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르케니 이슈트반 Örkény István (독일, 1864-1918)
외르케니 이슈트반은 1912년 4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문계 학교를 마친 후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여 약사가 되었다. 1937년 단편소설 <윤무>를 발표하면서 당시 잡지를 편집하던 어틸러 요제프와 친교를 맺었다. 1941년 헝가리가 독일과 함께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전쟁에 나갔고 종전 후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늦게 귀국했다. 1946년부터는 주로 작가로 활동했다. 1953년 첫 장편 ≪부부≫를 출간하고 이어서 1955년에 발간한 단편집 ≪폭설≫로 어틸러 요제프 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중반 연달아 네 권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외르케니는 크게 주목을 받았고 성공도 거두었다. ≪예루살렘의 공작≫(1966), ≪파리 잡이 찐득이 위의 신혼여행≫(1967), ≪1분 소설≫(1968), ≪시간에 따라서≫(1971) 등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들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외르케니는 연극계에 종사하면서 연극을 위한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한편 자기 소설을 연극용으로 개작하기도 했다. <글로리아>(1957), <토트 씨네>(1964), <고양이 놀이>(1963) 등. <토트 씨네>와 <고양이 놀이>가 외국에서 자주 공연됨으로써 외르케니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특히 <토트 씨네>는 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헝가리 작품 중 하나다. 1972년 노동훈장, 1973년 코슈트상을 수상했고, 1979년 6월 24일 부다페스트에서 타계했다.

 

해설         
이 책은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발췌하지 않고 모두 번역하였습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Tóték≫(Magvető, 1974)를 사용하였습니다.

뱀이 자기 스스로를 삼켜버리면, 그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뱀의 빈자리는 남아 있을까?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의 최후의 마지막 조각까지 다 먹어 치우게 하는 그런 폭력이란 진정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존재할까? 어려운 문제로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있을까? 없을까?’ 중의 하나다. 없다는 쪽으로 기울면 소설은 아름다운 동화의 모습일 터이고, 반대로 있다면 그건 매우 잔혹한 것이리라.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무겁게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래도 알 수 없다는 의혹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런 점이 바로 외르케니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를 평가한 어떤 글의 한 대목이다.

‘어느 작가든 그의 예술적 특징은 그 작가의 작품을 한두 개 분석하면 대충 드러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외르케니는 그런 통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늘 새로운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고, 따라서 그 마스크 속의 얼굴이 누구인지를 수수께끼처럼 찾아야 한다.’ 바로 그러한 수수께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이 번역은 ≪Tóték≫(Magvetö, 1974)를 저본으로 삼아 전문을 옮긴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테마는 전쟁이다. 전쟁을 통하여 인간성이 말살되어가는 과정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외르케니는 인간성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폭력이 있음을 제시했다. 2차대전에 참여했던 외르케니는 전쟁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이 동시에 나타나는 희비극에 부조리극적 요소를 혼합한 소설을 썼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쳐버린 인간들이다. 모든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간 뒤, 쓸모없고 모자라는 무지렁이 주리는 우체부가 되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 오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소식은 다 없애버리고 좋은 소식만 배달해 주는 등의 우스꽝스런 행동을 한다. 토트 씨가 심신의 위안을 구하려고 찾아간 토머이 신부님도 마찬가지다. 이미 극도로 심신이 지친 토트 씨를 무조건 꾸짖으면서 비상식적인 엉뚱한 조언을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전쟁 중임을 들어 다 참아야 한다며, 돌출행동을 하지 못하게 개처럼 방울을 달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전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는 의사의 처방도 가관이다. 소령보다 키가 커서 소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듯하다는 얘기에 다리를 반쯤 구부리고 다니라고 말한다.

토트 씨가 신부님과 의사 등을 찾아가는 이유는 소령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으면서 심신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을 쳐다보면 소령은 뒤에 뭐가 있느냐고 화를 내고, 밤 새워 일을 하다가 하품을 하면 하품을 하지 못하게 입에 전등을 물게 하고,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모자를 눈 아래까지 푹 눌러 쓰게 한다. 토트 씨네는 이렇듯 온갖 수모와 고통을 참아낸다. 오직 참전 중인 아들의 상관인 소령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고통을 호소하러 찾아간 그 지역의 인사들, 병을 치유하고 사람들을 돌봐야 할 사람, 정신적 어려움에 위로를 주어야 할 성직자들은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엉뚱한 답만 준다. 토트 씨네의 주변 환경은 완전히 정상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하나같이 다 미쳐버린 인간들이다.

이렇게 다 미친 세상에 그래도 제정신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토트 씨 자신이다. 그런데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세상에서 그래도 아직 인간인 토트 씨, 인간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그 토트 씨가 소령을 죽인다. 작두로 네 도막을 낸다. 세 도막을 냈느냐는 부인의 물음에 네 도막을 냈다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참으로 희극적이다. 살인은 광기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려는 구원의 행위다. 배움이 많고 점잖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시류에 따라 미쳐가고 있을 때, 인간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다.

