공연보다는 읽고 즐기는 데 더 중점을 둔 작품이라는 데 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순수한 창작문학이라는 관점 외에 당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기록문학이라는 점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이 작품은 작자인 프라마하몬뜨리(쌉)의 생전에는 발표되지 못하다가 그의 사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지 약 40년이 지난 후인 1887년에 그의 두 작품은 인쇄되어 ‘와찌라얀 도서관’에 소장되었으며, 다시 30∼40년이 지난 1920년 1월 초순경에 ‘뜨리암빠와이’라는 이쑤언(비슈누)신을 맞는 힌두의식의 기념책자로 참석자에게 배포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의 창작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라마 3세 당시 떠돌이 거지 한 사람이 인도에서 태국에 와서 인도인들이 몰려 사는 방콕 힌두신전 앞, 그네거리(싸오 칭차)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해금을 켜는 악사 거지였다고 한다. 그가 짧은 태국어로, 전후가 없는 태국 노래 한두 마디를 팔며 저잣거리를 다녀서 그 근처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 거리에는 란다이 외에 쁘라두라는 이름을 가진 힌두교도 인도인이 살았다. 그는 클렁럿 운하 근처에 있는 성문 가까이에 외양간을 짓고 젖소를 쳤는데, 빳따니에서 온 전쟁포로 쁘라대를 노예시장에서 아내로 사왔다. 어느 날 란다이와 쁘라두가 쁘라대를 가운데 두고 서로 싸웠다고 한다. 쁘라두가 소를 몰고 성 밖으로 나간 사이에 란다이는 쁘라대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이 사실을 안 쁘라두가 란다이와 크게 다툰 것이다.

자바 왕국의 왕자 이나오가 ‘캑’이듯이 란다이도 역시 ‘캑’이다. 이나오는 왕자 신분의 캑이지만 란다이는 거지 신분의 캑이다. ‘캑’이란 말은 인도인, 스리랑카인 등 서남아시아인과 말레이인이나 자바인 등 동남아시아인, 그리고 아랍인 등을 지칭하는 태국어다. 아랍에서 온 캑들은 대체로 아유타야 시대에 무역상인의 신분으로 태국에 진출하여 고위관료로 정착하여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누리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캑들에 대해 태국인들은 대체로 혐오감이나 멸시감을 가지고 냉대한다. 태국인들의 서남아시아와 말레이 출신 캑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는 이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말레이는 태국의 속방이기도 했다.

당시 태국인들에게 인도에서 이주해 온 가난한 인도인들은 천민 그 자체였고, 말레이에서 팔려온 전쟁포로인 노예 여인은 신분이 노예였던 이유로 인간 이하로 생각되던 시대였다. 그러므로 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 같지 않은 그 세 사람이, 더군다나 피부가 검고 귀에는 손가락이 드나들 정도로 구멍이 나 있는 추녀를 차지하기 위해 두 사내가 저잣거리에서 싸운 사건은 방콕 사람들의 입에 오랫동안 회자되며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프라마하몬뜨리(쌉)는 이 이야기를 듣고 실명을 사용하여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라덴 란다이≫는 당시 태국 국민들이 가장 즐겼던 라마 2세가의 작품, 즉 장편 서사문학 작품인 ≪극본 이나오≫를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한다. 많은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우선은 거지 란다이의 이야기와 자신이 의도한 이야기의 플롯이 유사했고, 다음으로는 상류층을 풍자하기 위해서는 상류층이 즐기는 작품을 패러디하는 것이 손쉬웠을 것이다. 이외에도 서양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시대에 살고 있던 작가는 상류층들이 즐기는 기존의 왕자와 공주 또는 신에 대한 그렇고 그런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이야기, 즉 ‘짝짝 웡웡’ 이야기의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문학 형식을 추구하려 했으나 아직은 그들이 선호하는 양식을 택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작가는 왕궁 무용극의 형식을 충실히 따라 다양한 곡조를 사용했다.

≪극본 이나오≫는 라마 2세의 작품인데다가 왕궁의 여인들만이 궁에서 공연했던 정교하고 고상한 품격을 가진 연극이다. ≪라덴 란다이≫는 그 분량을 비교하면 ≪이나오≫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짧은 길이이고, 등장인물도 ≪극본 이나오≫와 비교하면 수적으로 매우 적다. 사회적으로 천민인 거지 란다이와 소치기 쁘라두, 쁘라두의 아내 쁘라대와 타워이에서 온 포로 여인으로 떡 행상을 하는 끄라애, 모두 네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본 이나오≫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나오가 란다이, 쩌라까가 쁘라두, 부싸바가 쁘라대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을 두고 ≪극본 이나오≫를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침실에서 주인공의 모습, 달빛, 풀 향기, 밤새의 울음소리 등은 두 작품이 상치(相馳)하고, ≪극본 이나오≫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낭만적인 분위기인 반면 ≪라덴 란다이≫는 슬프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이 음산하고 기괴하다.