이처럼 사회를 지탱해야 할 기둥들은 제정신이 아닌 광기에 휩쓸려 있다. 정신이 혼란스러운 보통사람들을 더욱 완벽하게 혼란에 빠뜨리는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독자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소령이 도착했을 때 아들은 이미 전사한 상태다. 그러나 친절한 우체부의 배려로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장차 소령이 귀대한 후 전선에서 아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고통을 견뎌내는 장면들은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은 필시 보이지 않는 눈물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극히 비극적인 사건을 세부적인 희극적 요소로 치장한 구성은 참 인상적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의 마지막 조각까지 다 먹어 치우게 하는 그런 폭력이 진정 존재한다는 것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장
2장
3장
4장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서평   
없다면 아름답고 있다면 잔혹한 것. 이것이 바로 폭력이라고 외르케니는 말한다. 그의 소설 <토트 씨네>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아들의 상관인 버로 소령 앞에서 무릎을 구부린 채 걸어다니고 밤을 새워 상자를 만드는 토트 씨와 가족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인간성의 최후가 숨어 있다 



본문중에서   
Háromba? Nem. Négy egyforma darabba vágtam... Talán nem jól tettem?
De jól tetted, édes, jó Lajosom - mondta Mariska. - Te mindig tudod, mit hogyan kell csinálni.
Feküdtek, hallgattak, forgolódtak. Oly fáradtak voltak, hogy végül mégiscsak elnyomta őket az álom. Tót azonban alva is forgolódott, rúgott, nyögött, egyszer majd kiesett az ágyból.
Rosszat álmodott talán? Ez azelőtt nem volt.

“세 도막 냈느냐고? 그렇지 않아. 네 도막으로 잘랐소, 그것도 똑같이… 그런데 내가 뭐 잘못한 것이라도 있소?”
“당신도! 당신은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머리슈커가 말했다. “당신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적이 없지요.”
그들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웠다가 다시 뒤척일 뿐이었다. 그들은 엄청나게 피곤했다. 밀려오는 잠을 도무지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토트 씨는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몸을 뒤척였다. 몸을 한번 쭉 뻗어보았다. 신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그가 혹시 잠을 잘못 잔 것일까? 전에는 결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옮긴이       
정방규는 전라도 고창에서 1948년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의 괴팅겐에서 헝가리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했다. 1990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헝가리문학에 대하여 강의하고 있다. <통일 후 독일 지성인의 심리적 갈등 연구>(<문화예술논총 5>, 1993년) 등의 논문이 있고, ≪(서보 머그더의) 노루≫(1994년) 등의 번역서가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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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베데킨트 Frank Wedekind (독일, 1864 ~ 1918)
프랑크 베데킨트는 1864년 7월 24일 독일 하노버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의사로 1864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가 귀국했고, 어머니는 가수였다. 유럽으로 돌아온 이 가족은 1872년 스위스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가 1848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시민운동에 관여한 적이 있었고, 비스마르크의 제국 건설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스위스 아라우 주에 있는 렌츠부르크 성을 사서, 그곳에서 프랑크와 그의 다섯 형제들은 학교에 다닌다. 베데킨트는 스위스의 로잔과 독일의 뮌스터, 뮌헨에서 대학에 다니며 아버지가 원하는 법학과 독문학을 공부한다.

그는 잠시 취리히의 한 식품회사에서 광고문안 작성자로 일하기도 하나, 24세에 부친이 사망하자 그 유산을 받아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고, 그 후 베를린과 뮌헨에서 보헤미안 생활을 하며 연극에 전념한다. 1892/1895년에는 파리에서 머물기도 하고, 런던으로도 여러 차례 여행한다. 1896년 이후에는 뮌헨에서 ‘히로니무스 욥스’라는 가명으로 잡지 <짐플리치시무스>의 동인으로 일한다. 1898년에는 카를 하이네가 이끄는 입센 극장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게오르크 슈톨베르크가 이끄는 뮌헨 샤우슈필하우스(오늘날의 뮌헨 카머슈필레) 극장에서 희곡 담당 및 연출가로 일한다. 이때 베데킨트는 황제 빌헬름 2세의 팔레스티나 여행을 조롱하는 시를 써서 황제 모독죄로 고발당했기 때문에 스위스로 도주한다. 출판업자 랑겐은 망명 중이어서 수입이 없는 작가에게 더욱더 과격한 시를 쓰도록 요구하여 자신이 발행하는 신문의 판매부수를 올리려고 한다. 이 때문에 베데킨트의 작품은 극장에서 공연을 거부당한다. 그리하여 베데킨트는 출판업자 랑겐과는 결별하고 법정에 자진 출두하여 7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한다. 1901년부터 뮌헨의 카바레 극장 <열한 명의 형리>에 출연하고, 자신의 작품에 배우로도 출연하며 여러 차례 순회공연을 다닌다.

베데킨트는 42세 때 그라츠의 여배우 틸리 네베스와 결혼하는데, 틸리는 남편과 함께 베데킨트 스타일을 발전시켜 빈에서 카를 크라우스의 찬사를 받는다. 1906/1908년에는 베를린의 막스 라인하르트 극장에서 함께 작업하고, 1908년부터는 뮌헨에서 지낸다. 1906년 딸 파멜라가 출생하고 파멜라는 후에 희곡작가 카를 슈테른하임과 결혼한다. 1911년에는 둘째 딸 카디디야가 태어난다. 베데킨트는 맹장 수술이 잘못 되어, 탈장 수술이 여러 번 반복되다가 1918년 결국 54세의 나이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뮌헨의 발트프리트호프 묘지에서 있었던 장례식은 스캔들이 된다. 왜냐하면 뮌헨의 창녀들이 ‘자유연애의 선구자’인 베데킨트에게 마지막 존경을 표시하러 몰려왔고, 아직 덮지 않은 묘 안에서 작가 하인리히 라우텐자크가 광기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해설         
이 책은 발췌하지 않고 모두 완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Frank Wedekind, Frühlings Erwachen. In: Frank Wedekind, Dramen 1. Berlin und Weimar: Aufbau-Verlag, 1969 을 사용했습니다.

프랑크 베데킨트는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하고 시민들을 두렵게 만든 존재였다. 금기 안에서 보호받고 유지되던 사회는 베데킨트로 인해 도전과 충격을 받았다. 사회는 그를 평화를 교란하는 자로 구분하고 검열과 판결로 박해했다. 베데킨트는 성 문제를 원초적인 사건으로 묘사하며, 성을 문명과 인습의 조종으로 소외된 시민 존재 속으로 침입한 혼돈스러운 자연의 힘으로 묘사한 최초의 작가에 속한다. 그는 사회적 안전조치인 결혼과 가족제도 등 성 행동의 형식들에 대비해서 플레이보이들이 감행하는 순간적 외도의 독특한 매력에서 성의 악마성을 그려 보인다. 타부의 강요가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고 성 문제가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형태로 표현되고부터 베데킨트의 성의 신화화는 무리하고 희극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나, 중요한 것은 그가 선입견과 위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성 문제를 다룬 선구자였다는 점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에서는 예의 없는 사건이란 전혀 없고, 오직 이롭거나 해로운 사건,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사건이 있을 뿐이다”.

 베데킨트는 이미 인문계 고교인 김나지움 시절에 성을 “생 의지의 초점”으로 여긴 쇼펜하우어의 허무주의 세계관의 영향을 받았다. 니체의 글에서부터 에고이즘만이 모든 사회적 행동의 동기가 된다는 유물론적 확신을 전개시켜, “좋은 사회란 그곳에서 사업이 잘되는 사회”(≪슐로스 베터슈타인≫)라고 생각하고, ≪카이트 후작≫은 “죄악이란 잘못된 사업에 대한 신화적 명칭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번창한 사업이 도덕이다”라고 조롱한다. 사랑, 결혼, 명예와 같은 시민계급의 이상을 베데킨트는 냉정하게 사업관계라고 여긴다. 베데킨트는 결혼을 부양과 사회적 체면으로 지불한 사랑이라고 보는 반면에, ≪룰루≫, ≪슐로스 베터슈타인≫, ≪프란치스카≫에서처럼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랑이 원래 자유롭고 자발적인 사랑이라고 보여준다.

 성 문제와 사회의 갈등 다음으로 베데킨트에게 중요한 두 번째 주제는 당시 세기 전환기 문학에서 유행 현상이기도 했던, 예술가와 사회의 대립이다. 때때로 자신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베데킨트에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예술가는 저항과 거부의 상징이 된다. ≪니콜로 왕≫, ≪사랑의 묘약≫, ≪슐로스 베터슈타인≫에서처럼 예술가도 속물이 될 수 있다. ≪캄머쟁거≫, ≪지령≫의 화가 슈바르츠, 또는 ≪음악≫의 장애인 여가수 휘너발트와 같이 자신의 재능을 팔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다. 여성 파우스트라고 할 수 있는 ≪프란치스카≫ 역시 성전환을 하여 자신의 존재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헤라클레스≫는 세상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베데킨트의 예술가 드라마들이다.

 베데킨트는 카를 슈테른하임과 게오르크 카이저 같은 표현주의 드라마 작가들의 본보기가 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룰루처럼 광적으로 생을 탐하는≪바알≫(1922)을 보여준 바 있고, 베데킨트의 사실적이고 간결한 발라드 어조를 자신의 서정시에서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베데킨트에 대한 브레히트의 고백은 매우 열렬하다. “그것은 이 사람의 대단한 활기였다. 폭소와 조소가 깔린, 인간성에 대한 불굴의 찬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에너지 말이다…. 그는 톨스토이와 스트린드베리와 함께 신 유럽의 위대한 교육자에 속한다. 가장 위대한 걸작품은 그 자신의 개성이다.” 뒤렌마트의 그로테스크한 비유극들에서도 비극성은 씁쓸한 소극으로 변하는데, 이 역시 베데킨트의 극작론이 계속 발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눈뜨는 봄≫은 청소년들 사이에 성의식이 깨어남을 보여준다. 빌헬름 2세가 지배하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청소년들은 학교의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부모들이 점잔 빼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고, 항상 같은 질문과 요구로 스스로 괴로워하고, 부모 세대들부터 거부당한 채, 죄의식과 억압 아래서 혼란스러워한다. 14세 되는 소녀 벤들라 베르크만은 “열네 살 된 저보고 아직도 황새를 믿으라고 진지하게 요구하실 수는 없어요”라고 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성에 대한 것을 알려고 한다. 어머니 베르크만 부인은 난처한 딸의 물음을 회피하며 뿌리친다. 김나지움 학생들인 멜히오어 가보어와 모리츠 슈티펠도 생식과 출산에 관한 터부에 대해 추적하려고 한다. 생각이 자유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멜히오어는 친구를 위하여 성교육적인 글을 <동침>이라는 제목으로 써준다. 모리츠는 몽상적이고 겁 많은 친구로 학교에서 낙제하게 되자 부모의 압력을 피해 미국으로 도주하려고 꿈꾸지만 실패하고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가 자살 직전에 만난 소녀 일제는 시민사회에서 타락한 여자아이로 낙인 찍혔으나, 술집이나 예술가들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과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인생을 즐긴다. 일제의 유혹도 모리츠의 불안과 자살을 막을 수 없다.