≪극본 이나오≫가 왕자 이나오의 혼인담이 주를 이루는, 아싼대와 왕가와 라뚜 왕가 간의 이야기인 반면에 ≪라덴 란다이≫는 제목과 달리 당시 사회의 가장 천한 계층의 이야기이다. ≪극본 이나오≫가 자바 왕국의 왕자 이나오를 주인공으로 한다면 ≪라덴 란다이≫의 ‘라덴’은 자바어로 ‘왕자’를 뜻하나 실제로 그는 왕자가 아니라 거지 악사다. 말이 악사이지 그는 인도에서 온 떠돌이 걸인으로, 태국어도 어눌하고 태국의 서사문학인 ≪극본 쑤완나홍≫의 구걸 대목 한두 구절을 외워 해금을 켜면서 구걸하는 인물이다. 이나오 왕자의 상대역인 쩌라까도 왕자이나 이나오에 비해 열세한 국가의 왕자다.

그러나 란다이의 상대역인 쁘라두는 거지는 아니지만 역시 인도에서 온 힌두교도로 소를 치는 일을 하는 인물이다. 이나오의 배우자인 부싸바 공주는 미인이며 심성이 고운,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공주인 데 비해 쁘라두의 아내 쁘라대는 태국 남부의 빳따니에서 잡혀온 말레이인 노예로, 노예시장에서 쁘라두가 돈을 주고 사온 여성이며 외모상으로도 부싸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추녀이고 얼굴색도 검으며 바람기가 있는 여성이다.

이상의 사실로 보면 프라마하몬뜨리(쌉)는 자신의 끌런 솜씨를 뽐내보려는 야심에서 당시 방콕인들이 즐기는 왕가 이야기인 ≪극본 이나오≫를 천민의 이야기로, 사내답고 정의로운 이나오를 바람둥이 란다이로, 현숙한 미인인 부싸바를 다른 남성과 정분이 나는 유부녀 쁘라대로 패러디함으로써 당시의 사건을 기록도 하고 한층 더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하겠다.

위와 같은 주장은 끄롬프라야담롱라차누팝 대군이 1920년에 쓴 이 작품의 서문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근래에는 다른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형적으로 방콕 저잣거리에 사는 힌두교도 두 사람과 빳따니에서 끌려온 포로 여인 간의 이야기지만 내면적으로는 당시 태국 상류사회의 윤리성을 풍자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당시 왕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관계된 지배계층을 풍자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은 물론 그 사건을 보고 뭔가 토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작가적 본능에서 쓴 작품이라고 쏘씨다를 중심으로 한 교수들은 말하고 있다.

이 번역은 ≪프라마하몬뜨리(쌉)의 봇라컨 르엉 라덴 란다이≫(태국교육위원회, 1981)를 저본으로 삼았다. 이 작품은 내용으로 보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은 란다이가 쁘라대에게 밤에 찾아올 테니 문을 잠그지 말라고 당부한 부분으로, 란다이와 쁘라대가 만나 서로 마음을 어느 정도 주고받는 대목이다. 다음은 쁘라대의 남편인 쁘라두가 소를 치던 중에 귀가하는 부분부터 쁘라대와 란다이가 사랑을 나누는 부분까지이고 나머지는 끄라애가 등장하는 부분부터 끝까지인데 많은 태국학자들은 이 작품의 뒷부분 서너 장이 분실되었다고 보고 있다. 원래는 끄라애가 집 안으로 들어가 란다이와 이야기 끝에 화해하고 쁘라대가 다시 쁘라두에게 돌아가는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라고 한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라덴 란다이

옮긴이에 대해

 

나오는 사람들
쁘라두 : 인도에서 온 힌두교도, 소를 기른다.
쁘라대 : 쁘라두의 아내, 빳따니에서 온 전쟁포로, 쁘라두가 노예시장에서 사 온 아내.
란다이 : 인도에서 온 힌두교도, 거지악사.
끄라애 : 타워이에서 온 포로여인, 찰떡장사.




출판사서평 
태국 최초의 패러디 문학 ≪라덴 란다이≫를 국내에서 처음 번역했다. 왕실에서 빈민가로 배경을 옮겨 <이나오>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라마 3세 때의 짜오쩜임 사건에 관계된 지배계층을 비판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인구가 한 명뿐인 왕국의 떠돌이 왕자 란다이와 그의 여인 쁘라대 등 하층민의 삶을 담은 기록문학으로서도 인정받고 있다.



본문중에서 
อันระตูฤาจะคู่กับอนงค์
มิใช่วงศ์อสัญแดหวา
โฉมเฉลาเจ้าเหมือนบุษบา
จรกาฤาจะควรกับนวลน้อง

어찌 그대가 라뚜와 짝이 될 수 있나요?
비록 아싼대와 가문의 후예가 아니지만
그대는 부싸바처럼 아름답소.
쩌라까는 그대와 맞지 않소.



옮긴이       
김영애(金英愛)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태국어를 전공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지역학석사(태국 외교)를 취득하였다. 그 후 태국의 쭐라롱껀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문과대학에서 태국어문학과 태국역사를 공부하였다. 이때부터 태국역사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귀국한 후 고민 끝에 전공을 바꾸어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공저 포함)로는 ≪태국사≫,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의 이해≫, ≪일제하의 동남아≫, 역서로는 ≪짬렁, 내 삶의 이야기≫ 등이 있으며 기타 다수의 논문이 있다.  태국정부로부터 태국문화를 진흥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바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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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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