 멜히오어와 벤들라는 건초 창고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경험하고, 벤들라는 임신하게 된다. 스캔들을 막기 위해 어머니는 벤들라가 ‘빈혈증’에 걸렸다고 설득하고, 돌팔이 산파에게 임신중절을 맡겨 벤들라는 죽게 된다. 그 사이에 멜히오어는 모리츠에게서 발견된 <동침>이라는 글의 작성자임이 밝혀져서 학교로부터 퇴학당하고 감화원에 수감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내면 깊은 곳에서 썩었다”고 생각한다. 멜히오어의 퇴학을 결정하는 교사회의는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 모여서 마치 동물 우화처럼 보인다. 교사들의 이름은 ‘조넨슈티히(=일사병)’, ‘훙거구르트(=주린 띠)’, ‘아펜슈말츠(=원숭이 비계)’ 등 심술궂게 지어졌다. 학생이 자살한 후 열린 교무회의의 큰 걱정은 교육문화청이 불행의 책임을 교사들에게 전가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결국 교사회의는 멜히오어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감화원에서 탈출한 멜히오어는 한밤중에 벤들라와 모리츠가 묻힌 지 얼마 안 되는 묘지에 숨어든다. 묘지의 환상적인 장면에서 죽은 친구 모리츠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자신의 머리를 팔에 낀 모리츠는, 멜히오어에게 삶을 마감하라고 권하며 손을 내민다. 그때 우아한 정장과 실크해트를 쓴 복면의 신사가 나타나 둘 사이에 끼어들고 그는 멜히오어를 삶의 세계, 어른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이 연극은 초연에서 스캔들이 되었다. 어른들의 케케묵은 속물 세계에 대한 선전포고로서, 갈피를 못 잡는 청소년과 경직된 아버지들 사이의 금기시되던 것에 대한 토론으로서 말이다.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동경과 열망과 문제 때문에 얼마나 혼자서 자신을 파괴하고 소모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890/1891년에 씌어졌지만 1906년 막스 라인하르트가 공연할 때까지 초연을 할 수 없었다. 1912년에야 비로소 이 연극은 법원의 최종 결정으로 자유로운 공연 허가를 얻게 되었다.

 잇따라 일어나는 사건의 직접적인 장면들이 느슨하게 연결되는 극형식으로, 렌츠와 뷔히너를 이은 개방적 극형식을 발전시키며, 베데킨트는 이 극에서 사춘기 성 경험의 여러 가지 다른 양상들을 끌어들인다. 즉 포도밭에서의 핸셴 릴로와 에른스트 뢰벨의 동성애 성향이라든가, 자위행위, 또 절망적 소외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내아이들의 싸움질 등이 그것이다.

 ≪눈뜨는 봄≫은 20세기 초와 독일 표현주의 시대의 많은 청소년 비극들의 모범이 되었다. 세대 간의 갈등이라든가 잘못된 사회에 의한 그릇된 청소년 교육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 문학과 연극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던 중심 주제였다.

 1964년 ≪눈뜨는 봄≫은 독일의 유명한 연출가 페터 차데크의 연출로 새롭게 해석되어 무대에 올랐는데, 이 공연에서 무대는 대형 사진 한 장으로 이루어지고 좌우로 움직이는 이 사진 앞에서 연기자들은 정확하게 행동 모델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옮긴이에 대해

 

나오는 사람들 
멜히오어 가보어
가보어 씨: 그의 아버지
가보어 부인: 그의 어머니
벤들라 베르크만
베르크만 부인: 그녀의 어머니
이나 뮐러: 벤들라의 언니
모리츠 슈티펠
렌티어 슈티펠: 그의 아버지
오토, 로베르트, 게오르크 치르슈니츠, 에른스트 뢰벨, 핸셴 릴로, 래머마이어: 김나지움 학생들
마르타 베셀, 테아: 여학생들
일제: 모델
조넨슈티히: 교장
훙거구르트, 크노헨브루흐, 아펜슈말츠, 크뉘펠디크, 충겐슐라크, 플리겐토트: 김나지움 교수들
하베발트: 급사
칼바우흐: 목사
치겐멜커: 렌티어 슈티펠의 친구
프롭스트: 아저씨
디트헬름, 라인홀트, 루프레히트, 헬무트, 가스톤: 감화원 수감생들
프로크루스테스 박사
철물공
폰 브라우제풀버 박사: 의사
복면의 신사
김나지움 학생들
포도밭의 남녀 일꾼들

 

본문중에서   
Unter Moral verstehe ich das reelle Produkt zweier imaginärer Größen. Die imaginären Größen sind Sollen und Wollen. Das Produkt heißt Moral und läßt sich in seiner Realität nicht leugnen.

도덕이란 상상의 두 거물들이 현실에서 낳은 산물이라고 생각해. 상상의 거물들이란 당위성의지이지. 그 산물을 도덕이라 부르는 것이고 그 현실성은 부정할 수 없는 거야.
 


출판사서평  
임신, 자위행위, 동성애 성향 등 당시 금기시 되었던 청소년들의 성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내 스캔들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벤들라는 멜히오어와의 우연한 사랑 경험 때문에 임신을 하게 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추문을 피하기 위해 그녀가 단지 ‘빈혈증’에 걸렸다고 말하며 돌팔이 산파에게 임신중절을 맡긴다. 성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벤들라의 운명은? 김나지움 청소년들의 성에 관한 일화들이 자못 충격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옮긴이       
김미란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논문 <브레히트 희곡에 사용된 속담 연구>(1987)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독일어권의 여성작가>(공저)와 <탈리아의 딸들>, 역서로는 모테카트의 <현대 독일 드라마>와 렌츠의 희곡집 <군인들/가정교사>, F. 로트의 <나귀타고 바르트부르크 성 오르기> 등이 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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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레르몬토프 Михаил Ю. Лермонтов (러시아, 1814 ~ 1841)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19세기 러시아 낭만주의 작가들 중에서 낭만주의를 가장 잘 표현했을 뿐 아니라, 산문에 있어서 낭만주의적 수법과 리얼리즘적인 수법을 결합시킴으로써 러시아 리얼리즘의 발전에 공헌을 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서구의 낭만주의자들인 바이런, 위고, 뮈세, 드 비니 등과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영향 하에 러시아적 바이러니즘을 완성하였을 뿐 아니라,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신 속에 내면화한 바이러니즘의 허구성을 냉철하게 조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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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년에 태어나 1841년에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레르몬토프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다. 세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고, 러시아의 명문가인 스톨리핀가의 후손인 외할머니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서 성장한 그는 청소년기에 이미 280여 편에 가까운 시를 쓴 문학 소년이었다. 모스크바대학에서 교수에 대한 불경한 행동으로 퇴학을 당한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근위사관학교에 입학하지만, 이 선택이 그의 죽음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1837년 1월 29일에 시대의 양심으로 여겨지던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이 프랑스의 망명자 단테스와의 결투로 사망하자, 레르몬토프는 그 죽음을 애도하는 <시인의 죽음>을 단숨에 써내려가고, 이 시는 곧 상트페테르부르크 전역에 퍼진다. 주콥스키, 뱌젬스키, 크라옙스키와 같은 당대의 시인들은 그 시를 읽고 푸시킨의 뒤를 이을 천재적인 시인이 탄생했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레르몬토프는 시인을 살해한 황제 중심의 권력층과 그 주변인들을 후대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시구를 담은 마지막 연의 16행으로 인해 황제를 비롯한 권력층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 후 레르몬토프는 카프카스로 유형 길에 올라 체첸인들과의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전역하여 전적으로 문인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그의 계획은 황제에 의해 번번이 거부당한다. 결국 말년에 주옥같은 시들과 대표작인 서사시 <악마>, ≪우리 시대의 영웅≫ 등을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근위사관학교 동급생이었던 마르티노프와 사소한 시비 끝에 결투를 벌여 허망하게 사망한다.

 

해설         
국내 최초 번역입니다.

이 책의 원전으로 1959년 러시아의 대학자 보리스 에이헨바움이 편집하고 소비에트 아카데미 출판사가 총 4권으로 출간한 레르몬토프 전집 중 제4권에 수록된 판본을 사용했습니다.

미완성 소설 ≪리곱스카야 공작부인≫ 제1장, 제2장, 제3장, 제5장은 약 80%, 제4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은 40%에서 약 50%를 발췌해서 번역했습니다.
레르몬토프의 유일한 완성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은 약 80%를 발췌해서 번역했습니다.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러시아인들이 푸시킨 다음으로 꼽을 정도로 깊이 사랑하는 시인이다. 레르몬토프의 중심 테마는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존재론적인 문제,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 세계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달성할 수 없는 완벽과 완전에 대한 영원한 갈망, 그리고 영원한 조화와 안식에 대한 희구였다. 레르몬토프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폭발적인 영혼의 에너지를 지녔지만, 그 힘을 어디에 분출시킬지 몰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파괴적인 영향력만을 행사하다 허망하게 사라지고 마는 시대적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전달하고, 그 영혼이 느끼는 갈망과 우수를 때로는 맑고 때로는 통렬하기까지 한, 호소력 강한 시어로 담아냄으로써 깊은 공명을 자아낸다.

 레르몬토프는 러시아 민족의 승리는 이미 과거로 묻히고, 1825년 데카브리스트 반란의 진압 이후 숨 막히는 니콜라이 1세의 헌병정치의 억압 속에서 젊은 지성들이 사회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음울하게 시들어가야만 했던 시절에 청년기를 보낸 인물이었다. 레르몬토프는 삶의 전선에 나서자마자 사회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어둠을 목도하고 사회와 삶, 세계 구조 자체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좌절한 시인이었다.

 이런 그의 절망과 환멸, 염세주의는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불화 가운데 성장한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과도 연결된다. 레르몬토프는 예민한 청소년기에 명망 있고 부유한 스톨리핀 가문의 후예인 외조모 아르세니예브나와 스코틀랜드에 뿌리를 둔 한미한 귀족 출신인 부친 유리 레르몬토프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장했다. 레르몬토프는 절대적인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외조모와 한미한 귀족이라는 이유로 박대를 당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일이 왕왕 있었고, 이러한 현실로 인해 그는 깊은 좌절과 우수를 체험했다. 청년이 되어 사교계를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레르몬토프는 자신의 한미한 출신으로는 사교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부친의 가문에 대한 왜곡된 자부심과 더불어 열등의식을 지니게 되었고, 이것이 청년기의 반항심으로 이어지면서 내성적이면서도 비타협적인 성격으로 발전하였다. 그의 유명한 ‘신랄한 독설’ 또한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로 인해 그는 긍정적이며 밝고 미래 지향적인 푸시킨과는 달리 회의적이고 어둡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나타나게 된다.

 레르몬토프는 푸시킨과 마찬가지로 서정시를 비롯하여 서사시, 드라마, 소설 등 각 문학 장르에 걸쳐 작품을 쓰고, 각 장르에서 유명한 걸작들을 남긴다. 유명한 서정시로는 <시인의 죽음>, <자신을 믿지 마라>, <세 그루의 종려나무>, <기도>, <지루하고 슬프다>, <조국>, <얼마나 자주 현란한 군중들에 둘러싸였던가>, <유언>, <나 홀로 길을 나선다> 등이 있고, 드라마로는 <가면무도회>, 서사시로는 <악마>와 <견습 수도사>, 소설로는 ≪우리 시대의 영웅≫을 걸작으로 남겼다.

 레르몬토프는 미완성 소설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을 1836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837년 1월경에 중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레르몬토프 생전에 출판되지 못하고, 1882년에 문학잡지 <러시아 소식(Русский Вестник)> 1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본 편역서는 1959년 러시아의 대학자 보리스 에이헨바움이 편집한 소비에트 아카데미 출판사의 4권짜리 레르몬토프 전집 제4권에 수록된 판본을 원본으로 사용했다. 옮긴이가 원전에서 직접 번역했는데, 제1장, 제2장, 제3장, 제5장은 80% 이상 번역했다, 크게 삭제한 부분은 주인공들의 대화 부분으로 대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는 방식을 취했다. 같은 방식으로 제4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을 40%에서 50% 정도로 축약 번역했다. 이 작품에는 전지적 서술자가 외모와 전기, 실내 인테리어, 행동 등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형상을 전형으로서 구축하고자 한 노력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옮긴이는 위의 부분들을 최대한 살려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리곱스카야 공작부인≫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레르몬토프가 끊임없이 사교계의 인물들과 세계를 하나의 전형으로서 보편화해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페초린이 네구로바를 유혹하는 것도 최초로 사교계에 등장한 신참이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보편적 방식 중 하나로 해석되고, 네구로바의 삶 또한 사교계의 아가씨가 노처녀가 되어가는 보편적 과정으로 해석되며, 무도회의 인물들, 극장 앞의 인물들에 대한 캐리커처 또한 페테르부르크 사회 전체의 미니어처로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가 끊임없이 천착하는 부분은 객관성과 일반화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이러한 요소들에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다. 자신의 특별함을 인식하고, 열정적이고 야망은 있지만, 현실에 좌절하여 폭풍 같은 분노를 삭이면서 살아가는 가난한 귀족이자 관리인 크라신스키, 타인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약간은 냉소적이며 지적인 장교 페초린, 그리고 범상치 않은 내면을 간직한 열정적인 여인 베라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이 그런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주인공들이 서술자에 의해 때로는 지극히 제한된 시점에서 묘사되곤 한다. 예를 들면, 페초린이 안락의자에 앉아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서술자인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분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 서술자는 때로 자기 마음대로 독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장면의 전환과 이야기의 전환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관리 크라신스키에 대한 묘사에서는 일상의 추한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고골의 수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 작품은 연애소설과 자연파적 수법, 낭만주의적 수법과 리얼리즘적 수법, 1인칭 서술시점과 3인칭 서술 시점이 일관성 없이 혼용되다가 중단된다. 어쨌든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형상을 객관적 관찰의 결과로서 구축하고자 하는 리얼리즘적 서술의 기법을 최초로 시도한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크다.

 레르몬토프의 유일한 완성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은 1840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1841년에 저자 서문이 덧붙여진 채 재출간되었다. 본 편역서는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이 수록된 동일 판본을 원본으로 사용하였고, 편역자 자신이 원본에서 직접 번역하였다. 각 노벨라들을 70%에서 80% 정도로 발췌했고, 내용을 연결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간단하게 언급하거나 요약하는 식을 취했다. <따만>의 경우는 원작 자체의 완벽에 가까운 완결성으로 말미암아 95% 이상 번역하였다.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는 주인공 페초린의 내적 고백이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각 노벨라마다 주인공의 고백 부분의 번역에 충실하고자 했다.

 ≪우리 시대의 영웅≫은 레르몬토프의 유일한 완성 소설로서 1830년대에 등장한 ‘단편소설 모음’의 장르에 속한다. 기존의 ‘단편소설 모음’ 장르에서는 각 단편이 서로 다른 서술자를 지니고, 플롯상 상호 관련이 없는 사건들을 다루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시대의 대표자인 한 주인공을 외면 시점에서 내면 시점으로 조명하여 논리적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천재적이고 획기적인 측면이 있다. 서술의 차원에서도 1인칭 시점을 일관되게 사용하여, 관찰과 고백이라는 서술의 노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낭만주의적 소설기법과 사실주의적 소설기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레르몬토프는 페초린을 통해 니콜라이 1세 치하에서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할지 모른 채 타인의 삶에 파괴적인 역할만을 하는 시대적 주인공의 모습뿐 아니라,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악행만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 죄악과 그것에서 오는 인간의 절망과 우수를 잘 표현한 형이상학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주인공의 고백을 담은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로 대변되는 러시아 심리소설의 선구라고 볼 수 있다.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은 이미 국내에 번역본으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은 러시아 문학에서 소설사적으로 보았을 때 대단히 중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작이라는 이유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 지만지 고전천줄의 기획으로 이 작품을 발췌의 형식으로나마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레르몬토프 전공자로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리곱스카야 공작부인
우리 시대의 영웅·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жесты его были отрывисты, хотя часто они выказывали лень и беззботное равнодушие, которое теперь в моде и в духе века… и в свете утверждали, что язык его зол и опасен… ибо свет не терпит в кругу своём ничего сильного, потрясающего, ничего, что бы могло обличить характер и волю; - свету нужны французские водевили и русская покорность чуждому мнению.

그의 몸짓은 요즘 시대의 정신이자, 유행인 나태함과 태평한 무심함을 자주 드러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절도가 있었다… 사교계에서는 그의 말에 독이 있고, 그의 혀는 위험하다고들 했다…. 왜냐하면 사교계는 성격과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강한 것, 충격적인 것은 무엇이든 참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교계에 필요한 것은 프랑스의 보드빌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러시아식 공손함이다.

--- 리곱스까야 공작부인 ----


Герой нашего времени, милостивые государя мои, точно, портрет, но не одного человека: это портрет, состравленный из пороков всего нашего поколения, в полном их развитии. Вы мне опять скажете, что человек не может быть так дурен, а я вам скажу, что ежели вы верили возможности существования всех трагических и романтических злодеев, отчего же вы не веруете в действительность Печорина?

우리 시대의 영웅은, 친애하는 신사숙녀 여러분, 정확히 말해서 초상이지만, 한 사람의 초상이 아니다. 그는 우리 세대 전체의 악덕을 가장 발전된 형태로 소유한 인물의 초상이다. 여러분은 사람이 그렇게 나쁠 수는 없다고 내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께 묻겠다. 여러분들은 온갖 종류의 비극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악인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믿으면서, 어째서 페초린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가?

 ----- 우리 시대의 영웅 -----



출판사서평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레르몬토프의 미완성 소설<리곱스카야 공작부인>과 그의 유일한 완성 소설 <우리시대의 영웅>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두 작품에서 작가는 냉소적이고 지적인 장교 페초린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내면의 에너지를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해 결국 타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악행만을 거듭하는 그를 통해 인간의 절망과 우수를 표현한 러시아 심리소설의 선구작이다.

 

옮긴이       
홍대화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논문 <레르몬토프의 소설들에 나타난 구성의 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도스토옙스키였지만, 대학교 3학년 때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을 읽고, 주인공 페초린에게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악령≫의 주인공 스타브로긴의 모습을 발견하고 레르몬토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90년 여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찾아간 레르몬토프 박물관의 낭만주의적 정취에 매료되어 레르몬토프를 전공할 결심을 했다. 1991년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때마침 1992년부터 레르몬토프에 대한 특강이 진행될 계획임을 보고, 결정적으로 그곳에서 레르몬토프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다. 1995년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 2003년도부터 ‘악마성’이라는 테마의 틀 속에서 푸시킨, 레르몬토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에 나타난 악마적인 주인공 형상들의 상호 관련성을 추적하는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주요 업적으로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열린책들, 2000년, 번역)과 ≪도스토옙스키≫(살림출판사, 2005년, 도스토옙스키 입문서) 등이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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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m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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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申在孝) (한국, 1812~1884)


저자소개     
신재효[申在孝, 1812(순조 12)∼1884(고종 21)]는 조선 후기 판소리 연구가다.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동리(桐里)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출생했다. 오위장(五衛將) 벼슬을 지냈다.

신재효는 중인(中人)에 천석꾼의 재산을 이룬 사람으로서 생활에 여유가 있고 판소리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 판소리 명창(名唱)들을 후원(後援)하여 좋은 명창들을 많이 길러냈다. 뿐만 아니라 전부터 전해오던 판소리 ≪춘향가(春香歌)≫, ≪심청가(沈淸歌)≫, ≪박타령≫, ≪토별가(兎鼈歌)≫, ≪적벽가(赤壁歌)≫, ≪변강쇠가≫의 여섯 작품을 스스로 새롭게 개작(改作)하였다. 그 전에 광대들이 만든 거칠고 발랄한 판소리 사설(辭說)을 중인(中人)의 시각에서 좀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이로써 판소리가 상민(常民)들의 예술에서 벗어나 중인(中人) 이상 양반(兩班)도 즐길 수 있는 민족문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신재효는 또 판소리의 이론적 체계도 모색하여 ≪광대가(廣大歌)≫를 지어 인물·사설·득음(得音)·너름새라는 4대 법례를 마련하였다. 그는 판소리 사설 외에도 30여 편의 단가(短歌) 또는 허두가(虛頭歌)라고 하는 짧은 노래도 지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경복궁(景福宮)을 중수하고 낙성연(落成宴)을 할 때, ≪경복궁타령≫·≪방아타령≫ 등을 지어서 제자인 진채선(陳彩仙)에게 부르게 하여, 여자도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기도 했다. 이처럼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선생은 오늘날 판소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분이다. 그래서 ‘한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기도 한다.


해설         

이 책은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선생이 1873년 무렵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신재효본 ≪박타령≫을 대본으로 삼았습니다.

  ≪흥부전(興夫傳)≫은 ≪춘향전(春香傳)≫, ≪심청전(沈淸傳)≫과 더불어 3대 판소리계 소설로 일컬어진다. 이 작품은 원래 판소리 ≪흥보가(興甫歌)≫에서 비롯하였다. 판소리 ≪흥보가≫는 늦어도 18세기에는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판소리 초기의 명창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의 장기(長技)가 ≪흥보가≫로서 <제비가>(놀부가 제비 후리는 대목)가 그의 더늠이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고소설 ≪흥부전≫은 현재 19세기 이후의 것만 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학계에 소개된 이본(異本)은
37여 종이다. 곧, 목판본(木版本) 3종, 필사본(筆寫本) 12종, 구활자본(舊活字本) 7종, 판소리 창본
(唱本) 15종 등이다.

≪흥부전≫이 우리 한국인에게 친숙한 소설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흥부와 놀부라는 두 주인공이 살아 있는 인물처럼 매우 흥미롭게 잘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두 부류의 인물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곧 흥부는 ‘착한 사람’, 놀부는 ‘악한 사람’을 대표한다. 과거에는 누구나 흥부를 긍정적 인물로, 놀부는 부정적 인물로 보는 데 이견(異見)이 없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흥부를 ‘게으르고 무능하며 의지가 약한 사람’, 놀부를 ‘부지런하고 유능하며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도 생겨났다. 하지만 전공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흥부전≫이라는 작품의 원문을 읽지 않고 그냥 줄거리만 가지고 제멋대로 추측하는 데서 빚어지는 오해로 보인다.

‘흥부’의 이름은 원래 ‘흥보(興甫)’로서 ‘흥할 사람’의 뜻을 지닌다. ‘놀부’는 ‘놀보’로서 ‘놀 사람, 노는 사람’의 뜻이다. 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놀부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여러분이 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놀부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편하게 놀고먹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냉혹한 사람이다. 반면에 흥부는 놀부에게 쫓겨나온 뒤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품팔이를 하며 부지런히 산다. 심지어는 목숨 걸고 매품까지 팔려했을 정도로 흥부는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다. 또한 흥부는 이웃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으로 알고 구원하려 애쓰며 나아가 제비 같은 미물에게마저도 동정심을 잃지 않는 따뜻한 사람이다.

≪흥부전≫은 흥부·놀부라는 뛰어난 두 인물을 창조한 점 외에도 훌륭한 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중 표현의 우수성과 사상의 우수성을 꼽을 수 있다.

≪흥부전≫이 표현이 우수하다는 점은 다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해학(諧謔)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작품 전반에 걸쳐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흥부전≫은 한국 웃음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흥부전≫은 흥부가 박을 타는 신나는 장면은 물론이지만 흥부가 죽기 살기로 매품을 팔던 괴로운 상황이나 굶주림에서 시달리던 슬픈 상황에서도 해학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우리 한국인이 지녔던 삶의 슬기와 여유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흥부전≫이 표현이 우수하다는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이 조선 후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놀부에게 쫓겨나 떠돌아다니며 살던 흥부의 삶 속에는 집과 땅 없이 떠돌아다니던 유랑민의 모습이 잘 담겨져 있다. 또 작은 오막살이집에서 자주 끼니를 거르며 먹고 살기조차 힘겨웠던 흥부 가족의 삶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반면에 부자로 사치스럽게 편히 놀고먹고 사는 놀부의 모습에는 돈 많은 지주(地主)가 살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한편 떠돌아다니며 놀이를 팔아먹고 살던 놀이패들의 모습도 ≪흥부전≫에는 잘 그려져 있다.

한편 ≪흥부전≫은 사상적인 면에서도 우수하다. ≪흥부전≫은 우리에게 ‘윤리가 중요한가, 돈이 중요한가?’를 묻고 있다. 흥부는 윤리는 있되 돈이 없고, 놀부는 윤리는 없되 돈이 있다. 과연 어떤 게 잘 사는 삶인가? 이 작품은 둘 다 옳지 않다고 한다. 흥부는 윤리는 있되 돈이 없어 굶어 죽을 위기에 빠진다. 놀부는 돈은 있되 윤리가 없어 다른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둘 다 옳지 않다. 그러면 어떤 게 정답인가? 윤리가 중심이 되되 돈도 있어야 잘 사는 삶이다. 이게 흥부가 부자가 된 뒤의 모습인 지상선(地上仙)이다. 그러면 흥부는 어떻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었는가?

흥부는 남과 더불어 착하게 열심히 살다보니, 이웃이 은혜를 갚아 도와주어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반대로 놀부는 자기 혼자 잘 살려고 남에게는 피해를 입히면서 살다 보니, 결국 남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또 자기 욕심이 지나쳐서 끝내는 망하고 말았다. 따라서 ≪흥부전≫은 혼자만 잘 살려는 생각보다는 남과 더불어 잘 살려는 생각이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놀부의 생각은 ‘배타주의(排他主義)’라 부를 수 있다. 놀부는 배타주의가 지나쳐 하나밖에 없는 아우마저 내쫓고 부모 제사마저 대전(代錢)으로 치렀다. 결국 놀부는 그 지나친 배타적 행위로 인해 다른 모든 사회 집단의 반발을 산데다가 또 요행을 바라는 자신의 탐욕이 겹쳐져서 파멸하게 된다. 한편 흥부의 생각은 ‘더불어 살기주의’ 또는 ‘공존공영주의(共存共榮主義)’라 부를 수 있다. 흥부는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늘 이웃도 함께 생각한다. 심지어 제비마저도 자기 가족처럼 생각하고 돌봐준다. 결국은 흥부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자들의 보은(報恩)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흥부전≫은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인 ‘더불어 살기주의’를 가르쳐주고 있다. ≪흥부전≫은 흥부·놀부라는 보편적 인물의 창조와 함께 ‘공존공영주의(共存共榮主義)’라는 보편적 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작품이고 영원한 한국인의 고전이 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주석본(註釋本)의 대본은 신재효(申在孝)본 ≪박타령≫이다. 이 작품은 동리(桐里) 신재효 선생이 1873년 무렵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860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판본(京板本) 다음으로 오래된 이본인데다 내용도 좋다. 그 이전에 전해오던 판소리 창본(唱本)≪흥보가≫ 사설을 동리 신재효 선생이 가다듬어 예술성이 높은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오늘날도 불리어지는 판소리 ≪흥보가≫와 고소설 ≪흥부전≫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작품이다. 다만 어려운 한자어와 고사(故事)와 옛 풍속과 옛 글귀들이 많아 현대인으로서는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흠이다. 하지만 원전으로 읽다 보면 번역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전의 깊은 맛을 볼 수 있고 재미도 느껴질 것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박타령
놀보가 흥보를 내쫓다
흥보가 떠돌다가 복덕촌에 정착하다
흥보가 놀보를 찾아갔다 매만 맞고 돌아오다
흥보 부부가 품을 팔아 열심히 살아가다
흥보가 제비다리를 고쳐주어 큰 부자가 되다
놀보가 제비다리를 부러뜨려 쫄딱 망하다
놀보가 회개하고 흥보와 우애를 회복하다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하늘이 사람 낼 제 정한 분복 각기 있어 잘난 놈은 부자되고 못난 놈은 가난하니 내가 이리 잘 살기를 네 복을 뺐었느냐.

어찌하면 잘 사는지 세상 난 연후에 불의행사(不義行事) 아니하고 밤낮으로 벌어도 삼순구식(三旬九食)할 수 없고 일 년 사철 헌옷이라 내 몸은 고사하고 가장은 부황나고 자식들은 아사지경(餓死之境) 사람 차마 못 보겠네.


옮긴이       
김창진(金昌辰)은 국제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이 <‘흥부전’의 이본과 구성 연구>이며, 그 뒤에도 ≪흥부전≫ 관련 논문을 20여 편 써서 우리나라에서 ≪흥부전≫ 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학자가 되었다. 현재 초당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또한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에 종문화사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흥부전≫ 풀이본을 낸 바 있다. 또한 지만지고전천줄에서는 ≪흥부전≫에 이어서 ≪배비장전≫, ≪변강쇠전≫의 주석본을 계속해서 내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흥부전≫, ≪토끼전≫, ≪두껍전≫, ≪금오신화≫ 등의 풀이본을 올해 안에 내놓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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